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음력으로 8월 15일. 한가위 명절입니다. 설, 단오와 더불어 우리 민족의 3대 명절 중 하나지요. 한가위의 유래는 고대로부터 있어 왔던 달에 대한 신앙에서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가위의 '한'은 '크다, 하다(大,正)',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 15일인 한가위는 8월의 '한 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입니다. '가위'는 신라 때 길쌈 놀이인 '가배'에서 유래했지요. 길쌈이란 실을 짜는 일을 말합니다. 신라 유리왕 때 한가위 한달 전에 베 짜는 여자들이 궁궐에 모여 두 편으로 나누어 한 달 동안 베를 짜서 한 달 뒤인 한가윗날 그 동안 베를 짠 양을 가지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잔치와 춤으로 갚은 것에서 '嘉俳(가배)' 라는 말이 나왔는데 후에 '가위'라는 말로 변한 것입니다. 한가위를 추석, 중추절(仲秋節, 中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 부른 것은 훨씬 후대에 와서 생긴 일입니다. 추석(秋夕)은 한자만이 문자로 통용되던 시절 중국 사람들이 '중추(中秋)', '추중(秋中)', '칠석(七夕)', '월석(月夕)'이라는 말을 본따서 만든 것입니다. 즉 중추(中秋)의 추(秋)와 월석(月夕)의 석(夕)을 따서 추석이라고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가위가 되면 한더위도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철로 접어드는 때입니다. 또한 한가위 무렵에는 넓은 들판에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빛으로 물들면서 온갖 과일이 풍성하지요. 이렇게 풍요로운 명절을 맞아 온 식구들이 모였습니다. 저는 5남1녀 중의 장남입니다. 기업의 해외지점에 근무하는 신랑을 따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나가있는 막내 여동생을 제외하고는 다 모였습니다. 이젠 조카들도 꽤 많습니다. 조카들은 지들끼리 이지저리 몰려다니면서 시끄럽습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집 며느리들은 어제부터 차례음식을 마련하느라 분주합니다. 남자들은 별 하는 일도 없습니다. 밤껍질 까는 일 정도 한다고 할까요. 저는 가끔 전 부치는 일을 거들어 주기도 합니다. 그러면 제수씨들로부터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만큼 가사일을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는 이야기지요.요즈음 평등명절을 부르짖는데 우리집은 그 말이 뭔지도 모릅니다. 아버지가 워낙 유교사상에 투철한 분이어서 더 그런지 모릅니다. 여자들도 별 불만이 없어 보입니다.
차례를 지낼 시간이 되자 온가족이 다 모입니다. 멀리 창원에서 오신 작은 할아버지 내외분, 대구나 제천, 대전 등지에서 오신 5촌 당숙님들 내외, 또 6촌 형제 부부들까지..... 제가 임씨 가문의 종손이자 장손이라 명절이나 제사 때는 우리 집으로 친척들이 모입니다. 새로 지은 집도 좁아서 다시 지어야 할 판입니다.
*한가위 차례상 차림
드디어 추석 차례상이 차려졌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대부분의 음식은 집에서 직접 만들어서 차례상에 올렸는데..... 차례음식을 보니 대추 한 가지만 우리 집에서 난 것이네요. 요즘은 대부분의 차례음식을 사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서 여자들이 해야할 일이 많이 줄어든 것도 사실입니다.
어르신들은 차례상 차리는 도중에도 이렇게 차리는 것이 옳으니 저렇게 차리는 것이 옳으니 의견이 분분합니다. 차례상 차리는 것도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어렸을 때부터 하도 귀가 따갑게 듣던 이야기라 저는 그저 그려러니 합니다. 저는 차례상 차리는 순서를 줄줄 외웁니다. 차례상 맨 앞줄에는 조율이시(棗栗梨枾)라고 해서 왼쪽부터 대추, 밤, 배, 곶감, 약과, 강정 등을 순서대로 놓습니다. 여기에 또 홍동백서(紅東白西)라고 해서 흰색 과일은 서쪽, 붉은색 과일은 오른쪽으로 배열해야 합니다. 그런데 차례상이 작아서 이런 원칙은 시초부터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배와 사과가 뒷줄로 밀려나 있네요.
둘째 줄에는 포와 식혜를 올립니다. 순서는 좌포우혜(左蒲右醯)입니다. 왼쪽에는 포(말린 문어나 명태, 오징어 등)를, 그 오른편으로 침채(김치나 동치미), 숙채(삶은 나물로 콩나물, 숙주나물, 무나물 순으로 올리고 고사리, 도라지나물 등을 쓰기도 함) 순으로 배열합니다. 맨 오른쪽에는 감주(식혜)를 올립니다. 세째 줄에는 각종 탕류를 진설합니다. 돼지나 쇠고기탕, 생선탕, 두부탕 등..... 그런데 이번 차례상에는 나물도 탕도 보이지 않네요. 포는 맨 뒷줄로 쫓겨나고..... 변화가 많습니다.
네번째 줄에는 고기산적과 생선찜, 부침개가 올라갑니다. 어동육서(魚東肉西), 두동미서(頭東尾西) 원칙이 적용되는 줄입니다. 육고기는 서쪽, 생선은 동쪽에 놓고, 생선인 경우 머리가 동쪽, 꼬리가 서쪽으로 가도록 배열합니다. 서쪽은 상의 왼쪽, 동쪽은 오른쪽입니다. 상을 보니 생선이 없습니다. 항상 조기가 올랐었는데..... 깜빡 잊어버린 모양입니다. 마지막 줄에는 시접( 제사 때 수저를 담는 대접 비슷한 놋그릇), 잔반(술잔과 술잔 받침대)과 송편을 올립니다. 송편 대신에 제사에는 메, 설에는 떡국입니다. 포를 빼면 마지막 줄은 제대로 된 것 같습니다.
차례상을 차리는데 있어서 주의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우선 털이 있는 복숭아같은 과일은 올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꽁치나 넙치, 날치처럼 끝에 '치'자가 들어가는 생선도 올리지 못합니다. 또 고추가루나 마늘같이 맵거나 자극적인 음식도 사용하지 못합니다. 이밖에도 건좌습우(乾左濕右)라는 것이 있습니다. 마른 음식은 왼쪽, 젖은 음식은 오른쪽에 놓는 것을 말합니다. 접동잔서(摺東盞西)도 있습니다. 접시는 동쪽, 잔은 서쪽에 놓는다는 말이지요. 좌반우갱(左飯右羹)도 있는데, 메(밥)는 왼쪽, 갱(국)은 오른쪽입니다. 남좌여우(男左女右)는 제상의 왼쪽에는 남자 조상신, 오른쪽에는 여자 조상신을 모셔야 한다는 원칙이지요.
병풍에 지방을 써붙이면 차례준비는 끝이 납니다. 지방은 돌아가신 조상님의 신위(神位)입니다. 조상님이 저 차례상 앞에 앉아계신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보면 차례상은 조상님이 진지를 편하게 잘 드실 수 있도록 올려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국인들이 조상님을 위하는 정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분향재배와 강신재배를 마친 후 참신하는 장면
이젠 차례를 지낼 순서입니다. 먼저 제주이신 아버님이 젯상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고 향을 피워올린 뒤 두 번 절을 하십니다. 분향재배(焚香再拜)라는 것이지요. 가운데 흰 베도포에 망건을 쓰신 분이 제 아버님입니다. 이어서 강신재배(降神再拜)를 합니다. 강신이란 조상님의 신위가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는 것을 말합니다. 강신재배는 조상님의 신위가 내려오셔서 정성껏 차린 차례음식을 드시기를 청하는 의미입니다. 이 때는 제주 외에 모든 참가자는 두 손을 공손하게 맞잡고 서있습니다. 제주만 신위 앞으로 나아가 꿇어앉아 분향을 합니다. 집사자가 술을 잔에 차지 않게 따라서 제주에게 주면, 제주는 그 잔을 받아서 모사그릇에 세 번으로 나누어 붓습니다. 제주는 빈잔을 집사자에게 돌려보내고 나서 일어나 두 번 절을 합니다. 집사자는 항상 네째와 막내 남동생이 맡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참신(參神)입니다. 강신한 다음에 모든 참가자들이 신주에 절을 하는 순서입니다. 다음은 초헌(初獻) 순서입니다. 제주이신 아버님이 신위 앞에 꿇어앉아 분향을 합니다. 분향이 끝나면 집사자가 잔을 제주에게 드리고 술을 따라주면, 제주는 두손으로 공손히 받들어 집사자에게 건넵니다. 집사자는 술잔을 받아서 젯상에 올립니다. 제사를 지낼 때는 초헌이 끝나면 독축(讀祝)을 합니다. 참가자들은 모두 꿇어 엎드린 자세로 한 사람이 축문을 엄숙한 목소리로 읽습니다. 독축이 끝나면 제주는 절을 두 번 합니다. 추석이나 설에는 독축을 하지 않습니다.
*아헌이 끝난 다음 작은 할아버님께서 종헌을 올리는 모습
다음은 아헌(亞獻) 차례입니다. 아헌은 집안의 종손이자 장손인 제가 항상 올리곤 합니다. 아헌은 두번째 올리는 잔입니다. 아헌은 원래 맏며느리가 올려야 합니다. 맏며느리가 올릴 때는 네 번 절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맏며느리가 잔을 올리기 어려울 때는 제주 다음가는 근친자나 장손이 올려도 됩니다.
아헌 다음 순서는 종헌(終獻)입니다. 제 이름하고 소리가 똑같네요. 한자로는 다르지만..... 종헌은 조상님이나 고인의 신위에 인사하는 절차로서 모든 차례 참가자가 일제히 절을 두 번 합니다. 그런 다음 세 번째 잔 즉 마지막 잔을 올리는 절차가 바로 종헌입니다. 종헌자는 아헌자의 다음가는 종친인 제주의 동생이나 아들 또는 가까운 친척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때 저를 고르기도 합니다. 오늘은 창원에서 오신 작은 할아버님께서 종헌을 하십니다.
*계반삽시를 하는 동안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기다리는 참사자들
아헌 다음에는 계반삽시(啓飯揷匙)를 합니다. 삽시정저(揷匙正箸)라고도 하지요. 종헌이 끝나면 주부가 메 그릇의 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메 그릇의 중앙에 꽂는 순서지요. 또 젓가락을 고른 뒤 어적이나 육적 위에 가지런히 옮겨 놓습니다. 제주가 수저 바닥이 동쪽으로 향하게 해서 꽂고 제주는 두 번, 주부는 네번 절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추석에는 메가 아니라 송편을 올리므로 삽시는 하지않고 정저만 합니다. 정저를 한 뒤 제주는 문밖으로 나가서 두 번 절을 하게 되어 있는데, 우리집에서는 하지 않습니다.
*첨작을 하는 동안 제례에 관하여 설명을 하고 계시는 아버님
다음은 첨작(添酌)입니다. 첨작은 유식 이라고도 하는데, 종헌이 끝나고 조금 있다가 제주가 다시 신위 앞에 꿇어앉으면, 우집사가 다른 술잔에 술을 조금 부어 초헌자에게 줍니다. 이것을 받아 종헌자가 드릴 때 채우지 않고 7부쯤 따라 올렸던 술잔에 세 번에 나누어 가득 채우고 두 번 절을 합니다.유식은 유제사를 지낼 때, 제주가 잔에 술을 따르고, 또 젯메에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을 대접 위에 올려놓은 다음에 제관들이 문 밖에 나와 문을 닫고 10분쯤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집에서는 유식을 하지 않습니다. 또 첨작도 제주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합니다. 아헌자, 종헌자 다음 순위의 사람이.....
*합문을 하고 있는 모습
첨작 다음은 합문(闔門)입니다. 참사자들이 모두 방에서 나와 문을 닫는 것을 가리킵니다. 대청일 경우에는 뜰아래로 내려와 조용히 기다립니다. 단칸방이나 부득이 할 때에는 조용히 제자리에 엎드려 있다가 헛 기침을 하고 일어납니다. 우리집에서는 두 번째 방식으로 지냅니다. 합문 후 별도로 정해진 것은 없으나 보통 성인이 밥 한그릇을 다 먹는 시간정도 엎드려 있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집에서는 그냥 한참 엎드려 있다가 일어납니다. 숨을 한 열번 정도 내쉴 동안만.....
합문 다음은 계문(啓門) 또는 개문(開門)입니다. 합문을 여는 것을 말하는데, 제주가 앞서서 기침을 하고 참사자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두 번째 방식은 제주의 기침을 신호로 모두 따라서 기침을 하면서 일어납니다. 우리집은 두 번째 방식으로 합니다. 다음은 헌다(獻茶)입니다. 헌다는 갱을 내려놓고 숭늉을 올립니다. 그리고 메를 조금 떠서 숭늉에 말아놓고, 수저를 고릅니다. 참사자는 모두 2,3분 정도 읍을 하고 있다가 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듭니다. 추석 때는 메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생략입니다. 제사를 지낼 때 우리집에서는 한 10초 정도 합니다. 많이 간소화 된 결과입니다.
*지방을 사르고 계시는 아버님
다음은 철시복반(徹匙覆飯) 또는 낙시(落匙) 순서입니다. 철시복반은 헌다 다음에 신위께서 제물을 다 잡수셨다고 생각되면 수저를 거두고, 메 그릇의 뚜껑을 덮는 것을 말합니다. 다음은 사신입니다. 철시복반 다음에 참사자들이 일제히 두 번 절하고 제주가 지방과 축문을 사르는 순서입니다. 다음은 철상(撤床)입니다. 젯상에 차려진 음식들을 거두어 치우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때 모든 제수(祭需)는 뒤에서 물립니다. 철상을 마치면 음복(飮福)을 합니다. 음복이란 조상님께 올렸던 모든 차례를 마치고 젯상에 올렸던 술을 참사자들 모두 돌려가면서 한 잔씩 마십니다. 이렇게 해서 한가위 차례가 끝이 납니다.설이나 추석에는 가문이나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축문, 아헌, 종헌, 합문은 생략을 합니다.
*족보를 설명하고 계시는 아버님
부친께서는 제사나 명절 때만 되면 늘 자손들에게 족보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오늘도 철상을 끝내자마자 친척들에게 시조부터 시작해서 가계를 설명하십니다. 저는 족보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는지라 흘려 듣곤 합니다. 아버님은 그런 저를 언제나 서운해 하십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면 족보에 먼지나 쌓이지 않을까 걱정하십니다. 앞으로는 족보에 대해서도 관심을 좀 가져야 하겠습니다. 한 가문의 장손이자 종손이니까요.
*흐믓한 표정으로 자례를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시는 작은 할머니(왼쪽)와 어머님
어머님은 제사나 명절 때 자식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언제나 흐믓한 표정을 지으십니다. 장성한 자식들이 모두 다 가정을 이루고 별 문제없이 사회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또 자식들이 달고온 손주들도 어머니에게는 기쁨거리입니다. 손주들이 재롱을 떠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웃음이 떠날 줄 모르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저도 흐믓합니다.
*음복을 나누고 있는 참사자들
드디어 음복이 나옵니다. 촌수가 높으신 분들이 한 상을 차지합니다. 어머니는 음식을 드시지 않아도 배가 부르신가 봅니다. 아버님은 아직도 예복을 입고 계십니다. 저보고도 예복을 입으라고 하시지만 아직은 좀 거시기해서 안 입습니다. 저도 음복술을 한 잔 마십니다. 조상님들께서 내려주신 복된 음식인데 술 한 잔 안 해서야 되겠습니까?
*음복주를 나누고 있는 아래 동생들
촌수가 낮은 사람들은 따로 한 상을 받습니다. 젯상에 올렸던 약주는 금방 동이 나고 소주가 나옵니다. 음복주를 나누면서 동생들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제사나 명절이 좋은 것은 형제들이 모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음복을 마치면 이제 성묘를 가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려서 앙성에 함께 모신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에만 성묘를 가기로 합니다. 성묘를 다니려면 여기저기 하루 종일 다녀야 하기 때문에 비가 오는 것을 은근히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저는 등산삼아서 성묘를 다니기에 비가 오는 것이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마음 속으로 조상님들의 공덕을 기려 봅니다.
2005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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