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 10시경 충북수상스키협회 권혁용 회장의 안내로 탄금대교 근처에 있는 충주수상스키협회 피민철 회장이 운영하는 바지선을 방문했다. 피민철 충주수상스키협회 회장이 조종하는 모터보트를 타고 탄금호 일대를 돌아보았다.
모터보트에서 필자
충북수상스키협회에서 보유하고 있는 모터보트는 가격이 약 1억8천만이라고 한다. 시속 약 4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고 하니 매우 빠른 편이다. 체감속도는 훨씬 더 빠르다. 탄금호의 푸르른 물살을 가르면서 보트는 달린다.
탄금대교 건설현장
우륵대교 건설현장
탄금호를 가로지르는 탄금대교와 우륵대교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우륵대교(1,320m)는 가금면 창동리와 금가면 오석리, 탄금대교(580m)는 가금면 창동리와 칠금동을 연결한다. 특수공법인 엑스트라도즈드(Extradosed)교 방식으로 건설되는 우륵대교의 교각은 가야금을 연주하는 손, 케이블은 가야금의 12현을 형상화해 조형미와 상징성을 고루 갖춘 교량이다. 탄금대교는 기존의 공법보다 친환경적인 공법인 ‘강재 폰툰을 이용한 교량용 우물통 기초 시공법’으로 건설되고 있다.
대문산 탄금대공원 열두대
대문산(大門山) 탄금대(彈琴臺) 열두대를 밑에서 올려다보기는 처음이다. 열두대는 탄금대공원에서 가장 전망이 뛰어난 곳이다. 남한강과 달천(達川)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탄금대는 경관이 수려한 유서깊은 고적지로 충청북도 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탄금대에는 악성 우륵(于勒)의 전설이 전해 온다.
신라에 귀화한 가야국의 우륵은 그 명성이 진흥왕에게까지 알려졌다. 어느 날 하림궁(河臨宮)에서 우륵이 새로 지은 곡을 연주하자 이에 감동한 진흥왕은 그를 충주에 살도록 하였다. 우륵은 그를 보호하던 계고(階古)에게는 가야금, 법지(法知)에게는 노래, 만덕(萬德)에게는 춤을 가르치며 여가 있을 때마다 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타며 살았다. 탄금대라는 명칭도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는 데에서 유래한다.
탄금대는 또 임진왜란 당시 신립(申砬) 장군이 배수진을 쳐서 패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군이 부산 동래를 거쳐 한양을 향해 파죽지세로 북상했다. 선조 25년 4월 조정은 신립을 삼도순변사에 임명했다. 유성룡(柳成龍)의 막하에 들어간 신립은 부장 김여물(金汝岉) 및 8십여 명의 군관과 군사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전혀 없는 백성 수백 명을 모병하여 충주로 떠났다.
충주에 도착한 신립은 부장 몇 사람을 거느리고 조령(鳥嶺)으로 내려가 지형을 살폈다. 이 때 경상도 상주에서 왜의 대군에게 패한 순변사 이일(李鎰)이 조령으로 쫓겨왔다. 김여물 등은 관군의 수가 절대적 열세임을 들어 지형이 험한 조령에서 잠복해서 왜군을 습격하자고 건의하였다. 그러나 신립은 탄금대로 물러나 배수진을 치고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4월 28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이 대대적으로 공격해오자 배수진을 친 관군은 중과부적으로 포위되어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관군을 믿고 피난을 하지 않았던 충주의 사민(士民)과 관속들은 왜군에게 많은 희생을 당하였다. 관군이 섬멸되자 신립은 김여물, 박안민(朴安民) 등과 함께 탄금대 열두대에서 남한강물에 투신하여 순절하였다. 이때 신립의 나이 47세였다. 훗날 조정에서는 그에게 영의정을 추증하고 시호를 충장(忠將)이라 하였다.
1981년 10월 충주시민들은 뜻을 모아 탄금대공원 열두대에 신립을 기리는 순절비를 세웠다.
계명산과 지등산
저 계명산은 남한강 프르른 물에 몸을 던지는 신립 장군을 묵묵히 지켜 보았으리....... 계명산 뒤로 지등산이 솟아 있다. 탄금호의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보트 뒤로 하얀 물보라가 일어난다.
청금산장과 회화나무 보호수
보트는 창동리 청금산장 앞을 지난다. 장어구이와 민물매운탕으로 유명한 집이다. 나도 가끔 장어구이를 먹으러 저 집을 찾곤 한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탄금호를 바라보는 운치가 제법 좋다. 청금산장 마당에는 300년 이상 묵었다는 회화나무(충주시 보호수)가 있다. 청금산장 앞 공터에는 또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원창동리5층석탑(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8호)과 중원창동리약사여래입상(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271호)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창동리 마애불상
청금산장에서 상류쪽으로 100m쯤 떨어진 바위절벽에는 고려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중원창동마애불(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76호)이 있다. 높이 약 6m의 마애불은 동남쪽을 향해서 탄금호를 굽어보고 있다. 그런데 마애불의 보존상태가 상당히 불량하다. 문화재를 이렇게 보존해서야 되겠는가!
지역주민들 사이에는 저 마애불상은 임진왜란 당시 신립 장군이 자신의 자화상을 새겨 넣은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탄금호 2013 세계조정선수권대회 경기장 예정지
중앙탑공원 앞 탄금호에는 호수축제의 일환으로 열리는 핀수영대회 경기장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다. 바로 이곳에 2013년 세계조정선수권대회 경기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탄금호 뒤로 한남금북부용자주단맥의 평풍산(屛風山, 395.6m)에서 분기한 한남금북부용자주장미단맥이 을궁산(乙宮山, 394m)과 절골산(341m)을 지나 장미산(薔薇山, 336.9m)으로 이어진다.
충북수상스키협회 권혁용 회장과 함께
충주수상스키협회 피민철 회장과 함께
민들레한의원 김대규 원장, 선한의원 박병옥 원장과 함께
뱃머리를 돌려 바지선으로 돌아왔다. 마침 수상스키를 타러 온 민들레한의원 김대규 원장과 선한의원 박병옥 원장을 만났다. 두 사람은 스키, 승마, 골프, 수상스키 등 만능 스포츠맨이다. 권혁용 회장, 피민철 회장, 김대규 원장, 박병옥 원장과 기념사진도 한 장씩 찍었다.
바지선을 떠나 권혁용 회장과 함께 한림디자인고등학교 앞에 있는 병천순대집에서 순대국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권 회장은 중앙탑공원 호반에 설치했던 충북수상스키협회 바지선을 충주시가 세계조정선수권대회 때문에 철거시켰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충주시가 외부 자본을 끌어들여 충주호나 탄금호 주변에 대규모 리조트 건설을 추진중이나 수익성이 없어 관심을 보이는 업체가 없다는 말도 전했다.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행하려면 먼저 충주시민들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해야 하지 않을까?
바쁜 주말에 보트로 탄금호를 일주하게 해준 권혁용 회장과 피민철 회장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11년 8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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