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민족신앙의 성직자 무당(巫堂)을 위하여

林 山 2013. 5. 4. 10:34

며칠 전 밤 9시 50분에 방영된 EBS의 '[대한민국화해프로젝트 용서] 무당이 된 형사, 김학래와 아버지'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 프로였다.

 

줄거리는 이렇다. 강원 김씨 4대 종손으로 향교에서 제사 책임을 맡아온 아버지 김남순에게는 집안의 기둥이자 자랑스런 아들인 22년 경력의 강력계 형사 김학래가 있다. 고향 정선에서 소문난 효자였던 아들은 어느 날 갑자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도무지 낫지도 않고, 원인도 알 수 없었다.

 

아들은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이 신병(神病)임을 깨닫고 무당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무당이 되지 않으면 둘째 아들이 신병을 앓을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아들은 마침내 아버지에게 경찰을 그만두고 무당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자신을 결코 거역한 적이 없었던 착한 아들이 무당이 되겠다는 말을 듣자 아버지는 차라리 자기를 죽이고 가라며 아들 차 앞에 드러누웠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출했다. 그리고 그는 아내, 아이들과도 헤어져 연고가 없는 대구에 자리를 잡고 내림굿을 받은 뒤 결국 무당이 되었다.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아버지는 아들과의 인연을 끊은 채 살아가고 있다. 무당이 된 아들 얘기가 문중에 알려질까봐 아버지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후 3년. 애초에 없는 자식으로 쳤던 아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들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무당의 길을 걷게 된 것에 대해 용서를 받고 싶었다. 내내 아들의 마음 속에 걸렸던 것은 바로 아버지였다. 그는 팔순을 앞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눈물로써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드디어 아버지와 아들은 머나먼 네팔 땅에서 만났다. 부자는 네팔 고산지대를 함께 여행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열었다. 네팔의 무당문화를 접한 아버지는 아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무당으로서의 아들을...... 

 

나는 여기서 생각해본다. 아버지는 왜 그토록 아들이 무당이 되는 것을 반대했을까? 그것은 무당에 대한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지 않다. 무당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크라이스트교(기독교)의 카톨릭 신부(神父)와 불교 승려(僧侶), 크라이스트교의 개신교 목사(牧師)와 다르지 않다. 즉 성직인 것이다. 나는 무당=신부=승려=목사라고 본다.

 

참고로..... 바이블에 신부와 목사라는 말은 없다. 가까운 예로 일본어 바이블에도 신부, 목사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신부나 목사가 아니라 목자(牧者, 즉 양치기(Shepherd)로 나온다. 목자는 목회를 이끄는 사람이다. 신부와 목사는 교단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 낸 명칭이다. 바이블에 충실한 것으로 알려진 여호와의 증인 교단은 목사와 신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무당=신부=승려=목사임에도 무당들은 왜 스스로를 떳떳하게 여기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무당의 사회적 지위가 낮고 사회적 편견이 심하기 때문이다. 무당의 사회적 지위가 높고 명예롭다면 과연 아버지는 아들이 무당이 되는 것을 반대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국무(國巫) 또는 도무(都巫)라는 기록이 있다. 국무는 나라와 왕실의 안녕과 복을 빌던 중요한 무당이었다. 주부군현의 관청 소재지에는 사직단(社稷壇), 향교(鄕校), 성황사(城隍祠), 여단(厲壇)을 두었다. 이 가운데 사직단과 성황사, 여단은 무당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만 해도 무당은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무당의 몰락은 일본의 민족문화 말살정책, 서구열강과 함께 들어온 크라이스트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민족신앙을 일부 수용한 불교와는 달리 제국주의를 등에 업은 크라이스트교는 전투적으로 무속을 미신으로 폄하하고 매도했다. 이처럼 민족신앙과 무당의 몰락은 외세의 침략으로 얼룩진 한반도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무당이 몰락하게 된 또 하나의 원인은 이들에게 공통의 경전이 없다는 것이다. 크라이스트교의 바이블이나, 불교의 불경, 이슬람교의 코란 같은..... 그리고 무당들이 모시는 공통의 신이 없다. 칠성, 김유신, 남이, 이순신, 최영, 관우, 예수, 석가 등 제각각이다. 심지어 맥아더까지 모시는 무당도 있다.

 

한편, 불교는 승가대학, 크라이스트교는 신학대학이 있어 성직자들을 배출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종교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고 정교한 교리를 개발하고 있다. 반면에 신내림과 내림굿에 의해 배출되는 무당은 굿에만 치중함으로써 기복신앙에만 매몰되어 있다. 따라서 무당들에게는 인류 보편적인 교리도 없고 체계화된 학문도 없다.           

 

민족신앙인 무속이 당당한 종교로써 인정을 받고, 무당이 신부나 승려와 같은 성직자로서 대우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신(神)을 하나로 통일하라. 기독교의 여호와나 이슬람교의 알라처럼 말이다. 지금 세계는 유일신이 대세다.

2. 무당대학을 세워라. 대학에서 무당을 배출하고, 신앙을 학문적으로 정립하며, 교리를 정교화해야 한다.

3. 경전을 만들어라. 경전이 없거나 교리가 엉성한 경전을 가진 종교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4. 무당 독신제를 채택하라. 부양해야 할 아내와 자식이 있으면 타락할 소지가 많다.

5. 단일종단을 만들어라. 전세계 단일교단을 유지하고 있는 카톨릭을 보면 그 이유가 자명해진다.

6. 굿을 현대화하라. 현대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종교의식이 좀더 세련될 필요가 있다.

7. 정교한 교리를 만들어라. 사랑, 자비처럼 인류의 보편타당한 교리를 내세워야 한다.

8. 신앙을 상징하는 교명(敎名)을 정하라.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처럼 말이다. 무교(巫敎)는 어떨까?

9. 무당 스스로 권위와 자존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크라이스트교의 신부나 목사처럼.....

 

만약 나에게 신내림이 내린다면 나는 기꺼이 운명을 받아들이고 무당 성직자의 길을 갈 것이다. 신내림은 곧 성직자가 되라는 천지신명의 명령이기에.....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전국의 무당들에게 성원을 보낸다.

 

2013.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