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환자를 볼 때 침으로 치료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것은 침의 치료효과가 매우 신속하고, 비용이 저렴하며, 무엇보다도 간단하게 시술할 수 있는 장점때문이다. 나는 응급상황에 대비해서 항상 침을 가지고 다닌다. 등산을 할 때도 내 지갑속에는 늘 침이 들어있다. 지금까지 내가 침으로 치료해 준 급한 환자는 부지기수다. 그래서 침에 얽힌 일화가 참 많다.
7년 전인가. 현재 전북 진안에서 공중보건한의사로 근무하는 고등학교 후배 김규민 선생과 지리산을 갔을 때의 일이다. 계곡미가 아름다운 칠선계곡으로 해서 천왕봉을 올랐는데, 거기서 원광보건전문대학생들을 만났다. 대학생들은 정상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점심을 마친 학생들과 일행이 되어 중봉, 하봉으로 해서 민박집이 있는 추성리로 하산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하봉을 막 지났을 무렵 한 학생이 갑자기 식은 땀을 흘리며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내가 달려가서 증상을 살피자 그는 극심한 복통과 구토감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맥을 잡으니 토사곽란증이 확실했다. 양방명으로는 위경련이라고 하는 것이다. 토사곽란은 잘못하면 생명까지 잃을 수 있는 급증중에서도 급증에 속한다. 나는 지체없이 침을 꺼내어 사관(四關)을 질렀다. 그러자 심호흡을 몇 차례 하더니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지켜본 학생들은 마치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신기해 하면서 구세주라도 만난 듯 나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아마 이 학생은 천왕봉에서 점심을 먹을 때 너무 급하게 먹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기(氣)가 꽉 막혀버린 것이다. 기가 막혀 내려가야 할 것이 내려가지 못하고 위로 솟구쳐 오르니 이것이 바로 구토다. 또 위장의 기가 통하지 않아서 극심한 복통이 오는 것이다. 사관은 바로 이럴 때 쓰는 침법이다. 만일 내가 그자리에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날도 어둡고 더구나 깊은 산중에서........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추성리 민박집으로 돌아와서는 학생들로부터 저녁밥은 물론 고기안주에다가 술까지 대접을 아주 잘 받았다.
또 몇 년 전 일이다. 어느날 자정이 가까와서 집에 들어오니 옆집 아주머니가 쓰러졌다는 것이 아닌가! 내가 가서 보니 아주머니는 극심한 통증을 못이겨 이를 악물고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왼쪽 반신이 말초부터 오그라들어오고 있었다. 맥을 보니 분명 중기(中氣)증이었다. 역시 시간을 다투는 급증이었다.
그런데 가지고 있는 침이 네 대밖에 없지 않은가! 우선 급한대로 사관을 지르고 뜸으로 치료를 하기로 하였다. 중기증은 전신에 많은 압통점이 나타나는 법이다. 그래서 압통점마다 일일이 뜸을 다 떴다. 네 시간 정도 뜸을 떴을까 체간에서부터 말초쪽으로 마비가 서서히 풀리면서 통증도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마침내 아주머니가 깊은 한숨을 '휴'하고 내쉬면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일어나 앉았다. 치료를 할 때는 몰랐는데 나의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아주머니와 가족들로부터 나는 분수에 넘치는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 그날 이후 아주머니는 내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명의라고 생각하고 있다. 중기증은 임상에서 거의 다루어보기 힘든 병인데 나는 아주머니 덕분에 그러한 증상을 치료할 수 있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중기증을 자신있게 치료할 수 있다.
지난해 늦가을이다. 집안에 제사가 있어 시골집에 들렀더니 어머니가 갑자기 왼쪽으로 마비가 오면서 쓰러지셨다. 나는 순간 뇌출혈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급히 중풍칠처혈과 회양구침혈에다가 침을 놓았다. 밤이 늦은지라 이튿날 아침에 바로 세명대 한의대부속 충주한방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CT를 찍어보니 뇌간부위에 1입방센티미터 크기의 뇌출혈이 보였다. 뇌간부위는 수술을 할 수도 없는 부위라 지혈이 안되면 생명이 위태롭다. 천만다행으로 그 상태에서 출혈이 멎어 있었다. 주치의도 어떻게 출혈이 멎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응급처치로 침을 놓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현재 완전히 회복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왼쪽 팔과 다리에 약간의 저림증세가 남아 있지만 내가 계속 치료를 하고 있으므로 곧 완치가 될 것이다. 어머니를 내 손으로 치료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도 다행이다. 어머니도 아들손에 치료를 받는 것이 마음든든한 모양이다. 늦게나마 한의학을 공부한 보람을 느낀다.
의술이란 잘 쓰면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지만 잘못 쓰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사람을 살리는 참된 인술을 펼치는 한의사가 되기를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
2002년 7월 28일
자료제공-장수건강마을 충주 임종헌한의원 http://cafe.daum.net/leemsan-ga
'한의학 의학 건강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철 대표적인 보양음식 삼계탕 (0) | 2005.05.10 |
---|---|
올 겨울 독감 탈출기 (0) | 2005.03.17 |
건강생활을 위한 알기쉬운 민간요법 (0) | 2004.12.24 |
감기에 들리면 이렇게 하세요! (0) | 2004.11.15 |
반세기를 두통에 시달려온 어느 할머니 이야기 (0) | 2004.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