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충주 MBC에서 나에 대한 휴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소백산으로 한 촬영산행을 가는 날이다.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해서 별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죽령에 오르니 등산객들이 엄청나게 많다. 소백산 철쭉제 마지막 날이어서 그런가 보다. 무거운 방송장비로 인해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까지는 방송국 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한다. 산기슭에는 연분홍색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소백산은 짙은 안개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전망이 아주 좋은 곳 중 하나인 연화봉 정상에도 안개에 싸여 있다. 철쭉제를 보러온 사람들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아무래도 오늘은 소백산의 아름다운 산경치를 보기는 틀린 것 같다. 그래서 촬영을 하는 틈틈이 야생화를 찾기로 한다. 산을 찾았을 때 저만치 호젓하게 피어 있는 야생화를 만나는 기쁨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쥐오줌풀
소백산 천문대에서 자연경관로로 들어선다. 맨 처음 눈에 띈 야생화는 쥐오줌풀. 옆으로 뻗으면서 자라는 뿌리줄기에서 쥐오줌 냄새가 난다고 해서 쥐오줌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연분홍색의 매우 작은 꽃이 무리지어 피는데, 꽃부리의 끝이 다섯 갈래로 갈라지는 특징이 있다. 쥐오줌풀 전초를 말린 것을 한방에서 길초근(吉草根)이라고 하는데 민간에서 히스테리, 신경통, 간질을 치료하는 데 쓰기도 하였다. 또 해열, 진통의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붉은병꽃
붉은병꽃은 비를 맞아서 몹시 무거워 보인다. 인동과 병꽃나무속에 속하는 붉은병꽃은 낙엽 활엽 관목으로 키는 2~3미터까지 자란다. 꽃의 모양이 병과 닮아서 병꽃이라고 한다. 팥꽃나무, 조선금대화라고도 부른다.
*벌깨덩굴꽃
자주색의 벌깨덩굴꽃은 아주 흔하다.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벌깨덩굴은 꽃모양도 꿀풀과 비슷하다. 자주색의 통꽃의 꽃부리 끝이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지고, 갈라진 아래쪽에는 자색 점들과 흰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로 산지의 응달진 곳에서 잘 자라며, 어린 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다.
* 풀솜대꽃
풀솜대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솜대, 솜죽대, 녹약이라고도 부른다. 잎은 긴 타원형으로 세로맥이 있으며 양면에 털이 나 있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기도 한다. 민간에서는 사지마비, 생리불순, 종기, 타박상을 치료하는데 쓰기도 하였다.
*금강애기나리꽃
작은 꽃을 활짝 피운 금강애기나리꽃을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이란...... 금강애기나리꽃은 잎에 비해서 꽃이 상당히 작은 편이다. 비에 흠뻑 젖어서 간신히 몸을 가누고 있는 꽃이 안쓰럽다. 금강애기나리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서 진부애기나리라고도 한다. 진부에서 처음 발견된 까닭에 진부애기나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꽃은 연한 노란색이 도는 연한 녹색이고 적자색의 반점이 있다. 금강애기나리 뿌리를 말린 것을 한방에서 보주초(寶珠草)라고 하는데, 건위와 소화의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간에서는 해수, 천식을 치료하는데 쓰기도 하였다.
*피나물꽃
노란색 꽃이 활짝 핀 피나물 군락지를 만난다. 피나물꽃도 비에 젖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피나물꽃은 양귀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노랑매미꽃, 여름매미꽃이라고도 한다. 줄기와 잎을 꺾으면 피와 비슷한 적황색의 유액이 나와 피나물이란 이름이 붙었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는데, 약간의 독성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끓는 물에 삶아서 우려낸 뒤 먹는 것이 좋다. 피나물의 뿌리 말린 것을 하청화근(荷靑花根)이라고 하는데, 민간에서 외상을 입었을 때 환부에 붙이거나 신경통과 관절염 치료제로 쓰기도 하였다.
*삿갓나물꽃
삿갓나물꽃도 피었는데 다른 꽃과는 달리 꽃이 꽃 같지 않다. 삿갓나물은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삿갓풀 또는 칠엽일지화라고도 부른다. 열매가 맺힌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녹색의 꽃이 활짝 피어 있는 상태다. 꽃덮이조각은 잎처럼 생긴 4~5장이 바깥쪽에, 실처럼 생긴 4~5장이 안쪽에 2열로 배열된다. 수술은 꽃밥 위쪽이 가느다란 꼬리처럼 길게 자란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기도 하지만, 뿌리는 독성이 있어서 먹을 수 없다. 국화과에 속하는 우산나물도 삿갓나물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삿갓나물과는 전혀 다른 식물이다.
삿갓나물의 뿌리를 말린 것을 한방에서 조휴(蚤休)라고 하는데, 성질이 약간 차고 쓰며 독성이 있다. 조휴는 열을 내려주고 독을 풀어주며, 부기를 빼주고 통증을 없애주며, 풍을 잠재우고 경련을 멈추게 하는 효능이 있어서 뱀에 물렸거나 각종 종기, 타박상, 고열로 인한 소아경련을 치료하는 한약재다. 한편 조휴는 항암작용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뇌종양이나 비인암, 식도암, 피부암 등에 써서 우수한 치료효과를 거두고 있기도 하다.
*개별꽃
개별꽃은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태자삼, 들별꽃, 개벼룩이자리라고도 한다. 다섯 개의 하얀 꽃잎의 끝이 파여 있고, 꽃밥이 검붉어지면서 점을 찍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어린 줄기와 잎을 나물로 식용할 수 있다. 민간에서는 위장약이나 간장약으로도 써왔다.
*연영초꽃
연영초도 제철을 만난 듯 유백색의 하얀 꽃을 피우고 있다. 크고 둥그런 세 장의 잎에 둘러싸인 꽃대에서 피어난 한 송이 연영초꽃이 청초한 모습이다. 세 장의 흰꽃을 세 장의 연초록색의 꽃받침이 받쳐주고 있다. 연영초는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높고 깊은 산속에서 자란다. 어떤 사람들은 연영초, 또 어떤 사람들은 연령초라 부르기도 하는데, 국가표준식물명은 연영초다. 연영초와 큰연영초를 구별하는 것도 쉽지 않다. 크기나 모양에 따라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수술의 색이 진한 것이 큰연영초라고 할 수 있다. 큰연영초는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인데, 현재는 울릉도에서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는쟁이냉이꽃
하얀색의 아주 작은 는쟁이냉이꽃이도 비를 맞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꽃대가 길고 가는데다가 여러 송이의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냉이는 약 60여 가지가 알려져 있는데, 는쟁이냉이꽃은 오늘 처음 보았다. 냉이류는 모두 십자화과에 속하는데 거의 대부분 흰꽃이 핀다. 기후변화로 말미암아 제비꽃과 마찬가지로 냉이류도 종간의 잡종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다.
*노랑무늬붓꽃
비로봉으로 오르는 나무계단길 옆 풀숲에는 노랑무늬붓꽃이 빗물을 머금은 채 피어 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처량해 보인다. 키가 매우 작아서 땅에 거의 붙어 있는 것 같다. 노랑무늬붓꽃은 흰색 바탕에 노란 무늬가 들어 있는 매우 아름다운 꽃이다. 오늘은 비로 인해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 하고 있다. 노랑무늬붓꽃도 환경부가 보호야생식물로 지정한 식물이다.
*노랑제비꽃
비로봉을 눈앞에 두고 세찬 비바람에 떨고 있는 노랑제비꽃을 만났다. 이 꽃은 다른 제비꽃과는 달리 노란색의 꽃이 특징이다. 맨 아래 꽃잎에는 짙은 황갈색의 줄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반그늘에서도 잘 자라고 무리지어 자라기 때문에 지피식물로(地被植物)로 사용되기도 한다.
마침내 비로봉 정상에 올라 선다. 비로봉 정상도 안개에 휩싸여 경치를 볼 수 없다. 정상 주변은 철쭉제에 참가한 등산객들로 붐빈다. 정상 표지석 뒤에 음각으로 새긴 서거정의 '소백산'이란 제목의 시를 읊어 본다.
小白山連太白山 태백산에서 치달려 온 소백산
他百里押雲間 백리에 구불구불 구름사이 솟았네.
分明畵盡東南界 또렷이 동남방의 경계를 그어
地設天成鬼破 하늘과 땅이 만든 형국 귀신도 울었소
*은방울꽃
비로봉에서 내려와 제일연화봉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른다. 등산로를 벗어난 풀숲으로 들어서다가 무심코 은방울꽃이 눈에 띈다. 키가 작은 은방울꽃은 풀숲을 헤쳐야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작고 하얀 꽃이 작은 종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은방울꽃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이 꽃도 비를 맞아 볼품이 별로 없다. 은방울꽃은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꽃이 예쁘고 향기가 짙어서 관상용으로도 많이 심는다. 은방울꽃의 전초를 말린 것을 영란(鈴蘭)이라고 하는데 민간에서 강심, 이뇨제로 쓰기도 했다.
*홀아비바람꽃
제일연화봉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곳에서 홀아비바람꽃 군락지를 만났다. 하나의 꽃대에 한 송이 하얀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이 외로워 보인다. 그래서 홀아비바람꽃이란 이름이 붙었는지도 모른다. 이 꽃을 은연화라고도 하는데 청초한 꽃이 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습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홀아비바람꽃은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유독성 식물이다. 이 꽃은 멸종위기에 처해 있어 희귀식물로 분류된다.
*솜방망이꽃
제일연화봉으로 오르는 평평한 산가슭에 노오란 솜방망이꽃이 피어 있다. 작고 노란 꽃이 국화꽃과 닮았다. 솜방망이가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기 때문이다. 줄기와 잎이 솜털로 덮여 있어서 솜방망이라고 한다. 어린 순은 나물로도 먹을 수 있다. 민간에서는 꽃을 거담제로 이용하기도 했다.
*철쭉
제일연화봉을 다 내려온 안부에는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다. 안개 속에서도 그 연분홍색의 아름다운 자태가 눈길을 끈다. 등산객들이 철쭉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고 야단이다. 한참을 기다려 철쭉꽃을 사진에 담는다. 이곳의 철쭉이 소백산 철쭉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꽃이 아닐까 생각한다.
*광대수염꽃
연화봉으로 가는 능선의 울창한 숲속에 광대수염 군락지도 있다. 삼척 신리에 있는 너와집 뒤뜰에서도 광대수염 군락지를 보았는데..... 광대수염은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관상용이나 밀원용, 약용으로 심기도 한다. 꽃이 핀 모양이 광대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해서 광대수염이란 이름이 붙었다.
*산괴불주머니 군락지
*산괴불주머니꽃
광대수염 군락지 바로 옆에는 노오란 색의 산괴불주머니꽃 군락지도 있다. 이 꽃은 현호색과에 속하는 두해살이풀로 잎은 어긋나고 깃털처럼 갈라져 있다. 북한에서는 산뿔꽃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산에서 가장 흔하게 눈에 띄는 야생화 가운데 하나다.
*모데미풀꽃
*모데미풀 열매
연화봉을 향해 오르는 산기슭에는 모데미풀꽃이 피어 있다. 어떤 모데미풀은 이미 꽃이 지고 열매가 달려 있다. 모데미풀은 식생조건이 까다로워서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식물이다.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인 모데미풀은 오이 지사부로(大井次三郞)란 일본인 학자가 1935년 지리산 운봉의 모데미라는 마을에서 처음 발견했다. 그래서 모데미풀이란 이름이 붙었다. 모데미풀은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습기가 있는 곳이나 능선상에서 자라는데 흔하지 않은 식물이다.
*산작약꽃
오늘 산작약꽃을 발견한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하얀색의 꽃이 아름답고 화려하다. 작약꽃은 모란꽃만큼이나 기품이 있는 꽃이다.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인 산작약은 관상가치가 높고 한약재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에 의한 남획으로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까닭에 산작약은 환경부로부터 보호식물로 지정되었다. 요즈음은 작약을 농가에서 많이 재배하고 있기도 하다. 작약꽃을 함박꽃이라고도 한다. 산작약꽃과 비교하면 작약꽃은 겹꽃이고 크기도 훨씬 크다. 산작약꽃은 거의 흰색이 대부분인데 비해 작약꽃은 흰색, 분홍색, 붉은색 등 다양하다.
작약의 뿌리를 한방에서 백작약이라고 하는데 당귀, 지황과 더불어 좋은 보혈약재(補血藥材)다. 본초학책을 보면 백작약은 '양혈유간(養血柔肝), 완중지통(緩中止痛), 염음수한(斂陰收汗)의 효능이 있어서 흉복통, 늑동통(肋疼痛), 사리복통(瀉痢腹痛), 자한도한(自汗盜汗), 음허발열(陰虛發熱), 월경불순, 붕리(崩痢), 대하를 치료한다.'라고 나와 있다. 백작약은 진통, 해열, 이뇨제로 한방에서 매우 많이 사용되는 한약재 중의 한 가지다.
오늘은 안개로 인해 소백산의 포근하고 넉넉한 산세와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지 못했지만 수없이 많은 야생화들과 상견례를 했다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 본다. 방송을 위한 촬영을 하는 틈틈이 소백산의 주능선 산기슭에 피어 있는 야생화들을 찾았다. 높고 깊은 산속을 찾아야 만날 수 있는 야생화도 있다. 희귀식물과 멸종위기에 처한 보호종 야생화를 만났을 때는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소백산은 5년전 백두대간을 순례할 때 이틀에 걸쳐 지나간 곳이어서 남다른 느낌을 주는 산이다. 지금은 비록 짙은 안개에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내 마음 속에는 죽령에서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 상월봉을 거쳐 고치령에 이르는 소백산맥의 고봉준령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내가 60일 동안 백두대간의 마룻금을 걸었던 것은 거기에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길은 바로 나의 인생길이었다. 오늘 그 길을 다시 걷노라니 5년 전 비를 맞으면서 연화봉을 오르던 때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2006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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