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14 - 남도의 누정을 찾아 '면앙정삼십영' 등 누정시를 남기다 1564년 송순이 면앙정을 중건하자 임억령은 '면앙정삼십영(俛仰亭三十詠)'을 지어 축하의 뜻을 나타냈다. '면앙정삼십영'은 추월취벽(秋月翠壁), 용구만운(龍龜晩雲), 몽선창송(夢仙蒼松) 등 면앙정 주변에 펼쳐진 30곳의 승경을 노래한 장편 연작시다. 김인후와 박순, 고경명도 '면앙정..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7.12.15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13 - 정철 스승 임억령을 위해 '성산별곡'을 짓다 많은 시인 문객들이 식영정을 찾아왔지만 임억령도 가깝고 먼 정자들을 찾아가 많은 누정시들을 남겼다. 우선 그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서하당에 들러 '송창(松窓)' 등 '서하당잡영(棲霞堂雜詠)' 14수를 남겼다. 담양 서하당 임억령의 '서하당잡영' 편액 서하당잡영(棲霞堂雜詠) - ..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7.12.14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12 - 김성원과 고경명, 정철도 차운시 '식영정이십영'을 짓다 정철은 환벽당과 식영정을 오가면서 당대의 문인 학자들인 송순과 임억령, 김윤제, 김인후, 양응정, 기대승 등을 스승으로 삼았으며, 김성원과 고경명, 백광훈 등과 교유를 하였다. 정철은 김성원과 함께 환벽당에서 글 공부를 하면서 식영정에서는 임억령으로부터 시를 배웠다. 담양 식..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7.12.13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11 - 식영정가단이 형성되고 '식영정제영'을 짓다 어느 날 식영정에 들른 면앙정의 주인 송순은 정자에 걸려 있는 '식영정운(息影亭韻)'에서 차운하여 '차김상사성원식영정운(次金上舍成遠息影亭韻)'이란 제목의 오언사운(五言四韻) 2수를 지었다. 원운시는 아마도 임억령의 사위 김성원이 지었던 것 같다. 운자는 '정(亭), 성(星), 정(庭), ..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7.12.11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10 - 환벽당 소쇄원 누정시와 식영정기를 짓다 1560년(명종 15) 정월 16일 고향 장성에서 은거하던 김인후가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기 전 '내가 죽으면 을사년 이후의 관작은 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인종에 대한 절의를 지키고자 했다. 임억령은 김인후의 부음을 듣고 통곡하면서 만장을 지었..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7.12.09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9 - 담양부사로 나가 '풍영정십영'을 짓다 1557년(명종 12) 3월 8일 62세의 임억령은 담양부사(潭陽府使) 겸 옥과현감(玉果縣監)을 제수받으면서 담양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는 담양부사로 나가면서, 조광조의 문인으로 평생 처사의 길을 걸어간 오랜 벗 성수침에게 '다만 일신 먹이고자 다섯 말 녹봉에 굽혔지만, 해적 떼 습격할까..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7.12.08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8 - 서얼허통법에 찬성하고 강원도 관찰사로 나가다 1553년(명종 8) 10월 7일 조정에서는 영의정 심연원(沈連源), 좌의정 상진(尙震), 우의정 윤개(尹漑), 좌찬성 윤원형 등이 올린 '경국대전(經國大典)'의 법을 고쳐서 서얼에게도 과거 시험을 볼 수 있게 하자는 안을 놓고 회의가 열렸다. 태종(太宗) 대부터 시행되어 오던 악법 서얼금고법(庶孼..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7.12.07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7 - 퇴게 이황과 시학 논쟁을 벌이다 1553년(명종 8) 3월 이황이 임억령을 찾아와 서로 시를 주고받았다. 임억령이 먼저 칠언절구 6수를 짓고, 이황은 그의 시에서 차운하였다. 임억령이 먼저 '증경호퇴계(贈景浩退溪)'를 지었다. 운(韻)은 '아(峨)'와 '다(多)'였다. 증경호퇴계(贈景浩退溪) - 경호 퇴계에게 드림 春來江漢濤瀾猛(..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7.12.06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6 - 양응정과 시전을 벌이다 1550년(명종 5)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 금강산 아래 서당골 문암재(文庵齋)에 머물던 55세의 임억령에게 병마가 찾아왔다. 양응정이 그리웠던 임억령은 그를 부르는 시 '초공섭(招公燮)'을 지어 보냈다. 초공섭(招公燮) - 공섭을 부르다 自吾觀海山(자오관해산) 내가 바다와 산을 보면서부터 ..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7.12.05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5 - 장편 영웅서사시 '송대장군가'를 짓다 1549년(명종 4) 3월 9일 박우는 처가인 해남 김씨(海南金氏)의 세장지(世葬地)가 있는 나주시 왕곡면 송죽리 귀엽마을 야산에 묻혔다. 이무렵 임억령은 임진당(任眞堂) 채세영(蔡世英)이 경상도 관찰사가 되어 나갈 때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고, 선정을 베풀 것을 당부하면서 노잣돈 대신 시 ..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7.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