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억령 26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4 - 을사사화로 벼슬을 내던지고 낙향하다

1545년 1월 10월 50세의 임억령은 고향 해남으로 돌아왔다. 7월 1일 묘시(卯時, 오후 5시~7시)에 인종이 세상을 떠났다. 임억령은 만사와 제문을 지어 인종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곡했다. 7월 6일 인종의 이복동생인 11살의 명종이 조선의 제13대 왕으로 즉위했다. 왕위 교체기에 조정은 명종의 ..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3 - 노모 봉양을 위해 동복현감을 자청하다

1528년(중종 23) 봄에 33살의 임억령은 홍문관(弘文館) 부수찬(副修撰)이 되었다. 그는 안수(安璲), 임설(任說), 최희맹(崔希孟), 이승효(李承孝), 홍섬(洪暹), 최연(崔演) 등과 가진 춘방계(春坊契) 모임에서 계축(契軸)을 짓고 시첩을 만들었다. 춘방은 세자(世子) 또는 세손(世孫)의 교육을 담..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2 - 벼슬길에 나아가다

윤구는 1513년(중종 8)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했다. 18세의 임억령은 동생 백령과 함께 광주 서창에 살고 있던 외삼촌 박곤(朴鯤)의 문하에서도 배웠다. 전주 통판(全州通判)을 지낸 박곤은 조일전쟁(朝日戰爭,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회재(懷齋) 박광옥(朴光玉, 1526∼1593)의 아버지..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1 - 전라도 해남현 석천동에서 태어나다

남도의 정자와 그 주인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기행에는 시와 역사가 있고, 낭만과 풍류가 있다. 배롱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날 조선시대 호남의 사종(詞宗)이라 일컬어진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의 식영정(息影亭, 대한민국 명승 제57호)를 찾았다. 식영정은 전라남도(全羅南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