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어느 가을날의 하루

林 山 2004. 12. 25. 13:35

오후 12시가 다 되어서 채00라는 후배로부터 점심을 같이 먹자는 전화가 왔다. 이거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휘파람이 절로 나온다. 아내는 출근하고 아들놈도 학교에 간지라 혼자서 우두커니 고독을 씹으며 민생고를 해결해야 할 판이었는데 말이다.

채군은 지방대학의 철학과를 나왔는데 소위 운동권 출신이다. 생긴 것을 볼라치면 꼭 인민무력부장감이다. 전에 조직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림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민무력부장이라는 거 말이다. 내가 민주노동당원으로 잡아넣으려고 공을 들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뭐가 못마땅한지 민주노동당에는 아직 들어갈 생각이 없다나 어쩐다나. '내가 가는 길을 니도 같이 가야할 거 아냐!'하면서 압력을 행사하는 중이다.

채군을 만나서 후배 박00가 주방장 보조로 있는 중국집으로 향한다. 박군에게 전화를 거니 아니 이게 웬일인가! 오늘자로 주인 화교에게 '오늘부터 관둡니다.'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에 중국집을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주인이 일하던 아주머니를 일방적으로 짜르자 분통이 터져서 더 일을 못하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 주인이 종업원들을 너무 의심하는 것이 싫다고 했다.

이 친구는 오래전부터 김대중매니아다. 내가 김대중이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 꼭 선생님을 붙여야 한다고 우기는 그런 사람이다.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오늘 만나면, '니 아직도 김대중매니아냐.'하고 물어볼 참이었다. 그가 그토록 빠져 있던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들이 뇌물을 받아먹은 것에 대한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 친구도 민주노동당으로 끌고 오려고 공을 들이는 중이다.

근데 민주노동당은 꼭 노동자의 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불만이다. 왜 나는 노동자축에 끼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후년에는 한의원을 개원하려고 하는데 간호사들을 고용하게 되면 나는 사용자가 된다. 그럼 나도 민주노동당의 타도대상이 되는 거 아닌가! 허 이거 고민되네. 한약을 짓는 노동자라고 한 번 우겨볼까! 민주노동당이 계속 노동자들만의 당이라고 주장한다면 이거 탈당해야 되는거 아닌가?

하여간에 각설하고 중국집에 가려던 것을 포기하고 충주에서 칼국수로 유명한 집에를 갔다. 채군, 박군, 그리고 박군의 친구부부 해서 도합 다섯 명이다. 나와 채군은 만두국, 나머지는 칼국수를 주문한다. 만두국이 나왔는데 아무래도 칼국수가 더 맛있어 보인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더니. 인간이란 어쩔 수가 없어. 그런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만두국 먹는데만 정신을 쏟는다.

점심을 먹고나서 채군이 소 70여마리를 키우고 있는 수안보 아홉살이라는 동네에 갔다. 축사는 깊은 산골짜기 끝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경치가 매우 뛰어난 곳이었다. 그런데 이런 계곡에 축사가 있으면 시냇물이 오염이 안되나! 채군에게 '니네 축사에서 흘러나오는 오물이 이 계곡을 다 오염시키잖아! 그래도 되는거여?'하고 힐난을 해본다. 그러자 채군이 하는 말, 이렇게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다가 가축을 키워야지만 민원이 안들어온다나 어쩐다나. 이거 축산정책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축사 바로 위에는 사업에 망하여 부도를 내고 들어와서 혼자 사는 사람이 있었다. 한때는 돈도 많았다는데 지금 보니 사정이 말이 아니다. 그는 이 산골짜기에서 산 지 거의 일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내가 전교조에 가입하여 교육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을 하다가 경찰에 잡혀가고,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자 가깝게 지낸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거리를 두거나 떠나가는 것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하긴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갔으니 사람들은 나를 저 이름도 무시무시한 빨갱이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빨갱이와 가깝게 지내다가는 자신들도 언제 피해를 볼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우리는 통성명을 했다. 그는 박00라는 사람이었다. 보이스카우트연맹에서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소시적에 부산에서 임진각까지 걸어서 17일만에 갔던 적도 있었다. 여기저기 안다녀 본 곳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역마살이 단단히 낀 사람같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채군과 뒷산에 오르기로 한다. 집뒤 감나무 옆으로 난 길을 따라서 오르니 심마니들이 다니는 오솔길이 나타난다. 굉장히 가파른 능선이 나타나 한동안 땀을 흘려야만 했다. 산능선을 한바퀴 돌고 내려와 계곡물을 수도꼭지에 연결한 샘터에서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한다. 아이고 시원한 거!

박선생이 삼겹살을 구워 소주 됫병짜리를 내온다. 씨에라컵으로 세 컵을 마시니 흠씬 술에 젖는다. 왜 그리도 술맛이 좋은지. 박선생은 젊었을 때 한량이었던 모양이다. 여자들이 줄줄 따랐다고 소시적 이야기를 들려 준다. 깊은 관계까지 맺었던 여인들을 다 헤아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여복은 타고난 사람이도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쫄라당 망한 것이 과거에 무수한 여인들을 울렸기 때문이라고 자가진단을 한다. 그럴 수도 있겠지.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것을 알렸다!

캄캄한 어둠이 내려 앉아서야 아홉살이를 떠났다. 충주로 돌아오니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후배네 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오란다. 닭도리탕을 맛있게 해 놨단다. 오늘은 먹을 복이 터진 날이다. 아내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단다.

김00 선생은 전교조 활동을 같이 했다. 후배이지만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이다. 인격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이런 사람이 교감, 교장, 장학사, 교육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는 김선생의 아이들을 두 명이나 이름을 지어 주었다. 둘째딸 수민이는 임신 당시 태동불안으로 유산할 뻔 했던 것을 한약을 써서 무사히 자연분만을 했다. 막내아들 주명이는 도산, 즉 애가 거꾸로 들어서 제왕절개수술을 하려고 했던 것을 침으로 돌려서 역시 자연분만을 했다. 그래서 또 이름을 지어주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작명가가 되리라는 것을 그 누가 알았던가!

닭도리탕이 너무 맛있다. 김선생 부인의 친정어머니가 나 주라고 담갔다는 동동주가 또 입에 착착 달라붙어 주량을 넘어서 마셨다. 친정어머니는 무릎 관절염으로 나에게 침을 맞고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친정에 갈 때마다 직접 담그신 동동주를 나를 갖다가 주라고 하신단다. 동동주에 취해 자꾸만 졸음이 온다. 아내에게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고 재촉한다. 아내는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은 눈치였지만 나의 재촉에 못이겨 김선생네 집을 나선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잠자리에 들었다.

그 이후로는 더 기억나는 것이 없다.

2002.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