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이야기

'행복한 사랑' 장미(薔薇)

林 山 2022. 3. 23. 18:21

장미(薔薇)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꽃이다. 정원이 있는 집에는 장미 한두 그루 정도는 거의 있을 것이다. '꽃 중의 여왕'이라 일컬어지는 장미는 꽃꽂이 소재로도 인기가 있고, 결혼식 부케에도 빠질 수 없는 꽃이다. 서양에서는 로즈 데이(Rose day)인 5월 14일에 연인들끼리 달콤한 키스와 함께 장미 꽃다발을 주고받는다.

 

장미는 선물용으로도 인기 최고의 꽃이다. 백만 송이의 장미를 실제로 선물한 사람이 있다. 조지아(Georgia)의 원시주의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Niko Pirosmani, 1862~1918)는 독학으로 그림을 배워 평생을 무명으로 보냈다. 그는 프랑스 여배우 마르가리타(Margarita)를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모든 그림과 재산을 팔아 그녀에게 백만 송이 장미를 선물했다. 하지만 마르가리타는 자신의 아파트 앞에 꽃 바다를 이룬 백만 송이 장미를 누가 선물했는지도 모른 채 밤기차를 타고 순회공연을 떠났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평생 만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Alla Pugacheva - Million Roses

 

러시아 작가 콘스탄틴 파우스톱스키(Konstantin Georgiyevich Paustovsky, 1892~1968)는 피로스마니의 비극적인 사연을 소재로 시를 썼다. 러시아 국민가수 알라 푸가초바(Alla Pugatcheva)는 1982년 라트비아 민요 '마리냐가 준 소녀의 인생(Dāvāja Māriņa meitenei mūžiņu) 곡조에 러시아 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Andrey Voznesensky)가 파우스톱스키의 시를 바탕으로 쓴 가사를 붙여 Миллион алых роз(Million Of Red Roses, 백만 송이 장미)’라는 제목의 싱글을 발매했다. 이 노래는 전 세계적인 히트를 쳤다. 

 

加藤登紀子 - 百万本のバラ
 
심수봉 - 백만 송이 장미

 

일본에서는 싱어송라이터 가토 도키코(加藤登紀子), 한국에서는 심수봉이 커버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가토 도키코의 커버곡 가사는 원곡과 큰 차이가 없으나, 심수봉 커버곡은 곡목만 같을 뿐 가사가 전혀 다르다.  

 

장미를 선물할 때는 꽃색에 주의해야 한다. 꽃색마다 꽃말과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연인에게는 보통 '열렬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붉은색 장미를 선물한다. 연인에게 노란색 장미를 선물하면 이별을 선언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노란색 장미의 꽃말은 '질투, 이별'이기 때문이다.   

 

장미(충주시 교현동 부강아파트, 2006. 5. 25)

장미는 장미과 장미속에 속하는 관목의 총칭이다. 학명은 로사 린네(Rosa L.) 또는 로사 스피시즈(Rosa spp)이다. 'spp'는 'Species(종, 種)'의 복수형으로 정확한 품종에 대한 정보가 미상일 때 붙이는 학명이다. 장미속은 장미아과의 단형족인 장미족(薔薇族, Roseae)에 속하는 유일한 속이다. 

 

장미의 영어명은 로즈(rose), 일어명은 바라(バラ, ばら, 薔薇)이다. 중국명은 챵웨이(蔷薇), 이명에는 리량차오(离娘草), 메이꾸이(玫瑰), 메이커(媚客), 뚸화챵웨이(多花蔷薇), 만싱챵웨이(蔓性蔷薇), 챵미(墙蘼, 蔷蘼), 츠미(刺蘼), 츠메이타이(刺莓苔), 예챵웨이(野蔷薇) 등이 있다. 중국 밍(明)나라 리싀젠(李時珍)의 '뻰차오강무(本草綱目)'에는 '찔레를 장미라고 하며, 담장 벽에 의지해서 자란다'고 기술되어 있다. 서양장미가 도입되기 전까지 장미(牆蘼, 薔薇)는 장미속의 찔레꽃(Rosa multiflora), 해당화(Rosa rubiginosa, 海棠花), 월계화(Rosa chinensis, 月季花) 등을 부르는 말이었다.

 

장미의 꽃말은 '사랑, 애정, 행복한 사랑'이지만, 장미 꽃잎의 색, 장미의 모양에 따라 다양하다. 붉은색 장미는 '열렬한 사랑'이다. 붉은색 장미는 사회주의 정당이나 단체들의 국제조직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상징이기도 하다. 흰색 장미는 '순수, 결백, 비밀, 사랑의 한숨', 노란색 장미는 '질투, 이별, 부정'아더. 적황색 장미는 '불타는 사랑', 핑크색 장미는 '감명, 사랑의 맹세'이다. 보라색 장미는 '영원한 사랑', 파랑색 장미는 '기적, 희망, 불가능', 검정색 장미는 '당신은 영원히 나의 것, 속박'이다. 

 

장미는 모양에 따른 꽃말도 있다. 홀꽃잎은 '단순, 소박', 흰색과 붉은색의 장미를 묶은 것은 '결합', '두 개의 봉오리 사이에 활짝 핀 장미를 끼운 것은 '비밀'이다. '비밀'의 장미는 침묵의 신 하포크라테스(Harpocrates)와 관련이 있다. 사랑의 신 에로스(Eros)가 어머니인 아프로디테(Aphrodite, 로마 신화의 Venus)의 로맨스를 누설하지 말아달라고 침묵의 신 하포크라테스에게 부탁했다. 하포크라테스는 비밀을 지키겠다는 응답으로 장미를 보냈다. 그후 장미는 밀회의 비밀을 지켜주는 꽃이 되었다. 

 

장미의 붉은 꽃봉오리의 꽃말은 '순수하고 사랑스러움, 아름다운 연애', 흰 꽃봉오리는 '소녀기, 사랑을 모르는 마음', 장미의 잎은 '당신도 희망을 가지고 있다'이다. 가시 없는 장미는 '어릴 때의 애착'이다. 

 

장미를 국화로 하는 나라는 루마니아, 룩셈부르크, 불가리아, 사우디 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영국의 잉글랜드 등이 있다. 미국의 뉴욕, 노스다코타, 콜롬비아 주의 꽃도 장미다. 부산광역시 사하구는 1983년 12월 15일 장미가 아름다움(美), 사랑(愛), 사모함(慕)을 나타내며, 사하구민의 화합과 정열을 상징한다 하여 구화(區花)로 지정하였다.

 

야생종 장미는 주로 북반구의 온대와 한대 지방에 분포한다. 한국에 자생하는 야생 장미에는 찔레나무, 해당화, 노란 해당화, 돌가시나무, 생열귀나무, 용가시나무, 붉은 인가목 등이 있다. 

 

원종은 다음과 같다. 로사 치넨시스(Rosa chinensis)는 중국 원산의 월계화 군(群), 로사 오드라타(Rosa odorata)는 중국 원산인 티 로즈(Tea rose)의 원종, 로사 모스카타(Rosa moschata)는 중국과 인도 원산의 산장미(山薔薇)이다. 로사 멀티플로라(Rosa multiflora)는 조선반도와 일본 원산의 찔레나무, 로사 위츄라이아나(Rosa wichuraiana)는 조선반도와 일본 원산의 돌가시나무다. 로사 루고사(Rosa Rugosa)는 조선반도와 중국, 일본 등 아시아 북동부 원산의 해당화로사 다마스케나(Rosa damascena)는 중근동 원산의 다마스크 로즈(Damask Rose)이다. 로사 포에티다(Rosa foetida)는 이란 원산의 페르시안 옐로 로즈(Persian yellow rose) 무리, 로사 다부리카(Rosa davurica)는 조선반도와 중국에 자생하는 생열귀나무다. 지금의 장미는 이들 야생종이 유럽으로 건너가 잡종이 되었거나 개량종이다.  

 

장미(삼척시 가곡면 덕풍계곡, 2007. 9. 30)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장미는 아프로디테가 피어나게 한 꽃이다.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천공신(天空神) 우라노스(Uranos)의 잘려진 성기의 거품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고, 우라노스의 손자 제우스(Zeus, 로마신화 Jupiter)와 바다의 정령인 디오네(Dione)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다. 아프로디테는 다른 신들처럼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다고 말하고 대지에 장미꽃을 피웠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전설로는 거품 속에서 아프로디테가 태어날 때 장미꽃도 함께 만들어졌다고 한다.

 

장미가 붉은색인 이유는 아프로디테의 애인 소년 아도니스(Adonis)와 깊은 관계가 있다. 아도니스가 사냥을 나갔다가 산돼지의 이빨에 옆구리를 찔려 죽었다. 이때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를 살리려고 하다가 장미의 가시에 발을 찔렸다. 그때 그녀의 발에서 나온 피가 백장미에 묻어 홍장미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다른 전승도 있다. 아도니스가 죽었을 때 그 피와 아프로디테의 눈물이 섞여 진홍빛 장미가 피었다는 설도 있다. 아프로디테가 아도니스와 놀다가 장미 가시를 밟았는데, 창피해서 얼굴을 붉힌 까닭에 흰 장미꽃이 핑크빛 장미로 변했다는 전승도 있다. 또, 아프로디테의 남편이자 전쟁의 신 아레스(Ares)가 질투심에 아도니스를 땅에 던져 버리자 애인을 구하려고 달려든 아프로디테가 흰 장미숲에 쓰러져 가시에 찔렸는데, 이때 흘러나온 피가 백장미를 붉게 물들였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장미에 가시가 생긴 이유도 나온다.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사랑의 신인 에로스는 경솔한 편이어서 올림포스 신들의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뒤늦게 생각이 나서 허둥대다 넘어지는 바람에 귀중한 신주(神酒)를 엎질러 버렸다. 그러자, 신주는 진홍빛 장미로 변했다. 에로스는 새로 피어난 아름다운 장미에 매혹되어 키스를 하려다가 꽃 속에 있던 벌에게 입술을 쏘였다. 아들이 입을 다치자 아프로디테는 화가 나서 벌의 침을 빼서 장미의 줄기에 심었는데, 그 침이 장미의 가시가 되었다는 것이다.

 

장미는 페르시아 신화에도 나온다. 고대 페르시아(이란)의 전설에는 무함마드(Muhammad)가 천국에 흘린 땀이 흰 장미꽃이 되었으며, 터키에서는 무함마드의 피에서 장미가 생겼다고 한다. 이집트인들에게는 장미가 육체적 욕망이 없는 순수한 사랑을 뜻하여 풍요의 여신 이시스(Isis)와 연관시켰다.

 

또 다른 전설도 있다. 화왕(花王)이 연꽃이었을 때다. 연꽃은 밤에는 잠만 자고 다른 꽃들을 지키지 않았다. 꽃들이 연꽃의 게으름을 알라(Allah)에게 호소하자 알라는 흰 장미를 화왕으로 만들었고, 가시를 주어 무기로써 지키게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꽃 세계에 나이팅게일이 날아와 흰 장미의 아름다움에 반해 키스를 하려다가 가시에 찔려 죽었다. 이때 흘린 피가 흰 장미를 붉게 물들여서 붉은 장미가 되었다고 한다.

 

장미는 종교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크라이스트교 에덴 동산 설화에도 장미가 등장한다. 에덴 동산에는 장미에 가시가 없었다. 그런데, 애덤(Adam)이 낙원에서 쫓겨날 때 야웨(Yahweh )는 그의 원죄를 생각나게 하기 위해 장미 줄기에 가시를 붙였으며, 낙원이 얼마나 좋은 곳인가를 잊지 않게 하려고 짙은 향기와 아름다움을 남겼다고 한다.

 

지저스 크라이스트((Jesus Christ))의 어머니 마리아(Maria)가 어느 날 장미 꽃봉오리에 베일을 덮어 두었다. 그러자 그 밑에 있던 장미는 모두 하얗게 되고, 이후 그 장미나무에는 흰 꽃밖에 피지 않게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중세 유럽에서 장미는 크라이스트교를 상징하는 꽃으로 중요시되었다. 장미가 크라이스트교의 상징이 된 것은 원종의 장미가 홑꽃이고, 꽃잎이 5장이었기 때문이다. 다섯 장의 꽃잎은 크라이스트교의 '성스러운 5'라는 신앙과 연결되었다. 크라이스트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5곳에 상처가 났다. 이후 5라는 숫자는 '성스러운 5'로서 신성시되었다. 크라이스트교에서 장미는 지저스의 피에서 유래된 은총, 자선과 순교를 의미한다. 백장미는 동정녀 마리아의 순결, 청결, 정조 등과 연관이 있으며, 천국의 꽃, 아름다움, 완벽, 향기 등을 상징한다. 

 

장미 화환은 천상의 축복, 즉 하늘의 장미로서 여겨져 로사리오(Rosario,묵주)의 기원이 되었다. 황금색 장미는 교황의 표지이기도하다. 캐돌릭에서는 한때 장미의 열매를 줄로 매달아 묵주로 사용하기도 했다. 

 

로사리오의 어원은 라틴어 로사리움(Rosarium)이다. 로사리움은 성모 마리아의 성상에 씌우는 장미 화환을 의미한다. 성모 마리아가 크라이스트의 가시관에 장미 한 송이를 꽂기 위해 성 도미니쿠스(St. Dominicus)에게 장미를 구해오라고 했다. 그가 따온 한 아름의 장미 꽃송이들은 화환으로 만들어졌고, 이때 최초의 로사리오 기도를 올리게 되었다. 이후 사람들은 빻아서 말린 장미꽃에 장미 향수를 뿌려 만든 구슬로 묵주를 만들었다.

 

유대교에서는 장미를 생명수의 일부로 여겼다. 즉 장미꽃 중심에는 태양이 있고, 장미 꽃잎은 자연 속의 풍요를 나타낸다고 믿었다. 장미는 곧 우주를 축소시켜 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슬람교에서는 장미가 예언자의 피를 상징한다. 장미십자회(Rosicrucian, 薔薇十字會) 회원들은 장미를 성령의 장미로 불렀으며, 하나의 원에 십자가가 새겨진 바퀴로 여겼다. 십자가 가운데에 장미가 있고, 이 장미를 신성한 빛으로 여긴 것이다.

 

장미(충주시 연수동 연원시장, 2021. 11. 6)

장미 재배 역사는 매우 오래 되었다. 고대 이집트,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중국 등지의 벽화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장미가 그려져 있다. 장미가 관상용으로 재배된 역사는 3천년 이상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최초의 장미 벽화는 BC 2000~1700년경에 건축된 그리스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 발굴 당시 발견되었다. 최초의 장미 그림은 프레스코(fresco)다. 프레스코 화가는 꽃잎이 5장인 페니키아 장미를 그대로 그리지 않고, 6장의 꽃잎에 중심부가 오렌지색인 황금색 장미를 그렸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Homeros)의 서사시 '일리아드(Iliad)'에는 장미에 관한 형용사가 등장한다.

 

장미에 관한 역사 이야기는 영국의 요크 가와 랭커스터 가의 왕위 쟁탈전인 장미전쟁(Wars of the Roses)이 특히 유명하다. 왕가의 문장이 백장미인 요크 가와 홍장미 문장인 랭커스터 가는 30년 동안 왕위 쟁탈전을 벌였다. 랭카스터 가의 헨리 7세가 요크 가 에드워드 4세의 딸 엘리자베스와 결혼함으로써 30년에 걸친 왕위 쟁탈전은 비로소 막을 내렸다. 엘리자베스를 아내로 삼고 튜더 왕조를 연 헨리 7세는 양가의 장미색을 혼합한 홍백색 장미에 십자군 표식을 넣은 문장을 제정했다. 이후 장미는 영국의 국화가 되었다. 

 

로마인들은 장미에 로사 갈리카(Rosa gallica, Gallic rose, French rose, rose of Provins)라는 이름을 붙였다. 로마의 신랑 신부들은 장미관을 썼으며, 귀족 여인들은 찜질할 때 장미꽃을 사용했다. 장미꽃이 주름을 없애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장미향이 취기를 없애준다는 믿음도 있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포도주를 마실 때 장미 꽃잎을 잔에 띄우기도 했다. 전쟁에 승리한 로마 군대는 거리를 행진할 때 발코니의 군중들로부터 장미 꽃잎 세례를 받았다. 로마인들은 장미를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상징으로 여겨 장례식에 쓰거나 묘지에 심기도 했다. 천장부터 늘어뜨린 장미 아래서 주고 받은 이야기는 절대적으로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관습이 오늘날까지 전해 오고 있다.

 

로마 황제 네로(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의 장미 축하연 그림에는 그가 장미로 목을 장식하고 장미관을 쓴 채 장미 꽃잎을 넣은 베개를 베고 자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네로는 마루에도 장미꽃을 뿌려놓고 생활했으며, 분수에서는 장미 향수가 뿜어 나오도록 했다. 네로의 연회에 쓰이는 술에는 항상 장미향이 들어 있었고, 디저트에는 장미 푸딩이 나왔으며, 손님들은 장미 향수를 풀어놓은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했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 7세(Cleopatra VII)도 장미로 유명하다. 그녀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가 자신을 만날 때마다 거처에 장미꽃을 가득 채우곤 했다. 장미 향기를 맡을 때마다 자신을 오랫동안 기억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안토니우스가 연회에 참석할 때에는 마루바닥에 1m 높이의 장미꽃을 깔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클레오파트라에게 빠진 안토니우스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Gaius Julius Caesar Octavianus))에게 패해 죽을 때, 자신의 무덤에 장미를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장미(충주시 노은면 안락리 물탕골, 2021. 11.  8)

한국에서 장미가 최초로 등장하는 문헌은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三國史記)'이다. '삼국사기' 제 46권 열전 6 설총(薛聰) 조를 보면 "신이 들으니 예전에 화왕(花王, 모란)이 처음 들어 왔을 때, 향기로운 꽃동산에 심고 푸른 장막으로 보호하였는데, 봄이 되어 곱게 피어나 온갖 꽃들을 능가하여 홀로 뛰어났습니다. 이에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에 이르기까지 곱고 어여쁜 꽃들이 빠짐없이 달려와서 혹시 시간이 늦지나 않을까 그것만 걱정하며 배알하려고 하였습니다. 홀연히 한 가인이 붉은 얼굴, 옥 같은 이에 곱게 화장하고, 멋진 옷을 차려 입고 간들간들 걸어와서 얌전하게 앞으로 나와서 말했습니다. '첩은 눈 같이 흰 모래밭을 밟고, 거울 같이 맑은 바다를 마주보며, 봄비로 목욕하여 몸을 씻고, 맑은 바람을 상쾌하게 쐬면서 유유자적하는데, 이름은 장미라고 합니다. 왕의 훌륭하신 덕망을 듣고 향기로운 휘장 속에서 잠자리를 모시고자 하는데 왕께서는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라는 기록이 있다. 설총이 모란과 장미를 비교한 내용이다. 이 기록으로 보아 장미는 이미 신라시대에 들어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한림별곡(翰林別曲)의 일부 가사를 소개한 내용 중에 '홍모란, 백모란, 정홍(丁紅)모란, 홍작약, 백작약, 정홍작약, 어류옥매(御榴玉梅), 황색 장미, 자색 장미, 지지(芷芝), 동백이 사이사이 꽃 핀 광경은 어떠한가?'라는 대목이 있어서 장미의 존재를 확인 할 수 있다. 장미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도 수없이 등장한다. 강희안(姜希顔, 1417~1464)이 지은 원예기술서인 '양화소록(養花小錄)'에는 사계화(四季花)란 이름으로 장미 키우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품계는 가우(佳友)라 하여 화목 9품계 중에서 5등에 넣고 있다. 

 

장미(충주시 노은면 안락리 물탕골, 2021. 11. 8)

장미 줄기에는 표피가 날카로운 구조로 변한 가시가 있다. 잎은 어긋나기하고, 보통 홀수 깃꼴겹잎을 이룬다. 하지만 홑잎인 것도 있으며, 턱잎이 있다. 하나의 긴 잎자루에 3개, 또는 5~7개의 작은 잎이 달린다. 넓은 타원형의 작은 잎에는 날카로운 톱니가 있다. 꽃은 줄기 끝에 단생꽃차례나 산방꽃차례로 핀다. 홑꽃은 꽃잎이 5개이다. 원예종 가운데에는 겹꽃, 반겹꽃을 이루는 것이 많다. 열매는 꽃받침통이 익은 것이며, 다육질이다.  
 
주로 향료용나 약용으로 재배하던 장미는 10세기 전후로 관상용으로 개량되었다. 유럽에서 사철 피는 장미가 등장한 것은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패권을 쥔 이후이다. 특히 화려한 대륜의 사철 장미를 만들어낸 것은 1867년 프랑스 장미원에서였다. 1867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의 장미를 고전 장미(old garden rose), 1867년 하이브리드(hybrid)라는 교잡종이 탄생한 이후의 장미를 현대 장미(modern garden rose)로 구분한다. 한반도에서 재배하는 서양장미들은 대부분 1918년 경부터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 우량종을 도입한 것이다.
 
하이브리드 티 장미(Hybrid Tea rose)는 1867년 라 프랑스(La France) 품종이 나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키는 80~120cm까지 자란다. 꽃이 크고 겹꽃이며, 가시가 많고, 향기가 강하다. 한 줄기에서 여러 차례 꽃이 핀다. 꽃색은 흰색, 분홍색, 노란색, 빨간색, 보라색 등 다양하다. 꽃은 늦은 봄에 피기 사작하여 첫서리가 올 때까지 계속 핀다. 하이브리드 티 장미에는 파파 메이앙(Papa Meilland), 브라이덜 핑크(Bridal Pink), 파스칼(Pascal), 오클라호마(Oklahoma), 알렉스 레드(Alec's Red), 시운(しうん, 紫雲) 등이 있다. 
 
플로리분다 장미(Floribunda rose)는 한 줄기에 여러 개의 꽃이 달린다. 키는 60~90cm 정도까지 자란다. 많은(poly) 꽃(anthas)이 달려서 폴리안사(polyanthas) 장미라 부리기도 한다. 1840년대에 프랑스에서 찔레나무(Rosa multiflora)를 원종으로 개발하였다. 그 후 플로리분다는 1920년대 초에 덴마크에서 폴리안사(polyanthas)와 하이브리드 티(Hybrid Tea)를 교잡하여 개발되었다. 오늘날 플로리분다는 1930년 미국에서 개발한 사철 중륜(中輪) 주저리종(한 줄기에서 2~15송이)이다. 다화성으로 강렬한 색상을 이룬다. 2가지 이상의 색을 가진 꽃도 많다. 꽃의 크기는 5~11cm 정도이다. 플로리분다 장미에는 세븐틴(Seventeen), 챔피언(Champion), 지고레트(Gigollette), 프렌치 레이스(French lace) 등이 있다. 
 
파란 장미는 팬지(pansy)의 파란색 유전자를 장미의 유전자와 결합시켜 만든 것이다. 랜드 스케이프(Land scape)는 클라이밍 로즈(Climbing rose, Rosa banksiae)와 플로리분다의 중간 종으로 다화성 중륜 장미다. 포복형, 현애형(懸崖形), 돔형, 수양버들형 등이 있다. 앤티크 터치(Antique Touch)는 고전 스타일의 르네상스 시대 장미를 현대 감각에 맞게 개량한 것이다. 꽃 지름은 8~12cm로 하이브리드 티 장미와 유사하나 화심이 중앙의 한 점에 집중되어 있는 현대 장미와는 달리 겹이 많고 다초점의 로제트형을 이루고 있다. 
 
미니어처 장미(Miniature rose)는 키가 30cm 이하이며, 꽃과 잎도 작다. 꽃 지름은 2.5cm 정도이다. 최초의 미니어처 장미는 난쟁이 중국장미(Rosa chinensis minima)인데 인도양의 모리셔스 섬(Mauritius island)에서 발견되었다. 미니어처 장미는 암석정원, 화분, 파티오(Patio), 테라스 주변에 심으면 좋다. 요즈음에는 바구니걸이로도 널리 쓰인다.
 
덩굴장미(Climbing rose)는 하이브리드 티나 플로리분다 장미 중에서 돌연변이로 생겨났다. 키가 길게 자라서 홀로 서지 못해 줄기를 지탱할 수 있는 구조물이 필요하다. 벽을 기어오르게 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요즘의 덩굴장미는 여름에서 가을까지 계속해서 꽃이 핀다. 큰꽃 덩굴장미(Large flowered Climber), 긴줄기 덩굴장미(Rambler) 등이 있다. 클라이밍 장미에는 라위니아(Lawinia), 골드 버니(Gold Bunny), 미뉴에트(Minuet) 등이 있다. 
 
그랜디플로라 장미(Grandiflora rose)는 1954년 미국에서 하이브리드 티와 플로리분다 장미 사이의 교잡종 퀸 엘리자베스(Queen Elizabeth)가 나오면서 붙여진 품종군이다. 키는 1.8m 정도이다. 줄기와 꽃은 하이브리드 티를 닮아서 크고 튼튼하다. 또, 플로리분다를 닮아서 꽃이 많이 달리고 오래도록 핀다. 꽃의 크기는 두 모종의 중간 정도이며, 겹꽃이다. 향기는 적은 편이다. 꽃색은 빨간색, 분홍색, 노란색, 흰색 등 다양하다. 키가 크므로 경재화단(境栽花壇)의 배경 식물로 알맞다. 그랜디플로라 장미에는 퀸 엘리자베스 외에 오올(Ole) 등이 있다.  

 

장미(충주시 연수동 주공아파트 4,5단지. 2021. 11. 13)

장미꽃은 플라워 케이크나 노란장미화전 같은 화전 등을 만들어 먹는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봄날에 장미꽃을 따다가 떡을 만들어 기름에 지져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장미 꽃가루와 꿀을 버무려 만든 다식, 장미차로도 이용한다. 장미차는 여성의 폐경이나 변비 등에 좋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비타민C가 많아 노화방지, 피로회복에도 좋다. 장미꽃의 다양한 색상을 내는 안토시아닌은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콜라겐 형성을 촉진하며, 베타카로틴은 항암효과가 있다. 서양 들장미 열매인 로즈 힙(rose hip)에는 비타민C가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장미꽃에 들어 있는 비타민E와 K는 피부를 재생시켜 주고, 유해환경이나 화장으로 지친 피부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장미는 비타민C, 에스트로겐, 비타민A가 풍부하게 들어 있어 피부 보습, 재생, 진정에 효과적이다. 장미에서 추출한 장미수는 모공을 수축시켜 피부를 윤택하고 매끄럽게 해준다. 장미유는 주로 로사 다마스케나(Rosa damascena)의 꽃을 이용한다. 장미향은 스트레스를 없애주고, 정신을 안정시켜 숙면에 도움을 주어 피부 트러블의 근본적인 원인을 없애준다. 또, 장미향은 우울증 치료에도 효과가 있고, 콩팥을 강하게 만들며, 집중력과 기억력을 향상시준다. 두통의 치료에도 뛰어난 효과가 있다.

 

2022. 3. 23. 林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