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이야기

고추

林 山 2021. 10. 8. 19:30

서양의 대표적인 향신료에 후추가 있다면 동양에는 고추가 있다. 고추는 매운맛을 내는 대표적인 향신료다. 한국인들의 밥상에 풋고추나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는 음식은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다. 풋고추는 날것 그대로 훌륭한 반찬이나 술안주가 된다. 고춧가루는 각종 찌개나 국에 빠질 수 없는 향신료다. 고추 장아찌나 튀김도 인기있는 반찬이다. 고추장이 없는 식탁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붉은색이 태양이나 불을 상징하며, 잡귀를 쫓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붉은 고추는 벽사(辟邪)의 의미로 쓰였다. 민간에서 된장이나 고추장, 간장 등을 담근 뒤에 새끼에 빨간 고추와 숯을 꿰어서 독에 둘러 놓거나 고추를 독 속에 집어넣는 것은 장맛을 나쁘게 만드는 잡귀를 막는다는 의미가 있다. 경북 동해안 지방의 별신굿에서 굿상에 소금 1접시, 물 3그릇에 빨간 고추와 숯을 띄워 놓는 것도 같은 의미다.

 

고추는 그 생김새가 남아의 생식기와 비슷하므로 남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태몽에 고추를 보면 아들을 낳는다는 믿음이 있다. 전통 풍습에 아들을 낳으면 왼새끼 인줄에 고추와 숯을 꿰어 대문 위에 걸어두는 풍습이 있었다. 딸일 때는 숯과와 소나무 가지를 꿰워 달았다. 사람들은 고추의 빨간색이 가진 벽사의 기능 때문에 잡귀나 잡인의 출입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또, 인줄은 면역력이 약한 산모와 신생아가 있음을 일반사람들에게 알리고 출입을 삼가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이런 믿음 때문에 줄이 걸려 있는 집에는 사람들이 함부로 출입하는 것이 금기시되었다.         

 

고추 꽃(충주시 연수동, 2021. 5. 18)

고추는 통화식물목 가지과 고추속의 한해살이풀이다. 열대지방에서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학명은 캡시쿰 애뉴엄 린네(Capsicum annuum L.)이다. 속명 'Capsicum'은 그리이스어 'Kapto'(맵다)에서 유래한 말이다. 'annuum'은 'annuus'(1년생)를 의미한다. 꽃말은 '신랄(辛辣)하다'이다. '신랄'은 '매우 매섭고 날카롭다'는 뜻이다.

 

고추의 영어명은 핫 페퍼(hot pepper) 또는 칠리 페퍼(Chili pepper)이다. 일어명은 도오가라시(トウガラシ, とうがらし, 唐辛子, 唐芥子, 蕃椒)이다. 중국명은 라쟈오(辣椒) 또는 라친쟈오(辣秦椒), 라치에(辣茄), 라즈(辣子), 판쟈오(番椒, 蕃椒), 하이쟈오(海椒), 친쟈오(秦椒)이다. 고추를 꼬추, 고치, 꼬치, 고초(苦草, 苦椒), 번초(番草), 남만초(南蠻草), 남초(南椒), 당초(唐草), 왜초(倭草), 당신(唐辛), 진초(秦椒)라고도 한다. 

 

1614년에 편찬된 '지봉유설(芝峯類說)'에는 '남만초(南蠻椒)는 대독(大毒)하다. 처음 왜국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세속에서 왜개자(倭芥子)라 한다. 요즘은 자주 심는데 술집에서 몹시 매운 것을 이용한다. 술안주로 고추를 먹는다. 혹 고추를 소주에 타서 팔기도 하는데 이것을 마신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영조 때의 '성호사설(星湖僿說)', 헌종 때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등에서는 고추를 번초(蕃椒)라고 표현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고추의 ‘고(苦)’ 자가 '쓰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맵다'는 뜻으로 쓰였다. 국어사 자료에서 ‘고추’의 최초 형태는 15세기의 ‘고쵸’로 나타난다. ‘고쵸’는 한자어 ‘고초(苦椒)’에서 온 것이다. 16세기 '훈몽자회(訓蒙字會)'에는 ‘苦’가 ‘ᄡᅳᆯ 고’, ‘椒’가 ‘고쵸 쵸’로 올라 있다. ‘고쵸’는 18세기까지 계속 쓰이다가 19세기에는 ‘고초’, 20세기에 이르러 ‘고추’라는 말이 나타난다. '고추'는 ‘고초’가 비어두 음절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난 ‘ㅗ>ㅜ’ 변화로 인한 것이다. 

 

고추는 특유의 매운 맛 때문에 옛날 시집살이 노래의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경상북도 경산 지방에는 '시잡살이 개집살이/앞밭에는 당초 심고/뒷밭에는 고초 심어/고초 당초 맵다 해도/시집살이 더할쏘냐.'라는 가사를 가진 민요가 전해지고 있다. 

 

고추의 원산지는 북아메리카 남부와 남아메리카 북부 지역이다. 지금의 멕시코에 해당한다. 콜럼버스 일행이 중부 아메리카에 상륙했을 때, 원주민들이 음식에 넣던 붉은 향신료를 보았다. 원주민들이 먹던 향신료가 바로 후추(pepper)보다 훨씬 더 맵고 빛깔이 붉은 고추였다. 당시 후추가 귀했던 유럽에는 고추가 ‘붉은 후추(Red Pepper)’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고추는 전 세계 온대에서 열대 지방까지 널리 재배된다. 한반도에서도 전국적으로 재배되고 있다. 한반도에는 고추가 17세기 초엽에 전래되었다. 16세기에 나온 중국의 본초서 '뻰차오강무(本草綱目)'에는 고추에 관한 언급이 없다. 일본의 '소모쿠로쿠부코슈호(草木六部耕種法)'에는 1542년 포르투갈인들이 고추를 가져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봉유설'에도 고추가 일본에서 전래되어 왜개자(倭芥子)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에는 일본을 거쳐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본의 '야마토혼조(大和本草)', '부쯔루이쇼코(物類稱呼)' 등에는 조선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했다. 또, '와칸산사이주에(和漢三才圖會)', '혼쵸세지단키(本草世事談綺)', '세이께이주세쯔((成形圖說)' 등에는 조선 또는 남만에서 전래된 것이라 기록되어 있다. '와칸산사이주에'에는 고추의 성질이 대온(大溫)하여 매우 맵고, 많이 먹으면 화(火)가 동하고 창(瘡)을 나게 하며 낙태한다고 나와 있다.

 

고추 꽃(충주시 연수동, 2021. 5. 18)

고추의 키는 약 60cm까지 자란다. 줄기는 곧게 서며 전체에 털이 약간 있다. 잎은 어긋나기하며 엽병이 길다. 잎 모양은 난상 피침형이며 양끝이 좁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여름철에 흰색으로 핀다. 잎겨드랑이에 1개 또는 2~3개가 곧게 또는 아래를 향해 달린다. 꽃받침은 녹색이고 끝이 짧게 5조각으로 갈라진다. 꽃부리는 얕은 접시모양이고 방사상으로 5~9개로 깊게 갈라진다. 수술은 5개이나 3~7개인 것도 있고 중앙에 모여 달린다. 꽃밥은 노란색 또는 검은색이고 씨방은 2~3실이다. 열매는 장과로서 수분이 적다. 품종에 따라 보다 큰 것도 있다. 붉은색으로 익는다. 

 

고추는  열매를 신미료 또는 향신료로 널리 사용하고 있다. 품종에 따라 맵지 않은 것도 있고, 단맛이 나는 것도 있다. 잎은 어린 열매와 함께 데쳐서 나물로 이용한다. 고추 잎에서 분리한 바니린산(vanilic acid)은 강한 항산화작용이 있다. 채소용 고추는 날것으로 고추장이나 된장에 찍어 먹는다. 또 반으로 쪼개어 속에 두부나 쇠고기 등을 버무려 넣어 전(煎)을 만들기도 한다. 통째로 구멍을 뚫어 젓국에 절여 놓았다가 겨울철 밑반찬으로 먹기도 한다. 풋고추는 기름간장에 조려서 반찬으로 만들기도 한다. 

 

빨갛게 익은 홍고추에는 비타민 C가 사과의 23배, 키위의 4배나 많이 함유되어 있다. 또 일반 고추에 비해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 성분이 많다. 홍고추는 생것을 갈아서 나물의 조미료로 이용하며, 건고추는 가루를 내어 김치의 양념으로 쓰거나 고추장을 담근다. 고추장은 나물을 무치고 국과 찌개에 넣는 좋은 조미료가 된다. 생야채를 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한다. 생선회에는 고추장에 식초를 넣어 만든 초고추장을 양념장으로 쓴다. 오이나 무, 마늘종, 더덕 등을 고추장에 박아 장아찌를 만들기도 한다. 고추씨로는 기름을 짠다. 

 

고춧대를 논에다 넣고 그 썩은 물에 미꾸라지를 양식하면 잘 자란다는 설이 있다. 관상용으로 개발한 고추도 있다. 관상용 고추에는 애기고추, 아우로라고추, 노랑고추, 무늬잎고추, 화초하늘고추 등이 있다.

 

매운맛이 나는 캡사이신(capsaicine) 성분은 산패를 막아 비린내가 나지 않도록 하는 효능이 있다. 적당량의 캡사이신은 소화관 운동을 항진(亢進)시키고, 위산 분비를 촉진한다. 다량의 캡사이신은 위산 분비를 억제하는 작용이 있다. 캡사이신은 항암효과가 있으며, 체지방을 연소시킴으로써 발열을 촉진하여 다이어트 효과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고추가 자극성이 강하여 위염이나 위궤양의 원인이 되므로 고추를 덜 먹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1809년에 나온 '규합총서(閨閤叢書)'에도 고추를 김치나 그밖의 조리에 알맞게 쓰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추의 과실은 날초(辣椒), 줄기는 날초경(辣椒莖), 뿌리는 날초두(辣椒頭)라 하며 민간에서 약용한다. 날초는 온중산한(溫中散寒), 개위소식(開胃消食)의 효능이 있어 한체복통(寒滯腹痛), 구토, 하리(下痢), 동창(凍瘡), 개선(疥癬) 등을 치료한다. 날초에 함유된 캡사이신은 강한 발한작용과 항류머티즘작용이 있어 신경통과 근육통을 치료한다. 날초경은 거한습(祛寒濕), 축냉비(逐冷痺), 거어(祛瘀)의 효능이 있어 류머티성 냉통(冷痛), 동창 등을 치료한다. 날초두는 수족(手足) 무력과 신낭종창(腎囊腫脹) 치료 효능이 있다. 민간요법으로는 감기에 걸렸을 때 고추감주라고 하여 감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기도 하고,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기도 한다. 한의사들은 임상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고추(충주시 교현동 부강아파트, 2021. 10. 8)

고추는 서로 다른 품종이 바람에 의한 수정으로 쉽게 교잡종을 만들기 때문에 전세계로 전파되는 가운데 수많은 품종이 생겨났다. 한반도에도 지방에 따라 여러 재래종 품종이 생겨나서 약 100여 종에 이르고 있다. 영양고추는 끝이 둥글고 열매에 윤기가 많으며 매운맛과 단맛이 적당히 배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껍질이 두꺼워 고춧가루가 많이 나온다. 경남 고성고추는 수확량이 많고 맵기 때문에 김장용 고추로 권장된다. 동래 서동고추는 수확 시기가 빠르고 수확량이 많으며, 열매가 크고 병해에 잘 견딜 뿐만 아니라 매운 맛이 약하기 때문에 채소용 고추로 권장되고 있다.

 

외국의 우수한 품종을 도입하여 육성한 일대잡종(一代雜種)을 통틀어 호고추라고 한다. 호고추는 생육 초기에는 매운 맛이 적어서 채소용으로 알맞고, 생육 말기에는 매운 맛이 약간 늘어나서 건과용이 된다. 또한 열매가 붉고 굵으며 껍질이 두껍고 씨가 적어서 가루가 많이 난다. 과피가 얇고 매운 맛이 강하며 고유의 독특한 맛이 나는 재래종 건고추를 조선고추라고 한다. 조선고추 가운데 무주고추와 진안고추는 크기와 모양이 균일하고, 색깔과 광택이 선명하며 건조상태가 좋은 태양초이다. 

 

고추의 종류에는 녹광고추, 당조고추, 아삭이고추, 꽈리고추, 청양고추 등이 있다. 녹광고추는 한국에서 재배되는 대표적인 재배종 고추이다. 코리언 다크 그린 페퍼(Korean dark green pepper) 또는 코리언 레드 페퍼(Korean red pepper)로 알려져 있다. 한국 요리에 가장 많이 쓰인다. 당조고추는 연두색 빛이 돌며 크기가 일반 고추보다 2~3배 정도 크다. 혈당조절 효과가 있다. 식감은 아삭아삭하고 맵지 않아 파프리카와도 비슷하다. 식후 혈당상승을 억제하는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으며, 탄수화물의 소화 흡수율을 저하시킨다. 아삭이고추를 오이고추라고도 한다. 풋고추의 개량종으로 아삭아삭 씹히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과육이 두꺼우며 수분이 많고 맵지 않다. 피망대신 사용이 가능하며 피클로도 활용할 수 있다. 

 

꽈리고추는 표면이 꽈리처럼 쭈글쭈글하다. 일반 고추와 달리 아삭함과 매운맛은 적은 반면 부드럽고 연한 식감이 특징이다. 꽈리고추는 강혈압, 모세혈관·확장, 신진대사 촉진 효능이 있다. 또 비타민 A와 C, 철과 인도 많이 함유되어 있다. 매운맛은 적으면서 눈에 좋은 카로틴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녹색채소로서 이용 가치가 크다. 기름으로 볶으면 꽈리고추에 함유된 베타카로틴 성분이 더 잘 흡수된다. 청양고추는 매운맛이 강하며 외국의 매운 고추에 비해 캡사이신 양은 적지만 단맛이 두배로 높아 매운맛과 단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비타민 A, C가 풍부하며 유기산 및 칼슘 등이 고루 함유되어 있다. 청양고추는 제주산과 태국산 고추를 교잡하여 만든 품종이다. 경북 청송군과 영양군 일대에서 재배에 성공하여 청송의 '청'과 영양의 '양'을 따서 청양고추라고 했다.

 

고추는 건고추로 쓰는 품종과 풋고추로 쓰는 품종이 있다. 건고추를 쓰는 품종에는 재래종과 본응, 달마, 고신, 웅응, 소팔방, 장팔방, 청양 등이 있다. 풋고추로 쓰는 품종에는 일광(日光), 복견신(伏見辛), 불암(佛岩)하우스풋고추 등이 있다. 그밖의 품종으로는 외국에서 들어온 피망(piment)이 있다. 피망은 고추의 원예품종으로서 잎은 더욱 두껍고, 열매는 크고 매운맛이 없다. 파프리카(paprika)는 피망을 달고 과육이 많도록 개량한 것이다. 

 

매운 고추의 품종으로는 인도의 부트 졸로키아(Bhut Jolokia), 방글라데시의 도셋 나가(Dorset Naga), 멕시코의 하바네로(ají habanero 또는 chile habanero), 태국의 프릭 키 누(prik khi nu, 새눈고추, 쥐똥고추)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인도의 부트 졸로키아는 맵기가 청양고추의 30배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다. 멕시코의 하바네로는 청양고추의 15배 정도 맵다. 멕시코의 할라페뇨(jalapeño)는 청양고추보다 덜 맵다.

 

2021. 10. 8.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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