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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폐지] 누명 쓴 형 때문에 목숨 끊은 동생, 이 법 놔둬야 하나 - 강성호

林 山 2022. 9. 19. 14:39

2022년 9월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헌재)에서 국가보안법(국보법) 제2조 1항과 제7조 1항, 3항, 5항 등에 대한 위헌심판 공개 변론이 열렸다. 국보법 제 2조 1항은 반국가단체를 정의하고 있으며, 제7조 1·5항은 반국가단체 활동을 찬양·고무·선전·동조하거나 반국가단체 찬양 목적으로 문서 등 표현물을 제작·소지·반포·취득한 경우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보법과 관련해 이미 일곱 차례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는 헌재가 공개 변론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헌재가 국보법에 대해 보여준 태도를 감안할 때 국보법 세부 조항에 대한 공개 변론을 연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국보법은 지난 74년 동안 이승만 독재정권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 독재정권에 이어 수구보수 정권의 보호막 역할을 하면서 인권 유린의 악명을 떨쳤던 시대의 악법이자 구시대의 유물이었다. 홍콩 국가보안법을 돌아보자. 홍콩이 중국에 귀속되면서 일당 독재 공산당이 가장 먼저 도입한 것이 국보법이다. 중국 공산당의 국보법 시행으로 홍콩의 민주화는 큰 시련을 맞고 있다. 홍콩 국보법은 지금 홍콩에서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등 천부적인 인권을 압살하고 있는 것이다.  

 

국보법은 정통성이 없는 정치 집단이 인간의 천부적인 인권을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퇴보시키면서 정권 안보를 위해 휘둘러온 역사가 있다. 국보법은 우리나라에서도 그동안 수많은 희생자들을 양산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천인공노할 간첩 조작 사건, 용공 조작 사건들이다. 대한민국도 이젠 시대착오적인 국보법을 철폐하고 문명국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국보법 폐지는 시대의 명령이요, 인류 양심의 명령이기도 하다. 

 

여기 국보법이 한 사람의 인생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을 철처하게 파멸시킨 사례가 있다. 바로 강성호 교사다. 강성호 교사는 33년 전 충북 제천의 제원고등학교에서 재직 중 전교조 결성 과정에서 노태우 군부 독재정권의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지금의 국정원)와 검찰, 경찰, 교장 등이 합심하여 꾸민 '북침설' 용공 조작 사건으로 해직은 물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용공 조작 사건으로 강 교사의 가족은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났고, 대학생이던 동생은 형의 억울함을 풀지 못하는 분노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강 교사의 부친도 충격을 받고 쓰러져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 강성호 교사는 2021년 9월 2일 32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로 강 교사의 사건이 노태우 군부 독재정권의 안기부와 검찰, 경찰, 교장 등이 합심하여 꾸민 용공 조작 사건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다음은 강 교사가 국보법 희생자로서 몸소 겪어야만 했던 가슴 아픈 사연을 기록한 글 전문이다. <林 山> 

 

국가보안법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선 강성호 선생

누명 쓴 형 때문에 목숨 끊은 동생, 국가보안법 놔둬야 하나? - 강성호

 

33년만에 무죄 받은 피해자가 국보법 위헌 결정 촉구 1인 시위 나선 까닭

 

지난 15일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 2조, 7조 관련해 공개변론을 열었습니다. 이날 헌재 앞에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단체와 '국가보안법을 지키자'는 단체가 함께 모여 각각 자신들의 주장을 전했습니다. 그 단체 가운데 국가보안법을 강화하자고, 국가보안법은 빨갱이를 잡는 법이라고 외치는 단체도 있었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단체를 향해 "빨갱이들"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그들을 지켜보며 33년 전 제가 겪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1989년 5월, 당시 저는 발령 받은 지 이제 막 두 달 남짓 지난 초임교사였습니다. 그해 5월 24일 교실에서 수업하고 있던 저는 교장 선생님이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교장실로 갔습니다. 교장실에 들어서니 교장 선생님과 함께 낯선 남자 세 명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천경찰서에서 왔다면서 제 신원을 확인한 후에 잠시 경찰서로 가자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제게 '학생 일로 확인할 게 있다'며 협조해달라고 했습니다. 교장 선생님도 허락했다는 말에 저는 학생 일이니 당연히 협조하겠다고 했고, 세 남자를 따라나섰습니다. 학교 현관 앞에는 검은색 지프차가 서 있었습니다. 저를 알아본 학생들이 제 주위로 모여들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다음 시간 자습을 부탁하고 "금방 다녀올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차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저를 기다리던 제자들과는 작별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채 영영 헤어져야 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하였던 꿈같은 교단생활은 그렇게 2개월여 만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19898년 8월 10일 <제천신문>에 실린 강성호 교사 관련 기사

국가보안법을 악용한 사례들

 

지금까지 역대 정부는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학교 현장에서 '평화통일 교육'을 실천하는 교사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국가보안법을 이용해왔습니다.

 

산청 간디학교 최보경 선생님 사건도 그렇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막 출범하던 2008년 2월, 경찰은 최 교사의 집과 교무실을 압수 수색했고, 검찰은 최 교사가 정리한 학습교재 <역사배움책> 등 10여 건에 대해 이적성이 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습니다.

 

경남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최 교사를 사찰해왔고 검찰은 역사교사인 최 교사가 역사교육에 사용한 '최보경 선생과 함께 하는 살아 있는 삶을 위한 현대사'를 비롯해 2000년부터 간디학교 내 역사사랑동아리를 이끌며 직접 만든 회지 등을 이적표현물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소지한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최보경 선생님은 8년간의 법정투쟁을 펼친 끝에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무죄판결을 받아냈습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둔 2013년 2월, 검찰은 박미자 선생님을 비롯한 교사 4명을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구성 등의 혐의를 들어 불구속기소했습니다. 1심에서 3심까지 재판부는 검찰 기소의 핵심인 이적단체 구성과 이적 동조 혐의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기소한 국가보안법 7조 5항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에 대해 2020년 1월 9일 대법원은 징역 1년 6월, 집유 2년 확정판결을 내려 결국 박미자 선생님을 비롯한 4명의 교사는 학교를 떠나야 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북한을 방문해서 교육교재로 구입한 <봉이 김선달>과 <민족의 세시풍속 이야기>라는 책을 갖고 있었다고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판결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아무 문제 삼지 않았던 책이 정권이 바뀌니 국가보안법 위반 서적이 됐습니다. 함께 기소된 다른 선생님들은 남북 교류가 활발할 때 북한 교사가 좋아한다는 노래를 인터넷에서 내려받았다는 이유로 교직에서 파면당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위헌적 법이다

 

지난 15일 공개 변론에서 헌재 재판관은 '국가보안법 사건 전체적인 과정을 보면 수사기관에서 기소 여부를 결정할 때 엄격한 심사 과정을 거쳤는지 의문이 있고, 오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충분한 지침이 제공되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훗날 무죄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기본권을 침해받는 등의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법무부 측이 간과한 게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저는 법률전문가도, 법 이론가도 아닙니다. 하지만 헌재 위헌 심판 공개 변론을 지켜보며 33년 전 제가 겪었던 국가보안법 사건을 통해 국가보안법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인권과 권리를 현저하게 침해하는 위헌적 법이라고 호소하고 싶습니다.

 

"민족의 동질성을 심어주고자 했던 수업내용에 대한 정확한 사실 규명 또는 교육적 해결 노력 없이, 학부모와 교육 관료가 교사를 고발하게 하고 인신을 감금한 뒤 포승줄로 묶은 채 제자들과 만나게 해 제자들의 입으로 스승을 간첩이라며 법정에 내세웠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가장 소중하게 지켜야 할 인륜마저 저버린 행태를 자행한 그들을 보면서, 저는 인간적 비애와 함께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한 인간이 갖는 인격과 양심과 교권 따위는 얼마든지 파괴해버릴 수 있다는 현실을 뼈아프게 깨달았습니다.

 

교장이 학교에서 이뤄진 수업내용을 가지고 교사를 불러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전에 경찰에 먼저 고발하는 일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를 우리는 살았습니다. 제자를 시켜 스승을 고발하게 하고 제자와 스승을 한 법정에 세워 제자가 위증하게 하여 스승을 감옥에 가두어도 괜찮다고 생각한 시대를 우리는 살았습니다. 이토록 비교육적이고 반인륜적인 일을 국가보안법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저질렀던 시대를 우리는 살았습니다." - 2021년 6월 10일 재심 결심공판 최후진술문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그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이 선고로 위안이 되길 바랍니다."

 

2021년 9월 2일 청주지법 형사2부(부장 오창섭)는 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재심 공판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날 재판부는 "학생들의 진술을 종합해 볼 때 '6.25는 북한이 남침한 것이 아니고, 미군이 먼저 북한을 침범해 일어난 것'이라는 피고인의 발언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피고인의 행위가 객관적으로 반국가단체의 이익이 된다거나 반국가단체에 이로울 것이란 인식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한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공안정국을 만들기 위해 경찰과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하고 재판부가 유죄판결을 한 것을 다시 판결로써 바로잡은 것입니다(관련 기사 : '빨갱이' 누명 벗은 교사 "담임·교감·교장은 사과하라" http://omn.kr/1v3kp ).

 

판결문 끝에 "이 선고로 피고에게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는 주심 판사의 말씀을 들으며 저는 돌아가신 아버님과 남동생을 떠올렸습니다.

  

2021년 9월 2일&nbsp; 청주지방법원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강성호 교사

33년 전 제가 구속됐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님은 충격을 받고 쓰러지셨다가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세상을 뜨셨습니다. 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남동생은 형이 "빨갱이"라는 누명을 벗지 못하는 현실에 절망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올해로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74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국가보안법은 수없이 많은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었습니다.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빨갱이로 몰린 당사자와 그 가족이 빼앗기고 짓밟힌 '헌법적 가치'는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습니다.

 

국가보안법 피해자 한 사람으로 간절히 호소합니다.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수사기관이 저지른 수많은 오남용 사례로 '헌법적 가치'를 짓밟아온 국가보안법을 더 이상 우리 후세에게 물려줘선 안 됩니다.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을 견뎌야 사람들은 자유스러워질까요.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을 살아야 다른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얼마나 더 큰 희생이 있어야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 밥 딜런 <바람만이 아는 대답> 

 

원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65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