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진영의 원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2월 15일 투병 끝에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진보 진영에서 시대의 어른으로 존경을 받던 고인은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 투병 중 이날 오전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고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민중, 민족, 민주 운동에 투신한 고인은 2020년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앞서 2018년 4월 9일에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다가 같은달 23일 혈관이 불안정해 심장수술을 받은 뒤 퇴원하기도 했다. 이후 투병 생활을 계속해오던 고인은 2월 15일 결국 하늘나라 여행을 떠나고 말았다.
1933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0년대 중반 한일협정반대운동을 계기로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고인은 3선개헌 반대와 유신철폐 등 1970년대 박정희 독재정권 하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1972년 고인은 백범사상연구소를 설립하여 소장직을 맡아 '백범어록' 등을 출간했다.
1974년 2월 '유신헌법철폐 100만 명 서명운동'을 주도한 고인은 긴급조치 제1호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최초로 구속되어 징역 12년, 자격정지 1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75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1979년에는 'YWCA 위장결혼사건'을 주도한 고인은 계엄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구속,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1980년 4월 징역 1년 6개월 형을 받고 복역중 1981년 3·1절 특사로 석방되었다.
고인은 전두환-노태우 독재정권 하에서도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의 최전선에서 국민적 저항을 이끌었다. 1984년 통일문제연구소를 설립한 고인은 서적 출판을 통해서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실천했다. 1986년에는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대회' 등을 주도한 혐의로 투옥되기도 했다.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고인은 대통령후보로 추대되었으나 선거 이틀 전 사퇴했고,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도 민중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99년 계간지 '노나메기'를 창간한 고인은 2000년대 이후에도 시민사회 운동에 꾸준히 동참해왔으며, 한양대학교 겸임 교수로도 임명되었다.
고인은 민중, 민족,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도 끊임없는 저술 활동으로 '벼랑은 거머쥔 솔뿌리여'(1999), '백기완의 통일이야기'(2003), '부심이의 엄마생각'(2005),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2009), '버선발 이야기'(2019) 등의 저서를 썼다.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의 시 '묏비나리'의 일부 구절을 소설가 황석영이 다듬고, 작곡가 김종률이 곡을 붙여 만든 노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반독재 민중, 민족,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곡으로 널리 불려졌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 여사와 딸 원담, 미담, 현담씨와 아들 일씨가 있다. 딸 백원담씨는 현재 성공회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아들 백일씨는 울산과학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이다. 발인은 2월 19일 오전 7시이고, 장지는 모란공원이다. 삼가고인의명복을빈다._()()()_
2021. 2. 15.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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