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해직교사들이 원상회복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수요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노태우 독재정권은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을 부르짖으면서 교육 민주화를 요구하던 전교조 소속 교사들을 대량 해고하는 초유의 불법 탄압을 자행했다.
김영삼 정부는 전교조 교사들의 불법 해고를 인정하고 특별 채용 형식으로 복직시켰고, 김대중 정부는 전교조 해직교사들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그러나, 해직교사들의 명예와 불법 해고 기간 동안의 체불 임금, 호봉, 퇴직금 등의 원상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대로 된 나라, 제대로 된 정부라면 불법 해고가 인정되면 명예와 원상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 이어 자칭 촛불정부라고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도 전교조 해직교사 원상회복 특별법조차 제정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배신 무능정권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 참사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또, 전교조 해직교사들의 명예 회복과 원상회복 특별법 제정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배신 무능정권에 거짓말쟁이 정권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싸다.
1989년 해직된 양운신 전 전교조 조합원은 전교조 해직교사 원상회복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수요시위를 213일째 이어가고 있다. 양운신 선생은 '정치인의 언어, 서민의 언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서 1인 수요시위 현장에서 느낀 단상을 밝혔다.
정치인의 언어, 서민의 언어 - 1989년 전교조 해직교사 양운신
지나가던 노인이 경기도고양교육지원청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내가 시위하느라 붙잡고 서 있는 피켓의 문구를 유심히 본다. ‘33년을 기다렸다! 1989년 노태우 정권의 국가폭력으로 해직된 1,600여 해직교사 원상회복시켜라!’
나도 공직 생활을 했소. 이제 나이가 80을 넘었지만 이런 거는 문재인이 해결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니오? 아니, 노태우 때 잘못한 것을 여태까지 바로잡지도 않고 그냥 두는 게 말이 돼요? 자기가 과거 잘못된 것들 바로잡는다며? 자기가 적폐 청산 그런 거 잘 한다며! 그런데 왜 안 해? 문재인이 나쁜 놈이여!
여기까지 들으면서는 ‘아, 이 양반 모처럼 바른말 하네!’하고 속으론 감탄을 하고 있었다. 문재인이 안 하면? 그러면 이거 윤석열 보고 해결하라는 거 아니오? 왜 윤석열에게 부담을 주는 거요? 나라에 돈도 없어요! 문재인, 이 ◯◯◯놈이 다 해처먹어가지고 지금 돈이 한 푼도 없어요. 거기다 뭐? 검수 무슨 박?(‘검수완박’이 금방 생각이 안 난 듯.) 그런 거까지 한다고 지금 나라를 완전히 망쳐 놓고 있는 놈이여, 문재인 이 ◯◯◯놈이!
이번엔 어, 어, 이건 너무 나가는데! 하고 속으로 놀라는 참이었다. 시원스럽게 육두문자를 쏟아냈는데 차마 지면에 다 옮기지는 못하겠다.
하여간, 문재인한테 빨리 이거 해결하라고 하시오. 아저씨, 잘하시오! 하고는 이내 가던 길을 간다. 순식간에 반전이 일어난 것이었다.
서민의 언어는 뜻이 명확히 드러난다. 모호함이 없다. 앞의 노인이 한 말의 요지는 ‘문재인은 나쁜 놈이다. 나라에 돈 없다. 윤석열에게 부담 주지 마라!’로 누가 봐도 분명하다. 국어를 정확하게 구사한다.
그런데 문재인은 대통령이면서도 국어를 잘 못 하는지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몰라 기자들도 정치평론가도 국회의원들도 이런 뜻이다. 아니다 저런 뜻이다. 지상파 방송에서는 전문가네 교수네 기자네 시사평론가네 국회의원입네 불러놓고 해석하느라 바쁘다.
아니면 대통령이 일부러 무슨 말인지 헷갈리게 말한 건가? 그러면 그건 진짜 국민 우롱하는 거다. 앞의 노인의 말처럼 진짜 나쁜 놈이 맞다. 해직교사 원상회복 시켜준다고 했다더니, 그런 적 없다. ‘알았다’고 했지. ‘검토하겠다’고 했지. ‘노력하겠다’고 했지. 이런 식이다.
우리도 문재인 발언이 무슨 뜻인지 전문가에게 해석을 의뢰했어야 했나? 대학까지 나온 공직자가 대통령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전문가에게 물으러 간다? 그러면 나라 꼴이 뭐가 되겠는가? ‘이게 나라냐?’ 소리가 나올 것이다.
어제 ㅎ신문 1면 기사다. ‘검찰 수사권 분리’ 법안에 대해 “개혁은 검경의 입장을 떠나 국민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국회의 입법도 그래야 한다.”고 문 대통령이 밝혔다고 한다. 이런 말은 누구나 한다. 실제로 여야 정치인 누구 할 것 없이 다 국민을 위해서 입법을 한다고 하고 국민을 위해서 입법을 막는다고 하지 내 주머니를 위해서 무엇을 한다고 하는 발언은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하나 마나 한 소리를 대통령은 한 것이다.
대통령은 전문가(정치평론가 등)가 해석해줘야 아는 표현 쓰지 말고 기수분리[‘기수분리’(기소권, 수사권 분리)라고 부르자] 찬성, 아니면 반대, 아니면 모름, 아니면 말 안 하겠음! 나중에 말하겠음, 이렇게 했으면 국민이 단번에 알아들을 텐데.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본인은 알까? 알면 무슨 소용인가? 듣는 국민이 모르는데! 입법도 국민을 위해서 해야 한다고 대통령 자신이 말하지 않았는가? 대통령의 발언도 국민을 위해, 국민이 알아들을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닌가.
무슨 뜻인지 잘 드러나지 않게 말해야 유능한 정치인으로 평가하는 잘못된 경향이 있는 듯하다. 무슨 뜻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 말, 그런 것을 이른바 ‘정치적 언어’라고들 한다. ‘시적 언어’라는 말은 있다. 국어사전에 찾아보니 ‘정치적 책임’,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말은 있어도 ‘정치적 언어’라는 말은 없다. ‘말’이라고 하면 천박한가? 그래서인지 ‘말’ 대신 고상하게 ‘수사’를 써서 ‘정치적 수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수사’도 천박한지 ‘정치적 레토릭(retoric)’이라고도 한다. 말장난에 불과한 소리다.
박종철 열사가 사망했을 때의 얘기다. 당시 국가기관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20대 건강한 청년이 ‘탁’ 소리를 듣더니 바로 죽어버렸다? 소가 들으면 웃을 일이다. 당시, 언어학자가 언어 현상과 실제 현상이 다르면 병든 사회라고 일갈하던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지금도 병든 사회다. 정치인의 말과 실제 현상은 엄청나게 다르므로.
검수완박이란 조어에는 횡포 혹은 갑질을 느낄 소지가 있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는 말을 하는 민족이다. 동냥은 못 줘도 쪽박은 깨지 말아야 한다는 속담도 있다. 우리 민족은 정이 많은 민족이다. 그런데 검수‘완박’, 무엇을 ‘완전 박탈’한다면 너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하는 동정심을 발동시킨다.
법안을 추진하는 당은 작명을 잘 했어야 했다. ‘검수완박’이라고 하니 찬성이 38.2%, 검찰의 기소권 및 수사권 분리라고 물으니 46.3%가 찬성한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여론조사기관, 뉴스토마토 조사. ㅎ신문, 4월 18일 보도). 기자가(?) 검수완박이라 작명하기 전에 ‘기수분리’라는 조어를 제공했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야기가 잠시 샛길로 빠졌다. 서두에 나오는 80대 시민의 말이 계속 머리에 남아 생각에 잠겼다. 그 시민의 말 전반부는 찬성이지만 후반부는 공감할 수가 없다. 입맛이 쓰다. 우리는 명확한 말로 시민에게 다가가자. 조속한 원상회복을 위해서도 그럴 필요가 있다.
지난주에 보았던 나무들이 한층 더 푸르다. 그러나 아직도 싹을 제대로 틔우지 못한 나뭇가지들도 많이 눈에 띈다. 더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2022. 4. 20.
글쓴이 교육민주화동지회(교민동) 양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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