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시골의 울 밑에는 봉선화(鳳仙花)만 핀 것이 아니었다. 맨드라미도 피었고, 채송화(菜松花)도 과꽃도 피었다. 옛날에는 맨드라미를 주로 담 밑이나 장독대 옆에 심었다. 맨드라미가 지네를 물리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맨드라미는 한가위 명절 때 만들어 먹는 기장떡에 대추, 밤, 잣, 검정깨 등과 함께 올라가는 고명의 재료이기도 했다. 새하얀 기장떡에 맨드라미가 올라가면 새빨간 무늬가 유난히 돋보이곤 했다.
맨드라미에 얽힌 전설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무룡 장군 전설이다. 옛날 어느 나라에 충직한 무룡 장군이 있었다. 왕의 신임을 한몸에 받고 있는 무룡 장군은 간신들에게 항상 눈엣가시였다. 간신들은 왕에 대한 음모를 꾸며 반란을 일으키기로 계획을 세웠다. 반란 계획을 알게 된 무룡 장군은 왕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무릅쓰고 배신자들을 처단한 뒤 큰 부상을 입고 죽음을 맞았다. 왕은 뒤늦게 충신을 몰라본 자신을 원망했지만 무룡 장군은 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뒤였다. 얼마 후 무룡 장군의 무덤에 방패처럼 생긴 꽃이 피어났다. 훗날 사람들은 이 꽃을 맨드라미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는 중국 쌍희(雙喜)의 전설이다. 옛날 중국에 쌍희라는 사람이 노모를 모시고 산기슭에 살고 있었다. 하루는 깊은 산에 들어가 나무를 하다가 늦어서 밤길을 서둘러 내려오는데, 길섶에서 울고 있는 여인을 만났다. 여인은 산너머 친척집에 초상이 나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쌍희는 여인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서 하룻밤을 묵게 하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여인은 부엌에 나가 노모를 거들었다. 이때 오랫동안 집에서 기르던 큰 붉은 수탉이 갑자기 미친듯이 날뛰며 그녀에게 달려들어 쪼아대며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 쌍희는 닭을 쫒아 버렸지만 여인은 새파랗게 질려 기절하고 말았다. 며칠 뒤 모자의 지극한 간병으로 기운을 차린 여인은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여 쌍희는 고갯마루까지 바래다주었다. 고개에 다다르자 여인은 돌연 사납고 무서운 지네로 변하여 입에서 독불을 내뿜으면서 쌍희에게 달려들었다. 여인의 정체는 바로 산속 동굴에 숨어살면서 많은 사람을 해치던 큰 지네의 정(精)이었다. 지네는 산기슭에 사는 쌍희를 노려 왔는데 처녀로 변신하여 기회를 엿봤으나 수탉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지네는 독불을 맞고 기절한 쌍희의 피를 빨아먹으려고 달려들었다. 순간, 집에서 기르던 수탉이 달려와 지네와 격투를 벌였다. 오랜 시간 싸운 뒤에 지네를 죽인 수탉은 지친 나머지 자신도 숨을 거두었다. 한참만에 깨어난 쌍희는 죽어 있는 큰 지네와 수탉을 발견했다. 쌍희는 자신을 구하고 죽은 수탉을 정성스레 묻어 주었다. 얼마 뒤 무덤가에는 수탉이 환생한 듯 닭벼슬을 닮은 붉은색 꽃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이 꽃을 계관화(鷄冠花)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다.
쌍희 전설에서 닭과 지네는 상극이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닭의 화신인 맨드라미를 집에 심으면 지네가 얼씬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연상되는 것들의 영향력을 가지고 차용 모방하는 것을 유감주술(類感呪術)이라고 한다. 장독대나 담 밑에 맨드라미를 심는 풍속은 이러한 유감주술적인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럽에도 맨드라미의 탄생화 이야기가 전해온다. 바로 베드로 장군 전설이다. 옛날 로마에 용감하고 힘이 무척 센 베드로 장군이 있었다. 황제는 전쟁터에서 10여 년을 보내며 적과의 전투에서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베드로 장군을 신임했다. 적을 크게 무찌른 베드로 장군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베드로 장군의 개선을 시기한 간신들이 있었다. 간신들은 베드로 장군을 제거할 음모를 꾸몄다. 간신들은 황제에게 베드로 장군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거짓 보고를 올렸다. 간신들의 보고를 그대로 믿은 황제는 베드로 장군에게 좁은 공간에서 20명의 무사와 결투를 벌이라고 명하였다. 베드로 장군은 좁은 공간에서 도저히 힘을 쓸 수 없어 무사들의 칼에 찔려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때 간신들 중의 두목이 앞으로 나서며 황제의 축출을 선언했다. 황제는 그때서야 간신에게 속은 줄을 알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베드로 장군이 마지막 힘을 다해 일어나 간신들을 모두 칼로 찔러 죽이고 반란을 평정했다. 그러나 베드로 장군도 힘을 다해 끝내 죽고 말았다. 황제는 베드로 장군의 충성심에 탄복하고 그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러 주었다. 얼마 후 베드로 장군의 무덤에는 방패처럼 생긴 붉은 꽃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이 꽃을 베드로 장군이 환생한 것이라고 믿었다. 이 꽃이 오늘날의 맨드라미였다는 이야기다.
맨드라미는 중심자목 비름과 맨드라미속의 한해살이풀이다. 학명은 셀로시아 크리스타타 린네(Celosia cristata L.)이다. 속명 'Celosia'는 그리스어로 '불타는 것처럼 붉다', 종소명 'cristata'는 '닭의 벼슬 같다'는 뜻이다. 영어명은 콕스콤(Cockscomb)이다. 일어명은 게이토우(ケイトウ, けいとう, 鶏頭) 또는 도사카(トサカ, とさか, 鶏冠)이다. 중국명은 지관화(鸡冠花) 또는 지지화(鸡髻花), 라오라이홍(老来红), 루화지관(芦花鸡冠)이다. 영어명, 일어명, 중국명도 수탉의 벼슬이라는 뜻이다. 맨드라미를 계관화(鷄冠花), 계관초(鷄冠草), 계관(鶏冠), 계두(鷄頭), 계공화(鷄公花), 단기맨드래미, 백만월아화(白蔓月阿花), 백만월아비(白蔓月阿比), 홍계관화, 계관두화, 계관해당이라고도 한다. 꽃말은 '사진', '헛된 장식', '뜨거운 사랑'이다.
조선 초기 맨드라미의 이두어는 백만월아화(白蔓月阿花), 백만월아비(白蔓月阿比)였다. 우리말 맨드라미는 닭벼슬의 뜻을 가진 강원도 방언의 면두에서 유래해 면두리->맨들로 변했다고 알려져 있다. 예전에는 볏이 하늘로 멋지게 치솟은 닭처럼 꾸민 멋쟁이를 맨드라미 또는 맨드래미로 불렀으며, 머리나 정수리를 고어로 맨드라미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최동기(식물애호가)는 맨드라미의 유래에 대해 "현재 국가표준식물목록의 추천명으로 등재된 '맨드라미'는 '조선식물명집(1949)'에 의한 것인데, '조선식물향명집(1937)'에 채록되었던 ‘맨드래미’의 표기를 바꾸어 쓴 것이다.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닭의 볏이라는 뜻의 한자어 鷄冠花(계관화)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이는 방언으로 쓰이는 달구베슬, 닭벼슬꽃, 벳꽃 등의 어원으로 보인다. 13세기에 발간된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1241)'을 보면 ‘世言此是曼多羅(세언차시만다라)/所以喜栽僧院地(소이희재승원지), 세상에서 말하기를 이것이 곧 만다라라/이 때문에 절에다 심기를 좋아 한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또한 '향약채취월령(1431)'과 '향약집성방(1433)'에 나타나는 맨드라미에 대한 한자와 차자(借字)표기가 靑箱子(청상자)/白蔓月阿比(힌만아비)였고, '구급간이방언해(1489)'에서 처음 발견되는 한글 표기가 ‘鷄冠(계관)/힌만라미’인 것, 17세기에 발간된 서적들에 ‘만도라미, 만도람이’의 한글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맨드라미는 중국의 남부나 인도 등에서 불교와 함께 전래될 때 하늘의 꽃으로 이해되는 범어(梵語)의 만다라화(曼陀羅花)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설이 합당해 보인다."고 설명하고 있다.
맨드라미의 원산지는 인도, 인도네시아 등 열대 아시아 지방이다. 열대 아시아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서인도 제도 등 열대 지역도 원산지라는 설도 있다. 맨드라미는 관상식물로 전 세계 곳곳에서 심고 있다.
맨드라미는 한반도에 언제 들어왔을까?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그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적어도 13세기 이전에는 맨드라미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맨드라미는 전국 각지에서 재배한다. 주로 재배되고 있는 것은 화관이 닭벼슬모양인 크리스타타종, 깃털맨드라미로 불리며 꽃이삭이 원추형으로 창과 같은 형상을 띤 플루모사종, 꽃이삭 전체가 깃털처럼 부드러우며 잘 분지돼 큰 포기로 되는 것이 많고 개화기가 긴 칠드시종, 야생 맨드라미 또는 실맨드라미라고도 하며 인도나 일본의 남부지방에 야생하는 스피카타종 등 4종과 이들의 개량종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일본에 맨드라미씨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성종 5년(1474) 12월에 임금이 정구(正球) 등 22인에게 일본에 국왕의 사신으로 파견했는데, 이때 이들 편에 각종 면포와 인삼, 화문석, 유기그릇 등 토산품과 함께 봉숭아씨 1봉과 양귀비씨 1봉, 맨드라미씨 1봉, 해바라기씨 1봉를 보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맨드라미의 꽃 그림을 그리고 화제(畵題)를 '관상가관(冠上加冠)'이라고 달기도 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학문을 하는 목적은 오로지 입신양명(立身揚名)이었다. 입신양명을 위해서는 과거에 급제해서 벼슬길에 오르는 것이 최고였다. 닭벼슬은 학문적 성취와 출세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선비들은 종종 닭벼슬을 닮은 맨드라미 꽃을 화폭에 옮겼던 것이다. '冠上加冠'은 '벼슬 위에 벼슬을 더하다'라는 뜻이니 최고의 입신양명이라고 할 수 있다.
맨드라미의 키는 90cm 정도까지 자란다. 줄기는 곧게 자라고 전체에 털이 없으며, 흔히 붉은 빛이 돈다. 잎은 어긋나기하고 엽병이 길며, 달걀모양 또는 난상 피침형에 끝이 뾰족하다. 잎 길이는 5~10cm, 나비 1~3cm로서 밑부분이 예저이고 톱니가 없다.
꽃은 7~9월에 붉은색 또는 노란색, 흰색으로 정생(頂生)한다. 꽃대 상단은 닭의 볏 모양이며, 아랫면에 대가 없는 다수의 잔꽃이 밀착한다. 꽃받침은 5개로 갈라진다. 열편은 길이 5mm 정도로서 넓은 피침형이고 끝이 날카롭다. 수술은 5개로서 꽃받침보다 길고, 수술대 밑이 서로 붙어 있다. 암술은 1개이고 긴 암술대가 있다. 과실은 열리는 열매로서 달걀모양이며 숙존악에 싸여 있다. 열매 끝에는 암술대가 남아 있으며 가로로 벌어져서 뚜껑처럼 열리고 3~5개의 종자가 나온다. 종자는 흑색이며 광택이 있다.
맨드라미는 꽃이 특이해서 정원에 관상용으로 심는다. 맨드라미의 어린잎은 나물로 먹기도 한다. 꽃은 떡을 만들 때 고명으로 이용한다. 꽃 고명은 색을 입히는 동시에 식중독과 설사를 막아주는 효과도 있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도 떡이나 잡채를 만드는 채소에 맨드라미 꽃물을 들여 빛깔을 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꽃차례를 염료로 쓰기도 한다. 맨드라미 추출물에서는 항산화 및 항노화 효과가 확인되었다.
맨드라미의 꽃차례를 본초명 계관화(鷄冠花), 경엽(莖葉)을 계관묘(鷄冠苗), 종자를 계관자(鷄冠子)라고 한다. 계관화는 양혈지혈(凉血止血)의 효능이 있어 치루(痔漏)로 인한 하혈, 적백리(赤白痢), 토혈, 객혈, 혈림(血淋), 붕루(崩漏, 자궁출혈), 적백대하(赤白帶下) 등을 치료한다. 계관묘는 치창(痔瘡), 이질, 토혈, 비출혈(鼻出血), 혈붕(血崩), 담마진(蕁麻疹) 등을 치료한다. 계관자는 양혈지혈의 효능이 있어 장풍혈변(腸風血便), 적백리, 붕대(崩帶), 임탁(淋濁) 등을 치료한다. 또 간장병(肝臟病), 안병(眼病)을 치료한다. 한의사들은 임상에서 게관화, 계관묘, 계관자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동의보감' <탕액편 : 풀>에는 계관화에 대해 '성질은 서늘하고 독이 없다. 장풍(腸風)으로 피를 쏟는 것과 적백이질, 부인의 붕루, 대하를 멎게 한다. ○ 꽃이 닭의 볏과 비슷하기 때문에 계관화라고 한 것이다. 약에 넣을 때는 닦아[炒] 쓴다[본초].'고 나와 있다.
맨드라미의 유사종에는 개맨드라미(Feather Cockscomb)가 있다. 개맨드라미(Celosia argentea L.)는 열대 지방에 널리 퍼져 있으며, 한반도에서는 제주, 전남, 전북, 경남 등 남부지방에 야생한다. 줄기는 원기둥 모양이다. 잎은 피침형, 좁은 달걀모양이다. 잎 밑부분이 뾰족하며, 잎자루는 연하다. 꽃은 이삭꽃차례에 달린다. 꽃자루가 있으며 꽃의 길이가 1cm에 달하는 개맨드라미는 꽃자루가 없고 꽃의 길이가 4mm밖에 안 되는 맨드라미와 구분된다. 꽃이 벼슬모양이면 맨드라미, 촛불모양이면 개맨드라미로 구분하기도 한다.
2022. 2. 13. 林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