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닭발편육과 하이네켄 맥주 그리고 4.29 재보궐선거

林 山 2015. 5. 1. 11:29

닭발편육과 옻순 그리고 하이네켄 맥주


아파트 근처에 있는 연수종합상가에 들렀더니 닭발편육을 파는 식당이 있었다. 돼지머리편육은 들어봤지만 닭발편육은 생전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머지 식당으로 들어가 주인장에게 닭발편육이 어떤 음식이냐고 물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경북 상주 출신이라고 했다. 닭발편육은 재료만 다를 뿐 돼지머리편육과 똑같은 제법으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상주에서는 돼지머리편육보다 닭발편육을 더 즐겨 먹는다고 했다. 간도 되어 있고, 맛도 매콤해서 술안주로도 좋다는 것이었다. 


가격은 kg당 26,000원이라고 했다. 1kg은 너무 많을 것 같아서 500g만 포장해달래서 집으로 돌아오니 데친 옻순과 초고추장이 상에 차려져 있었다. 닭발편육과 옻순을 안주로 하이네켄 캔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안주와 술이 안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잘 어울렸다. 


TV 에서는 마침 4.29 국회의원 보궐선거 개표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서울 관악을, 광주 서구을, 인천 서구강화군, 성남 중원구 등 네 곳에서 광주만 제외하고 새누리당 후보들이 모두 압승을 거뒀다.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관악을구에서 출마한 무소속 정동영 후보의 당선 여부였다. 


정동영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개표 초반부터 깨졌다. 새누리당은 대승했고, 새정치민주연합(새정련)은 참패했다. 유권자들은 '여당인 듯, 여당 아닌, 여당 같은' 야당 새정련을 심판한 것이다. 문재인 새정련 대표와 친노 세력은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그런데! 4.29 재보궐선거에서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헌법재판소의 해산 판결로 통합진보당(통진당)은 해산되었다. 헌재의 판결로 성남시 중원구의 김미희, 광주 서구을의 오병윤, 서울 관악을구의 이상규 의원 등 통진당 지역구 3명과 이재연, 이석기 등 비례대표 2명이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4.29 재보궐선거는 헌재의 통진당 해산 판결로 인해 치뤄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4.29 재보궐선거는 헌재 판결의 정당성 여부가 재보궐선거의 핵심 이슈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여당인 새누리당도 제1야당인 새정련도 언론도 헌재 판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모르쇠로 일관했다. 


정당 해산 당사자인 통진당 세력도 헌재 판결을 이슈화하는데 실패했다. 통진당 세력은 인천 서구강화군에서는 후보조차 내지 않았고, 서울 관악을에서 출마한 이상규 후보와 광주 서을구의 조남일 후보는 중도 사퇴하고 말았다. 헌재 판결의 부당성을 강조하면서 투쟁하겠다던 정치 세력치고는 너무나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성남 중원구의 김미희 후보만 '새누리당의 종북놀음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과 국회의원직 박탈에 대한 부당성에 대해 너무 나 잘 알고 있는 중원구민을 우롱하는 행위'라고 강조하고, '4.29 재보궐선거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을 심판하고 빼앗긴 권리를 반드시 되찾아 주실 것을 확신한다'라면서 이슈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성남 중원구의 유권자들은 김미희 후보를 외면했고, 결국 낙선했다.  


4.29 재보궐선거에서 헌재 판결은 유권자 판결로 그 정당성을 확보했다. 유권자들은 통진당 주체사상파(주사파)들에게 정치적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다. 헌재 판결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던 새정련 등 야당도 심판을 받았다. 새누리당의 압승은 대안 야당의 부재로 얻은 것이라 별 의미도 없다. 


정동영 후보는 비록 낙선했지만 광주에서 천정배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야권 재편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정, 천을 중심으로 야권 재편 시도가 향후 정국의 뇌관이 될 수도 있다. 


정, 천의 야권 개편 선언이 태풍의 눈이 될 것인가? 아니면 찻잔 안의 태풍으로 끝날 것인가? 


4.29 재보궐선거에서 큰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총평을 하자면 유권자는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질 수 밖에 없고, 또 자신의 수준에 맞는 대표자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말이 언제나 진리라는 것이다. 


한번 노예가 되면 그 신세를 벗어나기 어렵다. 각성하지 않는 노예는 영원히 노예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더욱 더 불쌍한 것은 자신이 노예이면서도 노예라는 병식이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헛똑똑이들 천지다.


2015.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