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이슈 화제

'두 얼굴의 무궁화' 비판(41) 자기 역사 왜곡이라는 패륜적 범죄현장 - 조현래

林 山 2020. 12. 1. 12:19

때아닌 무궁화(無窮花)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무궁화는 현재 대한민국의 국화(國花)이며, 나라를 상징하는 국장(國章)이기도 하다. 대통령 휘장(徽章)부터 국회의원 배지, 법원 휘장, 경찰관과 교도관의 계급장 등 나라의 거의 모든 상징은 무궁화이다. 

 

하지만 강효백은 자신의 저서 ‘두 얼굴의 무궁화’에서 이런 무궁화의 위상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배척한다. 무궁화가 우리 고서(古書)에서 거의 ‘피어본 적이 없는’ 꽃이며 오히려 ‘일본의 꽃’이라고 주장한다. 강효백의 주장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상식을 뒤집어엎는 것이어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조현래(필명)는 강효백의 주장에 대해 친일파 또는 친일 잔재의 척결이라는 과잉 목적의식이 현실과 실제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비판한다. 그는 박정희 독재정권이 무궁화를 권위주의와 국가의 상징으로 과도하게 선전한 것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지만, 그것이 사실을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어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한다. 

 

강효백만 나라꽃으로서 무궁화의 부적격성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1956년 당시 일간지에 화훼연구가 조동화와 식물학자 이민재가 나라꽃으로서 무궁화의 부적격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요즘도 사회 일각에서 애국가와 국화를 다시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애국가는 작곡자가 친일파이고, 가사도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국화도 무궁화가 국민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조현래-강효백 두 사람의 논쟁이 국민들로 하여금 무궁화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林 山>

 

<사진1> 무궁화(충남 아산), 안동무궁화 개량 재배품종

​ '두 얼굴의 무궁화' 비판(41) 자기 역사 왜곡이라는 패륜적 범죄현장?!

 

 

[두 얼굴의 무궁화] 그런데 한국학중앙연구원의『한민족대백과사전』과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문화원형대백과 국가문화상징」무궁화 설명편을 보자면 이런 엉터리가 없다. 일본 자료에 여기저기 등장하는 무궁화를 짜집기해 한국의 것으로 둔갑시켰다.  특히 '무궁화는 고려시대에는 전 국민으로부터 열광적 사랑을 받았으며, 문학적·의학적으로 '진중한' 대우를 받았다."는 대목은 참담하기 그지없다.(p.55)

『일본대백과전서』와『차화대사전』 등 일본 문헌의 "무궁화는 무로마치 시대 때 '진중한' 대우를 받았다(ムクゲ. 室町時代から茶花として珍重され)"를 그대로 베껴 무로막치 시대를 고려시대로 둔갑시키다니……. 일본의 신화를 대한민국 나라꽃으로 날조해내기 위해 '진중한'이라는 관형어조차도 생짜로 표현하다니……. 이러한 곡필은 국가관 역사관을 떠나 지식인으로서 양심의 마지노선을 스스로 무너뜨린 만행이 아닐까? 과거 일제의 역사 왜곡보다 훨씬 심한 오늘날 한국 지식계의 자기 역사 왜곡이라는 패륜적 범죄현장을 목도하고 있는 듯해 마음이 아프다.(p.56)

이러한 '희한한 사실(史實)'에 국내 텍스트들은 아래와 같이 '희한한 변명'을 늘어 놓고 있다.

조선조에 들어와 왕실화가 '배꽃(李花)'으로 정해져 무궁화는 점차로 세력을 잃고 '조선민족'으로부터 소원해졌던 것이다. - 한국한중앙연구원,『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왕실화로 된 오얏꽃을 숭상하고 무궁화 꽃을 소홀히 했던 것. - 이상희,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3」(p.57)

과연 그럴까? 주제에 들어가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게 하나 있다.『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오얏꽃'(李花)을 '배꽃(梨花)으로, '한민족'을 '조선민족'으로 오기하고 있다. 교육부 산하 국책연구기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낸『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우리나라 예사 지식인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는 조선시대 왕실화(?)를 오얏꽃 아닌 배꽃으로 게재하다니……. 더구나 '조선민족' 문화대백과사전이 아닌 명색이『'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한반도 고유한 나라꽃이라는 무궁화를 설명하면서 한민족을 '조선민족'으로 표기하다니……. 이는 정상적인 한국인이 쓴 것이 아니라 한국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결핍된 일본인이나 종일매국노가 쓴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미주25) (p.58)

*미주25) 전자의 오기는 무지의 소산이라기 보다 의도적 오기에 가깝고 후자의 오기는 의도적 모욕 또는 일본 우익의 뇌로 쓴 글이라고 분석된다.(p.390) 

 

 

《fact check(1)》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일본 자료의 무궁화를 짜집기해 한국의 것으로 둔갑시켰다고?- 전혀 사실이 아니다.

▶ 도대체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무엇을 하였길래?

​- 도대체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무엇을 하였길래 아래와 같은 평가를 받게 되었을까?

   ○ 지식인으로서 양심의 마지노선을 스스로 무너뜨린 만행

   ○ 과거 일제의 역사 왜곡보다 훨씬 심한 오늘날 한국 지식계의 자기 역사 왜곡이라는 패륜적 범죄현장

   ○ 정상적인 한국인이 쓴 것이 아니라 한국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결핍된 일본인이나 종일매국노가 쓴 것이 거의 확실시

   ○ 의도적 모욕 또는 일본 우익의 뇌로 쓴 글

 

▶ 한국학중앙연구원의『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원문은?

 

일본의 ≪왜기 倭記≫에는 “무궁화는 조선의 대표적 꽃으로서 무려 2,100여년 전 지나(支那)에서도 인정된 문헌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전국민으로부터 열광적 사랑을 받았으며, 문학적·의학적으로 진중한 대우를 받았다. 일본의 벚꽃, 영국의 장미와 같이 국화로 되어 있다가 조선조에 들어와 왕실화가 배꽃[梨花]으로 정해져 무궁화는 점차로 세력을 잃고 조선민족으로부터 소원해졌던 것이다. 20세기의 문명이 조선에 들어옴에 유지들은 민족사상의 고취와 국민정신의 통일진작에 노력하여, 붓과 말로 천자만홍의 모든 꽃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로되 무궁화는 여름과 가을에 걸쳐 3, 4개월을 연속해 핀다고 하여, 그 고결함과 위인적 자용(偉人的姿容)을 찬미하였다. 따라서, 무궁화강산 운운은 자존된 조선의 별칭인데……”라는 기록이 있어, 우리 민족과 무궁화의 관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중 '무궁화' 부분

- 한국학중앙연구원의『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중 '무궁화' 부분에는 "고려시대에는 전국민으로부터 열광적 사랑을 받았으며, 문학적·의학적으로 진중한 대우를 받았다"는 문구가 우리의 문헌이 아닌 "일본의 《왜기 倭記》"에서 인용한 것임을 명백히 밝혀 놓았다.

- 그런데 어떻게 "일본 자료에 여기저기 등장하는 무궁화를 짜집기해 한국의 것으로 둔갑시켰다"는 말인가?

-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4194&cid=46640&categoryId=46640 참조.

▶ 한국콘텐츠진흥원의「문화원형백과」의 원문은?

 

일제의《조선총독부 고등경찰사전》 고려조 시대에는 전 국민으로부터 열광적 사랑을 받았으며 문학상·의학상에 진중한 대우를 받았는데 일본의 사쿠라, 영국의 장미와 같이 국화로 피어 있다가, 이조에 들어서 왕실화를 이화로 정하매 무궁화는 점차로 세력을 잃고 조선 민족으로부터 소원해졌든 것인데 20세기의 신문명이 조선에 들어오매 유지들은 민족사상의 고취(鼓吹), 국민정신의 통일 진작에 노력하여···.”라고 기록되어 있음을 보아 무궁화가 고려시대부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문화콘텐츠닷컴,「문화원형백과」중 '국가상징 무궁화>국화로서의 무궁화'

 

- 한국콘텐츠진흥원의「문화원형백과」중 '국가상징무궁화>국화로서의 무궁화' 부분에는 "고려조시대에는 전 국민으로부터 열광적 사랑을 받았으며 문학상·의학상에 진중한 대우를 받았는데"라는 문구에 대한 문헌 출처가 우리의 문헌이 아닌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고등경찰사전》이라는 점을 명시하여 밝혀 놓았다.

- 그런데 어떻게 "일본 자료에 여기저기 등장하는 무궁화를 짜집기해 한국의 것으로 둔갑시켰다"는 말인가?

-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93005&cid=49391&categoryId=49391&expCategoryId=49391 참조.

 

▶ 실제 원문은?

 

 

無窮花

 

無窮花は朝鮮の代表的花として今から二千百餘年前支那に於ても認められた文獻あり. 高麗朝時代には全國民より熱狂的に愛せられ文獻上, 醫學上にも珍重せられ恰も日本の櫻, 英國の薔薇の樣に國花とさられてゐあたが, 李朝に入つて王室の花が李花であつたが爲に無窮花は漸次勢力を失ひ朝鮮民族から疎んぜられてゐた.  然るにの二十世紀の新文明が朝鮮訪れるや有志等は民族思想の鼓吹, 國民精神の統一振作に努め口に筆に個 々の花は 一日にして萎るゝも 無窮花の花は 夏秋にかけ三四箇月每月續けて咲き 他の花に比して 花期長く その高潔と偉人的なるより讚美されるに至つたといふ.   槿花(その項目參照), 木槿 , 堇等異名多し.

 

무궁화

 

무궁화는 조선의 대표적 꽃으로서 지금으로부터 무려 2,100여년 전 중국(支那)에서도 인정된 문헌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전국민으로부터 열광적 사랑을 받았으며, 문학적·의학적으로 진중한 대우를 받았고 일본의 벚꽃, 영국의 장미와 같이 국화가 되었지만 조선에 들어와 왕실화가 오얏꽃으로 정해져 무궁화는 점차로 세력을 잃고 조선민족으로부터 소원해졌던 것이다. 20세기의 문명이 조선에 들어옴에 유지들은 민족사상의 고취와 국민정신의 통일진작에 노력하여, 말과 붓으로  모든 꽃은  하루만에 지는데 무궁화는 여름과 가을에 걸쳐 3, 4개월을 연속해 피고 다른 꽃에 비해 개화기가 길어 그 고결함과 위인적 모습을 찬미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근화(해당 항목 참조), 목근, 근 등의 이명(異名)이 다수 있다.

 

無窮花江山

 

自尊せる朝鮮の別稱. 他の稱呼と同樣に大正八年以來一般に使用ちれ主として不穩の意を偶する. 「無窮花」の項目參照.

 

무궁화강산

 

스스로​ 높이는 조선의 별칭.  다른 명칭과 마찬가지로 1919년 이래 일반적으로 사용하는데 주로는 불온한 뜻을 가지고 있다. 「무궁화」항목 참조.

 

 

▷ 조선총독부 경무국,『고등경찰용어사전』, 조선총독부 경무국(1935. 6.) , pp.373~374

 

 

-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자료에 있는 "고려시대에는 전국민으로부터 열광적 사랑을 받았으며, 문학적·의학적으로 진중한 대우를 받았"다는 내용은 조선총독부 경무국에서 1933년 12월에 처음으로 작성한『고등경찰용어사전』에 기술된 것이다.

- 한국학중앙연구원의『한민족대백과사전』에서 《왜기 倭記 》라고 기술한 것과 한국콘텐츠진흥원의「문화원형백과」에서《고등경찰사전》이라고 기술한 것은 그 내용에 비추어 조선총독부 경무국의『고등경찰용어사전』(1933.12.)을 일컫는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 조선총독부 경무국의『고등경찰용어사전』(1933.12.)에서 무궁화를 기록한 이유와 목적은 [바로잡기(40) : 일제의 무궁화 탄압의 역사를 왜곡하다]에서 살펴 본 바와 같다.

- 한국학중앙연구원의『한민족대백과사전』과 한국콘텐츠진흥원의「문화원형백과」에서 문헌의 출처를 다소 불명확하게 표현한 것은 맞지만 일본 문헌에 근거한 내용이라는 점을 밝혔으므로『두 얼굴의 무궁화』가 "일본 자료에 여기저기 등장하는 무궁화를 짜집기해 한국의 것으로 둔갑시켰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오히려 일본 문헌에서 인용한 것이라는 점이 명확하게 나타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숨긴 채 왜곡하여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fact check(2)》 한국학중앙연구원의『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기록된 '배꽃'과 '조선민족'은?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배꽃'과 '조선민족'은?

 

​-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편찬한『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배꽃[梨花]'으로 기술한 것은『고등경찰용어사전』의 실제 원문에 비추어 '오얏꽃(李花)'을 잘못 기록한 것이다.

-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편찬한『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배꽃[梨花]'이라고 기술한 것은 잘못된 기록이 맞지만,『고등경찰용어사전』의 원문이 일본어라는 점과 참고한 문헌의 보관상태에 따라 오독 또는 오기록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도적 오기"에 해당하거나 "한국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결핍된 일본인이나 종일매국노가 쓴 것이 거의 확실시"는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편찬한『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조선민족'이라고 기술한 것은『고등경찰용어사전』의 원문이 '朝鮮民族'이므로 "한국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결핍된 일본인이나 종일매국노가 쓴 것이 거의 확실시"되지도 않으며 "의도적 모욕 또는 일본 우익의 뇌로 쓴 글"이라고 결단코 말할 수 없다.

 이상희의『꽃으로 보는 한국문화3』의 '조선민족'은?

 

​- 이상희,『꽃으로 보는 한국문화3』, 넥서스BOOKS(2004), p.360 이하는 '무궁화'에 대해 기술하고 있지만 이 책에는『고등경찰용어사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 따라서『두 얼굴의 무궁화』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이상희,『꽃으로 보는 한국문화3』에는 전혀 기술되지 않았다.

- 이와 비슷한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편찬한「문화원형백과」중 '국가상징 무궁화>국화말살정책',  한국콘텐츠진흥원(2006)에 기록되어 있다.

-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93055&cid=49391&categoryId=49391 참조.

 

일제의 나라꽃 무궁화에 대한 잔악무도한 말살정책은《조선총독부 고등경찰서전》에 잘 나타나 있다. 무궁화는 조선의 대표적 꽃으로서 2천여 년 전 중국에서 인정된 문헌이 있다. 고려조 시대에는 온 국민으로부터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으며, 문학상, 의학상에 진중 (珍重)한 대우를 받았는데, 영국의 장미처럼 국화로 되어 있다가 조선조(朝鮮朝)에 들어와 이화(李花)가 왕실화로 되면서 무궁화는 점차로 세력을 잃고 조선 민족으로부터 차차 소원해진 것이다. 20세기의 신문명이 조선에 들어오면서 부터 유지(有志)들은 민족사상의 고취와 국민정신의 통일 진작을 위하여, 글과 말로, 천자만홍(千紫萬紅)의 모든 꽃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으로 그 수명이 잠깐이지만 무궁화만은 여름에서 가을에 거쳐서 3∼4개월을 연속 필 뿐 아니라 그 고결함은 위인 (偉人)의 풍모라고 찬미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궁화강산' 운운하는 것은 자존(自尊)된 조선의 별칭인데, 대정(大正) 8년 기미운동(3.1운동) 이래 일반에게 널리 호용(呼用)되었으며, 주로 불온(不穩)의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근화(槿花), 무궁화, 근역(槿域) 등은 모두 불온한 문구로 쓰고 있는 것이다.《조선총독부 고등경찰사전》의 규정은 곧 무궁화 말살 책동의 근거가 되며 지시가 되고 법이 되었다.

 

▷ 문화콘텐츠닷컴,「문화원형백과」중 '국가상징 무궁화>국화말살정책',  한국콘텐츠진흥원(2006)

​ -『두 얼굴의 무궁화』에서 살펴본 한국콘텐츠진흥원의「문화원형백과」중 '국가상징 무궁화'의 하위 목차에 있는 내용을 왜 인용하지 않고서 이상희,『꽃으로 보는 한국문화3』에 마치 내용이 있는 것처럼 표현을 바꿔가며 허위로 인용했을까?

- 위 한국콘텐츠진흥원의「문화원형백과」중 '국가상징 무궁화>국화말살정책'의 후반에 있는 일제가 '무궁화'와 '무궁화강산'에 대해 "불온한 뜻이 들어 있는 것"이라고  한 것이 알려지는 것이 부담스러워 의도적인 거짓 인용을 했다고 한다면 억측일까?

-『두 얼굴의 무궁화』가 이미 한국콘텐츠진흥원의「문화원형백과」중 '국가상징 무궁화'을 이미 인용하고 있으므로 그안에 있는 내용을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fact check(3)》『차화대사전』에 무궁화가 무로마치 시대에 진중한 대우를 받았다는 기록은 나올까? - 전혀 사실이 아니다.

『차화대사전(茶花大事典)』의 실제 기록은?

室町時代の立花の樣子を伝える「仙伝抄」(江戶時代前期)には 「禁花の事」の項に, ヤマブギとともにムクゲが登場 し, 続く「替花伝秘書」(1661年)には 「きらひ物の事」の項にムクゲほか63種類が, また「立花正道集(1684年)」には 「祝儀に嫌べき物の事」の項に ムクゲ, ケシ,コウホネなどが載っている.

무로마치 시대의 꽂꽂이꽃(立花)의 모습을 전하는『선전초(仙伝抄)』(에도시대 전기)에는 '금화*1)의 것' 항에 황매화와 함께 무궁화가 등장하고, 이어지는『체화전비서(替花伝秘書)』(1661년)에는 '기라히모노*2)의 것' 항에 무궁화 외 63종류, 또『입화정도집(立花正道集)』(1684년)에는 [축하에 혐오스러운 것] 항에 무궁화, 양귀비, 개연꽃 등이 실려 있습니다.

*각주1) 금화(禁花) : 기본적으로는 사용하지 말아야 할 꽃

*각주2) 기라히모노(きらひ物, 嫌物) : 피해야 하는 물건

 

▷ 松谷 茂, 『茶花大事典(下卷)』 중 「特集 木槿」, 淡交社(2014), p.5 참조.

 

​ -『두 얼굴의 무궁화』는 일본의『차화대사전(茶花大事典)』에서  "무궁화는 무로마치 시대 때 '진중한' 대우를 받았다(ムクゲ. 室町時代から茶花として珍重され)"라는 문구가 있고, 마치 한국학중앙연구원의『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이를 베​껴 '무로마치 시대'를 '고려시대'로 바꾸어 놓은 것처럼 주장하였다.

- 그러나 실제로 일본의『차화대사전(茶花大事典)』, p.5에는 무로마치 시대와 에도 시대 초기에는 무궁화(ムクゲ)가 꽂꽂이꽃(花材, 立花)의 소재로 선호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기록하고 있을 뿐『두 얼굴의 무궁화』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 이 또한 왜곡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대백과전서』의 실제 기록은?

 

-『두 얼굴의 무궁화』는 일본의『일본대백과전서』에서 "무궁화는 무로마치 시대 때 '진중한' 대우를 받았다(ムクゲ. 室町時代から茶花として珍重され)"라는 문구가 있고, 마치 한국학중앙연구원의『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이를 베​껴 '무로마치 시대'를 '고려시대'로 바꾸어 놓은 것처럼 주장하였다.

- 아직『일본대백과전서』를 살펴보지 않았으나, 앞서 살핀 바와 같이 한국학중앙연구원의『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고려에서 진중한 대우 등의 언급은『고등경찰용어사전』에 있는 표현을 인용처를 밝히고 인용한 것이므로, 이 역시 허위로 없는 내용을 왜곡하여 주장하였거나 실제 그런 문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학중앙연구원의『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기술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결론》 자기 역사 왜곡이라는 패륜적 범죄현장의 목도?

 

▶『두 얼굴의 무궁화』에서 왜곡한 것은?


-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편찬한『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무궁화 부분을 언급하면서 문헌 출처로 밝혀 놓은 《왜기 倭記》를 숨기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의「문화원형백과」중 '국가상징 무궁화' 부분을 언급하면서 문헌 출처로 밝혀 놓은《조선총독부의 고등경찰사전》를 숨겨서, 마치 두 문헌이 독자적인 주장을 기술한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편찬한『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무궁화 부분 중 조선시대에 대한 그 기술 내용이『고등경찰용어사전』에 기록된 문구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별도의 독자적인 주장을 한 것처럼 왜곡하여 원래의 내용과 다르게 만들어 놓았다.

- 이상희,『꽃으로 보는 한국문화3』에는 없는 내용을 마치 기술되어 있는 것처럼 거짓으로 인용하였다.

- 일본의『차화대사전』에 "무궁화는 무로마치 시대 때 '진중한' 대우를 받았다(ムクゲ. 室町時代から茶花として珍重され)"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러한 기술이 있는 것처럼 허위의 사실을 주장하고,『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꽃으로 보는 한국문화3』가 '무로마치 시대'를 '고려시대'로 둔갑시킨 것처럼 왜곡하였다.

- 그 결과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무궁화에 대해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의 매개로서 불온한 뜻을 가진 것으로 보고 탄압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없는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편찬한『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오류는?

 

-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편찬한『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무궁화 부분을 기술하면서 문헌의 출처를『고등경찰용어사전』이 아닌 《왜기 倭記》로 부정확하게 표현하였다.

​-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편찬한『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무궁화 부분을 기술하면서『고등경찰용어사전』에 나오는 '오얏꽃(李花)'을 '배꽃[梨花)'으로 잘못 기록하였다.

-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편찬한『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무궁화 부분을 기술하면서 부분적인 잘못을 범했으나, 일제가 우리의 역사에서 무궁화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소개한 것은 변함이 없으며 그 전체적 취지와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부합한다.

▶ 묻노니, 아래와 같은 행위가 행해졌다면 그것은 누구의 소행인가?『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인가? 아니면『두 얼굴의 무궁화』인가?

 

○ 지식인으로서 양심의 마지노선을 스스로 무너뜨린 만행

○ 과거 일제의 역사 왜곡보다 훨씬 심한 오늘날 한국 지식계의 자기 역사 왜곡이라는 패륜적 범죄현장

○ 정상적인 한국인이 쓴 것이 아니라 한국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결핍된 일본인이나 종일매국노가 쓴 것이 거의 확실시

○ 의도적 모욕 또는 일본 우익의 뇌로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