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하얀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면 2001년도 5월~7월 백두대간을 홀로 순례하던 때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지리산에서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 지 15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해 5월 26일 소사고개에서 충북과 경북, 전북의 경계 지점에 솟아 있는 삼도봉(三道峯, 1,176m)을 향해 산길을 떠났다. 853m봉을 지나 김천 가목에서 무풍 쑴병이로 넘어가는 고개마루에 이르렀을 때였다. 때마침 고개마루에는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바람에 실려오는 진한 찔레꽃 향기가 코를 찔렀다. 그 향기에 취해 한동안 고개마루에 앉아 있었다. 문득 장사익이 목이 터지도록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라고 부르는 노래가 떠올랐다.
백두대간 순례 43일째인 6월 23일에도 찔레꽃에 대한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있다. 댓재에서 출발하여 두타산(1,353m)과 청옥산(1,404m), 상월산(970.3m)을 넘어 원방재를 지날 때 해가 지기 시작했다. 달팽이산(1.021.4m)을 넘을 때는 해는 완전히 져서 캄캄했다. 무거운 배낭을 지고 먼 산길을 걸어오느라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때, 칠흑처럼 어두운 밤 산기슭에서 별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한 무더기의 찔레꽃이 눈에 들어왔다. 초여름 밤의 습기를 머금고 밤공기에 실려온 찔레꽃 향기는 뭐라고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고 진했다. 그야말로 야래형(夜來香)이었다. 그 찔레꽃 향기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찔레꽃은 장미목 장미과 장미속의 낙엽성 관목이다. 학명은 로사 멀티플로라 툰베리(Rosa multiflora Thunb.)이다. 영어명은 멀티플로라(multiflora) 또는 멀티플로라 로즈(multiflora rose), 로사 멀티플로라(rosa multiflora), 와일드 로즈(wild rose), 베이비 브라이어(baby brier) 등이다. 중국명은 예쟝웨이(野蔷薇) 또는 예메이구이(野玫瑰)이다. 일본명은 노이바라(のいばら, 野茨, 野薔薇)이다.
찔레꽃을 찔레, 찔레나무, 들장미, 야장미(野薔薇), 석산호(石珊瑚)라고도 한다. 조선 후기의 '물명고(物名攷)'에는 늬나무라고 했다. 찔레란 이름은 ‘가시가 찌른다’라는 뜻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 꽃말은 '온화, 고독, 신중한 사랑, 가족에 대한 그리움, 자매간의 우애, 외로움' 등 여러 가지이다.
찔레꽃은 한국을 비롯해서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한국에서는 함경북도를 제외한 전국 각지에서 자란다. 습기가 많은 하천이나 호반 주변, 배수가 잘 되는 양지 바른 곳에 많이 자생한다.
찔레꽃의 키는 2m까지 자란다. 가지에는 가시가 나 있다. 잎은 어긋나기하며 깃모양겹잎이다. 소엽은 타원형 또는 거꿀달걀형이고, 양 끝이 좁으며, 가장자리에 잔톱니가 있고, 뒷면에 잔털이 있다. 턱잎은 빗살 같은 톱니가 있고, 하반부가 잎자루와 합쳐진다.
꽃은 5월에 흰색 또는 연한 붉은색으로 원뿔모양꽃차례에 달린다. 작은꽃대에 샘털이 약간 있고, 꽃받침조각은 피침형으로 뒤로 젖혀진다. 꽃잎은 거꿀달걀형이며, 오목형으로 향기가 있다. 열매는 둥글고 붉은색이며, 10월에 성숙한다.
백난아가 부른 '찔레꽃' 가사에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우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찔레꽃 붉게 피는'이라는 가사는 잫못된 것이다. 작사자가 본 찔레는 해당화였다. 남쪽 바닷가 지방에서는 해당화를 찔레라고도 한다. 그런데, 가사를 '찔레꽃 희게 피는'이라고 지었으면 아주 멋없는 노래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찔레꽃의 유사종에는 덩굴장미(학명 Rosa multiflora Thunb. var. platyphylla Thory), 털찔레[학명 Rosa multiflora var. adenochaeta (Koidz.) Ohwi], 좀찔레[학명 Rosa multiflora var. quelpaertensis (H.Lev.) Nakai], 제주찔레(학명 Rosa luciae Franch. & Rchb.), 국경찔레(학명 Rosa jaluana Kom.), 돌가시나무(학명 Rosa wichuraiana Crep. ex Franch. & Sav.), 용가시나무(학명 Rosa maximowicziana Regel) 등이 있다.
덩굴장미는 낙엽 덩굴성 관목으로 키가 5m까지 자라고, 전체에 밑을 향한 가시가 드문드문 있다. 엽축과 잎자루에도 가시가 있고, 꽃이 빨간색이다. 털찔레는 잎과 꽃차례에 샘털이 많다. 좀찔레는 소엽의 길이가 1~2cm이고, 꽃이 작다. 제주찔레는 탁엽의 가장자리가 거의 밋밋하고, 암술대에 털이 있다. 국경찔레는 제주찔레와 비슷하지만 꽃이 빨간색이고, 탁엽에 톱니가 있다. 돌가시나무는 반상록 포복성이고, 꽃의 지름이 4cm이며, 소엽은 7~9개가 난다. 용가시나무는 포복성이고, 소엽은 5~7개이다.
찔레꽃에 얽힌 전설이 있다. 옛날 고려에서는 해마다 아름다운 처녀를 뽑아서 원나라에 바쳐야만 했다. 어느 산골 마을에 찔레와 달래라는 두 자매가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관원들에 의해 두 자매가 공녀로 원나라에 끌려가게 되었다. 병든 아버지가 있다는 호소와 서로 자기가 가겠다는 모습에 감동한 관원은 달래를 남겨두고 찔레만 데리고 갔다. 원나라에 끌려간 찔레는 운이 좋게도 마음씨 좋은 주인을 만나 힘들지 않은 생활을 하며 살았다. 그러나 찔레에게는 고향에 두고 온 아버지와 달래 생각뿐이었다. 찔레는 그리움 때문에 병이 들고 말았다. 이를 불쌍히 여긴 주인은 며칠 고향에 다녀오라고 찔레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간 찔레는 가족을 만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찔레를 걱정하며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시고, 달래는 집을 나간 뒤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찔레는 달래를 찾으러 산과 들을 헤매다 지쳐서 죽고 말았다. 찔레가 달래을 찾아 헤매면서 골짜기, 산, 개울에 흘린 눈물은 꽃이 되어 온 산천에 아름답게 피어났다. 그 꽃이 바로 찔레꽃이었다는 전설이다.
찔레꽃의 새순은 생으로 먹을 수 있다. 새순이 나올 무렵, 껍질을 살짝 벗겨서 먹으면 약간 떫으면서도 고소하고 달큰한 맛이 난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누구나 찔레순을 먹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꽃잎은 차로 이용할 수 있다. 찔레꽃은 꽃이 아름다워서 관상용으로 심기도 하고, 가시가 발달해서 생울타리용으로도 사용한다. 찔레꽃은 또, 병충해에 저항력이 강한 장미의 원예품종을 번식시키기 위한 대목으로 이용된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장미대목으로 가시가 없는 찔레원예1호와 특히 선충에 강한 선강찔레를 육성하여 장미농가에 보급한 바 있다. 찔레꽃은 갈색 계통의 염료를 얻기 위해 이용되는 식물이다. 빨간 열매를 이용하면 옅은 갈색을 얻을 수 있다. 잎의 염액은 적갈색으로 탁하다. 매염제에 대한 반응은 가을에 채집한 것이 보다 좋다.
찔레의 꽃을 본초명 장미화(薔薇花), 뿌리를 장미근(薔薇根), 줄기를 장미지(薔薇枝), 잎을 장미엽(薔薇葉), 과실을 영실(營實)이라고 한다. 장미화는 5~6월 꽃이 한창 피었을 때 맑은 날씨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린다. 청서(淸暑), 화위(和胃), 지혈(止血)의 효능이 있어 서열토혈(暑熱吐血), 구갈(口渴), 사리(瀉痢), 말라리아, 도상출혈(刀傷出血)을 치료한다. 달여서 복용한다. 외용시에는 가루를 만들어 환부에 바른다. 장미근은 연중 수시로 채취하여 깨끗이 씻어 햇볕에 말린다. 청열이습(淸熱利濕), 거습(祛濕), 활혈(活血)의 효능이 있어 폐옹(肺癰), 당뇨병, 이질, 관절염, 사지마비, 토혈, 비출혈(鼻出血), 빈뇨(頻尿), 유뇨(遺尿), 월경불순, 타박상, 창절개선(瘡癤疥癬)을 치료한다. 달여서 복용한다. 외용시에는 짓찧어서 환부에 붙인다. 달인 물로 양치질을 한다. 장미지는 부인(婦人)의 독발(禿髮, 대머리)에 쓴다. 찔레의 햇가지와 원숭이 내장 결석(結石)을 같이 삶아서 달인 물을 머리에 바른다. 장미엽은 짓찧어서 붙이면 생기(生肌)의 효능이 있다. 영실은 8~9월에 열매가 빨갛게 익기 전 푸른색이 조금 남아 있을 때 따서 그늘에서 말려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밀봉한다. 이뇨(利尿), 해독, 사하(瀉下), 제열(除熱), 활혈의 효능이 있어 신염(腎炎), 부종(浮腫), 요불리(尿不利), 각기(脚氣), 창개옹종(瘡疥癰腫), 소변비삽(小便秘澁), 월경복통(月經腹痛)을 치료한다. 달여서 복용한다. 술에 담그거나 환제(丸劑), 산제(散劑)로 하여 복용한다. 외용시에는 짓찧어서 환부에 붙이거나 달인 물로 씻는다. 한의사들은 임상에서 거의 안 쓴다.
'동의보감' <탕액편 : 풀>에는 영실(營實, 딜위여름, 찔레나무 열매)에 대해 '성질은 따뜻하고[溫](약간 차다고도[微寒] 한다), 맛이 시며[酸](쓰다고도[苦] 한다), 독이 없다. 옹저, 악창, 패창(敗瘡), 음식창이 낫지 않는 것과 두창(頭瘡), 백독창(白禿瘡) 등에 쓴다. ○ 찔레나무 열매는 즉 들장미의 열매(野薔薇子)이다. 줄기 사이에 가시가 많고, 덩굴이 뻗으며, 열매는 찔광이(산사)와 같고, 꽃은 5잎이며, 6~8개가 한데 나온다. 붉기도 하고 희기도 하며 어느 곳에나 다 있다. 흰 꽃이 피는 것이 좋다[본초]. ○ 음력 8월, 9월에 열매를 따서 신좁쌀죽웃물(漿水)에 버무려 쪄서 볕에 말려 쓴다[입문]. '고 나와 있다. 또, 영실근(營實根, 찔레나무 뿌리)에 대해서 '성질은 차고[寒] 맛이 쓰며[苦] 떫고[澁] 독이 없다. 열독풍으로 옹저, 악창이 생긴 것을 치료한다. 또한 적백이질과 장풍(腸風)으로 피를 쏟는 것을 멎게 하고, 어린이가 감충으로 배가 아파하는 것을 낫게 한다[본초].'고 기재되어 있다.
2021. 1. 13. 林 山. 2021.10. 21.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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