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이야기

개시호

林 山 2022. 1. 12. 14:58

시간이 날 때마다 지리산을 찾아가는 것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야생화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21년 광복절을 이틀 앞두고 지리산에 올랐다.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가에는 때마침 노란 개시호꽃이 피어 있었다. 개시호를 여기서 만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개시호'는 시호(柴胡)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못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호(柴胡)는 '섶'을 뜻하는 '柴(시)'와 성씨의 하나인 '胡(호)'의 합성어다. '섶'은 잎이 붙어 있는 땔나무나 잡목의 잔가지, 잡풀 따위를 말린 땔나무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개시호(정선 함백산, 2022. 6. 11)

시호에 얽힌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호(胡)씨 성을 가진 부자집에 머슴이 한 명 있었다. 어느 날 머슴이 갑자기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하면서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병에 걸렸다. 주인은 머슴이 아파 일을 못하게 되자 나가서 병이 낫거든 돌아오라고 하며 내쫓았다. 쫓겨난 머슴은 이리저리 헤매다가 배가 고파 연못가에 난 풀을 뜯어먹었다. 그 풀을 뜯어먹자마자 머슴의 병은 신기하게도 씻은 듯이 나았고, 머슴은 다시 부자집으로 들어갔다. 몇 년 후 주인의 아들이 머슴과 똑같은 병을 앓게 되었다. 이름난 의원도 아들의 병을 고치지 못하자 주인은 머슴에게 병이 낫게 된 경위를 물었다. 머슴이 연못가의 풀을 먹고 나았다고 하자 주인은 당장 그 풀을 뜯어다가 아들에게 먹였다. 그랬더니 아들도 금새 병이 나았다. 이후 이 풀은 주인의 성인 '호(胡)'와 땔감으로 쓰이는 풀이라는 뜻의 '시(柴)'를 합해 시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이야기다.

 

개시호(정선 함백산, 2022. 6. 11)

개시호는 산형화목 산형과 시호속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학명은 부플레우룸 롱기라디아툼 투르크자니노(Bupleurum longiradiatum Turcz.)이다. 영어명은 빅리프 쏘로왁스(Bigleaf Thorowax), 중국명은 따예차이후(大叶柴胡)이다. 일어명은 오오호타루사이코(オオホタルサイコ) 또는 야세호타루사이코(ヤセホタルサイコ), 사이슈우사이코(サイシュウサイコ), 도카치사이코(トカチサイコ)이다. 사이슈우(サイシュウ)는 제주(済州)라는 뜻이다. 개시호를 큰시호, 대엽시호(大葉柴胡)라고도 한다. 꽃말은 '치유', '당신을 치유하고 싶다'이다. 

 

개시호는 한반도를 비롯해서 일본, 중국 동북지방, 몽골, 러시아 극동지방 등지에 분포한다. 한반도에서는 제주, 전남 지리산, 전북 덕유산과 남덕유산, 경남, 강원 백석산, 경기 가평, 황해, 평북 등지에 야생한다. 깊은 산의 나무밑이나 초생지에 난다.

 

개시호(정선 함백산, 2022. 6. 11)

개시호의 키는 40~150cm 정도이다. 줄기는 전체에 털이 없으며 곧게 자라고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진다. 잎은 이열로 어긋난다. 근생엽은 엽병이 길며 넓은 피침형 또는 긴 타원형이다. 줄기잎은 엽병이 없으며 밑부분이 이저로서 원줄기를 얼싸안고, 끝이 예두 또는 둔두이다. 경엽의 길이는 5~15cm, 폭 2~3.5cm이고 구두창 같으며 쐐기모양의 긴타원모양 또는 피침형이다. 뒷면은 약간 흰빛이 돌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황색으로 7~8월에 겹우산모양꽃차례로 핀다. 윗부분의 잎겨드랑이와 줄기 또는 가지끝에서 5~10개의 꽃자루가 갈라지고 10~15개의 꽃이 달린다. 낱꽃은 좁쌀만하다. 총포는 긴타원모양으로 1~2개이며, 소총포는 5개로서 달걀모양 또는 피침형이다. 꽃부리는 소형이고, 꽃잎은 긴타원모양으로 5개이며 안으로 굽는다. 열매는 분과이다. 분과는 긴 타원형이며 길이 3.5~4mm로서 능선이 있다.

 

개시호(지리산 노고단, 2021. 8. 13)

개시호는 어린순을 나물로 먹는다. 개시호의 어린순을 고급 산채로 간주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시호속 식물은 성질이 몹시 차기에 몸이 냉한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는 '개시호의 근(根)을 시호(柴胡)라 하며 약용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전국 한의과대학 본초학 교과서에는 시호(학명 Bupleurum falcatum L.)만을 쓴다고 나와 있다. 중국에서는 시호(북시호, 학명 Bupleurum chinense DC.)와 협엽시호(狹葉柴胡, 남시호, 학명 Bupleurum scorzonerifolium Willd,)를 쓴다. 한의사들은 임상에서 개시호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시호는 화해퇴열(和解退熱), 소간해울(疏肝解鬱), 승거양기(升擧陽氣)의 효능이 있어 감모발열(感冒發熱), 한열왕래(寒熱往來, 갑자기 춥다가 갑자기 열이 나는 증상), 흉만협통(胸滿脇痛), 구고이롱(口苦耳聾), 두통, 목현(目眩), 하리탈항(下痢脫肛), 월경부조(月經不調), 자궁하수(子宮下垂), 말라리아 등을 치료한다. 시호는 한의사들의 임상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매우 중요한 한약재이다. 

 

개시호(지리산 노고단, 2021. 8. 13)

개시호의 유사종에는 참시호, 시호(Chinese Thorowax, 북시호), 섬시호(Ulleungdo hare's ear), 등대시호(Big-bract hare's ear) 등이 있다. 참시호[Bupleurum falcatum var. scorzonerifolium (Willd.) Ledeb.]는 황해도 장연, 서흥, 함경북도 백두산, 혜산진 등지에 분포한다. 원줄기는 곧게 자라는데 가늘고 딱딱하다. 위쪽에서 가지가 심하게 퍼진다. 시호는 근경이 굵으며 극히 짧고 뿌리가 약간 굵어진다. 줄기가 가늘고 딱딱하며 윗부분에서 약간의 가지를 친다. 줄기잎의 밑부분이 줄기를 감싸지 않는다. 개시호보다 키가 작다. 꽃도 개시호보다 적은 5~10개가 달린다. 섬시호(Bupleurum latissimum Nakai)는 잎이 밑부분에서 뭉쳐나고 어긋나며 긴 잎자루가 안쪽의 잎을 감싼다. 울릉도에 분포하며, 키는 60cm 정도이다. 등대시호(Bupleurum euphorbioides Nakai)는 고산지대 및 깊은 산속 초원에서 자란다. 키는 8~12cm이다. 국내에만 자생하는 특산 식물이다. 꽃 모양이 특이하다.

 

2022. 1. 12. 林 山. 2022.9.26.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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