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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 Till Eulenspiegels Iustige Streiche Op.28(틸 오일렌시피겔의 유쾌한 장난)

林 山 2017. 11. 15. 09:16

<틸 오일렌시피겔의 유쾌한 장난([R.Strauss, Till Eulenspiegels lustige Streiche Op.28)>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George Strauss, 1864~1949)가 1895년 5월 6일 뮌헨에서 완성한 교향시로 아르투르 자이들에게 헌정되었다. 중세 독일의 전설적인 영웅 틸을 소재로 한 유머러스한 작품이다. 1895년 11월 5일 쾰른에서 초연되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틸 오일렌시피겔의 유쾌한 장난

Richard Strauss - Till Eulenspiegels Iustige Streiche Op.28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가운데 최대 걸작을 하나만 꼽으라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꼽아야겠지만, 사실 이 곡과 거의 대등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관현악곡은 이외에도 많으며 <틸 오일렌시피겔의 유쾌한 장난>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고대 페르시아의 현인(차라투스트라)보다 중세 독일의 장난꾼(틸 오일렌시피겔)을 더 좋아할 사람도 그다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이 곡은 길이가 <차라투스트라>의 절반가량에 불과하고, 원래의 소재뿐만 아니라 악상도 다분히 포괄적이고 사변적인 <차라투스트라>보다 더 직접적이고 묘사적인 요소가 강해 더 친숙해지기 쉬운 장점이 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틸 오일렌시피겔의 유쾌한 장난

Richard Strauss - Till Eulenspiegels Iustige Streiche Op.28

Danmarks Radio SymfoniOrkestret - Thomas Dausgaard


‘틸 오일렌시피겔’은 누구인가? 전설에 따르면 그는 1300년경에 브룬스비크 근교의 크나이틀링엔(Kneitlingen)에서 태어났으며, 독일 북부에서 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신성로마제국 전역을 떠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주로 언어유희로써) 위선과 어리석음, 탐욕 등의 악덕을 풍자하다가 1350년에 페스트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의 ‘장난’은 여러 민담을 통해 전해지다가 대략 16세기 초부터 책으로 출판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각국 언어로 널리 번역되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틸 오일렌시피겔의 유쾌한 장난

Richard Strauss - Till Eulenspiegels Iustige Streiche Op.28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ed by Wilhelm Furtwängler

Berlin: Titania Plast, 1950


슈트라우스는 1889년에 교향시 <죽음과 정화>를 완성한 뒤 극음악에 관심을 돌리던 중에 키스틀러라는 작곡가의 오페라 <오일렌시피겔>을 접한 뒤 이 소재에 흥미를 느껴 직접 틸을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본은 완성되지 않았고, 다른 오페라(군트람)의 실패도 있어 슈트라우스는 한동안 극음악에 대한 흥미를 잃은 채 다시 교향시 작곡에 매진했다. 그러나 소재 자체에 대한 흥미는 여전히 남아 있어서, 결국 1894년 가을에 작곡에 착수했고 이듬해인 1895년 5월 6일에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 곡은 분명 교향시이지만 슈트라우스는 ‘론도 형식의, 옛날 무뢰한의 이야기에 의한 <틸 오일렌시피겔의 유쾌한 장난>’이라고만 적었을 뿐 이 곡이 교향시임을 명기하지는 않았으며, 각 대목을 설명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사실 슈트라우스가 선호한 명칭은 ‘교향시(Symphonic poem)’가 아니라 ‘음시(Tone poem)’였다. 이 곡은 1895년 11월 5일에 쾰른에서 초연되었는데, 지휘를 맡은 프란츠 뷜너가 표제에 대해 편지로 질문했을 때도 작곡가는 ‘나는 <오일렌시피겔>에 표제를 달 수 없습니다. 내가 각 부분에서 생각한 것은 말로 이해되지 않는 게 많을 뿐더러 때론 방해되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장난꾸러기에 의한 수수께끼를 듣는 사람이 풀게 하고 싶습니다.’라고 답장했다. 그러나 나중에 동료 작곡가가 곡 해설을 맡게 되었을 때는 총보의 여러 대목에 설명을 써주었으며, 오늘날에는 이 설명을 토대로 곡을 이해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곡은 초연 이후로 대단히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냈는데,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초연은 문자 그대로 대성공이었다. 지휘자 뷜너가 열렬한 바그너파였으며 슈트라우스의 작품도 이전에 여러 차례 연주한 바 있었던 것도 그 요인 중 하나였다. 이 곡은 초연 뒤 넉 달도 채 되지 않아 보스턴, 런던, 모스크바 등 각지에서 공연되었는데, 이렇게 된 데는 이 곡의 악보가 초연 이전에 이미 출판되어 있었던 점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초연 후 며칠 뒤인 11월 29일에 작곡가 자신이 지휘한 공연도 찬사를 받았으며, 아르투르 니키슈(당대 최고의 지휘자로 대접받았으며 베를린 필의 2대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가 지휘한 파리 공연을 참관한 드뷔시는 ‘정신병자가 써낸 새로운 음악의 한때’라고 깎아내렸지만 니키슈의 지휘만은 격찬했다. 1896년 1월에 빈에 소개되었을 때는 ‘비평의 교황’ 에두아르트 한슬리크를 제외한 대다수 언론과 평론가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브루크너의 경우에는 상당한 흥미를 보였으나 처음 들었을 때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 한 번 더 들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이 곡은 니진스키(20세기 초의 저명한 발레 무용수이자 안무가.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초연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의 요청으로 발레화되기도 했다.


앞서 밝혔듯이 슈트라우스는 표제에 이 곡이 ‘론도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밝혀 놓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뚜렷하게 론도 형식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자들의 지적에 따르면 이 곡은 A-B-A-C, 혹은 더 세분화해 A-B-A-C-A-B-A로 나눌 수 있다고 하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강의 구분이고 형식면에서는 매우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1. 옛날 옛적에 한 명랑한 어릿광대가 있었다(Der Schelm wird vorgestellt)

Toscanini conducts


‘옛날 옛적에 한 명랑한 어릿광대가 있었다 - 그 이름은 틸 오일렌시피겔 - 그는 대단한 장난꾸러기였다 - 새로운 행동을 취한다 - 기다려라, 위선자여 - 뛰어라, 말은 시장의 여인들 속으로 - 한 걸음에 7마일이나 간다는 장화를 신고 달아나 모습을 감춘다 - 사제복을 입은 채 정열과 도덕을 강론한다 - 그러나 큰 발 밑에 불량배의 모습이 보인다 - 종교를 조롱하여 죽음에 떤다 - 기사가 된 틸은 아름다운 숙녀와 정중한 인사를 나눈다 - 사랑을 고백한다 - 예쁜 바구니가 거절을 의미한다 - 전 인류에게 복수하리라 맹세한다 - 속물 학자의 동기 - 틸은 속물 학자들에게 두세 개의 터무니없는 주제를 던져주고는 그곳을 떠나 학자들을 당황케 한다 - 멀리서 얼굴을 찡그린다 - 틸의 속요(俗謠) - 틸의 재판 - 틸은 남의 일마냥 휘파람을 불어댄다 - 사다리를 타고 교수대에 걸려 호흡은 멈추고, 최후의 번민, 틸의 운명은 끝났다’


2. 틸의 장난(Tills Streiche) Toscanini conducts


‘명쾌하게’(Gemächlich)라고 기재된 F장조, 4/8박자 첫머리는 온화하고 느긋한 바이올린 선율로 시작한다. 이것이 ‘옛날 옛적에 한 명랑한 어릿광대가 있었다’에 해당한다. 이어 바이올린 트레몰로를 배경으로 호른이 ‘그 이름은 틸 오일렌시피겔’ 악상을 연주한다. 다른 악기들이 이 주제를 받아 확장한 뒤, 클라리넷이 새로운 주제 ‘그는 대단한 장난꾸러기였다’를 연주한다.



3. 틸의 소송(Tills Proceβ) Toscanini conducts


이후 ‘틸 오일렌시피겔’ 주제와 ‘장난꾸러기’ 주제를 중심으로 악상이 계속 변화하면서 틸의 행각을 다채롭게 묘사한다. 음폭을 넓히면서 급속히 상승하는 셋잇단음표는 말을 타고 시장에 뛰어드는 모습을, 목관과 비올라가 엄숙한 선율을 연주하는 대목은 사제복을 입고 나타나 설교를 늘어놓는 장면을 그려낸 것이며, 이후로 사랑을 고백한 뒤 실연당하고, 속물 학자들을 골탕 먹이는 등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러다가 작은북의 리듬 위에 금관이 강력하면서도 단조로운 동기를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이 대목이 틸이 붙잡혀 처형되는 장면이다. 이후 곡은 조용히 끝날 듯하다가 갑자기 ‘장난꾸러기’ 주제가 등장해 강렬하고 익살스럽게 마무리된다.



4. 심판과 집행(Urteil und Hinrichtung) Toscanini conducts


이전에는 틸 오일렌시피겔에 대한 이야기를 기존의 계급질서에 대한 하층민의 도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근래에는 그의 행각이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도전보다는 우리가 자명하게 받아들이는 이른바 ‘상식’에 대한 비판에 가까웠다는 견해가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틸의 저항정신에 대한 평가가 더 인색해졌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따지고 보면 상식이란 일차적으로는 다수에 의해 공유되는 가치체계이지만 그 자체가 다른 사고방식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으며, 여기에 대해 저항한다는 것 역시 가치 있는 일이다. 자유로운 비판정신으로 무장한 우리 네티즌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그리고 이 시대가 요구하는 ‘틸 오일렌시피겔’들이 아닐지?



5. 에필로그(Epilog) Toscanini conducts


이 곡은 음반 녹음의 초창기부터 좋은 녹음이 많이 나온 편이다. 슈트라우스의 음악이 당대의 총아였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모노 녹음 가운데도 좋은 것이 많지만(작곡가 자신의 녹음도 있다), 슈트라우스의 화려한 관현악법을 제대로 즐기려면 스테레오 이후 녹음을 듣는 게 좋다. 초기 스테레오 시대의 명반으로는 프리츠 라이너/빈 필하모닉의 1956년 녹음(Decca)이 우선 추천할 만하다. 슈트라우스 전문가인 라이너의 엄격한 통제와 빈 필의 풍요로운 음향이 기막힌 결합을 이루어냈다. 또 다른 슈트라우스 전문가인 카랴얀은 표정이 자연스럽고 생동감이 있는 1960년의 빈 필 녹음(Decca)과 처음부터 끝까지 지극히 매끄럽게 다듬어낸 1972/73년의 베를린 필 녹음(DG)에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뛰어난 연주를 이끌어냈다. 일체의 과장 없이 깔끔하고 담백한 아슈케나지/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1988년 녹음(Decca)도 뛰어나며, 최근의 녹음 가운데서는 매우 짜임새 있으면서도 표현이 생생하고 재치 있을 뿐만 아니라 음색이나 다이내믹의 대비가 보기 드물게 뚜렷한 호연을 들려주는 세묜 비쉬코프/쾰른 서독일 방송 교향악단의 2007년 녹음(Profil)을 반드시 들어봐야 할 연주로 자신 있게 추천한다.(클래식 명곡 명연주)


2017.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