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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당제(割當制) 단상(斷想) - 홍기표

林 山 2021. 5. 12. 18:05

한국에는 각종 할당제(割當制)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정치·경제·교육·고용 등 각 부문에서 채용이나 승진시 여성에게 일정 비율을 보장하는 제도인 여성고용할당제(女性雇傭割當制)다. 줄여서 여성할당제(女性割當制)라고 한다. 여성할당제는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돕기 위해 마련된 제도이지만, 그로 인해 역차별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남성 능력자들이 여성할당제 때문에 사장된다면 이는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자유기고가 홍기표는 할당제야말로 제도적 수준에서 가장 무식한 제도라고 주장한다. 할당제가 설계자에게는 편리할지 모르지만, 수용자에게는 불편하고 황당한 제도라는 것이다. 홍기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林 山> 

 

필자 홍기표(자유기고가)

 

할당제(割當制) 단상(斷想)

 

1. 할당제(割當制)는 제도의 수준 차원에서 볼 때 제일 무식한 제도다.  

 

2. 할당제는 제도를 설계하는 '설계 주체'에게는 가장 편리한 제도다. 그냥 남북을 가르는 38선 긋듯이 선을 그은 다음, 그 선을 지키라고 강요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제도를 따라야 하는 '제도의 수용자'들에게는 매우 불편하고 어떻게 보면 폭력적이다. 제도를 실행하다 보면 여러 가지 다양한 개별적인 사정과 복합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이 모든 사정과 상황을 다 무시하고 아무런 제도적 예외도 없이 그냥 숫자 그대로를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이 할당제다. 

 

3. 여성할당제 외에도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할당제 유형의 제도들이 많다. 스크린 쿼터제라든가 아파트를 지을 때마다 일정 비율을 임대아파트로 만들게 하는 제도 등등 말이다. 

 

더 유명한 할당제로는 식량배급제가 있다. 구 소비에트 연방 시절 스탈린의 명령에 의한 '인민강제 이주'도 역사적으로 유명한 할당제 유형이다. 나는 이런 규정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할당제는 조절문제를 단순히 생산량 개념으로 이해하는 '사회주의적 마인드'라고 볼 수 있다. 

 

4. 나는 군대 시절 계획경제의 모순에 대해 몸소(?) 체험한 바 있다.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라고 모두들 생각하지만, 군대 내부의 보급 체계는 '계획경제'다. 

 

예를 들면 군용 빵의 생산은 언제 몇 개를 생산할지 군수품 담당자가 결정한다. 나는 군용 빵을 잘 먹었다. 하지만, 내가 근무하던 부대 고참들은 입이 고급이라 군용 빵을 잘 안 먹었다. 그 때문에 날이 갈수록 군용 빵이 남아돌게 되었다. 내가 틈나는 대로 열심히 계속 먹어 치웠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쌓여가는 군용 빵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군수참모는 어느 날 기막힌 해법을 내놓았다. 그는 군용 빵을 실은 빵차와 쓰레기차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맞대게 했다. 그런 다음 군용 빵을 빵차에서 쓰레기차로 곧바로 직행시켰던 것이다.

 

멀쩡한 군용 빵이 쓰레기차에 실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배급제 역시 '생산과 소비에 모순이 있다'고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 모순을 '생산과 소비의 2차 모순'이라고 불렀다. 

 

배급제는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크나큰 사회적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모든 할당제 성격의 제도들은 크게 보아 이런 개별사정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맹점이 있다. 이처럼 할당제는 설계자들이 설계하기만 편할 뿐이다.

 

5. 좋은 제도는 '매칭'과 '옵션'이 있어야 한다. 한국의 건강보험제도처럼 민간의 책임과 정부의 책임이 상호 연결-매칭되어야 하고, 수용자가 제도를 선택할 때 옵션이 주어져야 한다. 그래야 제도 설계의 취지와 이의 적용을 받게 될 개별 사정들이 서로 맞물릴 수 있다. 

 

물론 건강보험제도처럼 제도를 설계하려면 설계자에게는 많은 지식과 경험의 축적이 있어야 하고, 많은 정신적 노동이 필요하다. 아마 머리가 상당히 아플 것이다. 그러나 설계자가 고생한 만큼 수용자는 편리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할당제는 매우 불가피한 상황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채택되어야 한다.

 

6. '정부'는 민간에서 검증된 '능력자'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의회의 경우에는 그 특성상 계급이나 계층의 할당을 적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행정부 또는 집행부에 할당제를 적용하는 것은 원리에 맞지 않다. 공적 설계는 한번 잘못되면 마치 잘못 그려진 주차장처럼 이후 수백만 명이 계속해서 고생해야만 하기 때문에 능력 위주로 구성되는 것이 맞다.

 

문재인 정부도 초기에는 민간의 능력자를 중심으로 정부를 구성하려고 한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요즘 보면 그 능력이란 것이 업무 수행 능력자가 아니라 줄서기 능력자를 중심으로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것 같다.

 

7. 할당제는 제도의 유형으로 볼 때 제일 무식한 제도 유형이다. 한마디로 설계자는 편리하고, 수용자에게는 불편하고 황당한 제도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편법과 이상 행동을 유발한다.

 

할당제 같은 소리 좀 그만하자.

 

글쓴이 홍기표(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