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꼬 김인국 연수성당 주임신부가 부활절을 맞아 '내 사랑을 받아다오'라는 제목의 강론을 보내왔다. 지저스 크라이스트의 부활의 의미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저스 크라이스트 같은 사람들로 가득차는 세상일 수도 있다. 그래서, 마르꼬 신부는 백기완 선생을 또 다른 에수님이라 부르고 있다. 그런 의미라면 전태일도 또 다른 예수일 수도 있다. 사람이 과거의 나쁜 껍질을 벗어던지고 선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도 부활이다. 그래서 진정한 부활은 개인의 혁명, 나아가 사회의 혁명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마르꼬 신부의 '내 사랑을 받아다오'라는 제목의 성목요일 만찬미사 강론을 들어보자.
성목요일 주님만찬미사 강론 - 내 사랑을 받아다오
“받아먹어라 내 몸, 받아마셔라 내 피.”(루카 23,35)
어느 시인이 “탈 대로 다 타시오. 타다 말진 부디 마소”라고 했지마는 그것은 우리끼리 주고받는 이야기이고, 예수님은 남김없이 다 주고 가신 분이다. “떠나실 때가 되자 더욱 극진히 제자들을 사랑하셨다.”(요한 13,1) 이 짤막한 한 구절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1. 하느님 나라는 이대로 기울고 마는가?
생전의 예수님이 하신 일, 해주신 일이 무엇이었던가? 하느님의 사랑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알고 있니? 하느님께서 너를 사랑하신단다.”,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퍽 사랑하시지.”. 하느님의 사랑을 느껴라. 하느님의 사랑을 나눠라. 그래서 하느님 나라, 곧 하느님이 계신 나라,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세상이 되게 하여라. 예수님의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었다.
흔히 구약은 ‘예고편’, 신약은 ‘본편’ 이렇게 말한다. 구약에서 예언자들은 하느님 나라가 온다. 온다. 언젠가 어디선가 온다. 지금은 아니고 여기는 아니지만 온다. 언젠가 온다. 어디선가 온다,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신약에서 예수님은 오늘이 그날이다. 그날은 나로 인하여 왔다. 내가 있는 지금 여기가 하느님 나라다, 라고 하셨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가 그리스도다. 말로만 주장한 것이 아니라 실체로 하느님의 계심을 알게 해주셨다.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해주셨다. 하느님의 사랑을 보게, 듣게, 만지게, 실감하게, 그래서 기쁘게 해주셨다.
그랬더니 저주 받은 자로 여겨지던 병자들이 일어났고, 죄인이라서 천대받던 하류 인생들이 자존감을 회복했고, 여자와 어린이처럼 반쪽 취급을 당하던 사람들이 비로소 사람대접을 받게 해주셨다. 심지어 이방인들조차 형제라는 소리를 듣게 해주셨다.
하지만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뚜렷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위기를 맞고 있었다. 장래가 너무나 불확실한 상태에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메시지가 심각한 공격을 받고 있었다. 적대 그룹이 예수님을 죽여 없애기로 작당하였고, 그럼으로써 그분의 메시지를 거짓 선동으로 만들어 버릴 참이었다. 예수님은 최후를 직감하고 있었다.
2. 새로운 안목을 지녀라
작별인사를 나눠야 하는 밤이 왔다. 누구라도 그렀듯이 예수님도 남기고 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의미심장한 선물을 남겨주고 싶어 했다. 떠나더라도 당신의 사람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 줄 정표 혹은 안전장치를 마련해 주고 싶어 하셨다. 한편으로 겉만 보고 절망하지 말라고, 속을 들여다보고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고. 당신은 죽겠지만 승리하리라는 것을, 십자가 이후 당신의 영광스러운 결말을, 떠나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것임을, 무엇보다도 십자가에 매달리는 죽음의 의미가 천하의 양식을 마련하기 위함임을 이해시키고자 하셨다.
그래서 먼저 빵을 들고 “내가 여러분에게 주는 빵은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과 인간의 소통이 충만히 이루어지기 위해 내 생명으로 만든 선물입니다.” 그리고 잔을 드시며 말했다. “이 잔은 여러분을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계약의 백성으로 살아온 모든 역사를 일깨우면서 내가 쏟는 피로써 그 모든 계약이 최종적으로 완성된다고 자부하시는 대단한 말씀이다. 아울러 이 말씀은 나는 생애 전체를 내건 자기 헌신을 드러내는 말씀이면서 그러므로 최종 결과를 의심 말고 굳게 믿으라는 말씀이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시오.”라고 하셨는데, 당신이 그랬듯이 우리도 서로에게 섬기는 종이 되어주고,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삶을 살아가라고 권고하신 것이다. 이 대목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을 베푸는 그 자리에서 하느님은 현존하시고 하느님 나라는 성장한다는 가르침이다.
최후의 만찬으로부터 2천년 이어지고 있는 성체성사는 이미 시작되었고 머잖아 완성될 하느님 나라를 지금 맛보게 해준다. 미사로써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럭무럭 힘차게 자라나는 그 나라를 확신하게 되고, 세파에 지친 심신을 씻어주고 기력을 불어넣는 주님의 손길을 체험한다. 그래서 미사 때마다 우리 마음은 환희로 가득 찬다.
3. 이 ‘따끔한 한 모금’은 너희를 위한 나의 사랑이다
옛날 어른들은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어릴 적 배고플 때 누구나 따끈한 미역국 한 그릇에 기름이 찰찰 흐르는 쌀밥을 말아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런 걸 ‘따끔한 한 모금’이라고 했어. 거지들이 만날 ‘따끔한 한 모금 주시오’, 하는 말만 하고 다녔어.ᅠ내가 어릴 때 북쪽에서 서울로 왔는데 너무도 가난해서 참 배가 고팠어. 어느 날 시내에서 한 꼬마가 양놈 구두를 닦다가 얻어맞고 있더라고. 잘못 닦았다는 거지. 그래서 내가 그 양놈을 두드려 팼어. 내 나이로 고등학생쯤 되던 시절이었지만 배짱이 그 정도였다고. 그 놈이 도망을 간 뒤에 아이가 시커먼 손으로 자기가 먹으려고 남겨뒀던 구두약 묻은 시커먼 가래떡을 내밀어. 눈물이 났어. 그런 게 바로 따끔한 한 모금이야. 뜨거운 눈물이지. … 차갑게 식어가는, 차갑게 죽어가는 몸을 무엇으로 살리겠어? 뜨거운 눈물 아냐? 이걸 형상화해서 한 잔 술이라고 하지. 한 잔 마시면 피가 돌고 몸은 풀리잖아.”(백기완) 예수님은 성체와 성혈은 차갑게 식어가는 세상의 마음을 되살리기 위해 내주신 뜨거운 눈물, ‘따끔한 한 모금’이다.
4. 조촐하고 단순한 선물, 성체
예수님이 남긴 선물은 조촐하고 단순하다. 하지만 그분이 베어주신 살, 그분이 쏟아주신 피는 신비롭다. 예수님은, 이걸 먹고 이걸 마시면 얼마든지 하느님의 사랑이 되고, 능히 하느님의 얼굴이 되고, 하느님의 살과 피가 되느니 이제 너희가 사람 사는 세상,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보아라 하셨다. 너희가 배고픈 사람을 먹이고, 때 묻은 서로를 닦아주면 하느님 나라는 절대로 꺾이지 않아. 사랑을 의심하지 마. 사람을 포기하지 마. 내가 우주의 문설주에 내 피를 발랐으니 우리 역사는 승리하는 거야. 쩨쩨한 욕심 부리지 말고 치사하게 겁내지 말고 배짱 있게 살아보라고 하셨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갖가지 모양의 십자가에 매달려 자신의 성체와 성혈로 세상을 씻어주고 세상의 허기를 달래주고 있다. 목마른 사람들 목 축여주고, 배고픈 세상을 먹여 살리시는 교우님들의 수고에 경건한 인사를 드린다. 그 수고가 대단히 고단하다마는 성체를 모시는 우리는 하느님을 모시는 사람들(侍天主)이 아닌가. 우리를 만나고 우리를 보는 사람마다 하느님을, 하느님의 사랑을, 하느님의 나라를 실감하게 해주자.
글쓴이 김인국 신부(연수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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