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밀턴 케이지 주니어(John Cage, 1912~1992)는 미국의 아방가르드 작곡가로서 전후 전위음악의 주도적 인물이었다. 그는 또 철학자, 시인, 음악이론가, 출판인, 아마추어 세균학자, 뛰어난 버섯 수집가이기도 했다. 케이지는 20세기의 대표적인 세 사람의 혁신적 작곡가인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 헨리 코웰(Henry Cowell), 에드가르 바레즈(Edgard Varèse)에게 배웠으며 정통 음악 교육도 받았다. 기회음악(Chance music, 우연성 음악)과 전자음악의 선구자였던 케이지는 특수 악기 사용에도 놀라운 재능이 있었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동양의 선(禪) 사상에 기본을 둔 것이다. 그는 20세기 미국의 작곡가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는 평을 받았다.
케이지는 현대무용의 발전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특히 안무가이자 무용가인 머스 커닝엄(Merce Cunningham)과의 콤비로 유명하다. 시애틀에서 교편을 잡는 동안(1936~1938) 머스 커닝엄의 도움을 받아서 타악기 합주를 위한 작품과 무용음악을 시도했다.
기회음악 또는 우연성 음악은 작곡이나 연주에 우연성을 가미한 음악을 말한다. 프랑스어로는 무지크 알레아토리(musique aleatorie)라고 한다. 불확정성의 음악, 인디터미넌시(indeterminacy)라고도 하며, 존 케이지와 그의 동조자들이 창안한 전위음악의 일종이다. 케이지는 너무나 추상화되고 정밀하게 구성된 예술음악에 대한 반발로 무대 위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음식을 먹거나 피아노를 부수고 스피커로써 소음을 내기도 하는 일종의 ‘쇼’ 같은 행동을 한다. 또한 피아노곡 '4분 33초'(1954)에서는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앞에 4분 33초 동안만 앉아 있다가 퇴장한다. 그 동안에 우연히 들려온 외계의 소리와 자기의 고동이 음악이라는 것이다. 케이지의 이러한 견해는 유럽 작곡계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
작곡이나 연주에 우연성을 가미하는 것은 즉흥연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옛날부터 존재해왔다. 바로크 시대의 통주저음이나 고전파 시대의 마침꼴(카덴차)도 그 예다. 그러나 케이지는 동양철학의 역(易)이나 선(禪) 사상을 바탕으로 우연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도입, 연주 중에 악기를 조율하거나 객석의 소리를 받아들이는 등 과거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음악을 만들어냈다.
케이지는 1951년 역 사상을 사용하여 <변화의 음악(music of changes)>을 작곡하였고, 그후 작곡과 연주의 양 차원에 불확실한 요소를 가지는 작품을 다수 발표하였다. 우연성의 음악은 모턴 펠드먼(Morton Feldman), 얼 브라운(Earl Brown) 등 미국 새 세대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1954년 10월에 열린 도나우에싱겐 음악제에서 케이지의 음악과 사상이 소개되어 P. 불레즈(Pierre Boulez), 칼하인즈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등의 작곡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슈톡하우젠은 연주자들에게 어느 부분만을 자유로운 템포로 연주시킨다든가 몇 개의 단편만을 작곡해 두고 연주자가 그 가운데에서 무작위로 단편(斷片)을 추려 연결시키고 연주하게 했다. 케이지의 견해를 자기 작품에 채택한 이후 이 방법은 일반화되었다.
케이지는 그의 '조작된 피아노'(prepared piano : 새로운 음향 효과를 얻기 위해 피아노 줄 위에 물체를 올려놓음으로써 피아노를 '조작'함)를 위한 작품도 연주했던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튜더(David Tudor)의 영향을 받았다. 케이지는 또한 서양 음악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시도와 개성적인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테이프 녹음기 및 재생기, 라디오를 사용하는 시도를 했다.
케이지는 동양철학으로 관심을 돌려 음악을 만드는 모든 활동들은 단일한 자연과정의 부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의 목표는 청중들이 그들의 귀를 여과기가 아닌 깔때기로 사용하여 작곡가가 선택한 음들만이 아닌 모든 음향 현상을 취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에서 그는 그의 음악에 불확정성의 원칙을 도입했다.
무작위성을 보장해주는 여러 장치를 사용함으로써 연주자의 개인적 취향의 요소들을 일체 배제했다. 즉 악기의 종류와 연주자의 수를 구체화하지 않았고, 음들과 전체 작품의 길이를 제한하지 않았으며 부정확한 기보를 사용했고, 또한 중국의 이칭에게 착안한 것과 같은 무작위의 방법에 의해 사건들의 연속을 결정했다. 그의 후기 작품으로 가면 이러한 자유를 다른 매체에도 확산시켜 행위예술 <HPSCHD(1969)>에서는 현란한 조명과 슬라이드 사진을 비추고 분장한 연주자를 등장시켰으며 청중들로 하여금 악기들 사이로 돌아다니게 했다.
케이지의 대표적인 작품들로는 <4'33"(4분 33초)>(1952, 이 작품에서는 4분 33초 동안 연주자가 연주를 하지 않음), <가상의 경치 4번(Imaginary Landscape No.4)>(1951, 주파수를 임의로 맞춘 라디오 12대와 24명의 연주자, 지휘자를 위한 작품), <소나타와 간주곡(Sonatas and Interludes)>(1946~48, 조작된 피아노를 위한 작품), <폰타나 믹스(Fontana Mix)>(1958, 프로그램된 일련의 투명 카드가 있어 이것을 겹쳐놓으면 전자 음향의 무작위 선별을 위한 그래프가 주어짐), 에릭 사티 음악에 대한 '인상'을 그린 <싸구려 모방(Cheap Imitation)>(1969) 등이 있다.
케이지는 <침묵(Silence)>(1961), <M : Writings '67~72')>(1973) 등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으며 여러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는 얼 브라운(Earle Brown) , 모턴 펠드먼(Morton Feldman) 등의 유명 작곡가들과 수많은 젊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4' 33">는 존 케이지가 1952년에 작곡한 피아노를 위한 작품이다. 3악장으로 된 이 곡은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 되었다. 초연은 1952년 8월 29일 뉴욕 우드스탁 타운 홀에서 데이비드 튜더(David Tudor)의 피아노 연주로 이뤄졌다.
존 케이지(John Cage) - 4'33"(4분 33초)
William Marx
원래 이 곡은 피아노로 연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어떤 악기들의 조합으로도 가능하다. 케이지는 4분 33초라고 지정해놓은 시간 동안 어떤 악기도 연주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이러한 지시는 매우 특별해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악기든지 소리를 낼 것을 기대하나, 정작 우리의 귀에 들어오는 것은 ‘침묵’이기 때문이다. 결국 청중들이 듣게 되는 것은 〈4분 33초〉라는 침묵의 시간 동안 공간에서 발생하는 잡다한 부스러기 소리, 청중들의 미세한 움직임이 내는 소리 등 우리가 음악의 소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소음의 조합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존 케이지의 유명한 〈4분 33초〉가 의도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제목인 〈4분 33초〉는 이 작품이 연주(침묵)되는 시간을 말한다. 그리고 또한 이 작품이 처음 공개 연주를 가졌을 때 연주된 총 길이이기도 했고 그것이 다시 이 작품의 제목이 된 것이다.
존 케이지(John Cage) - 4'33"(4분 33초)
David Tudor
존 케이지(John Cage) - 4'33"(4분 33초)
21st c. Piano Commission Concert. 12 February 2016
Foellinger Great Hall, Krannert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Kyle Shaw, piano
이 작품을 구상했던 것은 그가 〈소나타와 간주곡〉을 작업하던 1947년에서 1948년 사이였다. 케이지는 ‘어떤 소리’든지 음악으로 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실현하고 싶어 했고, 작품으로 구현된 것이 바로 〈4분 33초〉이다. 이것은 케이지가 1940년 말엽부터 심취해 있었던 선불교의 영향이 매우 컸다. 1982년 가진 인터뷰에서 케이지는 〈4분 33초〉야말로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했고, 명망 있는 음악사전 《뉴그로브 음악사전》에서도 이 작품을 가리켜서 케이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논쟁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존 케이지(John Cage) - 4'33"(4분 33초)
존 케이지(John Cage) - 4'33"(4분 33초)
Performer : K2Orch(演奏: けつおけ! ケツバット・キネン・オーケストラ)
Conductor : Yusuke ICHIHARA(指揮:市原雄亮)
Recorded in 26 Jan 2013(Live, 録音:2013年1月26日, ライブ)
‘침묵’은 〈4분 33초〉 이외의 케이지의 다른 작품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플루트를 위한 2중주〉(1934), 〈소나타와 간주곡〉(1946~48), 〈주역 음악〉(1951), 〈두 개의 파스토랄〉(1951) 등이 케이지가 침묵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존 케이지(John Cage) - 4'33"(4분 33초)
EBU Euroradio Orchestra. 31 May and 1 June 2012 in Geneva.
존 케이지(John Cage) - 4'33"(4분 33초)
Death Metal Cover by Dead Territory
하지만 케이지가 결정적으로 〈4분 33초〉처럼 극단적인 침묵으로 구성된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1951년 일어났다. 그는 하버드 대학의 무향실을 방문하게 된다. 무향실은 벽, 천장, 바닥 등이 방으로부터 나는 모든 소리를 흡수하여 아무런 소리의 반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이 공간을 방문했을 때, 그는 아무런 소리를 못들을 것을 기대했으나,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나는 두 개의 소리를 들었다.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은 소리였다. 내가 이를 무향실의 기술자에게 설명했을 때, 높은 소리는 내 신경계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낮은 소리는 혈액 순환에서 비롯되는 소리라고 일러 주었다. 내가 죽을 때까지 소리는 존재할 것이다. 그 소리들은 내가 죽은 뒤에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음악의 미래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결국 〈4분 33초〉는 완벽한 침묵의 불가능성에 대한 케이지의 깨달음을 반영한 작품이 되었다.(클래식 백과)
2018.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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