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순례기

고흥 외나로도 봉래산을 찾아서

林 山 2017. 3. 7. 12:31

전라남도(全羅南道) 고흥군(高興郡) 봉래면(蓬萊面) 외나로도(外羅老島)의 한가운데에 솟아 있는 봉래산(蓬萊山, 410m)은 보춘화(報春花)인 복수초(福壽草)가 가장 먼저 피어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외나로도는 또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과 인공위성 발사대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고흥반도에서 나로1대교를 건너 내나로도로 들어간 다음 다시 나로2대교를 건너면 외나로도이다. 봉래산을 오르려면 보통 예내리 무선통신중계소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것이 편리하다. 봉래1봉과 봉래2봉을 거쳐 봉래산 제일봉에 오른 다음 시름재로 해서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을 지나 원점 회귀하면 된다.  


봉래산 주능선


봉래산에서 바라본 내나로도


나무와 편백나무 숲


삼나무 숲


편백나무 숲


복수초


복수초


복수초


봉래산에는 생달나무, 후박나무, 사스레피나무, 소사나무, 개서어나무, 고로쇠나무, 황칠나무, 감탕나무, 해송 등이 자생하고 있다. 특히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시대 조선총독부가 봉래산 북동쪽의 예내리 계곡에 조성한 약 3만 그루의 아름드리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은 유명하다. 


삼나무 꽃가루는 알레르기를 유발한다. 삼나무가 많은 일본에서는 약 30%의 일본인이 아토피 피부염, 알레르기 비염과 천식, 알레르기성 결막염 등으로 고통받는다고 한다. 반대로 편백나무는 아토피 피부염과 알레르기 질환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 삼나무 숲에서 아토피에 걸리면 편백나무 숲에서 치유하면 되겠다.   


봉래산은 산 전체가 야생화 복수초 군락지이다. 해마다 2월이 되면 온 산에 노란 복수초가 지천으로 피어 산길 나그네를 반갑게 맞아 준다. 복수초의 학명은 Adonis amurensis Regel et Radde이다. 복수초는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비교적 높은 산 숲속에서 자란다. 2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해서 4월까지 초까지 피는 복수초는 행복과 장수, 부유를 상징한다. 꽃말은 '영원한 행복'이다.


복수초는 이른 봄 눈과 얼음을 뚫고 꽃이 핀다고 하여 '얼음새꽃' 또는 '눈새기꽃', 중부지방에서는 ‘복풀’이라고도 부른다. 또, 새해 들어 가장 일찍 꽃이 핀다고 해서 원일초(元日草)라고도 한다.


봉래산


예내지와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


봉래산


봉수대


봉래산 정상에서 필자


봉래1봉에서는 고흥반도와 내나로도, 사양도, 애도, 수락도 등 다도해의 섬들이 잘 조망된다. 고흥반도의 팔영산, 마복산, 천등산 등 고흥반도의 산들도 아스라이 보인다. 또, 다도해의 지죽도, 시산도, 소록도, 거금도, 손죽도, 소거문도, 낭도, 개도, 돌산도, 금오도, 안도 등도 보인다. 남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풍경이 아기자기해서 좋다. 


봉래산 정상에는 조선시대의 봉수대가 있다. 봉래산 봉수대는 북쪽의 남산 봉수대로부터 신호를 받아서 마복산 봉수대나 소포 봉수대로 봉화를 주고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봉래산 정상에서는 북동쪽 예내리(曳內里) 계곡의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 예내지,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예내리에는 내초(內草), 교동(校洞), 창포(滄浦), 예내(曳內), 예당(禮堂) 등의 마을이 있다. 내초는 조선시대에 도양목관에 속하는 목장지였다. 옛 이름은 작은좀새다. 예내는 1914년 행정구역 폐합시 예하, 내동 두 마을의 머리글자를 따서 예내리로 하였다. 예당은 원래 목장지대로 옛날부터 말을 숭상하여 마신(馬神)을 모신다. 마을 입구의 수호신을 모시는 상당(上堂)에는 사기로 된 한쌍의 말을 봉안했는데, 약 5백여 년 전부터 매년 정초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이 들어서 있는 마을이 바로 예당이다.  


장포산


마치산


봉래산 동쪽에는 마치산(馬峙山, 380m), 남쪽에는 장포산(長砲山, 360m)이 솟아 있다. 마치산 동쪽 해안에는 인공위성 발사대가 있고, 바로 앞바다에는 대항도가 떠 있다. 장포산 서쪽 해안에는 외초리(外草里) 염포항(鹽浦港)이 있다.  


외초리에는 외초(外草), 상초(相草), 염포(鹽浦) 등의 마을이 있다. 외초는 엣날에 큰좀새라고 하였다. 마을 뒤에는 덤바위가 우뚝 솟아 있고, 마을 앞에는 3백여 살 정도의 아름드리 곰솔(해송)이 숲을 이루고 있다. 상초는 방조제를 세우기 전 썰물일 때는 육지, 밀물일 때는 섬이 되었기 때문에 섬좀새라 불렀다. 1956년 분동할 때 노원숙(盧源淑)이 외초와 서로 마주 본다는 뜻에서 상초라고 명명했다. 마을 뒤편은 기암절벽으로 경치가 아름답다. 


염포는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놓고 바닷물을 고아 소금을 만들던 곳으로 앵금이, 안동네, 개안 등 세 마을이 있었다. 옛날에는 가마솥으로 바닷물을 고았다고 해서 가마제, 소금을 구웠다고 해서 소금개 또는 송개라고도 불렀다. 마을 뒤에 있는 바위 절벽은 부채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채바위라 부른다. 외초리 최남단 바로 앞에는 꼭두머리처럼 생긴 곡두여, 탕건처럼 생긴 섬 탕건여 등이 있다. 


고흥의 외나로도 봉래산은 한번 다녀가려면 거리도 멀거니와 시간 맞추기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봉래산에 와서 봄처녀 복수초꽃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복수초의 꽃말이 '영원한 행복'이다. 복수초 꽃말처럼 살아가자. 


2017.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