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하순 무렵 성남에 있는 신구대식물원을 찾았다. 진달래과 등대꽃속의 등대꽃(Enkioanthus campanulatus Nicholson)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곳에는 엉뚱한 애기말발도리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었다. 권위 있는 식물원일수록 표지판을 제대로 잘 세워 놓아야 한다. 초보자들이 표지판만 보고 애기말발도리를 등대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애기말발도리'에서 접두어 '애기'는 어린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낮은 키 식물이라는 뜻이다. '말발도리'는 이 식물의 열매가 험하고 울퉁불퉁한 노면으로부터 말발굽을 보호하기 위해 덧대는 U자형의 쇳조각인 편자(蹄鐵)를 닮아서 붙은 이름이다.
애기말발도리는 장미목 범의귀과 말발도리속의 낙엽 활엽 관목이다. 학명은 도이치아 그라실리스(Deutzia gracilis)이다. 속명 '도이치아(Deutzia)'는 18세기 네덜란드의 법학자이자 은행가, 식물학자인 요한 반 데르 도이츠(Johann van der Deutz, 1743~1784)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도이츠는 스웨덴 식물학자 칼 페테르 툰베리(Carl Peter Thunberg, 1743~1828)의 아시아 여행에 자금을 지원했다. 툰베리는 도이츠의 후원으로 아프리카 희망봉, 인도네시아 자바, 일본을 여행했고, 그곳에서 많은 식물을 발견했다. 툰베리는 도이치아속(Deutzia)을 만들어 후원자에게 경의를 표했다. 종소명 '그라실리스(gracilis)'는 '날씬한, 가느다란, 가냘픈, 호리호리한'을 뜻하는 라틴어 형용사이다.
애기말발도리의 영어명은 슬렌더 도이치아 또는 슬렌더 듀치어(slender deutzia)이다. '슬렌더(slender)'는 '날씬한, 호리호리한, 가느다란'의 뜻이다. '도이치아(deutzia)'는 '식물 말발도리속'을 말한다. 일어명은 히메우츠기(ヒメウツギ, ひめうつぎ, 姫卯木)이다. '히메(姫)'는 명사 앞에 붙어서 '작고 귀여움'의 뜻을 나타낸다. '우츠기(卯木)'는 '병꽃나무'다. 중국명은 시겅서우슈(细梗溲疏)이다. '시겅(细梗)'은 '줄기가 가늘다'는 뜻이다. '서우슈(溲疏)'는 '말발도리'를 말한다. 애기말발도리를 가냘픈말발도리, 각시말발도리라고도 한다. 꽃말은 '애교'이다.
애기말발도리의 원산지는 일본이다. 일본과 타이완에 븐포한다. 일본 고유종으로 혼슈(本州)의 간토(関東) 지방 서부, 시코쿠(四国), 규슈(九州) 등지에 분포한다. 한강토(조선반도)에서는 전국의 여러 식물원에서 전시하고 있다.
애기말발도리의 키는 1.5m 정도까지 자란다. 줄기는 잘게 가지를 쳐서 덤불을 이룬다. 줄기 껍질은 회갈색(灰褐色)이며, 오래되면 세로로 찢어지고, 벗겨져 떨어진다. 새 가지는 약간 갈색을 띤 녹색이며 털이 없다. 잎은 마주나고 긴 타원 모양(長楕圓形) 또는 긴 달걀 모양(狭卵形), 바소꼴(披針形)이며, 길이 4∼8.5cm, 너비 1.5~3cm이다. 잎 끝은 길고 뾰족하며, 밑 부분은 넓은 쐐기 모양 또는 원형이다. 잎 앞면에는 별털(星毛)이 있고, 가장자리에는 잔 톱니가 있다. 뒷면은 담록색(淡緑色)으로 별털이 없다. 잎자루는 길이 3∼8mm이고, 털은 없다.
꽃은 5∼6월에 흰색으로 핀다. 가지 끝에서 좁은 원추꽃차례를 이루며 여러 개의 꽃이 달린다. 꽃자루는 가늘고, 길이는 2~6mm이며 털은 없다. 꽃받침통(萼筒)은 지름 2mm로 반구형(半球形) 또는 종 모양이고, 5개로 갈라지며, 별털이 드문드문 난다. 꽃잎은 5개로 광도피침형(廣倒披針形)이고, 길이는 0.7~1cm이며, 털은 없다. 수술은 10개이고, 수술대(花糸)는 길이가 긴 것은 7~9mm, 짧은 것은 4mm 정도이다. 수술대 양쪽에는 돌기 같은 좁은 날개가 있다. 암술대는 3∼4개이고, 길이 7~9mm이며 이생(離生, 하나로 된 것이 분리되는 것)한다.
열매는 삭과(蒴果)이다. 삭과는 둥글고 별털이 있으며, 길이는 3~4mm이다. 열매 끝에는 암술대가 남아 있다. 종자는 10월에 익는다. 씨앗은 갈색이고, 길이는 0.8mm이며, 좁은 타원형이다. 한쪽에는 막 모양의 날개가 있다.
애기말발도리는 아담하고 꽃이 아름다워서 정원에 관상용으로 심는다. 화분에 심어 분재로 감상하거나 꽃꽂이 소재로도 이용한다. 열매는 민간에서 피부염과 가려움증을 치료하기 위하여 목욕할 때 사용한다.
애기말발도리(姫卯木)의 유사종에는 아오히메우츠기(アオヒメウツギ)와 나치우츠기(ナチウツギ, 那智卯木), 잡종에는 애기말발도리 '로세아' 등이 있다. 아오히메우츠기[Deutzia gracilis Siebold et Zucc. f. nagurae (Makino) Sugim.]는 꽃이 보다 작다. 일본 혼슈의 시냇가 바위틈에서 드물게 자란다. 나치우츠기(Deutzia gracilis Siebold et Zucc. var. pauciflora Sugim.)는 3~5개의 꽃이 총상화서(総状花序)를 이룬다. 혼슈 와카야마 현(和歌山県) 나치야마(那智山)에 드물게 분포한다. 애기말발도리 '로세아'(Deutzia × rosea, Deutzia gracilis 'Rosea')는 꽃이 분홍색이다.
2022. 7. 30. 林 山
'야생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린내풀 '내 이름을 기억하세요' (0) | 2022.08.03 |
---|---|
말발도리 '애교' (0) | 2022.08.01 |
인가목(人伽木) '당신을 노래합니다' (2) | 2022.07.29 |
갈기조팝나무 '노련' (0) | 2022.07.28 |
다정큼나무 '친밀' (1) | 2022.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