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의학 건강 이야기

반세기를 두통에 시달려온 어느 할머니 이야기

林 山 2004. 11. 4. 14:37

70대 할머니가 내원했다. 수십년간 편두통을 앓고 있는데 도무지 낫지를 않는다고 한다. 편두통이 발작하면 완고한 통증이 항상 오른쪽 머리에 고정되어 나타난다고 하였다. 편두통에 시달린지 얼마나 됐느냐고 물으니 젊었을 때부터 앓아왔다고 한다. 그동안 병원과 한의원을 번갈아 가면서 치료를 해도 도무지 차도가 없다는 것이다.

문진을 해보니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돼서 위장약을 복용한다고 했다. 그리고 잠을 잘 때는 자다 깨다 해서 깊이 잠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혈압은 100에 70으로 비교적 낮은 편이었으며 땀은 잘 안나는 체질이었다. 체형은 약간 비만형으로 늘 어지러움증이 있다고 호소하였다. 얼마전에는 무거운 물건을 들다가 허리를 삐끗했다고 한다.

할머니가 편두통에 시달리게 된 사연은 이렇다. 그러니까 6.25 내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할머니의 나이는 당시 꽃다운 열여덟 살이었다. 때는 한겨울.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한다. 당시 충주에 살던 할머니는 삼촌과 함께 피란을 갔다가 돌아오던 길이었다. 음성 소이쯤 왔을 때 미군 트럭이 갑자기 서는 것이었다. 트럭에서 미군병사가 내려오더니 뭐라고 뭐라고 그러면서(할머니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음) 잡아끌고 가려고 하더란다. 할머니는 그 미군이 자신을 끌고가서 겁탈하려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할머니와 그녀의 삼촌은 미군앞에서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군은 막무가내로 할머니를 끌고가서 트럭에 태우려고 하였다. 그녀의 머리속에는 온갖 무서운 생각들이 떠올랐다. 미군들은 한국여성들만 보면 닥치는 대로 강간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였다. 또 미군들에게 납치당한 한국여성들이 집단적으로 강간을 당하고는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혼혈아를 낳았다는 끔찍한 소문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해야만 했다. 그 때 문득 머리속을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래! 혼절한 척 하자.'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그녀는 '악!' 하고 외마디 비명소리를 지르고는 눈덮힌 땅바닥에 쓰러져 기절한 척 했다. 미군병사는 군화발로 그녀를 툭툭 찼다. 그녀가 기절한 것인지 확인을 하기 위해서....... 할머니는 숨도 안 쉬고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다. 이에 놀란 그녀의 삼촌은 미군병사의 바지가랑이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었다.

미군병사는 김샜다는 듯 엠원 소총을 집어들더니 개머리판으로 할머니의 머리통을 내리치고는 트럭을 타고 떠났다. 할머니는 머리가 산산조각나는 듯 한 극심한 통증을 느낌과 동시에 정신을 잃었다. 개머리판에 찍힌 머리는 살이 찢어지고 피가 콸콸 쏟아졌다. 삼촌은 축 늘어진 그녀를 들쳐 업고 수십 리 눈길을 걸어서 고향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할머니는 집에 돌아온 지 3일만에 정신이 돌아왔다고 한다. 가까스로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이다. 집안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죽은 줄 알았다고 한다.

그 이후 할머니는 수십 년 동안 편두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수많은 병원과 한의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내 한의원에 오게 된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할머니의 육신의 상처는 아물었지만 마음의 상처는 매우 깊은 것이었다. 이 할머니에게 침과 약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녀의 한맺힌 사연을 들어줌으로써 가슴속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치료책이었다. 남편에게도 하지 못 했던 사연을 풀어놓자 할머니는 속이 다 시원한 모양이었다. 이야기를 다 마친 할머니의 눈가에는 어느덧 이슬이 맺혀 있었다.

전쟁은 힘없는 노약자와 여성들에게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준다. 이 할머니도 동족끼리 피흘리며 싸워야 했던 전쟁의 희생자였던 것이다. 그녀의 유일한 죄는 지지리도 못난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났다는 것 밖에는 없다. 당시 이 땅에 들어온 미군들은 민간인들과 여성들을 대상으로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여성들을 강간하고 심지어는 죄없는 민간인들을 학살하기도 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함께 공감하며, 때로는 미군들의 만행에 함께 공분도 하면서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나서 할머니의 가슴속에 꽁꽁 뭉친 것들을 풀어헤쳐 주는 침치료를 해드렸다. 한의원에 다녀가시고 나서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 할머니를 만났다. 나를 만나자마자 그녀는 오래동안 앓아왔던 편두통이 말끔히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럴 때는 내가 한의사의 길을 걷고 있는 보람을 느낀다.

진료를 하다보면 때때로 침이나 약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닫곤 한다. 그것은 환자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의사는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 죽음조차도 행복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의사야말로 최상의 의사가 아닐까.

 

200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