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조형예술의 모든 것

박수용 조각전

林 山 2006. 1. 7. 10:10

전 시 명 : 박수용 조각전
전시기간 : 2006. 1. 6 - 1.17

전시장소 :청주 무심갤러리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창동 253-5.

043-268-0070

 


청산송(靑山頌), 57×21×47㎝, 노란사암


청산송(靑山頌), 57×19×45㎝, 대리석


청산송(靑山頌)-봄, 49×24×40㎝, 대리석, 브론즈, 물


청산송(靑山頌), 28×35×23㎝, 대리석, 자연석, 물



청산송(靑山頌), 30×18×44㎝, 대리석


청산송(靑山頌)-봄, 33×48×5㎝, 나무, 브론즈, 자연석

 

 

박수용

 

1956 충북 옥천 청산 출생

이탈리아 까라라 국립미술학교 조각과 졸업
한남대학교 및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개인전


2006 무심갤러리 (청주) / 롯대화랑 (대전)
2005 KCAF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2003 KCAF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2002 박영덕화랑 (서울)
2000 청작미술상 수상기념, 청작화랑 (서울)
1996 Zehntschener 화랑 (뮨싱겐, 독일)
1995 유나화랑 (서울)
1995 ATELIER ARTI VISIVE 화랑 (까라라, 이탈리아)
1994 갤러리 마을 (서울)
1994 Luigi Russo 시립문화원 (삐에뜨라산타, 이탈리아)
1990 MBC 문화공간 (대전)

 

수상


1999 제2회 청작 미술상
1994 Budduso 국제조각 심포지운 1등상 (이탈리아)
1994 자랑스런 옥천군민상

 

주요단체전


2004 상하이 국제아트페어 (상하이, 중국)
2004 한국 국제아트페어 (COEX, 서울)
2004 서울판화미술제 (예술의전당, 서울)
2004 art&environment (박영덕화랑, 서울)
2004 봉산미술제 (소헌갤러리, 대구)
2004 즐거운 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기획, 대전)
2003 꿈, 자연, 생명전 (청작화랑, 서울)
2002 영남·호남 그리고 충청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01 5월 미술축제 (박영덕화랑, 서울)
2001 봉산미술제 (원미갤러리, 대구)
2000 서울아트페어 (예술의전당, 서울)
2000 PICAF 국제아트페어 (부산문화회관, 부산)
1999 서울아트페어 (예술의전당, 서울)
1998 한국 현대조각 초대전 (춘천)
1998 대전시립미술관 개관기념전 (대전)
1997 청작화랑 개관10주년 초대전 (청작화랑, 서울)
1997 공연속의 조각전-상황 (국립극장, 서울)
1996 석조각-표현과 감성전 (인사갤러리, 서울)
1995 제2회 국제조각 심포지움 ‘Sulla via 야 Michelangelo' 초대참가
(쎄라베짜, 이탈리아)
1995 까마이오레 시 초대 국제작품전 (까마이로레 시립미술관, 이탈리아)
1994 삐에뜨라산타 시 초대 국제야외 조각전 (삐에뜨라산타, 이탈리아)
1993 ‘UMANISIMO' 초대전 (피렌체, 아탈리아)

 

조각으로 표현한 소경산수(小景山水)-최태만(미술평론가, 국민대 교수)

작은 연못가에 앉아 하염없는 상념에 잠겨있는 여인이나 혹은 서로 기대앉은 여인들을 표현한 박수용의 작품에 대해 ‘조각으로 표현한 산수화’ 또는 ‘이야기가 있는 조각’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먼저 전자의 경우 연못에 앉아있는 사람을 특정한 자연공간 속에 위치시켜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된 상태를 단순한 형태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와 같은 문인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런 종류의 그림일수록 자연을 관조(觀照)하는 사대부의 정신적 상태를 드러내기 위해 묘사보다 생략과 압축을 통해 주제를 극대화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박수용의 작품은 내용에 있어서 사뭇 다른 것이라 할지라도 작품이 발산하는 정조에 있어서는 이런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이른바 적조미(寂照美)란 것과 맞닿아 있다.

 

연못가에 자란 나무 한 그루와 그 뒤에 걸린 달, 또는 완만한 곡선을 지닌 산세(山勢)는 그의 작품이 회화적인 특성과 관련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볼륨은 있으나 중량이나 부피보다 선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형태들이 산수화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나아가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진 문학성에서 이야기가 있는 조각으로서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문학성을 강화하는 것이 그의 작품에서 늘 등장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주로 입자의 밀도가 높고 우아한 색깔을 지난 대리석을 재료로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구적 기준에 입각한 미인의 조건과 전혀 상관없는 수더분하고 비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토속적 서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형태적 특징이 그의 작품을 문학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 오히려 이 여성들이 화자(話者)가 되어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에서 문학성은 고양된다. 그것은 장구한 대하소설(大河小說)이 아니라 부드러운 운율의 서정시로, 담백한 수필로 표현한 자연예찬과 상응하는 그런 것이다.

 

작은 돌확에서 피어나는 연꽃이나 청산(靑山)에 놓인 나무를 보노라면 그의 작품이 서정적 세계로 향한 동경(憧憬)의 표현이자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향수를 추억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이 바로 물인데 그것은 풍경을 담은 거울이자 마음을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더 나아가 물이 담긴 둥근 연못은 해와 달이 노니는 장소이며 동시에 해와 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시름 앓다 죽은 나르키소스의 신화에서 볼 수 있듯이 서구인들에게 연못은 마법의 장소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지만 박수용의 작품에서 연못은 고요한 사색의 공간을 상징한다. 그래서 연못은 마법을 불러일으키는 거울이 아니라 청산의 한부분으로서 자연을 담는 거울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수면에 비친 풍경은 단지 환영(幻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내포이자 자연 그 자체를 지향한다.

 

고려가요의 하나인 청산별곡(靑山別曲)은 속세를 떠나 청산과 바닷가를 떠돌아다니면서 자신의 비애를 노래한 것이긴 하지만 한국인이 심층심리속에 자리하고 있는 도가적 관념과 이상향에의 동경을 담고 있다. 그것은 대자연의 거대함 앞에서 숭고(崇高)를 느꼈던 서구인들과는 다른 자연관, 즉 홍진(紅塵)의 허망함을 깨닫게 만드는 자연과 일치하고자 한 동양인들의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박수용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자연에의 동화이다. 그래서 번잡함보다 단순함을, 세련된 묘사보다 소박한 표현을 통해 그의 내면에서 자라나고 있는 자연회귀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관심이 이러할진대 유화로 그린 풍경화보다 수묵으로 표현한 산수화에서 형태의 암시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문인화를 참조하여 짐짓 고차원의 정신세계를 입체로 표현하려고 하였다면 그의 작품은 다분히 생경한 것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압축과 생략, 시적 서정은 참조하되 작품이 문학성에 종속되지 않도록 그는 조각의 장르적 특성을 훼손하지 않은 한도 내에서 작품의 서술성을 용인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내용이 감성적인 만큼 표현형식에 있어서도 그의 작품은 부드러움과 질박함을 활용한 형태와 질감을 보여줌으로써 촉각적 예술로서 조각의 특징을 강조하고 있다. 투박하고 거친 표면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부위에서는 매끈하고 투명하게 처리함으로써 부드러운 곡선의 형태와 함께 작품을 관능적인 것으로까지 만들고 있다. 이 지경에 이르면 그가 표현한 자연은 관조의 대상이라기보다 눈으로 더듬는 것, 곧 ‘눈으로 촉각’하는 대상이 된다. 작지만 아름다운 자연, 동화(童話)처럼 맑고 투명한 세계는 그가 추구하는 낙원의 이미지이자 그것으로 향한 향수를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작품은 그의 기억 속에 아로 새겨진 낙원을 추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소재의 반복과 두드러진 장식성, 목가적 분위기에 호소함으로서 자칫 감상(感傷)에 젖을 수 있는 요소가 다소 우려되기는 하지만 그의 작품은 조각으로 표현된 소경산수로서의 품격과 의미를 지닌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그의 고향마을 이름이 ‘청산’이다. 크게 관련은 없을지 모르지만 청산이란 멋있는 이름을 지닌 고향이야말로 그가 마음에 그리고 있는 ‘잃어버린 낙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그가 보고 느꼈던 자연을 의미한다. 어린 시절의 순수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놓지 않는 한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이러한 잃어버린 낙원의 이미지를 품고 산다. 그는 우리에게 그 낙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