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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의 3요소로 본 트로트 경쟁 - 홍기표

林 山 2021. 2. 19. 12:11

요즘 각 방송사마다 트로트 열풍이 불고 있다. 그 대표적인 프로가 바로 미스 트롯이다. 트로트 열풍이 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옛날로 다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일까? 트로트 열풍을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분석한 글이 있다. 자유기고가 홍기표의 '생산의 3요소로 본 트로트 경쟁'이라는 글이다. 아주 새로운 관점에서 작금의 트로트 열풍을 분석한 글이다. 한번 읽어보자.<林 山>

 

자유기고가 홍기표

요즈음 4차 트로트 팬데믹(pandemic, 전국적인 유행)이 확산중인 것 같다. 가만히 보니 이건 약도 없다. 감염자 수 파악도 안 된다. 

 

전국노래자랑 출범이래 왜 이렇게 수많은 노래 경연 프로그램들이 강한 생명력을 갖게 되었을까? 내 생각에는 경연 프로의 이면에 생산의 3요소가 모두 깔려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흔히 토지-노동-자본을 3대 생산요소라 부른다.

 

음악의 생산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가수의 노래 행위, 작사 작곡 행위, 악기의 개발과 제작, 설치, 그리고 무대 같은 요소들을 각각 발기발기 찢어서 노동-자본-토지라는 생산 3요소에 갖다 붙일 수 있다. 그리고, 가만히 보면 가수-악기-무대라는 개념이 노동-자본-토지보다 더 풍부한 의미를 지닌다.

 

1. 노래 노동

 

생산요소로서의 노동이란 원래 임금노동을 의미한다. 하지만, 심심할 때는 이를 예술 행위로까지 확장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음악의 생산 과정에서 가수가 노래하는 육체 행위, 작사 작곡 같은 정신 행위를 다 노동으로 간주할 수 있다.

 

예술 행위를 생산요소로서의 노동에 끼워 맞추려고 시도하는 이유는? 어떤 효용의 기원은 어쨌든 다른 인간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노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경제적 결론은 결국 효용의 창출이다. 알고 보면 인간이 좋아하는 것들이란 결국 죄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이기 때문에 이를 분석 범위에 넣어볼 필요가 있다. 

 

2. 음악에서 자본의 역할

 

토지, 노동, 자본 등 생산의 3요소에서 자본이란 기계를 사들인 돈 정도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스 트롯에서 볼 때 자본은 그 개념을 넓혀 효용가치를 판단하는 모든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악기 사는 돈 정도의 개념이 아니다. 

 

여기서 노동이 노동가치라면 자본은 효용가치다. 자본이 본질적으로 투자인 이유는 효용가치가 타인의 주관적 심리에 관한 영역 즉 확신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자원 투입이기 때문이다. 자본은 누군가의 노동이 타인의 효용을 창출할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하는 역할을 한다. 분업사회에서 이 역할이 없으면 노동은 무용지물이 된다.

 

현대의 노동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닐 수 없고 상대적 가치만을 지닐 뿐이다. 즉 타인의 효용과 관련된 노동만 가치를 설정할 수 있다. 절대적 노동가치는 무인도에서 혼자 살 때나 적용되는 논리다. 분업이 없는 미분화 사회에서 자기 혼자 경제활동을 할 때만 적용될 수 있다. 

 

투하 노동시간으로 경제가치를 따지는 것이 100% 완벽한 의미를 지닌다. 만약에 나 같은 음치가 누군가를 위해 노래 부르기 노동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노동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심지어는 우리 엄마조차도 내가 노래 부르는 것보다는 미스 트롯 노래를 더 듣고 싶을 가능성이 100%다.

 

즉 효용가치와 조합이 성사되는 노동가치에 한해서 가치의 기원이 된다. 노래 경연 프로는 자기 노래가 어느 정도 사회적 효용을 갖는지 수량적 파악도 가능하게 한다. 효용의 여부뿐만 아니라 강도까지 측정되는 셈이다.

 

3. 압권은 무대다

 

과거의 토지는 단순히 지대(地貸)를 걷는 물리적 공간을 의미했다. 그러나 토지를 무대로 바꿔서 해석하게 되면 그 의미가 매우 풍부해진다. 악기를 차려놓고 인간의 노동이 진행되는 집합점, 즉 노동과 자본이 만나고 인간의 노래 행위와 악기와 구경꾼들의 시선이 모두 집결하는 곳이 바로 무대다. 이곳에서 비로소 상품이 완성된다. 

 

사실 경쟁 프로그램이 여러 달에 걸쳐 예선전을 치르는 과정은 궁극의 최후 무대를 조직하기 위한 거대한 밑밥이다. 경쟁자들을 하나씩 탈락시키는 기나긴 과정을 거친 뒤에야 결승전이라 부르는 거대한 무대를 형성할 수 있다. 즉 미스 트롯은 간단히 말해 무대의 조직과정이다. 

 

생산요소로서의 무대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부엌에서 나 혼자 숟가락 들고 아무리 목청껏 고래고래 노래를 불러도 그곳은 무대가 될 수 없다. 나의 행위인 노동과 타인의 효용이 만나고, 교환가치와 사용가치의 결합이 일어나는 가상의 토지가 바로 무대다.

 

4. 희소가치의 공유

 

노래 경연 프로는 타인의 재능을 나의 효용으로 바꿔준다. 달리 말해서 특정 개인의 예술적 능력을 효율적으로 공유하게 만든다. 개인의 예술적 재능은 희소가치와 연결된다. 모든 인간이 다 노래를 하지만, 모두가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 내 친구들을 생각해면 노래에 재능이 있는 인간의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모든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입을 달고 있지만, 전 인류의 95%는 자기 멋대로 흥얼거리는 수준의 형편없는 입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리듬과 박자에 맞춰 고도의 조직된 소리를 낼 수 있는 희소재능을 가진 사람의 비율은 상위 5% 이내로 추정된다. 여기서 희소재능의 희소비중을 극도로 높이려는 것이 경연 프로그램의 역할이다. 

 

예를 들어 노래에 특출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 1만 명 중에 1명 꼴로 있다고 치자. TV 매체가 없던 전근대 시절이라면 이러한 희소자원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10만 명을 만나고 돌아다녀야 1명쯤 볼까말까 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그 고도의 희소성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더구나 디지털 콘텐츠는 추가 생산비가 0에 가깝다. 복사비가 0이란 이야기는 공공재에 가깝다는 말이다. 무한 복제장치를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타인의 예술적 재능을 누릴 수 있게 된 셈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추가 생산비가 0인 상태에서도 생산이 계속된다는 점이다. 이 신묘한 시스템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자의 임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이 모든 마술은 노동과 자본의 결합 지점인 무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5. 무대 조직이 중요하다

 

옛날 운동권 가요 중에 '이제 우리의 노동을 노래이게 하자'라는 노래가 있었다. 이를 제목 그대로 해석하자면, 임금노동이 아니라 예술행위가 경제행위의 기본 패턴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노래를 열심히 불러서 될 일이 아니다. 거대한 무대를 조직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무대의 조직과정으로써 전국노래자랑은 이런 맥락에서 큰 의미가 있다.

 

글쓴이 - 홍기표(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