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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론 비판 - 홍기표

林 山 2021. 6. 27. 00:37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부상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트레이드 마크인 기본소득론이 연일 집중타를 맞고 있다.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의 대선후보들로부터도 협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정세균 전 총리는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론에 대해 6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나라는 기획재정부의 나라가 돼서도 안 되고, 설익은 기본소득론의 정치적 실험장이 돼서도 안 된다”고 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론을 두고 “불공정한 철학”이라면서 "부자에게나 가난한 사람에게나, 일하건 하지 않건 똑같이 나눠주자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돈은 많이 드는 데 정작 지원이 필요한 약자들에게는 필요한 것보다 덜 지원되는 맹점이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자유기고가 홍기표도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론에 대해 "하면 좋은데 못하는 게 아니라 하면 안되는 것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정세균, 이낙연과는 다른 관점에서 홍기표는 기본소득제가 "국가의 현물 창출 능력을 크게 떨어뜨린다."고 주장한다. 다음은 홍기표의 '기본소득론 비판'이라는 제목의 글 전문이다. <林 山> 

 

 

자유기고가 홍기표

기본소득론 비판

 

기본소득론 비판의 핵심은 현금과 현물의 관계에 대한 인식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기본소득 하면 좋은데, 예산이 부족해서 못한다. 아쉽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초딩발상이다. 기본소득은 '하면 좋은데 못하는 게 아니라 하면 안되는 것'이다.

 

일단 논리적으로는 '국가가 돈이 없어서 못하는 일은 없다'고 보 는게 맞다. 그렇게 정말 중요한 과제라면 예산 배정 순위를 바꾸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정말 진짜 진짜 아주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면 돈을 찍어서 하면 된다.

 

다시 말해 예산 문제는 기본소득 논쟁에서 토론 대상이 아니다. 예산타령은 공무원들이나 하는 것이다. 국가발전 전략이라는 관점에서는 예산 문제가 어차피 근본적 관심사는 아니라고 봐야 한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맨땅에서 핵무기도 만들어냈다. 진짜 중요한 일이라면 이렇게 맨땅에서 만들어내면 된다.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핵심 이유는  나라에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본소득이 국가의 현물 창출 능력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낮은 단계의 기본소득으로 일단 시작해서 점점 높은 단계의 기본소득으로 넘어가면 가면 된다는 생각도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즉 한 30만원 정도 용돈 수준으로 주다가 궁극적으로 생활비를 보장하는 선인 200만원 수준까지 나가자는 주장은 내가 보기엔 이게 제일 위험한 발상이다.

 

기본소득 이데올로기에 대해 가만히 생각을 해보자. 지금도 여기저기 분산적으로 실시하는 각종 복지제도를 죄다 통폐합하면 소위 낮은 단계의 기본소득(용돈 수준)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기본소득을 현실에서 바로 실행하기 위해 유사 복지예산 통합 기치를 걸고 선별적으로 실행중인 각종 복지제도를 없애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실제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가의 보호를 상실하는 사각지대가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30만원인지 300만원인지 기본소득의 액면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대원군이 당백전 찍듯이 국가가 돈을 찍어서 나눠주면 300만원이 아니라 3천만원도 나눠줄 수 있다. 즉 30만원인지 300만원인지 액면가를 갖고 논하는 것은 논리구조에 대한 논쟁을 덮어놓은 채.. 단순 회계 실무적인 문제를 얘기하는 셈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것이 현실의 경제 행위를 자극할 것인가 아니면 위축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액면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현금이 어떻게 현물과 연계되느냐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다. 

 

16세기에 스페인이 아메리카에서 대규모의 은을 채굴해 유럽으로 실어날랐다. 은이 대량으로 유입되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국부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는가? 그냥 물가만 상승했다. 

 

다시 말해 현물 경제 행위와 연계되지 않은 화폐 유입은 단순 인플레에 불과하다. 우리가 균형재정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되도록 이 부분을 고려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현금은 현물과 반드시 확장적 연계를 가져야 한다.

 

루카 파치올리(Luca Pacioli,1447~1517)라는 수도승인지 수학자인지 저술가인지 하는 사람이 몇 백년 전에 기가막힌 것을 개발했다. 이른바 복식부기(double entry book-keeping, 複式簿記)다. 

 

복식부기는 거래가 발생했을 때 필연적으로 한쪽에는 실물자산의 변동을 기록하고, 반대쪽에는 현금자산의 변동을 기록할 수밖에 없다. 거래라는 것은 한쪽 차선으로 현물이 지나가면, 반대 차선에서 현금이 들어가는 식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경제 행위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상행선에서 현물이 오지도 않는데, 하행선으로 현금이 계속 지나가는 이상한 거래 즉 이전소득은 절반의 경제 행위도 되지 못한다. 이는 국가의 현물 창출 능력을 크게 떨어뜨린다. 박정희가 경부고속도로 만들 돈을 그냥 다 소액으로 쪼개서 나눠줘버리는 것과 같다.

 

기본소득이 직업이 사라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제도라는 주장도 동의하기 어렵다. 내가 20년 전쯤 철도청을 그만두기 전에 신문에서 통계를 하나 봤다. 미국의 농업 인구가 전체 인구의 3%였다는 통계였다. 나는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얘기는 이미 100명중에 3명만 일하면 먹는 문제가 다 해결되는 세상이라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보기엔 어차피 지금도 대부분의 직업이 경박하게 말해서 '야부리 까는' 직업이다. 실제로 뭔가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직업이라고 해도 '야부리 까기'와 잘 연결되어야 효과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40차 산업혁명이 되어도 새로운 직업은 계속 나올 수 밖에 없다. 현재 계산 방식으로는 여자들이 쌍꺼풀 수술을 많이 하면 할수록 GDP가 늘어나게 되어 있다. 즉 경제가 성장한다. 

 

과거에는 이런 식의 관점은 꿈도 꾼적이 없었다. 말을 뭘로 갖다 붙이건 간에 인간 사회는 끊임없이 현금을 받고 현물을 주는 대가의 상호 교환 관계 즉 경제 행위에 의해 계속 확장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꼭 의식주와 직접 연결될 필요도 없다. 그냥 사람들이 재미있어 할 만한 일을 만들어내면 되고, 그것이 현금으로 표현되면 된다. 사회를 극도로 확장시켜 온 인류의 이러한 전략은 기본적으로 바뀔 수가 없다.

 

글쓴이 홍기표(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