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21일 오후 1시부터 늦은 시간까지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서 열린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의료봉사에 참여했다. 한방(韓方) 진료를 맡은 필자를 비롯해서 내과, 외과, 산부인과, 안과, 방사선과, 치과 등 7개 과로 이루어진 의료진은 이동진료 버스 3대와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사무실에 임시로 설치한 진료소에서 120여명에 이르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진료했다.
이 날 진료에는 필자(임종헌한의원장)와 김관석 한림대 외래교수(김관석성형외과 원장), 곽민근 인하대 외래교수(서울외과 원장), 배희철 경희대 외래교수(눈편한안과 원장), 오세창 산부인과 원장, 류창길 신기한의원장 등 의사와 한의사들이 참여했다.
*외국인 노동자를 문진하는 필자(좌)와 류창길 신기한의원장(우)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황창배 센터장과 이영복 운영지원팀장, 최기범 교육문화팀장은 휴일도 잊은 채 의료진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오가며 진료를 도왔다. 실사구시봉사단 회원들은 각각 접수와 안내, 진료보조를 맡았다. 네팔인과 인도네시아인 통역은 의료진과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였다.
*맥진을 하고 있는 필자
이 날도 한방 진료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큰 인기가 있었다. 중국, 몽골, 네팔,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스리랑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국적의 젊은 남녀 노동자들이 한방 진료를 받으러 왔다. 중국과 몽골, 베트남에서 온 사람들은 자국에서도 침 치료를 받아본 경험이 있다고 했다.
*통역의 도움을 받아 네팔 노동자를 진찰하는 필자
외국인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주소증(主所症)은 허리 통증이었다. 공장의 작업 현장에서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거나 나르는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친 경우가 많았다. 이들에게 요통(腰痛) 특효혈에 자침(刺針)하자 이구동성으로 허리 아픈 것이 금새 사라졌다고 신기해 했다.
에피소드 하나. 한국말이 서툰 네팔 청년은 통역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공장에서 무거운 물건을 취급한다는 네팔 청년은 요추(腰椎) 부위에 통증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통역을 맡은 사람은 누가 봐도 백인이었다. 네팔에 백인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네팔에도 극소수이지만 원주민 백인이 있다는 말을 통역이 전해 주었다.
*한국인과 결혼한 중국인 여성에게 침을 놓고 있는 필자
한국 남성과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정착한 중국 여성은 뒷머리가 땅기고 아프다고 했다. 항강증(項强症) 특효혈에 자침하자 잠시후 뒷머리가 개운해진다는 것이었다. 어린 딸과 함께 온 이 여성은 중국에 있을 때도 몸이 아플 때마다 한방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한의학의 우수성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 노동자에게 자침 후 반응을 살펴보는 필자
에피소드 둘. 안색이 창백한 인도네시아 청년이 왔다. 이 청년도 한국말이 매우 서툴렀기 때문에 통역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청년은 며칠 전 의식을 잃고 쓰러졌는데, 그 이후 편두통이 생겼다고 했다. 공장에서 주는 한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하루에 두 끼만 먹었다는 청년은 과로와 영양실조로 인한 기혈허증(氣血虛症)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청년에게 월급을 얼마나 받느냐고 물으니 한 달에 180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돈 아끼지 말고 한의원에 가서 보약 한 제 처방받아서 복용하고, 끼니를 거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청년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돈 벌러 왔다가 건강을 잃은 채 고국으로 돌아간다면 한국에 온 보람이 없지 않은가!
*의료봉사를 마치고 봉사단원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필자, 배희철 원장, 정승우 전 경기도 부지사
해가 서산에 지고 땅거미가 밀려올 때 쯤 의료봉사는 끝이 났다. 평소보다도 많은 인원이 온 까닭에 정말 정신없이 진료를 했다. 류창길 원장의 도움이 없었다면 진료에 애를 먹었을 것이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몸이 아픈 것만큼 서러운 것은 없다. 나의 작은 정성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2010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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