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클래식에서 헤비메탈

Il est trop tard(너무 늦었어)- Georges Moustaki(조르쥬 무스타키)

林 山 2005. 5. 3. 10:25

 

 

Pendant que je dormais(빵당 끄쥬 도르메) 내가 잠자던 동안
Pendant que je rêvais(빵당 끄쥬 레베) 내가 꿈꾸던 동안
Les aiguilles ont tourné(레 제기유 종 뚜르네) 시계 바늘은 돌아갔지
Il est trop tard(엘레 트로 따르) 너무 늦었어
Mon enfance est si loin(모 낭팡스 에 씨 루욍) 내 어린 시절은 아득히 멀리 있고
Il est déjà demain(일 레 데자 드맹) 이제는 벌써 내일이야
Passe passe le temps(빠스 빠스 르 땅) 시간은 흘러 흘러가고
il n'y en a plus pour très longtemps(일 리어나 쁠뤼 뿌르 트레 롱땅)

아주 오래동안이라는 것은 더 이상 없어


Pendant que je t'aimais(빵당 끄쥬 떼메) 내가 너를 사랑하던 동안
Pendant que je t'avais(빵당 끄쥬 따베) 내가 너와 함께 있던 동안
L'amour s'en est allé(라무르 싸네 딸레) 사랑은 가버렸지
Il est trop tard(일레 트로 따르) 너무 늦었어
Tu étais si jolie(뛰 에떼 씨 죨리) 너는 무척이나 예뻤지
Je suis seul dans mon lit(즈 쉬 쇨 당 몽 리) 나는 홀로 내 침대 속에 있네
Passe passe le temps(빠스 빠스 르 땅) 시간은 흘러 흘러가고
il n'y en a plus pour très longtemps(일리어나 쁠뤼 뿌르 트레 롱땅)

아주 오래동안 이라는 것은 더 이상 없어

 

Pendant que je chantais(빵당 끄쥬 샹떼) 내가 노래하던 동안
Ma chère liberté(마 쉐르 리베르떼) 나의 소중한 자유를
D'autres l'ont enchaînée(도트르 롱 앙샹떼)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사슬로 묶어버렸지
Il est trop tard(일레 트로 따르) 너무 늦었어
Certains se sont battus(세르뗑 스 송 바뛰) 어떤 사람들은 투쟁했어
Moi, je n'ai jamais su(무아 주네 자메 쉬) 나, 나는 전혀 몰랐지
Passe passe le temps(빠스 빠스 르 땅) 시간은 흘러 흘러가고
il n'y en a plus pour très longtemps(일 리 어나 쁠뤼 뿌르 트레 롱땅)

아주 오래동안 이라는 것은 더 이상 없어


Pourtant je vis toujours(빵당 쥬 비 뚜즈르)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고
Pourtant je fais l'amour(빵당 쥬 페 라무르) 그렇지만 나는 사랑을 나누고
M'arrive même de chanter(마리브 멤므 드 샹떼) 노래를 부르는 일조차 있지
Sur ma guitare(쉬르 마 기타르) 내 기타를 치며
Pour l'enfant que j'étais(뿌르 랑팡 끄 줴떼) 지난 날 내 어린 시절을 위해
Pour l'enfant que j'ai fait(뿌르 랑팡 끄 줴 페) 내 아이를 위해
Passe passe le temps(빠쓰 빠쓰 르땅) 시간은 흘러 흘러가고
il n'y en a plus pour très longtemps(일리 어나 쁠뤼 뿌르 트레 롱땅)

아주 오래동안 이라는 것은 더 이상 없어


Pendant que je chantais(빵당 끄 즈 샹떼) 내가 노래하던 동안
Pendant que je t'aimais(빵당 끄 즈 떼메) 내가 너를 사랑하던 동안
Pendant que je rêvais(빵당 끄 즈 레베) 내가 꿈꾸던 동안
Il était encore temps(일레떼 앙꼬르 땅) 그때는 아직 늦지 않았지

 

Georges Moustaki(조르쥬 무스타키)

 

그리스 국적의 조르쥬 무스타키(Georges Moustaki, Yussef Mustacchi)는 1934년 5월 3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한 가수 겸 작곡가이다. 수백 편에 이르는 그의 낭만적인 노래들은 시적인 리듬과 감동적인 단순성으로 유명하다. 그는 에디트 피아프(Édith Piaf, Edith Giovanna Gassion, 1915~1963)가 부른 'Milord'와 달리다(Dalida, 1933~1987)가 부른 'Gigi l'amoroso' 등 두 사람을 위해 많은 노래들을 작곡했다. 그외 브리짓 폰테인(Brigitte Fontaine, 1939~), 허버트 파가니(Herbert Pagani, 1944~), 프랑스 갈(France Gall, 1947~), 신디 다니엘(Cindy Daniel, 1986~) 등에게도 곡을 주었다.

 

그리스 국적의 유태인이었던 무스타키의 부모는 그리스의 코르푸(Corfu) 섬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망명했다. 그의 부모는 다양한 국적의 공동체들이 함께 살아가던 국제적인 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 프랑스 서적을 취급하는 큰 서점을 갖고 있었다. 무스타키의 부모는 프랑스 문화에 매우 친화적이어서 그도 누이들을 따라 프랑스 학교에 다니면서 프랑스어를 배우고 익혔다. 

 

10대가 되면서 무스타키는 기타에 흥미를 갖고 마침내 기타를 마스터했다. 그는 13살 때 처음으로 프랑스 여행을 하고 돌아와 그 나라에 대한 동경을 떨치지 못한다. 프랑스 대학 1차 시험에 합격하여 두 번째 프랑스를 방문하고 돌아온 그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결국 누나가 살고 있던 프랑스행을 허락받는다.

 

1951년 15세의 나이로 파리로 간 무스타키는 매형의 서점 일을 도와주는 한편 시인들의 모임에 자주 참여하면서 문학과 음악에 대한 관심을 갖는 한편 가수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매형의 서점에서는 매일 시인과 가수들이 모여 시낭송회와 문학토론회가 열렸기 때문에 무스타키는 자연스럽게 시를 쓰고 멜로디를 붙이는 작업을 하게 된다. 

 

1953년 당시 신인이었던 레미 클라리(후에 자크 드와이앙으로 이름을 바꿈)에게 곡을 주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그럼에도 가난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어 싸구려 호텔 바텐더 등으로 일하다 20세에 한 결혼도 곧 실패하고 만다. 방랑벽이 많았던 그는 작가인 친구를 따라 벨기에의 브뤼셀로 여행을 떠났다가 프랑스로 돌아올 여비가 없어 기타를 메고 술집을 전전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여기서 한 술집과 계약을 하고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은 그가 샹송가수로 태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로 돌아온 무스타키는 몽파르나스의 클럽에서 무명가수로 활동을 시작한다. 그의 노래가 점차 알려지면서 1957년 무스타키는 샹송의 전설 에디트 피아프를 만나게 된다. 무스타키와 피아프는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무스타키는 피아프를 위해 한 시대를 풍미한 샹송 '밀로르'와 '에덴 블루스', '집시와 소녀' 등을 작곡한다. 피아프가 이 노래들을 부르자 무스타키는 드디어 작사가와 작곡가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무스타키는 우연히 고급 캬바레에서 당시 유명한 음유시인 조르쥬 브라쌍(Georges Brassens, 1921~1981)의 노래를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 이후 브라쌍은 무스타키의 음악 인생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무스타키는 브라쌍을 흠모한 나머지 이름도 조르쥬라고 짓는다. 무스타키는 브라쌍 같은 노래하는 음유시인이 되리라 결심한다. 

 

1967년 무스타키가 피아 콜롬보에게 준 곡이 크게 히트하는 행운이 찾아온다. 그가 '나의 고독(Ma Solitude)'을 처음 부른 것은 1968년이다. 이집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프랑스로 온 무스타키는 이방인들 틈에서 외롭게 살아왔기에 고독은 그의 몸에 배어 있는 것이었다. 그는 고독과 함께라면 결코 외롭지 않다고 노래함으로써 현대인들의 고독을 달래 주었다. 그가 부른 노래는 2년 이상 히트 차트에 오르는 대성공을 거둔다. 이때부터 무스타키는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명성을 얻게 된다. 

 

이후 무스타키는 우수가 깃든 감성적 노래들을 발표할 때마다 큰 인기를 얻는 행운이 따른다. 그의 대표곡에는 'Ma Solitude' 외에 'll Est Trop Tard(너무 늦었어요)', 'Le Meteque(이방인) 등이 있다. 인간적 고독과 연민을 시적인 샹송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아온 무스타키는 전세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1995년 무스타키는 내한공연을 통해서 한국의 팬들에게도 감미로운 그의 샹송을 선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