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무궁화(無窮花)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무궁화는 현재 대한민국의 국화(國花)이며, 나라를 상징하는 국장(國章)이기도 하다. 대통령 휘장(徽章)부터 국회의원 배지, 법원 휘장, 경찰관과 교도관의 계급장 등 나라의 거의 모든 상징은 무궁화이다.
하지만 강효백은 자신의 저서 ‘두 얼굴의 무궁화’에서 이런 무궁화의 위상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배척한다. 무궁화가 우리 고서(古書)에서 거의 ‘피어본 적이 없는’ 꽃이며 오히려 ‘일본의 꽃’이라고 주장한다. 강효백의 주장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상식을 뒤집어엎는 것이어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조현래(필명)는 강효백의 주장에 대해 친일파 또는 친일 잔재의 척결이라는 과잉 목적의식이 현실과 실제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비판한다. 그는 박정희 독재정권이 무궁화를 권위주의와 국가의 상징으로 과도하게 선전한 것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지만, 그것이 사실을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어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한다.
강효백만 나라꽃으로서 무궁화의 부적격성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1956년 당시 일간지에 화훼연구가 조동화와 식물학자 이민재가 나라꽃으로서 무궁화의 부적격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요즘도 사회 일각에서 애국가와 국화를 다시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애국가는 작곡자가 친일파이고, 가사도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국화도 무궁화가 국민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조현래-강효백 두 사람의 논쟁이 국민들로 하여금 무궁화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궁화는 아욱목 아욱과 무궁화속의 낙엽 활엽 관목이다. 학명은 히비스쿠스 시리아쿠스 린네(Hibiscus syriacus L.)이다. 속명 '히비스쿠스(Hibiscus)'의 어원은 고대 골어(Gaulish)까지 거슬러올라간다. 고대 골어에서 '마아시 맬로우, 양아욱(marsh mallow)'이란 뜻의 고대 그리스어 '이비오코스(ibískos)'->라틴어 '히비스쿰(hibiscum)'->근대 라틴어 '히비스쿠스(hibiscus)'가 유래했다. 종소명 '시리아쿠스(syriacus)'는 원산지가 중동의 시리아임을 나타낸 것이다. '린네(L.)'는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이다. 린네는 생물 분류학의 기초를 놓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여 현대 식물학의 시조로 불린다.
무궁화의 영어명은 로즈 오브 섀런(rose of sharon)이다. '이즈리얼(이스라엘)의 섀런(샤론) 평원에 핀 아름다운 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중국명은 우츙화(无穷花) 또는 무진화(木槿花)이다. 일본어명은 무쿠게노하나(ムクゲの花, 無窮花) 또는 긴카(槿花)이다. 무궁화를 근화(槿花), 목근화(木槿花), 훈화초(薰華草)라고도 한다. 한중일 세 나라의 무궁화 이름에는 궁핍한 생활 없이 풍족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꽃말은 '섬세한 아름다움, 끈기, 일편단심'이다.
무궁화는 약 200여 종이 있다. 세계적인 분포는 동아군(東亞群), 하와이군, 북미군, 중남미군, 남아군(南亞群), 이도군, 아프리카군 등 7개 지역으로 나누고 있다. 한국의 무궁화는 동아군에 속한다. 1991년까지 한국에서 선발, 육종되어 품종명이 붙은 무궁화는 94종, 외국에서 도입된 품종은 78종 정도이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무궁화를 무진(木槿), 슌잉(舜英), 슌화(舜華), 쉰화차오(薰華草), 차오카이무뤄화(朝開暮落花), 판리차오(藩籬草) 등으로 쓰였다. 하지만 무궁화로 쓰인 적은 전혀 없다. 우리 나라에서는 한자로 무궁화(無窮花, 無宮花, 舞宮花) 등으로 쓰였으며, 지금은 무궁화(無窮花)만 쓰이고 있다.
'무궁화'의 어원이 처음 등장하는 책은 고려 후기의 대문호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이다. '동국이상국집'에 '이 꽃은 피기 시작하면서/하루도 빠짐없이 피고 지는데/사람들은 뜬세상을 싫어하고/뒤떨어진 걸 참지 못한다네/도리어 무궁이란 이름으로/무궁(無窮)하길 바란 것일세'라고 한 구절이 있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무궁화(無窮花)'의 어원이 처음으로 나타난 구절이다.
無窮花, 無宮花, 舞宮花 등 무궁화의 한자표기는 예로부터 쓰여오던 순 우리말에 한자음을 따서 사용해 오다가 뜻이 좋은 無窮花로 통일되어 쓰이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궁화라는 말도 원래의 이름이 아니고, 무궁화와 유사한 음의 단어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김정상(金正祥)의 논문 '무궁화보(無窮花譜)'다. 김정상은 '무궁화보'에서 1923년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면 비자리 마을 노인들이 무궁화를 ‘무우게’라 부른다면서, '무궁화'는 ‘무우게’에서 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양하(李敭河)는 수필에서 호남 출신 친구가 어릴 때부터 보아 온 무궁화를 ‘무강'나무로만 알아 왔다고 쓴 바 있다. 이처럼 무궁화는 오래전부터 한국 고유의 다른 이름이 있었으며, '무우게', '무강' 등이 무궁화(無窮花)로 기록된 것임을 강력히 뒷받침해 주는 글들이다.
일본에서는 무궁화를 ‘무쿠게(木槿, 槿, ムクゲ)’로 부르고 있다. '무쿠게'라는 이름은 삼국시대에 우리 조상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나라를 세울 때 무궁화도 가지고 가서 그대로 이름을 부르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무쿠게'가 '목근(木槿)'의 한자 발음이 변한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들이 있다.
오래전부터 한반도에 자라던 무궁화이지만 원산지는 아직도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종명에 중동의 시리아를 뜻하는 ‘syriacus(시리아쿠스)’가 들어 있고, 그리스에서 무궁화를 새긴 은전이 발굴되면서 시리아를 포함한 중동이 원산지라는 설이 주목받고 있다. 현재는 인도와 중국 원산지설이 가장 유력하다.
무궁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상고시대의 지리, 풍속을 널리 조사해 기록한 중국의 '산하이징(山海經)'에서 찾을 수 있다. '산하이징'의 제9권 <하이와이동징(海外東經)>에 '君子之國在其北……有薰花草 朝生募死(군자의 나라가 북방에 있는데…… 무궁화가 아침에 피고 저녁에는 시든다)'라는 구절이 있다. 군자의 나라(君子之國)는 한반도라는 것이 밝혀졌고, 훈화초(薰花草)는 무궁화를 일컫는 중국의 옛 이름이다. 또한 중국의 '꾸진주(古今注)'에는 '君子之國 地方千里 多木槿花(군자의 나라는 지방이 천리나 되는데 무궁화가 많다)'라는 구절이 있다.
'산하이징'이나 '꾸진주'를 통해서 한반도에는 수천 년 전에 이미 무궁화가 널리 자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신라 효공왕(孝恭王, 재위 897∼912)이 897년 7월 탕(唐)나라 짜오종(昭宗)에게 보낸 국서에 '근화향(槿花鄕, 무궁화의 나라, 신라)은 겸양하고 자중하지만, 호시국(楛矢國, 발해)은 강포함이 날로 더해간다.'고 한 구절이 있다. 국서를 쓴 사람은 대문장가 최치원(崔致遠, 857~?)이다. 국서는 최치원의 문집 '최문창후문집(崔文昌候文集)' 제1권에 그 초안이 수록되어 있다. '지우탕수(旧唐书, 舊唐書)' 199권 <신뤄촨(新羅傳)> 737년(성덕왕 36) 기사에도 '신라가 보낸 국서에 그 나라를 일컬어 근화향이라고 하였다.”고 한 기록이 있다. 이들 기록으로 보아 이미 신라시대부터 우리나라를 '근역(槿城, 무궁화의 나라)'이라고 불렀으며, 중국도 신라시대에 이미 우리나라를 근화향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국 탕(唐)나라 시인 왕웨이(王維, 699~759)의 '积雨輞川莊作(지위왕촨쫭주어) 장맛비 내린 망천장에서 짓다'란 시에 '山中習靜觀朝槿(산속에서 조용히 수양하며 무궁화를 감상하고), 松下淸齋折露葵(소나무 아래 마음을 씻고 아욱을 뜯네)'란 구절이 있다. 무궁화가 중국에서 자연 상태로 자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시를 근거로 무궁화 중국 남부 원산지설이 나왔다. 최근에 중국의 후난성(湖南省)과 푸젠성(福建省), 광시좡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일대에서 무궁화 자생지가 발견되었다.
조선 세종(世宗) 때 강희안(姜希顔)이 저술한 한국 최고의 화목서(花木書) '양화소록(養花小錄)'에 '우리나라에는 단군(檀君)이 개국할 때 목근화(木槿花, 무궁화)가 비로소 나왔기 때문에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일컫되 반드시 근역(槿域)이라 말하였으니, 무궁화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봄을 장식하였음이 분명함을 알 수 있다.'는 기록도 있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일본의 '왜기(倭記)'를 인용하고 있다. '왜기'에 '무궁화는 조선의 대표적 꽃으로서 무려 2,100여년 전 지나(支那)에서도 인정된 문헌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전국민으로부터 열광적 사랑을 받았으며, 문학적·의학적으로 진중한 대우를 받았다. 일본의 벚꽃, 영국의 장미와 같이 국화로 되어 있다가 조선조에 들어와 왕실화가 배꽃(梨花)로 정해져 무궁화는 점차로 세력을 잃고 조선민족으로부터 소원해졌던 것이다. 20세기의 문명이 조선에 들어옴에 유지들은 민족사상의 고취와 국민정신의 통일진작에 노력하여, 붓과 말로 천자만홍의 모든 꽃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로되 무궁화는 여름과 가을에 걸쳐 3, 4개월을 연속해 핀다고 하여, 그 고결함과 위인적 자용(偉人的姿容)을 찬미하였다. 따라서, 무궁화강산 운운은 자존된 조선의 별칭인데……”라는 기록이 있다고 하였다. 한민족과 무궁화의 관계를 잘 나타내고 있는 기록이다. '왜기'는 일반적으로 '니혼쇼기(日本書紀)'를 비하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하지만 글의 내용으로 보면 '니혼쇼기'는 절대 아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왜기'가 '조선총독부 고등경찰사전'이라고 나온다.
국립생물자원관 생물다양성정보에서는 무궁화의 원산지가 중국과 인도라고 되어 있다.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에는 무궁화의 원산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다음백과는 무궁화의 원산지가 대한민국,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라고 되어 있다. 한반도가 원산지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무궁화의 자생지가 발견되지 않아 확실치는 않다. 무궁화는 세계적으로는 동아시아, 유럽 등지에 분포한다. 한국에서는 평안남도 및 강원도 이남의 전국 각지에서 심어 기른다.
1935년 10월 21일 '동아일보' 학예란에 ‘조선의 국화 무궁화의 내력’이라는 제목 아래 '아마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조선에도 개화풍이 불어오게 되고 서양인의 출입이 빈번해지자 당시의 선각자 윤치호(尹致昊) 등의 발의로 양악대를 비롯하여 애국가(愛國歌)를 창작할 때 애국가의 뒤풀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이 들어가면서 무궁화는 조선의 국화가 되었다. 안창호(安昌浩) 등이 맹렬히 민족주의를 고취할 때 연단에 설 때마다, 가두에서 부르짖을 때마다 주먹으로 책상을 치고 발을 구르면서 무궁화동산을 절규함에, 여기에 자극을 받은 민중은 귀에 젖고 입에 익어서 무궁화를 인식하고 사랑하게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의 국화 무궁화의 내력’은 무궁화가 한국의 국화로 자리잡은 과정을 설명한 기사다. 구한말 윤치호 등의 발의로 애국가를 만들면서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을 넣음으로써 조선의 국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한민국이 수립된 직후 문교부는 1949년 10월 대통령 휘장과 행정·입법·사법 3부의 휘장을 모두 무궁화로 도안하여 제정했다. 1950년에는 태극기의 깃봉을 무궁화의 꽃봉오리로 제정했다. 하지만 '무궁화를 국화로 한다’라는 법률이나 조례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무궁화는 키가 4m까지 자라고, 수명은 30~40년 정도로 짧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100년 전후의 고목이 전국적으로 몇 그루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굵고 오래된 무궁화는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 강릉 박씨 재실 안에서 자라는 천연기념물 520호 무궁화다. 키 4m, 밑동 둘레가 1.5m이며 나이는 110년으로 추정된다. 백령도 중화동 교회에는 천연기념물 521호 무궁화가 있다. 남원시 산동면 대상리와 홍천군 고양산 중턱에도 크고 오래된 무궁화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무궁화 줄기의 껍질은 회색이며 일년생가지에 털이 있으나 점차 없어지고, 섬유질로 되어 질기며 잘 꺾이지 않는 특색이 있다. 잎은 어긋나기하며 달걀형이고, 3개로 갈라진다. 아랫부분에 3개의 큰 맥이 있고, 뒷면 맥 위에 털이 있으며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있다.
꽃은 7~10월까지 피며, 보통 분홍색 내부에 짙은 붉은색이 돈다. 꽃잎의 기부에 있는 진한 보라색 또는 적색의 원형 무늬를 단심(丹心)이라고 한다. 꽃색은 흰색, 분홍색, 연분홍색, 보라색, 자주색, 청색 등이 있다. 꽃받침조각은 달걀상 피침형으로 별모양 털이 있고, 외부에 꽃받침보다 짧은 선상의 바깥 꽃받침이 있다. 꽃잎은 거꿀달걀형으로, 5개가 밑부분에서 서로 붙는다.
무궁화 홑꽃은 꽃대 위에 꽃받침이 있고, 그 위에 5개의 꽃잎이 있다. 꽃잎 위에 씨방이 있고, 씨방에서부터 암술이 곧게 위로 뻗쳐 암술머리가 5개 있다. 암술대 주위로 수술이 돋아나는데, 암술대 주위로는 20∼40개의 수술이 생겨 암술대를 싸고 있다. 무궁화의 열매는 삭과로 긴 타원형이며 5실이고 포배열개되어 5갈래로 갈라지며 황색 별모양털이 밀생한다. 종자는 편평하며 긴 털이 있고, 10월에 성숙한다.
무궁화는 암술대 주위의 수술이 꽃잎으로 변하여 반겹꽃이나 겹꽃으로 분화가 일어난다. 홑꽃은 꽃잎이 5개로 꽃잎의 크기, 벌어지는 각도 등에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반겹꽃은 수술의 일부가 꽃잎으로 변한 것이다. 반겹꽃의 크기는 7∼12㎝, 꽃잎의 수는 30∼53매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겹꽃은 수술과 암술이 모두 꽃잎으로 변한 것이다. 암술의 변화 정도에 따라 겹꽃도 세분되는데, 꽃잎의 수는 40∼95매까지 매우 다양하다.
무궁화는 꽃색에 따라 순백색(純白色) 꽃과 순백색 이외의 꽃으로 분류할 수 있다. 순백색 이외의 무궁화는 화심부(花心部)에 붉은색을 가지고 있어 단심(丹心)이라 부른다. 단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꽃잎 한 옆으로 붉은색 띠가 있는 것도 있다. 순백색을 배달계, 단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단심계(丹心系), 단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붉은색 띠무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아사달계라고 한다.
배달계는 홑꽃으로 배달, 소월(素月), 옥선(玉仙), 옥토끼, 한서(翰西) 등의 품종이 있다. 반겹꽃으로는 눈뫼, 사임당(師任堂), 꽃뫼 등의 품종이 있다. 겹꽃으로는 새한, 눈보라 등의 품종이 있다.
단심계는 단심이 방사형(放射形)으로 퍼지는 정도에 따라 다시 세분된다. 흰색 바탕에 단심이 든 것을 백단심(白丹心), 분홍과 붉은색 바탕에 단심이 든 것을 홍단심(紅丹心), 자색이나 청색 바탕에 단심이 든 것을 청단심(靑丹心)이라고 부른다.
백단심 홑꽃에는 일편단심(一片丹心), 화랑, 새빛, 한얼단심 등의 품종이 있다. 반겹꽃에는 한누리. 한얼 등이 있고, 겹꽃에는 설악(雪岳), 설단심(雪丹心) 등이 있다. 홍단심 홑꽃에는 홍단심, 수줍어, 영광, 춘향, 에밀레, 한사랑, 불꽃, 새아씨, 홍화랑, 님보라, 계월향 등이 있고, 반겹꽃에는 산처녀, 아사녀, 홍순(紅盾) 등이 있으며, 겹꽃에는 첫사랑, 늘사랑, 루시, 폼폰로즈 등이 있다. 청단심에는 진이, 파랑새, 자선(紫仙) 등이 있고, 아사달계에는 아사달, 평화(平和), 바이칼라와 같은 품종이 있다.
무궁화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조생종(早生種), 조중생종(早中生種), 중생종, 중만생종(中晩生種), 만생종으로 나눈다. 또, 자라는 습성에 따라 직립고성(直立高性), 직립중성(直立中性), 직립왜성(直立矮性), 수양고성, 수양중성, 수양왜성으로도 나눈다.
무궁화는 제국주의 일본(일제)의 식민지시대 독립지사들과 함께 수난을 많이 당한 꽃이다. 1910년부터 일제는 대한제국을 식민지 통치하면서 우리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말살하려고 기도했다. 일제는 한민족의 상징인 무궁화를 전국적으로 뽑아 없애버렸으며, 무궁화를 사람이 가까이하면 눈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걸린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일제의 식민 통치 아래서 애국지사 남궁억(南宮檍)은 강원도 보리울에 은거하면서 많은 무궁화 묘목을 생산하여 전국적으로 배부해오다가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70 노구에 형무소에 투옥되기도 했다. 지금의 한국 보이 스카우트 연맹의 전신인 조선소년군과 그 후신인 조선소년척후대는 스카프의 무궁화 도안이 문제가 되어 해체당하기도 했다. 또한 동아일보 제호의 무궁화 도안이 삭제되었고, 중앙고등보통학교의 무궁화 교표가 사용 금지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제가 패망하고 대한민국이 수립되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화훼학 연구실에서 무궁화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47년부터 유달영(柳達永)은 염도의, 김일중과 함께 전국 각지에 드물게 남아 있는 무궁화를 수집하고, 세계 각국에서 여러 품종을 도입하는 한편, 신품종 연구와 육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이어 원예시험장과 임목육종연구소에서도 무궁화 육종에 착수했다. 현재 한국에 널리 보급되고 있는 무궁화 품종의 대부분은 서울대학교 화훼학 연구실에서 육종한 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전국의 화훼학계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무궁화연구회를 발족해 무궁화 연구와 보급을 시작했다.
무궁화의 어린잎은 식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무궁화의 어린잎을 나물로 먹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은 없다. 잎과 꽃을 차로 만들어 마신다고도 한다. 무궁화 잎차나 꽃차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무궁화에서 추출한 시리아쿠신(syriacusin)의 두 종류가 자외선에 오래 노출되어서 생기는 피부 노화를 억제하는데 매우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다. 잎의 추출물은 머리를 감는 데 쓰는 샴푸를 만들 때 첨가물로 이용되기도 한다. 나무껍질은 고급제지를 만드는 데 이용하고 있다.
무궁화는 추위에 어느 정도 강하나 너무 추운 곳에서는 동해를 받으며 내염성과 내공해성이 강하다. 또, 무궁화는 가지가 옆으로 뻗지 않고 위로만 자라므로 면적을 크게 차지하지 않아서 어떤 양식의 정원에도 잘 조화된다. 울타리용으로도 좋다. 삽목한 그해에 꽃을 피우므로 분화초로도 심는다.
무궁화의 가지 껍질을 본초명 목근피(木槿皮), 뿌리 껍질을 목근근(木槿根) 또는 목근근피(木槿根皮), 잎을 목근엽(木槿葉), 꽃을 목근화(木槿花), 과실을 목근자(木槿子)라고 한다. 목근피는 4~5월에 가지 껍질(枝皮) 혹은 뿌리 껍질(根皮)을 벗겨서 깨끗이 씻어 썰어서 햇볕에 말린다. 목근피는 청열이습(淸熱利濕), 해독, 지양(止痒)의 효능이 있어 장풍사혈(腸風瀉血, 출혈성 대장질환), 이질, 탈항(脫肛), 백대(白帶), 개선(疥癬), 치창(痔瘡), 폐옹(肺癰), 장옹(腸癰), 비출혈(鼻出血), 소갈(消渴, 당뇨병), 심번불면(心煩不眠) 등을 치료한다.
목근근피는 청열해독, 이습(利濕), 소종(消腫)의 효능이 있어 해수(咳嗽), 폐옹, 장옹, 장풍사혈, 치창의 종통(腫痛), 백대, 개선 등을 치료한다. 목근엽은 청열, 소적(消積)의 효능이 있어 적백리(赤白痢), 건삽불통(乾澁不通) 등을 치료한다. 짓찧어서 술에 혼합하여 따뜻하게 하여 복용한다. 목근화는 대서에서 처서 사이의 맑은 날 이른 아침 꽃이 반쯤 피었을 때 따서 햇볕에 말린다. 목근화는 청열이습, 양혈(凉血)의 효능이 있어 장풍사혈, 이질, 백대, 백리(白痢), 피부병 등을 치료한다.
목근자는 9~10월 과실이 황록색이 되었을 때 따서 햇볕에 말린다. 목근자는 청폐화담(淸肺化痰)의 효능이 있어 폐풍담천(肺風痰喘), 해수음(咳嗽音)을 치료한다. 편정두통(偏正頭風(두통이나 편두통)을 치료할 때는 목근자를 태운 연기로 환부를 훈증한다. 또 황수농창(黃水膿瘡)을 치료하는 데는 소존성(燒存性) 목근자를 저골(猪骨), 저수(猪髓)와 혼합하여 붙인다. 한의사들은 이들 약재들을 거의 쓰지 않는다.
'동의보감' <탕액편 : 나무>에는 목근(木槿, 무궁화)에 대해 '목근은 성질이 평(平)하며 독이 없다. 장풍으로 피를 쏟는 것과 이질 앓은 뒤에 갈증이 있는 것을 멈춘다. ○ 곳곳에 있으며 달여 먹으면 잠을 자게 한다. 아무 때나 껍질을 벗긴다[본초].'라고 설명하고 있다. 목근화(木槿花, 무궁화꽃)에 대해서는 '성질은 서늘하며 독이 없다. 적백이질과 장풍으로 피를 쏟는 것을 낫게 하는 데 닦아 쓰는 것이 좋다. ○ 달여서 차 대신 마시면 풍증을 낫게 한다.'고 나와 있다.
무궁화의 유사종 가운데 자생종은 황근(갯아욱, 갯부용, Yellow rosemallow, ハマポウ) 1종이 있다. 국가표준식물목록(국표)에 등재된 양아욱속 유사종의 재배종에는 무궁화를 비롯해서 각시부용, 갯부용(Marsh mallow,Hollyhock Sea,Sea hollyhock), 닥풀(황촉규, ドロロアオイ) 등 222종이 있다. 외래종 유사종에는 수박풀(Bladder ketmia, ギンセンカ) 1종이 있다.
2020. 10. 10. 林 山. 2023.1.11. 최종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