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초순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남한산(南漢山, 522m)을 찾았다. 남한산성(南漢山城) 제1남옹성(第一南甕城)에서 동문(東門)인 좌익문(左翼門) 쪽 능선길을 따라가다가 어린 황벽나무를 만났다. 황벽나무 껍질은 본초명(本草名) 황백(黃柏)이라고 하는데, 한의학(韓醫學)에서 방광염(膀胱炎) 등 하초습열증(下焦濕熱症)을 치료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한약재(韓藥材)이다. 인류의 병을 고쳐 줄 뿐만 아니라 많은 이로움을 베푸는 이런 나무를 만날 때마다 의자(醫者)로서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옛날에는 귀중한 책이 좀먹는 것을 막기 위해 한지(韓紙) 등 종이를 만들 때 황벽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황물을 첨가하기도 했다. 선인(先人)들은 황벽나무 속껍질에 들어있는 베르베린(Berberine) 성분이 항균(抗菌), 방충(防蟲) 효과가 있음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황물을 들인 책을 특별히 황권(黃卷)이라 불렀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처럼 잘 보존된 책들은 대부분 황물 처리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황물은 또 명주나 가죽 등의 천연 염색제로도 널리 쓰였다. 치자(梔子)와 마찬가지로 황벽나무 껍질을 노란색 염색 재료로 이용했다는 기록은 규합총서(閨閤叢書)에도 나온다.
황벽나무는 운향목(芸香目, Rutales) 운향과(芸香科, Rutaceae) 황벽나무속(Phellodendron)의 낙엽 활엽 교목(落葉闊葉喬木)이다. 국표 등재 황벽나무속 식물은 황벽나무 1종만 존재한다. 운향과는 2009년 APG III 시스템에서 무환자나무목(Sapindales)으로 변경되었다(위키백과). 황벽나무는 줄기의 속껍질이 노란색이라서 황벽피나무, 황경피나무라고 불리다가 현재의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국립백두대간수목원). 국가표준식물목록(국표)에는 넓은잎황벽, 섬황벽, 털황벽, 화태황벽나무, 황경나무, 황경피나무, 황병피나무 등의 이명이 등재되어 있다. 북한명에는 황경피나무(추천명), 북황벽나무, 섬황경피나무, 큰황경피나무, 털황경피나무, 황벽나무, 황병피나무 등이 실려 있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생정)에는 넓은잎황벽이 비추천명으로 실려 있다. 황벽나무의 꽃말은 '숨겨진 보물(寶物)'이다.
국표, 국생정 등재 황벽나무의 학명은 필로덴드론 아무렌세 루프레히트(Phellodendron amurense Rupr.)이다. 속명 '필로덴드론(Phellodendron)'은 '코르크(cork)'라는 뜻의 그리스어 '펠로스(phellos)' 기원의 '펠로(phelo)'에 '나무(tree)'라는 뜻의 접미사 '덴드론(dendron)'이 붙어서 이루어진 다국어 고유명사다. '펠로스(phellos)는 '피부, 껍질(bark)'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플로오스(phloos)'의 유사어(類似語)다.
종소명 '아무렌세(amurense)'는 라틴어 형용사 '아무렌시스(amurēnsis)'의 중성형으로서 처음 발견된 곳이 극동 러시아의 아무르(Amur) 지방임을 나타낸다. '루프레히트(Rupr.)'는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러시아에서 활동한 의사이자 식물학자 프란츠 요셉 루프레히트(Franz Josef Ruprecht, 1814~1870)이다. 프란츠 이바노비치 루프레히트(Frants Ivanovič Ruprekht)로도 알려져 있다.
국표, 국생정, 일문판 위키백과 등재 황벽나무의 영어명은 아무르 코크트리(Amur corktree)이다. '아무르 황벽나무'라는 뜻이다. 중문판 바이두백과(百度百科), 위키백과(維基百科) 등재 중국명은 황보(黃檗)이다. 일문판 YList 등재 등재 중국명은 황니에(黃蘗)이다. '蘗(櫱)'와 '檗'는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다. 百度百科에는 황보뤄(黄菠萝), 황보(黄柏), 꽌황보(关黄柏), 황보리(黄伯栗), 보무(檗木), 황보뤄슈(黄波椤树), 황보무(黄檗木) 등의 이명이 실려 있다.
국표, 국생정 등재 일본명은 아무르키하다(アムルキハダ)이다. 일문판 위키백과, YList 등재 일본명은 기하다(キハダ, 黄檗, 黄蘗, 黄膚, 黄柏)이다. 일본명 '기하다(キハダ)'는 나무의 표피(表皮)와 목질부(木質部) 사이에 있는 내피(內皮)가 선명한 노란색이기 때문에, '黄色い肌(노란 껍질)'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별명은 시코로(シコロ), 시코로베(シコロベ), 오우바쿠(オウバク, 黄檗), 기하다(キハダ)가 전와(転訛)된 기와다(キワダ), 내피에 쓴맛이 있기 때문에 니가키(ニガキ)라고도 한다. YList에는 히로하노키하다(ヒロハノキハダ), 에조키하다(エゾキハダ), 아무르키하다(アムールキハダ), 미야마키하다(ミヤマキハダ) 등의 별명(別名, 이명)이 실려 있다. 일본어는 '타나카(たなか, 田中)'를 '다나카'로 발음하듯이 격음(激音)이 앞에 올 경우 평음(平音)으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
황벽나무는 한강토(조선반도), 중국, 일본, 극동러시아에 분포한다. 한강토에서는 함경남북도, 평안남북도, 강원도, 경기도, 울릉도에 난다(국생정). 기하다(黄檗, 黄蘗, 黄膚, 黄柏)는 아시아 동북부의 한강토, 타이완, 중국의 허베이성(河北省)에서 윈난성(雲南省), 히말라야 산지에 자생한다. 일본에서는 홋카이도(北海道)의 오시마반도(渡島半島), 시리베시(後志), 이부리(胆振), 히다카(日高), 이시카리(石狩)와 혼슈(本州), 시코쿠(四国), 규슈(九州), 류큐(琉球)에 분포한다(일문판 위키백과). 황보(黃檗)는 한강토, 일본, 중국, 러시아에 분포한다. 중앙아시아, 동유럽에도 분포한다. 중국에서는 둥베이(东北)와 화베이(华北) 지방, 허난성(河南省), 안후이(安徽) 북부, 닝샤(宁夏), 네이멍구(内蒙古)에서 소량 재배된다(百度百科). 황보(黃檗)는 꽌황보(关黄檗)라고도 한다. 황보 원변종(黄檗原变种, Phellodendron amurense var. amurense)과 타이완황보(台湾黄檗, Phellodendron amurense var. wilsonii) 등 2종이 있다. 조선반도(朝鲜半岛), 일본, 중국, 타이완, 러시아 극동 지방에 분포한다. 중국에서는 안후이, 허베이, 헤이룽쟝(黑龙江), 허난(河南), 지린(吉林), 랴오닝(辽宁), 네이멍구, 샨둥(山东), 샨시(山西) 등지에 난다(維基百科).
황벽나무의 키는 10m 정도까지 자란다. 20m에 이르는 것도 있다. 나무껍질은 연한 회색으로 코르크가 발달하여 깊이 갈라지고 내피는 노란색이다. 줄기가 굵고, 가지는 사방으로 퍼진다. 잎은 마주나기하며, 홀수 깃 모양 겹잎(奇數羽狀複葉)이다. 소엽(小葉)은 5~13개이며 피침상(披針狀) 달걀형, 미상 첨두(尾狀尖頭)이며 원저(圓底) 또는 예형(銳形)이다. 소엽의 길이는 5~10cm, 너비는 3~5cm이다. 잎 표면에는 윤채(潤彩)가 있으며, 뒷면은 흰색으로 맥(脈) 아랫부분에 털이 약간 있다.
꽃은 암수딴그루로 6월에 황록색으로 핀다. 꽃 길이는 6mm이다. 원뿔 모양 꽃차례(圓錐花序)는 잔털이 있으며, 지름 5~7cm이다. 꽃대는 짧고, 화피(花被)는 5~8개이다. 열매는 핵과(核果)다. 핵과는 둥글고 검은색으로 익으며, 겨울 동안 나무에 그대로 달려 있다. 종자는 5개씩 들어 있다. 열매는 7~10월에 성숙한다.
황벽나무는 내화성(耐火性) 수종(樹種)으로서 주요 조림수종이다. 공원수, 가로수, 녹음수, 독립수로 심어도 좋다. 나무껍질의 노란색 내피는 염료로 사용한다. 나무껍질은 코르크 원료로 사용된다. 코르크는 황벽나무보다는 코르크나무(Quercus suber)의 껍질을 많이 쓴다. 꽃은 밀원식물(蜜源植物)로 중요하며, 열매는 새의 먹이가 된다. 목재는 무늬목, 기구재, 목공예재로 쓰인다(국생정).
황벽나무, 털황벽, 넓은잎황벽, 섬황벽의 나무껍질을 황백(黃柏)이라 하며 약용한다. 청열조습(淸熱燥濕), 퇴허열(退虛熱), 제상화(制相火), 사화해독(瀉火解毒)의 효능이 있다. 서열(暑熱)로 인한 하리(下痢), 단순성하리(單純性下痢), 당뇨병, 황달(黃疸), 하반신마비, 몽정(夢精), 유정(遺精), 임탁(淋濁), 치창(痔瘡), 혈변(血便), 적백대하(赤白帶下), 골증노열(骨蒸勞熱), 목적종통(目赤腫痛), 구중생창(口中生瘡), 창상종독(瘡傷腫毒)을 치료한다(국생정).
황벽(黃蘗, 황백)의 성질은 차며[寒] 맛이 쓰고[苦] 독이 없다. 5장과 장위 속에 몰린 열과 황달, 장치(腸痔, 脱肛) 등을 주로 없앤다. 설사와 이질, 적백대하, 음식창(陰蝕瘡, 남녀의 음부에 나는 창병)을 낫게 하고 감충(疳蟲)을 죽이며 옴과 버짐, 눈에 열이 있어 피지고 아픈 것, 입 안이 헌것 등을 낫게 하며 골증노열(骨蒸勞熱)을 없앤다. ○ 산의 곳곳에서 난다. 음력 5월과 6월에 껍질을 벗겨 겉껍질을 긁어 버리고 햇볕에 말린다[본초]. ○ 민간에서 황경피나무껍질(黃栢)이라고 한다. 노란 빛이 선명하고 껍질이 두터운 것이 좋다. 족소음(足少陰)과 수궐음(手厥陰)의 본경약(本經藥)이며 족태양(足太藥)의 인경약(引經藥)이다. 또한 방광의 화를 사하고 신[龍]의 화도 사한다. 화를 사하고 음을 보하는 효능이 있다[단심]. ○ 구리칼로 겉껍질을 긁어 버리고 꿀물에 한나절 담갔다가 꺼낸 다음 구워 말려 쓴다. 또한 약 기운을 아래로 내려가게 하려면 소금을 푼 술에 축여 볶아서 쓰고 화가 성한 때에는 동변(童便)에 담갔다가 쪄서 쓴다[입문]. ○ 구리칼로 썰어 꿀물, 술, 젖, 동변 등에 축여 볶아 쓰고 혹 생것대로도 쓴다. 음이 허한 것을 잘 낫게 한다[회춘]. 황벽근(黃蘗根, 황경피나무뿌리)의 이름을 단환(檀桓)이라 한다. 명치 밑에 생긴 모든 병을 낫게 한다. 오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오래 살 수 있게 한다[본초](東醫寶鑑).
황백(黄柏)은 벽목(檗木), 벽피(檗皮), 황백(黄檗)이라고도 한다. 황백은 황벽나무(關黄柏, Phellodendron amurense Rupr.)와 황피수(黄皮樹, 川黄柏, Phellodendron chinense Schneid.)의 나무껍질을 건조한 것이다. 성질은 차고 독이 없으며, 맛은 쓰다. 신경, 방광경, 대장경으로 들어간다. 청열조습(淸熱燥濕), 사화해독(瀉火解毒), 퇴허열(退虛熱)의 효능이 있다. 습열사리(濕熱瀉痢), 황달, 대하(帶下), 열림(熱淋), 각기(腳氣), 위벽(痿躄), 골증로열(骨蒸勞熱), 도한(盜汗), 유정(遺精),창양종독(瘡瘍腫毒), 습진소양(濕疹瘙痒) 등을 치료한다. 염황백(鹽黃柏)은 자음강화(滋陰降火) 효능이 있어 음허화왕(陰虛火旺), 도한골증(盜汗骨蒸)에 쓴다. 신화(腎火)를 사(瀉)하고 하초(下焦)의 습열을 청열조습시키는 특장(特長)이 있어 습열로 인한 설리(泄痢), 황달, 임탁(淋濁), 대하, 족부 부종, 창독(瘡毒) 등을 치료하는 요약(要藥)이다. 황금(黃芩), 황련(黃連)과 함께 황백은 사화조습(瀉火燥濕)의 요약이다(전국 한의대 본초학 교과서).
황백은 한의사들이 임상에서 매우 많이 처방하는 한약재 가운데 하나다. 황금, 황련, 황백을 삼황(三黃)이라고 한다. 황백이 들어가는 대표적인 처방에는 열독적리(熱毒赤痢)를 치료하는 백두옹탕(白頭翁湯), 표리(表裏)와 삼초(三焦)의 열성(熱盛)을 치료하는 삼황석고탕(三黃石膏湯), 화열항성(火熱亢盛)을 치료하는 황련해독탕(黃連解毒湯) 등이 있다. 백두옹탕은 황련과 황백, 뒤의 두 처방은 삼황이 다 들어간다.
황보(黃檗)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본초서인 셴농뻰차오징(神农本草经)에 상품(上品)으로 등재되어 있다. 중약(中药) 중 청열조습약(清热燥湿药)에 속하며, 기원 식물은 꽌황보(关黄檗)와 촨황보(川黄檗)이다(2005년판 中国药典).
황보(黃檗)는 청열조습(清热燥湿)의 효능이 있어 습열대하(湿热带下), 열림(热淋) 등을 치료한다. 황친(黃芩), 황롄(黃連)이 각각 상초(上焦), 중초(中焦)를 주치(主治)하는데 비해 황보(黃檗)는 하초(下焦) 습열(湿热)을 치료하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다. 대표적인 처방은 황보, 샨야오(山药), 치엔싀(芡实), 처쳰즈(车前子) 등으로 구성된 이황탕(易黄汤)이다. 사화제증(泻火除蒸)의 효능이 있어 습열사리, 황달 등을 치료한다. 대장습열(大肠湿热)을 제거하는 효능이 있어 사리를 치료한다. 골증노열, 도한, 유정도 치료한다. 퇴골증(退骨蒸)의 효능이 있어 음허화왕(阴虚火旺), 조열도한(潮热盗汗), 요산유정(腰酸遗精) 등의 증상을 치료한다. 대표적인 처방은 황보, 즈무(知母), 띠황(地黄), 샨야오(山药) 등으로 구성된 이종진졘(医宗金鉴)의 즈바이띠황완(知柏地黄丸)이다(維基百科).
2023. 8. 10. 林 山
#황벽나무 #황백 #黄柏 #黃檗 #キハ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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