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순 물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주말을 맞아 강원도 삼척 응봉산 덕풍계곡 용소골을 향해서 차를 몰았다. 충주에서 165km 떨어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덕풍마을까지는 차로 약 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해마다 이맘때쯤 물매화를 만나는 일은 이제 하나의 연례행사처럼 되었다. 견우와 직녀가 칠월칠석날 단 한번 만나듯이 말이다. 물매화를 보지 못하는 해는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채 가을이 지나가곤 했다.
덕풍계곡에는 용소골을 비롯해서 직치골, 산터골, 버릿골, 문지골, 괭이골 등 6개의 큰 계곡이 있다. 괭이골에는 큰샘골과 작은샘골이 있고, 문지골에는 제1~제6폭포 등 6개의 폭포가 있다. 용소골에는 장군바위골, 큰다래지기골, 작은터골, 큰터골, 황장군터골, 난채골, 작은당귀골, 큰당귀골, 원골 등 크고 작은 골짜기들이 있다. 그리고 제1~제3용소폭포 등 3개의 폭포가 있다.
덕풍 마을에서 용소골로 접어들었다. 올해도 물매화를 만날 수 있을까?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계곡 한 구비를 돌아서자 물매화를 만나던 암반지대가 나타났다. 서둘러 달려가보니 물매화들이 꽃봉오리들을 이제 막 피워 올리고 있었다. 살포시 미소를 머금은 물매화가 마치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한동안 물매화와 무언의 대화를 나눈 뒤 다시 산길을 떠났다. 용소골 험한 구간에는 철제 잔교가 설치되어 있었다. 잔교가 설치되기 전에는 신발을 벗고 개울을 건너야 했던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제1용소폭포에 이르렀다. 우렁차게 쏟아지는 폭포수가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검푸른 빛을 띤 제1용소는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장쾌하게 쏟아지는 제1용소폭포를 뒤로 하고 제2용소폭포를 향해 바위길을 더위잡았다. 종종 주변의 산그림자들을 담고 있는 잔잔한 소(沼)가 나타났다.
바위절벽에 매달려 핀 쑥부쟁이와 구절초는 어딘가 애달파 보였다. 문득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로 시작되는 김소월(金素月)의 시 '산유화(山有花)'가 떠올랐다.
저 한 구비를 돌아가면 이주홍의 소설 '메아리'에 나오는 이웃도 없는 깊은 산골 마을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하나밖에 없는 누나가 시집을 가고 나서 소년은 그 외로움을 어떻게 견뎠을까? 메아리가 유일한 친구였던 소년의 후일담이 궁금했다.
골짜기를 오르다가 절벽의 바위틈에 홀로 피어난 구절초 꽃을 만났다. 벼랑에 매달려 외로이 핀 구절초가 산길 나그네의 가슴 한 구석을 훅 파고 들어왔다.
얼마쯤이나 걸었을까? 걸음을 멈추고 지나온 산길을 되돌아보았다. 사람도 가끔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길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제2용소폭포에 이르렀다. 폭포수는 세월이 깎아낸 바위절벽 아래로 자신을 거침없이 내던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폭포를 보러 용소골을 거슬러오르고, 반대로 폭포수는 바다를 향해 질풍노도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제2용소폭포 상류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제3용소폭포를 보려면 응봉산 정상에서 작은당귀골을 타고 내려와 큰당귀골 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아쉽지만 이제 여기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
사진을 남기는 이유는 잘났거나 못났거나 인생도 하나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비록 100년도 채 못 살고 가는 인생이지만 말이다.
2021. 10. 3.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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