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영정 20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11 - 식영정가단이 형성되고 '식영정제영'을 짓다

어느 날 식영정에 들른 면앙정의 주인 송순은 정자에 걸려 있는 '식영정운(息影亭韻)'에서 차운하여 '차김상사성원식영정운(次金上舍成遠息影亭韻)'이란 제목의 오언사운(五言四韻) 2수를 지었다. 원운시는 아마도 임억령의 사위 김성원이 지었던 것 같다. 운자는 '정(亭), 성(星), 정(庭), ..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10 - 환벽당 소쇄원 누정시와 식영정기를 짓다

1560년(명종 15) 정월 16일 고향 장성에서 은거하던 김인후가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기 전 '내가 죽으면 을사년 이후의 관작은 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인종에 대한 절의를 지키고자 했다. 임억령은 김인후의 부음을 듣고 통곡하면서 만장을 지었..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9 - 담양부사로 나가 '풍영정십영'을 짓다

1557년(명종 12) 3월 8일 62세의 임억령은 담양부사(潭陽府使) 겸 옥과현감(玉果縣監)을 제수받으면서 담양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는 담양부사로 나가면서, 조광조의 문인으로 평생 처사의 길을 걸어간 오랜 벗 성수침에게 '다만 일신 먹이고자 다섯 말 녹봉에 굽혔지만, 해적 떼 습격할까..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8 - 서얼허통법에 찬성하고 강원도 관찰사로 나가다

1553년(명종 8) 10월 7일 조정에서는 영의정 심연원(沈連源), 좌의정 상진(尙震), 우의정 윤개(尹漑), 좌찬성 윤원형 등이 올린 '경국대전(經國大典)'의 법을 고쳐서 서얼에게도 과거 시험을 볼 수 있게 하자는 안을 놓고 회의가 열렸다. 태종(太宗) 대부터 시행되어 오던 악법 서얼금고법(庶孼..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7 - 퇴게 이황과 시학 논쟁을 벌이다

1553년(명종 8) 3월 이황이 임억령을 찾아와 서로 시를 주고받았다. 임억령이 먼저 칠언절구 6수를 짓고, 이황은 그의 시에서 차운하였다. 임억령이 먼저 '증경호퇴계(贈景浩退溪)'를 지었다. 운(韻)은 '아(峨)'와 '다(多)'였다. 증경호퇴계(贈景浩退溪) - 경호 퇴계에게 드림 春來江漢濤瀾猛(..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6 - 양응정과 시전을 벌이다

1550년(명종 5)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 금강산 아래 서당골 문암재(文庵齋)에 머물던 55세의 임억령에게 병마가 찾아왔다. 양응정이 그리웠던 임억령은 그를 부르는 시 '초공섭(招公燮)'을 지어 보냈다. 초공섭(招公燮) - 공섭을 부르다 自吾觀海山(자오관해산) 내가 바다와 산을 보면서부터 ..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4 - 을사사화로 벼슬을 내던지고 낙향하다

1545년 1월 10월 50세의 임억령은 고향 해남으로 돌아왔다. 7월 1일 묘시(卯時, 오후 5시~7시)에 인종이 세상을 떠났다. 임억령은 만사와 제문을 지어 인종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곡했다. 7월 6일 인종의 이복동생인 11살의 명종이 조선의 제13대 왕으로 즉위했다. 왕위 교체기에 조정은 명종의 ..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3 - 노모 봉양을 위해 동복현감을 자청하다

1528년(중종 23) 봄에 33살의 임억령은 홍문관(弘文館) 부수찬(副修撰)이 되었다. 그는 안수(安璲), 임설(任說), 최희맹(崔希孟), 이승효(李承孝), 홍섬(洪暹), 최연(崔演) 등과 가진 춘방계(春坊契) 모임에서 계축(契軸)을 짓고 시첩을 만들었다. 춘방은 세자(世子) 또는 세손(世孫)의 교육을 담..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2 - 벼슬길에 나아가다

윤구는 1513년(중종 8)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했다. 18세의 임억령은 동생 백령과 함께 광주 서창에 살고 있던 외삼촌 박곤(朴鯤)의 문하에서도 배웠다. 전주 통판(全州通判)을 지낸 박곤은 조일전쟁(朝日戰爭,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회재(懷齋) 박광옥(朴光玉, 1526∼1593)의 아버지..

[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1 - 전라도 해남현 석천동에서 태어나다

남도의 정자와 그 주인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기행에는 시와 역사가 있고, 낭만과 풍류가 있다. 배롱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날 조선시대 호남의 사종(詞宗)이라 일컬어진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의 식영정(息影亭, 대한민국 명승 제57호)를 찾았다. 식영정은 전라남도(全羅南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