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3일 충주 계명산에 올랐다가 서북능선 등산로 나들목에 이르렀을 때였다. 나들목 밭둑에 순백의 하얀색으로 피어난 박꽃이 눈에 들어왔다. 박꽃을 보니 반가왔다. 플라스틱 그릇의 대중화로 박이 사라지면서 박꽃 구경하기도 어려운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박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린 시절 시골집 마당가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멍석 위에 누워 옥수수를 먹으며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듣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하늘에는 별들이 초롱초롱 떠 있었고, 초가지붕에는 하얀 박꽃이 별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결코 잊혀지지 않는 유년의 추억이다. 시골 초가집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박은 박목 박과 박속의 덩굴성 한해살이풀이다. 학명은 라제내리아 루칸다 러스비(Lagenaria leucantha Rusby)이다. 학명의 ‘lagenaria’는 병을 뜻하는 라틴어 ‘lagena’에서 파생된 것으로, 열매의 모양이 술병과 비슷하여 붙은 것이다. 영어명은 화이트-플라워드 고오드(White-flowered gourd), 일본명은 유우가오(ユウガオ, 夕顔) 또는 후쿠베(フクベ, 匏, 瓢)이다. 중국명은 파오과(匏瓜) 또는 후(瓠)이다. 박의 이명에는 참조롱박, 박덩굴, 포과(匏瓜) 등이 있다. 박꽃의 꽃말은 '기다림', 박은 '밤에 열림'이다.
박의 원산지는 아프리카와 열대 아시아의 인도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 박을 심기 시작한 시기는 2,000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朴赫居世)가 박에서 나왔다는 기록을 보아 신라 이전부터 널리 심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에서는 전국 각지 인가 부근에서 재배한다. 요즘은 플라스틱 용기의 보급으로 인가 부근에서도 박꽃을 구경하기 힘들어졌다.
박의 줄기는 청록색이고, 전체에 짧은 털이 있으며, 덩굴손으로 감으면서 뻗는다. 덩굴손은 잎과 마주나기한다. 잎은 어긋나기하,고 심장형 또는 콩팥모양이며, 장상으로 얕게 갈라진다. 잎의 밑부분은 심장저이며, 연모(軟毛)가 있다.
박꽃은 일가화(一家花), 단성화(單性花)로서 7~9월 잎겨드랑이에 1개씩 달린다. 꽃색은 흰색이다. 수꽃에는 긴 화경이 있으며, 암꽃은 화경이 짧다. 꽃부리는 5개로 갈라지고, 저녁때 수평으로 퍼졌다가 아침에 시든다. 열편은 다소 둥글다. 수술은 3개이고, 다소 붙어 있다. 씨방은 하위로서 털이 있다. 열매는 장과이다. 지름은 30cm이상이고, 다소 편평한 구형이다. 처음에는 털이 있으나 점차 없어지고, 표피가 딱딱해지며, 과육은 흰색이다.
박의 유사종에는 표주박(瓢, 학명 Lagenaria leucantha var. gourda Makino)이 있다. 표주박은 열매가 작고, 중앙부가 잘록한 술병같이 되며, 장식품이나 기타 작은 바가지로 사용한다.
박은 나물로 먹을 수 있다. 박속은 전라도 별미인 연포탕(軟泡湯)에 들어가는 주요 음식 재료이다. 덜 익은 박을 잘라 속을 빼 버리고 길게 국수처럼 오려 말린 박고지는 묵나물로 먹는다. 겉껍질을 벗기고 속을 파낸 과육으로는 나박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엿에 담가 과자를 만들기도 한다. 과피는 삶아서 말린 다음 바가지를 만들어 쓰기도 한다. 요즘에는 껍질에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는 공예의 재료로도 쓰고 있다.
박과 표주박의 과실을 본초명 호로(壺蘆), 종자를 호로자(壺蘆子), 오래 묵은 성숙한 과실의 껍질을 진호로피(陳壺蘆瓢)라 하며, 민간에서 약재로 쓴다. 호로는 가을에 성숙하여 오래되지 않은 과실을 따서 껍질을 제거하고 적당히 썰어 햇볕에 말린다. 이수통림(利水通淋)의 효능이 있어 수종(水腫), 복창(腹脹), 황달, 임병(淋病) 등을 치료한다. 달여서 복용한다. 약성이 남을 정도로 강한 불에 태운 다음 가루로 만들어 복용한다. 호로자는 치간화농(治肝化膿), 치아동통(齒牙疼痛)을 치료한다. 호로자와 우슬(牛膝)을 함께 달여서 복용한다. 진호로표(陳壺蘆瓢)는 수종, 고창(鼓脹), 치루(痔漏), 혈붕(血崩), 대하(帶下) 등을 치료한다. 달여서 복용하거나 또는 약성이 남을 정도로 태워서 가루를 만들어 복용한다. 한의사들은 임상에서 거의 안 쓴다.
2021. 1. 16.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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