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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 소견서-이조은

林 山 2010. 6. 15. 12:11

한양대학교 철학과에 재학중인 이조은 군은 입영일인 2010년 6월 15일 오늘 저녁 7시 반 마포구 '전쟁없는 세상' 사무실에서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다. 이조은 군은 평화주의를 신념으로 그동안 시민사회단체 운동가로 활동해 왔다.  

 

미리 발표한 '병역거부 소견서'에서 이조은 군은 자신의 도덕과 신념에 따라  병역거부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선택에서 오는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 선택에 따라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선택에 책임을 지겠다. 감옥행이 될지 대체복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있을 재판결과를 받아들임으로써 사회규범에 존중을 표하겠다. 사회적 규탄이 있다면 그것 또한 내 선택에 대한 책임으로서 감내하겠다'는 말로 자신의 의견을 내보였다.

 

이조은 군은 자신의 병역거부를 두고 '나는 내가 선택한 도덕이 사회윤리가 변하고, 법이 바뀌는 데 영향을 끼치길 원한다. 내가 선택한 병역거부의 의미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법제화를 통해 병역거부자가 더는 감옥에 가지 않는 사회가 오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병역거부 소견서'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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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 소견서 
  

이 순간을 오래 기다려 왔다. 처음 고민을 했던 시점이 2004년이니 6년을 고민하고 기다려왔다. 복합적인 감정이다. 설레고, 두렵고, 기쁘다. 오늘 이 순간부터 나는 병역을 거부한다. 별 특출할 것 없는 삶이지만, 내 삶의 궤적이 바로 병역거부의 이유라 생각한다. 내가 어떻게 나 자신을 만들어 왔는지를 보이는 것이 병역거부의 이유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라 믿는다.

 

'인간은 다 똥 싸는 부처다.' 출가하신 아버지께서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다. 무난했던 삶은 이 한 마디에서부터 변했다. 내가 알던 아버지는 깨어 있는 지성인이셨고, 인간적으로도 존경스런 분이셨다. 그분의 영향을 받아 전공으로 철학과를 선택했을 만큼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치던 그였기에, 그가 의미심장한 한 마디의 화두만 던져두고 사라졌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인간은 다 똥 싸는 부처라니 대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말인가. 당시에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남겨진 가족들을 생각할 때 그가 무책임하다고 생각했고, 어머니와 동생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면 그가 미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감정이 가라앉자 궁금해졌다. 그가 남긴 말은 대체 어떤 의미인가. 그는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그를 이해하고 싶었다. 결국, 그의 마지막 한 마디는 내 삶의 화두가 됐고, 그 화두로 말미암아 내 가치관은 근본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그가 남겨둔 책들을 탐독하기 시작했고, 사회과학·철학이 대부분이었던 그의 책들은 내 가치관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책은 내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 얼마나 나태했는지, 내가 믿고 있던 많은 것들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알게 해줬다. 개안이 될 정도로 의식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20여 년간 주조된 내 모습을 백지부터 다시 만들어가고 싶다는 욕구 하나만은 확실해졌다. 이 욕구에 따라 사회적 관습과 통념, 도덕, 규범을 당연시했던 나를 거부하고, 나 스스로 가치관과 세계관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목표는 확실해졌지만, 모든 것이 막연했다. 구체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과 관계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이제부터 그 환경과 관계를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구체적인 환경과 관계를 만들어가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 시작으로 시민단체 활동을 시작했다. 병역거부 운동, 나아가 평화운동을 하는 단체를 선택했는데, 단체에서 접할 수 있는 경험이 내 고민과 깊이 맞닿아 있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병역의무’에 대한 기존 가치관도 회의해야 할 범주에 들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시민단체 활동은 나에게 큰 행운이자 멋진 기회였다. 연대 활동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분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과의 관계는 그 자체로 자극이었다. 넓은 범위의 평화단체, 인권단체, 조금 더 구체적 범위에서 여성단체, 퀴어단체, 문화단체 등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과의 만남은 내 가치관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기제가 됐다. 그들과의 관계 덕분에 평화주의자, 페미니스트를 지향하는 나를 만들 수 있었다.

 

후천적인 노력으로 나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믿었던 그 시절, 우습게도 나는 나 자신을 실험해 보기 위해 달라이 라마를 롤모델로 삼기도 했다. 그의 말이 철학적 맥락의 논리에서는 엄밀해 보이지 않았지만,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면을 꿰뚫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연민을 점차 확장해서 가족, 인간, 동물, 생물, 모든 존재까지 연민하려는 시도, 나와 다른 존재와의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를 부단히도 했고, 한 때 충만한 감정에 가득 차기도 했다. 만약 그 당시 소견서를 썼다면 자비, 사랑, 연민 같은 단어로 점철된 느끼한 병역거부 소견서가 완성됐을 것이다.


하지만, 어설프게나마 만들어가던 내 가치관은 쉬이 흔들렸다. 생활에 여유가 없거나 몸이 고될 때는 내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웠다. 분명히 내 가치관은 분열적이고 모순적이었다. 나 자신을 추스르기도 어렵고, 나 자신을 연민하는 것도 버거웠다. 삶의 상당 부분이 저열하고 나태했다. 이런 나태하고 저열한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며 자책할 때도 있고, 나태와 저열의 윤리적 금기에 반발하며 긍정하기도 했다. 이런 분열적 모습 자체를 연민하고 보듬어 주려 때도 있었고,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생각을 태업할 때도 있었다.

 

이런 분열에도 나는 병역거부를 선택한다. 분열하기 때문에 나는 병역거부를 선택한다. 결국, 완벽하고 이상적인 분열하지 않는 나에 도달할 수 없을 거라고 느낀다. 하지만, 그것을 향해 노력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분열의 순간들 사이에서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은 내가 지향하는 가치를 드러내고 끊임없이 수정하며 발전시키는 일이다. 완벽해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자신을 안고 끊임없이 선택하는 실존적 모습이 내가 믿고 있는 유일한 도덕체계다.


내가 신뢰하는 도덕체계에서 선택한 가치들은 병역을 거부했을 때에 비로소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평화주의, 페미니스트와 같이 내가 선택한 가치들은 대부분 군대와 상충한다. 이는 결국, 만약 내가 군대에 간다면 군대에 적응하기 위해 내 모든 도덕의식을 정지시켜야 한다는 얘기고, 그것은 곧 인간으로서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난 도덕적으로 존재하려는 것이 곧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이라 믿는다. 물론 나는 때때로 도덕의식 없이 행동하고. 똥 싸는 기계처럼 존재해 있을 때도 잦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의 더 많은 부분을 도덕적으로 구성하고 싶고, 더 인간적으로 살고 싶다.


따라서 나는 병역거부를 선택한다. 개인이 실존적으로 선택한 개인의 행동원칙과 규범을 도덕이라 하고, 이러한 도덕 중 보편화 된 도덕을 윤리라고 전제했을 때, 나는 사회윤리에 대한 순응이 아닌 개인적 도덕으로서 실존을 선택하겠다.

 

나아가 내 도덕적 가치가 공리적 가치로 윤리화되길 희망한다. 윤리는 윤리에 반하는 개인의 도덕들에 의해 변화할 수밖에 없다. 윤리가 문서화 된 것이 법이라 했을 때, 법 또한 사회윤리의 변화에 따라 바뀔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선택한 도덕이 사회윤리가 변하고, 법이 바뀌는 데 영향을 끼치길 원한다. 내가 선택한 병역거부의 의미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법제화를 통해 병역거부자가 더는 감옥에 가지 않는 사회가 오길 소망한다.


이런 나 개인의 도덕에서 나는 병역거부를 선택하며, 선택에서 오는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겠다. 다만, 내 선택에 오해가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내 의견을 듣고 군대 간 사람은 인간도 아니냐는 반박이 있을 수 있다. 나는 국가를 지킨다는 신념을 지니고 입대한 이들도, 혹은 그 외의 이유로 입대한 이들도 충분히 도덕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의무를 거부했으니 한국을 떠나라는 반박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나에게 폭력적일 수 있는 강제성을 거부한 것일 뿐이지, 이 사회시스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난 한국이라는 공동체에서의 삶을 선택했고, 내 선택에 따라 이 사회의 규범을 존중한다. 내 선택에 따라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선택에 책임을 지겠다. 감옥행이 될지 대체복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있을 재판결과를 받아들임으로써 사회규범에 존중을 표하겠다. 사회적 규탄이 있다면 그것 또한 내 선택에 대한 책임으로서 감내하겠다.


지금까지 내가 언급한 얘기들은 인간사에서 새로운 것일 리 없다는 것을 안다. 나의 언어는 내가 읽은 책, 나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의 언어와 같이 누군가의 말을 빌려 온 것일 뿐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이 소견서가 일종의 감상문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작업이 무의미하다 생각지 않는다. 창작이 무에서 유로의 생성이 아닌, 소재의 차이를 드러내는 관계적 개념이라면 편집자가 곧 창작가다. 난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감상문이라도 잘 쓰고 싶었고, 삶의 구체적인 순간에서 기존의 철학적 재료를 내 방식으로 채택, 선택했다. 불완전한 편집이고, 분열적인 감상이지만 나는 내 삶을 선택했고, 책임을 지려한다.

 

나는 여전히 ‘인간은 똥 싸는 부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의 도덕적 선택을 존중하며, 삶의 실존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을 지지한다. 내 선택 또한 존중받고 지지받는 날이 오길 바란다. 똥 싸는 부처인 우리 인간의 주체적 선택을 억압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누구나 자유롭고 불완전한 선택을 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2010년 6월 14일

이  조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