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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 김남주 시, 김성장 서

林 山 2019. 10. 29. 11:48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 김남주 시, 김성장 서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 김남주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는 않았다


오월은 왔다 비수를 품은 밤으로

야수의 무자비한 발톱과 함께

바퀴와 개머리판에 MADE IN USA를 새긴

전차와 함께 기관총과 함께 왔다

오월은 왔다 헐떡거리면서

피에 주린 미친 개의 이빨과 함께

두부처럼 처녀의 유방을 자르며

대검의 병사와 함께 오월은 왔다

벌집처럼 도시의 가슴을 뚫고

살해된 누이의 울음을 찾아 우는

아이의 검은 눈동자를 뚫고

총알처럼 왔다 압제의 거리에

팔이며 다리가 피묻은 살점으로 뒹구는

능지처참의 학살로 오월은 오월은 왔다 그렇게!


바람에 울고 웃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일어나거나 쓰러지지 않았다

오월의 무기 무등산의 봉기는

총칼의 숲에 뛰어든 맨주먹 벌거숭이의 육탄이었다

불에 달군 대장간의 시뻘건 망치였고 낫이었고

한입의 아우성과 함께 치켜든 만인의 주먹이었다

피와 눈물 분노와 치떨림 이 모든 인간의 감정이

사랑으로 응어리져 증오로 터진 다이너마이트의 폭발이었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바람’은

학살의 야만과 야수의 발톱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일어나는 풀잎으로 ‘풀잎’은

피의 전투와 죽음의 저항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학살과 저항 사이에는

바리케이트의 이편과 저편 사이에는

서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자격도 없다

적어도 적어도 오월의 광주에는!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는 시를 무기로 박정희 군부독재정권에 이어 전두환, 노태우 군부독재정권에 저항한 김남주 시인이 온몸으로 쓴 시다. 한국현대사의 비극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시는 해설이 따로 필요없다.


이 시는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 희생자들을 위한 피 토하는 진혼곡이다. 반면에 군사반란에 이어 반독재 민주화 항쟁의 선봉에 선 광주시민을 무차별 학살하고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일당에게는 규탄과 저주의 노래다. 김남주는 시의 칼끝을 신군부 일당의 광주시민 학살을 용인한 미국에도 들이대고 있다.


김남주의 일생을 돌아보는 것이 이 시의 해설이 될 수도 있다. 전남 해남 출신의 김남주는 전남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1969년부터 3선개헌 반대, 1970년 초 교련반대운동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73년 악명높은 박정희 군부독재정권의 제4공화국이 유신을 발표하자 김남주는 이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내용의 지하신문 '함성', '고발'을 발간하여 10개월 간 투옥되었다.


1974년 김남주는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잿더미'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했으며, 1977년부터는 황석영, 정광훈, 홍영표, 윤기현 등과 일환으로 농민운동을 전개했다. 1978년 그는 광주에서 황석영, 최권행과 함께 ‘민중문화연구소’를 만들면서 본격적인 반외세,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전사로 나선다.


서울에 올라온 김남주는 박정희 군부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반유신운동을 전개하다가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朝鮮民族解放戰線, 남민전) 사건으로 체포되어 15년 형 선고를 받고 9년째 복역 중 1988년 12월 가석방으로 출옥하였다. 형집행정지로 석방될 때까지 그는 10년 간 옥중에서 250여 편의 저항시를 남겼다.


김남주는 군부독재정권의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을 시로 승화시키고, 시를 사회 변혁의 무기로 삼아 투쟁했다. 1980년대 정치적인 탄압 때문에 그의 시는 잡지나 시집으로 나오기 전에 지하 출판물을 통해 독자들에게 더 많이 알려졌다.


김남주의 시인관은 그의 시 '시인이여'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암흑의 시대에 시인의 사명은 '침묵, 관망, 도피나 밑이 없는 한의 바다의 넋두리가 아니라 박해의 시대 가위눌린 악몽으로부터 잠든 마음을 깨우고 참을 일으켜 세워 둥둥둥 북소리와 함께 나가게 하는 것, 전투의 나팔소리, 압제자의 가슴에 꽂는 창’이라고 말하고 있다. 김남주의 시는 이 땅의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치열한 무기였고, 한편으로는 현실에 안주하여 세상의 부정과 불의에 눈감는 소시민적 태도에 일침을 가하는 날카로운 채찍이었다.


김남주 시의 주제는 언제나 분단의 원인이 된 외세와 외세에 빌붙은 정치 권력에 의한 민중의 억압과 착취, 그리고 부당한 권력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주제로 한다. 이 점에서 그는 1950~60년대의 김수영, 1960년대의 신동엽, 1980년대의 민중시인들과 현실인식을 같이한다.


김남주의 시는 김수영의 맥을 잇고 있다. 그의 시는 외부 세계에 대한 강렬한 비판을 보여주는 동시에 자신의 내부의 적에 대한 비판과 폭로를 통해 외부 세계에 대한 역설적인 저항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런 점이 김수영과 매우 닮아 있다. 


반외세,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전사 김남주는 1994년 48세의 나이로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창 활동할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는 동지들과 함께 광주 망월동 묘지에 묻혔다.


글씨는 김성장이 신영복 민체로 썼다. 민체는 민중체의 준말이다.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민중의 글씨체란 뜻이다. 민중은 신영복 선생이 평생 생각하고 실천한 철학적 담론이기도 하다. 글씨 중 받침 'ㄹ'의 운필이 다소 특이하다. 


2019. 10.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