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클래식에서 헤비메탈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Die schöne Müllerin Op.25(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林 山 2017. 8. 30. 10:17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Die schöne Müllerin Op.25(아름다운 물레방앗간의 아가씨)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Die schöne Müllerin Op.25(아름다운 물레방앗간의 아가씨)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Die schöne Müllerin Op.25(아름다운 물레방앗간의 아가씨)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Die schöne Müllerin Op.25 D.795)>는 프란츠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가 1823년 5월~11월에 완성한 가곡이다. 초연은 1856년에 이루어졌다. 편성은 독창, 피아노로 되어 있다. 슈베르트가 빌헬름 뮐러(Wilhelm Müller)의 시에 작곡한 연가곡집이다. 슈베르트가 남긴 모든 작품들 중에서도 음악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리트의 역사에서도 한 획을 긋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총 20곡으로 구성되어 있고, 곡은 일정한 스토리를 따르고 있다. 1820년에 쓰인 뮐러의 시들을 바탕으로 슈베르트는 1823년 5월에서 9월 사이 대부분의 곡들을 집중적으로 썼다. 이 때, 슈베르트는 이미 리트 작곡의 비중을 서서히 줄여가고, 점차 대규모의 기악작품으로 눈을 돌리던 시기였다. 그는 연가곡에서 드라마가 있는, 대규모 작품으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 연가곡집은 작곡된 지 1년 뒤인 1824년 ‘연가곡집(ein Zyklus von Liedem)’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연가곡(song cycle)은 정의하기 어려운 용어들 중 하나이나, 일반적으로 (1) 한 시인의 연작시에 기초하고 있으며, (2)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가 있을 경우, 연가곡으로 정의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백조의 노래〉는 연가곡이라고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백조의 노래〉는 단일 작가의 시에 붙여진 노래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더 어울리는 용어는 단순히 ‘노래집(song collection)’이 될 것이다. 사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는 슈베르트가 처음에 계획할 당시부터 ‘하나의 큰 단위’였다. 비록 이 곡이 출판되었을 당시, 이미 ‘연가곡’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는 했으나, 이 용어가 사전에 등재될 만큼 일반화된 것은 19세기 후반인 1865년, 코흐의 《음악사전(Musikalisches Lexikon)》에서였다.


연가곡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텍스트’이다. 그것이 단일 시인에 의해 써졌는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사랑이나 자연처럼 중심 주제 혹은 토픽이 있는지, 전체를 관통하는 분위기가 있는지 하는 것은 이것이 ‘연가곡’인지, 아니면 단순한 ‘노래집’인지를 구분해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또한 음악적으로도, 각 곡의 배열에 있어서 조성적인 계획이 보이는지, 반복되는 모티브나 부분들이 있는지, 형식에 있어서의 일관된 요소들이 있는지도 중요한 고려대상이다. 문제는 연가곡을 구성하는 이러한 요소들이 슈베르트와는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연가곡을 연구하는 데에 있어서 일종의 롤모델로 작용한 작곡가가 슈베르트가 아니라 슈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베르트의 가장 유명한 세 개의 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겨울 나그네〉, 〈백조의 노래〉 중 명확하게 ‘연가곡집’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이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가 한 무대에서 전체로 초연된 것은 이 곡이 출판된 지 무려 32년이 지나서였다. 이것은 이 곡이 만들어졌을 당시에 연가곡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즉, 19세기 중반까지 연가곡집은 하나의 ‘통일된 단위’로 인식되기 보다는, 연가곡을 구성하는 개개의 곡들이 ‘독립된 노래들’로 받아들여졌다. 그로 인해 연가곡은 한 무대에서 한꺼번에 연주되었던 것이 아니라, 각각의 곡들이 독립적으로 연주되었던 것이다. 이는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에 대한 리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대의 비평가들은 하나의 연가곡집이 얼마나 응집력 있게 짜였는지를 관찰했던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다양하게’ 짜였는지를 관찰했다. 한 자리에 앉아서 1시간에 육박하는 리트를 듣는다는 것은 당시의 청중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오늘날에도 연가곡 전곡을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개의 곡들은 오페라처럼 스토리를 박진감 있게 전달하기 보다는, 한 곡에서 일어나는 강렬한 감정을 전달하기 때문에, 감상하기 전에 대강의 스토리와 개별 곡들의 시를 아는 것은 연가곡집을 잘 듣기 위한 준비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의 주인공처럼,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도 한 젊은 방랑자가 주인공이다. 물방앗간지기가 직업인 주인공은 자신의 일터를 떠나 시골 어느 한적한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시냇가에 다다르고, 거기서 물레방아를 보게 된다. 노래는 그렇게 시냇물을 따라 유유자적하는 한 방랑자의 즐거운 마음을 묘사한다. 그러다가 그는 그 곳에서 방앗간집 딸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그는 자신을 그녀에게로 안내해준 시냇물에게 감사의 노래를 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이 방랑자는 한갓 스쳐지나가는 사람일 뿐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냉랭할 뿐이다. 이제 그의 육체가 방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향한 그의 마음이 방랑하기 시작한다. 그는 계속 시냇물에게 자신의 괴로운 마음을 토로한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연의 정경들에 그녀의 모습을 투영시킨다. 그 와중에 한 젊은 사냥꾼이 그녀 앞에 나타나서는 그의 연적이 된다. 사냥꾼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그녀를 보면서 그의 사랑은 점점 괴로움으로 바뀌어간다. 그녀가 좋아하는 ‘녹색’의 잔디에 묻히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에서는 점차 자살의 충동이 싹트게 된다. 그녀가 좋아하는 색깔인, ‘녹색’은 ‘불길한 색’이 되어 주인공의 마음을 괴롭힌다. 주인공은 다시 시냇물과 대화하며, 자신에게 위로의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다. 시냇물은 평온하게 그에게 ‘자장가’를 불러준다. 그는 시냇물이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며, 영원의 세계로 침잠한다. 주인공은 시냇물에 몸을 던져 자살한 것이다.



방랑(Das Wandern)


1곡. 방랑(Das Wandern). 이 곡은 연가곡집 전체에 대해 서주의 역할을 한다. 첫 번째 곡 B♭장조와 함께 시작하는 이 모노드라마의 주인공의 여행은, 전체의 시작조성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조성인 마지막 곡의 조성, E장조에 이르러 주인공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암시한다. 물론 이는 마지막에 이르러 주인공의 자살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그의 ‘감정적인 거리’라고도 할 수 있다. 노래는 5절로 이루어진 단순한 유절형식을 따른다. 주인공의 마음은 여행을 시작하는 설레임을 담고 있고, 피아노 반주는 그의 마음을 반영하듯 힘차게 돌아가는 물레방아를 음형적으로 묘사한다.



시냇물에게 감사(Danksagung an den Bach)


4곡. 시냇물에게 감사(Danksagung an den Bach). 자신이 일하던 물레방앗간을 떠나서 새로운 방앗간을 찾아 여행길을 나섰던 주인공은 드디어 이 곡에 이르러 새로운 방앗간의 아름다운 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그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준 데에 대해, 그리고 방앗간집의 아름다운 딸을 찾게 해준 데에 대해서 시냇물에게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이 감사의 노래에는 일말의 어두움이 서려있다. 주인공은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그녀가 너[시냇물]을 보낸 것이니, 아니면 내가 지금 착각하고 있나?” 피아노 반주는 시냇물이 흘러가듯 천천히 흐르는 16분음표의 연속으로 구성된다. 또한 피아노의 오른손과 주인공의 노래는 훌륭한 2중창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흐르는 시냇물이 주인공에게 대답할 리가 없지만, 음악을 듣고 있는 우리는 시냇물의 목소리를 피아노에서 듣고 있다.



호기심(Der Neugierige)


6곡. 호기심(Der Neugierige). 아무도 주인공이 알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속 시원한 대답을 주지 않는다. 그가 대답을 해주길 기대하는 것은 오로지 시냇물뿐이다. 그는 시냇물에게, “내 마음이 나를 속이는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의 질문은 곡의 뒷부분에서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가.”로 바뀐다. 이 두 가지 질문은 결국 주인공의 마음을 계속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곡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주인공이 질문을 던지는 곡의 앞부분에서 피아노 반주는 최소한의 구성을 통해, 어느 누구도 답해줄 수 없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대변한다.


주인공은 결국 자신의 소중한 친구인 시냇물에게 물어보게 된다. 이 부분에서 음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다시 한 번, 시냇물이 흘러가는 듯한 음형의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면서, 시냇물은 주인공의 목소리를 듣고 있음을 알려준다. 주인공은 “너[시냇물]는 오늘 왜 이리 조용하니?”라고 묻지만, 사실상 시냇물은 그의 모든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다. 주인공은 드디어 자신의 질문에 가능한 답을 내놓는다. 이 부분에서 시냇물의 흐름은 잠시 멈추고, 주인공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그래’가 하나의 답이고, ‘아니야’가 또 다른 답이다. 음악은 잠시 원래의 조성인 B장조로 부터 벗어나 슈베르트가 가장 좋아했던 전조 영역인 (반음 내려간 6도관계에 있는) G장조로 전조된다. 시냇물의 움직임이 다시 시작되면서 음악은 B장조로 돌아오고, 주인공은 대답 없는 질문을 던진 채, 끝을 맺는다.



물레방아지기와 시냇물(Der Müller und der Bach)


19곡. 물레방아지기와 시냇물(Der Müller und der Bach)


마지막에서 두 번째에 위치해 있는 이 노래에서 주인공은 중대한 결심을 보여준다. 거절당한 실연의 아픔을 그는 죽음으로써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노래는 주인공과 시냇물의 대화로 구성된다. 자연이 살아서 인간과 대화를 하는 설정은 일종의 ‘극적’인 설정이지만, 이 곡의 앞에서 노래되는 다른 곡들을 통해 우리는 이미 시냇물이 주인공에게 그 누구보다도 주인공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그를 위로하고 있는 대상임을 알고 있다. 사실상 이들의 대화는 주인공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내적’ 대화이다.


주인공이 실연으로 인한 아픈 마음을 노래한다. 그의 절망적인 마음은 g단조의 무거운 반주를 타고 슬픈 선율선을 타고 흐른다. 시냇물은 이런 주인공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진다. 시냇물이 말하기 시작하면서 음악은 G장조로 바뀌고, 시냇물이 등장할 때마다 나왔던 피아노의 흐르는 듯한 16분음표 반주음형이 여기서도 나타난다. 다시 주인공의 부분에 이르면, 조성은 다시 g단조로 돌아가지만, 시냇물의 반주음형은 그대로 계속된다. 즉, 시냇물은 표면에 등장하지 않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앞부분에서 대조를 이루었던 이들 시냇물과 주인공의 음악은 마지막 부분에서 통합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부분에서 음악은 g단조에서 다시 G장조로 바뀐다. 그러나 이 G장조에서 시냇물이 주었던 위로는 없다. 그 자리에는 삶의 의지를 포기하고 있는 주인공의 처절한 마음만이 남아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슈베르트가 조성과 관련된 기존의 코드를 전복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장조는 즐거운 마음을, 단조는 슬픈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단조는 슬프고 장조는 더욱 더 슬프다.(클래식 백과)


2017.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