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 주말이면 동생들과 함께 시골집 앞개울에서 물고기를 잡곤 했다. 천등산에서 발원한 개울에는 깽피리(송사리)와 중타리(버들치), 기름종아(기름종개), 미꾸리(미꾸라지), 꾸구리, 메기, 피래미(피라미), 징거미 등의 물고기들이 꽤 많이 살았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은 간단했다. 먼저 삽으로 모래를 퍼서 물고기가 있을 만한 곳을 빙 둘러 막았다. 그런 다음 독이 있는 여뀌를 뜯어다가 돌에 갈아서 즙을 내어 막은 곳에 풀었다. 잠시 기다리면 여뀌독을 먹은 물고기들이 허연 배를 드러내고 물에 둥둥 떠올랐다. 그러면 뜰채로 물고기들을 뜨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물고기를 집으로 가져가면 어머니는 얼큰하면서도 구수한 민물고기 매운탕을 끓여 주시곤 했다.
여뀌 대신 담배 뿌리나 명아자여뀌를 쓰기도 했다.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배운 생활의 지혜였다. 여뀌가 있는 곳에는 명아자여뀌도 있었다. 하지만 명아자여뀌는 물고기를 기절시키는 효과가 여뀌만큼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명아자여뀌를 볼 때마다 어린 시절 동생들과 함께 앞개울에서 물고기를 잡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명아자여뀌는 마디풀목 마디풀과 여뀌속의 한해살이풀이다. 학명은 퍼시캐리어 노도사 (퍼스) 오피즈[Persicaria nodosa (Pers.) Opiz]이다. 종소명 노도사(nodosa)는 마디(node)가 뚜렷하다는 뜻의 라틴어다. 명아자는 한자 '螟蛾子'를 음독(音讀)한 이름이다. 명아자여뀌의 영어명은 노우드 스마트위드(Node smartweed), 일본명은 오오이누타데(オオイヌタデ, 大犬蓼)이다. 중국명은 따마랴오(大马蓼) 또는 지에랴오(節蓼), 쭈랴오즈차오(猪蓼子草)이다. 명아자여뀌의 꽃말은 따로 없지만 여뀌에 준해서 '학업의 마침'이라고 한다.
명아자(螟蛾子)라는 이름은 곤충이 식물체 줄기 속을 파먹거나 그 속에 알을 낳으면 식물체 마디가 굵어지는 형태에서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명아자여뀌의 마디는 곤충이 식물체 줄기 속에 알을 낳아서 굵어진 것이 아니다. 수심이 깊어지면 생존을 위해 부력을 키우느라 마디가 굵어진다. 이것을 곤충 때문이라고 보고 명아자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옛 문헌의 명아자여뀌 한글명은 명아자역구 또는 영귀였다. 북한에서는 마디여뀌라고도 한다. 북한과 만주에서는 마료(馬蓼, 马蓼)를 번역해 말역귀풀 또는 말역귀초라고 불렀다. 옛날에는 명아자여뀌를 포함해서 말의 먹이가 되었던 여뀌 종류를 모두 말역귀로 불렀다. 명아자여뀌의 이명에는 큰개여뀌, 흰여뀌, 흰개여뀌, 수캐여뀌, 왕개여뀌 등이 있다.
명아자여뀌는 한국을 비롯해서 중국, 몽골, 타이완, 러시아 연해주와 동시베리아, 일본 등 북반구 온대 전역에 분포한다. 아프리카 북부, 호주 등지에도 있다. 한국에서는 전국 각지의 풀밭이나 습지에서 자란다.
명아자여뀌의 키는 150cm까지 자란다. 줄기는 장대하고, 마디가 퉁퉁하며, 가지가 갈라지고, 붉은빛이 돌며, 흑자색 점이 있다. 잎은 어긋나기하고, 타원상 피침형 또는 피침형이다. 잎 끝은 길게 뾰족하고, 밑은 쐐기모양이며, 엽병은 짧다. 엽초는 통모양으로 붉고, 굵은 맥이 있으며, 연모는 없거나 짧은 것이 있다.
꽃은 7~9월에 홍자색으로 핀다. 흰색으로 피는 꽃도 있다. 가지 끝에 나는 이삭꽃차례에 밀착하며, 꽃차례는 길고, 끝이 드리운다. 꽃받침은 4개로 깊게 갈라지고, 맥이 뚜렷하며, 꽃잎은 없다. 수술은 6개이고, 암술대는 2개로 갈라진다. 열매는 수과이고, 꽃받침으로 싸이며, 편평한 원 모양이다. 양면이 약간 파여 있으며, 윤채가 있다.
명아자여뀌의 유사종에는 여뀌[학명 Persicaria hydropiper (L.) Delarbre], 꽃여뀌[학명 Persicaria conspicua (Nakai) Nakai ex Mori], 물여뀌[학명 Persicaria amphibia (L.) Delarbre], 개여뀌[학명 Persicaria longiseta (Bruijn) Kitag], 흰여뀌[학명 Persicaria lapathifolia (L.) Delarbre], 솜흰여뀌(학명 Persicaria lapathifolia var. salicifolia Miyabe), 털여뀌[학명 Persicaria orientalis (L.) Spach] 등이 있다. 또, 바늘여뀌[학명 Persicaria bungeana (Turcz.) Nakai ex Mori], 가시여뀌[학명 Persicaria dissitiflora (Hemsl.) H.Gross ex Mori], 이삭여뀌[학명 Persicaria filiformis (Thunb.) Nakai ex Mori], 새이삭여뀌[학명 Persicaria neofiliformis (Nakai) Ohki], 가는여뀌(학명 Persicaria hydropiper var. fastigiatum Nakai), 며느리배꼽[학명 Persicaria perfoliata (L.) H.Gross], 미꾸리낚시[Persicaria sagittata (L.) H.Gross], 쪽[Persicaria tinctoria (Aiton) H.Gross] 등도 명아자여뀌의 유사종이다.
여뀌는 키가 40~80cm 정도이다. 이삭꽃차례는 길이 5~10cm로서 길며 가늘다. 화피는 연한 녹색이고, 끝이 약간 적색이며, 선점이 있다. 꽃여뀌의 꽃은 이가화로서 연한 홍색이다. 꽃차례는 이삭꽃차례와 비슷하며, 갈라지지 않고, 줄기 끝이나 잎겨드랑이에 많은 꽃이 달린다. 물여뀌는 지상에 자라는 것은 곧추서서 많은 잎이 달리지만, 물속에서 자라는 것은 잎겨드랑이에서 꽃피는 짧은 화경이 나온다. 개여뀌는 전체에 털이 없고, 줄기는 원통형이며, 적자색이다. 꽃은 적자색 또는 백색이다. 흰여뀌의 꽃은 백색 또는 연한 홍색이며, 이삭꽃차례는 길이 1~4cm로서 곧게 서지만, 다소 굽는 것도 있다. 솜흰여뀌는 잎 뒷면에 백색 샘털이 있다. 신의주, 서울, 부전고원 및 구례에서 자란다. 털여뀌는 전체에 털이 밀생한다. 한국에서 자라는 여뀌 종류 중에서 가장 크고 모양이 뚜렷하여 구별하기가 쉽다.
바늘여뀌는 짧은 갈고리 모양의 가시가 나고, 줄기는 곧게 선다. 가시여뀌의 줄기는 적색 샘털이 밀생하고, 잎은 줄기와 함께 짧은 가시털이 있다. 이삭여뀌는 전체에 거친 털이 퍼져 나고, 마디가 굵다. 잎 양면에 털이 있으며, 표면에 검은색 반점이 있다. 새이삭여뀌는 잎에 털이 적고, 맥이 들어가지 않으며 예두이다. 가는여뀌는 잎이 가늘고, 수과의 길이가 1.5mm 정도이다. 며느리배꼽의 잎은 삼각형이고, 뒷면이 흰 가루로 덮인다. 잎 가장자리는 물결 모양이고, 줄기와 함께 갈고리 모양의 가시가 있다. 미꾸리낚시의 털은 없으나 갈고리 모양의 가시가 있고, 꽃은 줄기 끝이나 잎겨드랑에 두상으로 달린다. 쪽은 거의 털이 없고, 줄기는 원통 모양이며, 붉은 자주색이다.
'우리 주변 식물 생태도감'에는 명아자여뀌에 대해 '밀원용이나 퇴비로 이용하며 식용하기도 한다.'고 했으며, 옴이나 피부병에 효능이 있다고 나와 있다. 어린잎을 삶아서 나물로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충주 지방에서는 명아자여뀌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2021. 1. 8.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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