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월현. 예전에는 구릿들이라고 부르던 곳. 고향집이 있는 곳은 바로 중방마을. 가끔 천등산에 올라 구릿들을 내려다보면 참 평화로운 곳이라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고향 시골집 현관문 바로 앞에는 앵두나무가 한 그루 서 있습니다. 봄이면 하이얀 앵두꽃이 만발하곤 하지요. 빠알간 앵두가 주렁주렁 많이도 열리는 나무입니다.
*오이
앵두나무를 타고 올라간 오이덩굴에는 오이 하나가 늙어가고 있습니다. 오이도 이제는 끝물이네요. 참 못생긴 오이입니다. 오이가 들으면 서운하다고 할 텐데.....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오이를 심지요. 여름식탁에 빠질 수 없는 반찬거리입니다. 오이를 채썰어서 냉국을 만들면 얼마나 시원하다고요. 또 보리밥에 고추장에 버무린 오이를 넣어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어도 맛있습니다. 요즘에는 오이를 얇게 썰어서 피부 마사지에 이용하기도 합니다.
*호박
오이덩굴 바로 옆에는 제법 큰 호박이 나뭇가지에 올라앉아 있네요. 이제 막 노란 빛이 들기 시작합니다. 못생긴 사람을 호박꽃에 비유하곤 하지요. 그건 잘못된 비유입니다. 호박꽃이 얼마나 아름다운 꽃인데요. 비록 향기가 그리 썩 좋은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기 바랍니다. 얼굴이 아름다운 사람보다 마음이 예쁜 사람이 훨씬 고귀한 법입니다. 미모는 백 년도 채 못가지만, 아름다운 마음이나 정신은 영원할 수도 있는 것이기에..... 사람의 향기는 바로 귀하고 고운 마음씨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동부
텃밭의 밭둑에는 동부를 심었네요. 아마 어머니께서 심으셨을 겁니다. 동부는 광저기, 반각(半角), 각두(角豆), 반두(飯豆), 요두(腰豆) 등으로도 불리지요. 동부는 콩과의 1년생 식물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보통 중국콩으로 알려져 있지요. 인도와 중동이 원산지로 여겨지나 중국에서도 오랜 옛날부터 심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콩과의 한해살이 식물 중에서 꼬투리가 제일 긴 작물이라고 하는데, 길이가 15~20 ㎝정도 됩니다. 꼬투리는 길고 원통형입니다. 내가 알기로는 작두콩(도두, 刀斗) 꼬투리가 가장 긴 것으로 알고 있는데..... 꽃은 길다란 줄기 끝에 2, 3송이씩 피며 흰색이나 자주색, 또는 연노란색을 띱니다. 미국 남부지방에서는 동부를 건초작물이나 거름작물로 심는다고 합니다.
내 어렸을 적에는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서 쇠죽을 쑤었습니다. 쇠죽을 쑤다가 아궁이 알불에 저 동부를 구워서 먹곤 하던 기억이 납니다. 구운 동부는 아주 고소하고 맛있습니다. 동부를 삶거나 쪄서 먹기도 합니다. 또 완전히 익지 않은 것은 밥을 할 때 넣어도 먹고 익은 것은 잡곡 또는 떡고물을 만들 때 씁니다.
동부를 한방에서는 대각두(大角斗)라고 하는데 맛은 달고, 성질은 평성이라고 봅니다. 12경맥 중에 비경과 신경에 들어가지요. 대각두는 보신고삽(補腎固澁), 전정익수(塡精益髓)의 효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설사나 구토, 소갈, 유정, 백색대하, 백탁(白濁), 빈뇨 등의 증상을 치료하는 데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한 동부에는 전분, 지방유, 단백질, 니코틴산, 비타민 B1, B2, C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네요. 그러니 동부는 건강식품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대추
텃밭의 길건너에서 자라고 있는 대추입니다. 대추알이 굵직굵직하네요. 이제 막 붉은 빛이 돌기 시작합니다. 어릴 땐 대추를 많이 따먹곤 했는데..... 지금은 왠지 손이 가지 않습니다. 가끔 옛날을 생각하며 대추 한 알을 먹어 보기도 하지만..... 예전 맛이 아닙니다. 아마 그 때는 과자나 사탕같은 군것질거리가 귀한 시절이어서 그랬을 겁니다. 입맛도 세월따라 변하는가 봅니다.
결혼식에서 폐백을 드릴 때 시부모나 친척들이 대추나 밤을 신부의 옷자락에 던져 줍니다. 자손을 많이 낳아서 가문을 번성케 하라는 의미지요. 아마도 종족보존의 본능에서 나온 풍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추는 아들, 밤은 딸을 상징합니다. 대추에는 씨가 들어 있어서 아들을 의미하고요. 밤은 씨가 없고 매끈해서 딸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아들 많이 낳아라~'고 외치면서 며느리에게 대추만 던져 주는 시부모는 아들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또 신랑 신부가 대추 하나를 서로 입으로 물고 나누어 먹기도 하지요. 이 때 씨를 문 사람이 가정의 주도권을 쥔다고 합니다.
대추에 관한 설화가 있지요. 중국의 위.촉.오의 역사서인 삼국지에는 관우의 얼굴이 붉은 대추빛으로 묘사돼 있습니다. 관우는 곧잘 씩씩하고 건장한 사내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한양에서는 태몽에 대추를 보면 아들을 낳는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 충청도나 경기도에서는 제사를 지낸 뒤에 대추를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여겼지요. 조선 영, 정조 때의 실학자인 유득공이 저술한 '경도잡기'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면 신부가 시집갈 때 준비하는 품목이 옷장, 경대, 대추라고 나와 있지요. 이것은 아들을 많이 낳기를 바라는 남존여비의 풍속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 순조 때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에는 가조수(嫁棗樹)라 하여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는 풍습이 있었다고 나옵니다. 정월 보름날 시행했던 점풍(占豊)의례의 하나지요. 어떤 기록에는 단오날 행한다고 한 곳도 있어요. 이 날 사람들은 대추나무 사이에 돌을 끼워 풍성한 과일의 수확을 기원하였습니다. 다리를 벌린 채 여자 형상을 한 대추 나뭇가지 사이에 남자를 상징하는 돌을 끼워 놓는 거지요. 이것은 남녀간의 교접을 통한 출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다수확을 기원하는 의미입니다.
*강낭콩
강낭콩도 꼬투리가 열렸네요. 빨강색의 꽃은 매우 강렬한 느낌을 줍니다. 변영노의 '논개'라는 시에 등장하는 꽃..... 논개의 충정심을 붉은 강낭콩 꽃에 비유하였는데, 그 이미지가 아주 선명합니다.
강낭콩은 채두(菜豆) 또는 운두(雲豆)라고도 하지요. 원산지는 멕시코 중앙부에서 과테말라, 온두라스 일대라고 하네요. 기원전 5세기부터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이 재배하였고 중앙, 남아메리카로 보급되었다고 합니다. 유럽에는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 사람에 의해 전파되었다고 하고요. 한국에는 중국 남쪽 지방에서 들어왔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에서 여러 품종을 도입하여 식용으로 재배하기도 했지요. 강낭콩의 성분은 녹말 60%, 단백질 20% 정도를 함유합니다. 또 강낭콩에는 기억력을 증진시켜주는 레시틴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마그네슘이 들어있어 수험생에게 좋은 식품이기도 합니다.
*가지
가지도 심으셨네요. 어릴 때 어린 가지를 따먹곤 했지요. 가지는 여름철 빠질 수 없는 반찬입니다. 가지를 찐 다음 잘게 찢어서 갖은 양념을 해서 무쳐놓으면 아주 맛좋은 반찬이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 중 한 가지랍니다. 또 가지볶음 요리도 있지요. 가지는 지중해지역 요리의 주요 재료이기도 합니다. 그리스의 무사카(moussaka)나 이탈리아의 가지 파르미자나(eggplant parmigiana), 중동지역의 양념인 바바 가노우시(baba ganoush) 등과 같은 고전요리에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또한 오븐이나 석쇠에 굽거나 튀겨서 먹기도 하며, 요리의 장식용으로 쓰거나 스튜에 넣기도 합니다.
가지는 가지과(─科 Solanaceae)에 속하는 부드러운 다년생 식물로 감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따뜻한 기후에서 잘 자라며 아시아 동남부, 미국 등지에서 널리 심고 있지요. 원산지는 아시아 남, 동부로 다육질의 열매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심어왔으며,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보통 일년생으로 기릅니다. 줄기는 곧고 털이 많으며 때로는 가시가 조금 덮여 있습니다. 잎은 크고 타원형이며 약간 패여 있고요. 꽃은 보라색이고 1송이씩 피며 아래로 늘어집니다. 가지는 달걀 또는 길다란 모양의 큰 장과(漿果)로 짙은 자주색부터 붉은색, 노르스름한 색 또는 흰색까지 아주 다양합니다. 가끔 줄무늬가 있는 것도 있으며 겉이 반들반들한 것이 특징입니다. 화초로도 많이 재배하고 있지요.
*오가피 열매
동생이 산에서 옮겨심은 오가피나무에 열매가 탐스럽게 열렸네요. 담을 따라 꽤 여러 그루가 보입니다. 오가피는 옛부터 불로장생의 영약으로 본초서인 `신농본초경`에도 나와 있는 자양강장 또는 강정의 약효가 뛰어난 약재입니다. 잎이 5개로 손가락모양으로 갈라졌기 때문에 오갈피나무라 부르기도 하지요.오가피의 잎은 5장이 돌려나는데 인삼과 아주 비슷합니다. 인삼도 오기피와 같이 두릅과에 속하지요. 오가피는 또한 산삼과도 비슷합니다. 잎 모양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지요. 깊은 산속 그늘지고 부엽토가 풍부한 땅에서 자라는 것도 같습니다.그래서 어린 오가피를 보고 산삼으로 착각하기도 하지요. 나도 그런 경우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오가피는 전국의 산야에 자생하고 있는 나무입니다. 일본과 중국 북부, 우수리, 아무르, 시베리아 등 주로 한대권에 넓게 분포합니다. 오가피의 어린 순은 나물로 먹고, 줄기와 뿌리 껍질은 한약재와 차의 원료, 오가피주의 재료가 되기도 하지요. 잎은 가루로 만들어 국수, 빵, 과자, 떡 등에 첨가물로 이용합니다. 오가피는 내가 한의원에서 근골격계 질환이나 허약체질에 꼭 처방하는 한약재이기도 합니다. 간과 신을 보해주고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해주는 훌륭한 한약재지요. 체력을 보강해주고 근골을 단련시켜주기 때문에 운동선수들이 보양약으로 많이 복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2002년 월드컵에서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이 복용한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오가피는 한의학에서 풍습을 없애주는 효과가 있어서 풍습으로 인한 근육이나 관절의 통증이 있을 때 쓰기도 합니다.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오가피는 한마디로 나무 인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집에서 삼계탕을 끓일 때 황기, 음나무 껍질, 대추, 밤 등과 함께 오가피를 넣으면 맛과 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기운을 북돋우는데 좋은 음식이 됩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고 있는 오가피의 종류는 섬오가피, 지리산오가피, 중부오가피, 차색오가피, 서울오가피, 당오가피, 가시오가피, 왕가시오가피, 민가시오가피 등입니다. 또 오가피를 진오가피, 가오가피, 가시오가피로 나누기도 합니다. 모든 오가피는 한방에서 중풍이나 허약체질을 치료하는 약으로 써왔습니다. 오가피 뿌리껍질이나 줄기껍질로 담근 경남지방의 토속주인 오가피술은 요통이나 손발저림, 반신불수 등에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가피주는 약 2천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중국 고대 명주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항주 주창에서는 전통 제조법을 기초로 오가피, 당귀, 사인, 모과 등 10 여 가지 재료의 약초와 찹쌀 당액을 첨가하여 오가피주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술은 혈액순환이나 관절염에 좋을 뿐만 아니라 근육과 비장, 위의 기능을 강화시켜 주는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오가피나무 중에서 약효가 가장 좋은 것은 가시오가피입니다. 옛 소련의 학자들은 이 가시오가피를 '기적의 약효를 지닌 천연 약물'이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가시오가피 뿌리에서 짜낸 즙은 방사능을 비롯한 갖가지 화학물질의 독을 풀어 주고, 혈액 속의 콜레스테롤과 혈당치를 낮춰주며, 신경장애를 치료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지요. 뿐만 아니라 지구력과 집중력을 키워 주고, 뇌의 피로를 풀어주며, 눈귀를 밝게 하고 성기능을 높이며, 신체기능에 활력을 주고 온갖 질병을 예방하는 효능도 있다고 하네요. 이렇게 보면 가시오가피는 거의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이 오가피를 보는 족족 마구 채취해 가서 지금은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식물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가을에 씨를 받아 놓았다가 집안의 뜰에 심어서 오가피가 필요할 때 쓰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이 망가져서 생물이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해버리면 우리 몸이 아무리 건강해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해바라기
담장에 기대어 핀 해바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씨가 참 많이도 달려있네요. 어릴 때는 해바라기씨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까먹곤 했는데..... 고소한 맛이 꽤 괜찮습니다. 요즘은 아몬드, 호박씨, 호두, 잣 등과 함께 해바라기씨를 혼합한 견과류 식품이 상품으로 나와있는 것 같던데요.
해바라기씨는 지방이 씨앗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풍부하게 들어있어서 오래 먹으면 피부가 반지르르하게 됩니다. 해바라기 씨앗에 들어 있는 단백질은 영양도 우수하여 소화가 잘 되고 성질이 따뜻해서 누구나 먹어도 좋습니다. 그래서 성장기 어린이에게 좋은 영양식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임산부는 너무 많이 먹어서는 안됩니다. 해바라기씨에는 또 칼륨, 칼슘, 철분 등의 무기질과 비타민 B 복합체가 풍부해서 고혈압이나 신경과민의 원인이 되는 동맥경화에도 좋습니다. 또 혈액순환을 도와주고 영양소가 몸에 잘 흡수되도록 해주어서 간기능을 향상시키는 작용도 합니다. 레시틴이 부족하면 정신병에 걸리기 쉽다고 하는데 해바라기씨에는 이 레시틴 많이 들어 있다고 하네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심약한 사람들이 복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포도송이
장독대 옆에 포도덩굴이 올려져 있습니다. 때늦게 열린 포도송이가 아직 어리네요. 포도송이에 맺혀있는 물방울이 영롱합니다.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입니다. 신맛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 포도를 보니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라는 시가 문득 떠오르네요.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육사의 고향에는 아마도 청포도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익기 전의 포도를 청포도라고 했는지도 모르고요. 청포도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제재를 통해서 풍요롭고 평화로운 삶에 대한 소망, 또는 오랜 희망이 실현되기를 기다리는 주제를 노래한 시라고 생각됩니다. 육사가 일제시대 독립지사였던 점을 고려하면 이 시가 조국 광복에 대한 소망, 고국에 대한 끝없는 향수와 기다림의 대상에 대한 염원을 노래했다고도 볼 수가 있지요.
포도는 그냥 먹기도 하지만 건포도나 잼으로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건포도용 포도는 BC 2000년경부터 페르시아와 이집트에서 재배되었으며, 성서(민수 6:3)에 따르면 이미 모세 시대부터 건포도가 있었다 고 합니다. BC 1110~1070년경 '다윗이 100송이의 건포도를 선물로 받았다.'라는 성서기록(사무 25:18)도 있습니다. 건포도용 포도는 비교적 알이 작으면서 씨가 없고 산도(酸度)가 낮은 것이 적당합니다. 가장 좋은 품종은 연노랑색에 씨가 없고 술타니나로도 알려진 톰슨 시들리스(캘리포니아)라고 하네요. 캘리포니아가 건포도로 유명한 이유를 알겠네요.
건포도의 건조방법은 자연건조법, 황금표백법, 렉시아법 등 세 가지가 있습니다. 자연건조법은 익은 포도를 따서 원래 상태 그대로 햇볕에 건조시키는 것입니다. 이때 포도의 표면은 흰가루가 생기고 다소 딱딱해지면서 회색빛이 도는 검은색이나 갈색이 됩니다. 황금표백법은 포도를 농도 0.5%의 알칼리액에 담갔다가 꺼내서 2~4시간 동안 연소하는 황에 쏘인 후 터널 건조기로 건조시키는 것이지요. 이때 건포도의 색은 처음에 레몬빛의 노란색이던 것이 황금빛의 노란색으로 변합니다. 톰슨 시들리스를 주로 황금표백법으로 건조하는데, 주로 빵이나 과자를 만들 때 씁니다. 렉시아법은 올리브기름의 얇은 기름층이 떠 있는 묽은 알칼리액에 포도를 담그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처리한 다음 쟁반 위에서 햇볕에 직접 건조하는데 색은 중간 정도의 갈색에서 암갈색에 이르며 조직이 부드럽고 풍미가 온화하지요.
건포도는 철분이 풍부한 식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빈혈이 있는 사람이 먹으면 좋은 식품입니다. 생맥주를 마실 때 안주로도 제격이지요. 포도잼은 갓 구어낸 빵에 발라서 먹으면 맛이 아주 좋습니다. 포도로 빚은 포도주도 빼놓을 수 없지요. 적포도주가 심장마비를 예방한다고 해서 한때 포도주 붐이 일았던 적도 있습니다. 포도주에는 적포도주와 백포도주가 있습니다. 적포도주는 적포도를 주성분으로 하여 빚은 붉은색이 도는 포도주이고, 백포도주는 청포도를 주성분으로 하여 빚은 맑은 포도주를 말합니다. 나는 떫은 맛이 나는 적포도주에 비해 달콤한 맛이 나는 백포도주를 좋아합니다.
주요 포도주 생산국가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러시아 연방,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독일, 미국 등입니다. 이들 나라 중에서 프랑스의 포도주가 단연 유명하지요. 포도주의 이름은 생산지나 원료가 되는 포도 품종의 이름을 따서 붙이거나,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통칭을 붙입니다. 대부분 지명에서 이름을 딴 유럽산 포도주는 그래서 독특한 명칭들을 갖고 있습니다. 포도주는 포도가 생산되는 지역에 따라 맛과 향이 조금씩 차이가 있지요.
*으아리 열매
장독대 뒤에서 자라던 으아리도 씨앗 꼬투리가 달려 있네요. 꼬투리 끝에 꼬리가 달려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으아리는 이른 봄에 어린 새순을 삶아서 나물로 먹기도 하는데, 약간 독성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6월에서 9월 사이에 순백색의 하얀 꽃이 피어나는데 꽃이 예뻐서 정원에 관상용으로 심기도 하지요. 향기도 좋은 꽃입니다. 한국에서는 으아리의 뿌리를 말린 것을 위령선(威靈仙)이라고 하지만 위령선(C. florida)과는 다릅니다. 중국에서는 클레마티스 키넨시스(C. chinensis)를 위령선이라고 하고, 으아리는 동북철선련(東北鐵線蓮)이라고 부르지요.
으아리는 다른 이름으로 천삼(天蓼), 선인초(仙人草)라고도 합니다. '천'자나 '선'자가 들어가는 한약재는 아주 뛰어난 효능을 가졌을 때 붙이는 이름입니다. 위령선은 맛은 맵고 짜며, 성질은 따뜻합니다. 한방에서 관절염이나 사지마비, 요통, 근육통 및 타박상으로 생긴 통증 등에 많이 쓰이는 한약재지요.
*벼
텃논의 벼이삭도 여물어 갑니다. 씨가 튼실하게 들어찼는지 벼이삭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네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지요. 인간에게 겸양의 정신을 기르라는 가르침입니다. 벼는 전세계 120여개국에서 재배되고 있는 중요한 작물이지요. 한국에서는 4천년 전부터 벼를 기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원산지는 동인도라고 하는데요.
쌀은 한국인의 가장 중요한 주식입니다. 그런데 최근 국회에서 쌀시장을 개방하는 법률안을 통과시켰지요. 농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밥상에도 외국산 쌀로 지은 밥이 올라오겠지요. 농업은 경제논리로만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한국의 농업은 광대한 땅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이나 미국 등의 대량생산 농업과는 애초에 경쟁이 되지를 않습니다. 쌀시장이 개방되면 벼농사를 짓던 농가들이 줄줄이 도산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농업이 무너지면 한국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요?
*부추씨
현관 계단 바로 오른편 화단에는 작은 딸기밭이 있습니다. 딸기밭 한가운데 자라난 부추도 씨앗을 달고 있네요. 부추는 정구지라고도 합니다. 부추에 콩가루를 입혀서 쪄내면 부추의 독특한 향과 콩의 구수함이 함께 어우러진 훌륭한 반찬이 되지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랍니다. 부추는 아주 다양하게 쓰이는 채소입니다. 부추로 김치를 담그기도 하고, 전을 부치기도 합니다. 오이속박이를 할 때도 빠질 수 없지요. 부추 겉절이, 부추 칼국수도 있습니다. 중국요리에도 부추잡채나 구체단화 등 부추를 이용한 요리가 많지요.
보신탕을 끓일 때도 부추를 넣습니다. 부추를 듬뿍 넣어서 끓인 보신탕 역시 내가 매우 좋아하는 음식 중 한 가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보고 야만인이라고 하는데, 그건 아주 편협하고 잘못된 생각입니다. 보신탕은 한국 고유의 음식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요리 중에 어미 뱃속에 든 송아지를 꺼내서 구이를 하는 요리가 있는습니다. 과연 어느 요리가 더 잔인할까요? 우리가 프랑스 사람들의 송아지 요리를 비판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보신탕 요리도 비판받아서는 안됩니다. 각자 고유한 음식문화가 있는 것이니까요.
부추는 마늘(대산), 달래(소산), 양파(흥거, 옥총), 파(총백)과 함께 오신채(五辛菜)의 한 가지입니다. 오신채란 향기가 강하고 양기를 북돋아준다고 해서 불가에서는 금기시하는 채소지요. 자양강정제인 이 채소들을 먹게되면 욕정을 일으키게 되어 수행에 방해를 준다고 해서 스님들에게 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추를 기양초(起陽草)라고도 하지요. 부추의 씨는 한방에서 구자라고 하는데 양기가 부족하거나 오줌이 시원치 않은 환자들에게 주로 처방하는 한약재입니다. 부추는 게으름뱅이풀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부추를 먹으면 정욕이 발동해서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교접을 하고는 해가 중천에 떠서야 일어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그만큼 양기에 좋다는 말입니다.
*대파
텃밭 한귀퉁이에 대파도 있습니다. 대파가 쑥쑥 아주 잘 자랐네요. 대파만큼 요리에 많이 사용되는 채소 도 아마 없을 겁니다. 대파도 오신채 중 한가지입니다. 대파의 파란 부분은 찬 성질을, 하얀 뿌리 부분은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리에 쓸 때는 대파를 통째 로 넣어서 음양이 조화되게 합니다. 그러나 한약재로 쓸 때는 밑둥의 흰 부분과 수염뿌리 부분만 씁니다. 이것을 한약명으로 총백(蔥白)이라고 하는데 양기를 북돋아 주는 효능이 있어서 추위를 몰아내고 혈액순환을 잘 되게 합니다. 그래서 총백은 감기치료약재로 자주 쓰이고 있지요.
*쪽파
대파 옆에는 쪽파도 심어져 있네요. 쪽파도 갖가지 요리에 참 많이 쓰이는 채소입니다. 파김치로도 만들고 파전도 부치지요. 특히 젓갈로 담근 쪽파젓김치는 감칠맛이 있습니다. 해물파전 안주에 막걸리 한사발..... 갑자기 막걸리 생각이 나는군요.
쪽파는 당진이 유명합니다. 당진쪽파는 해안성 기후와 충분한 일조량에서 재배되어 줄기가 연하고 신선도가 높아서 류마티스 관절염이나 감기, 냉이 많은 여성에게 좋다고 하네요.
*배추
쪽파 옆에는 배추를 갈아 놓았네요. 아직 어립니다. 겉절이 담그기에 알맞겠습니다. 배추는 김치를 담그는데 가장 중요한 재료지요. 한때 김치가 조류독감을 예방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배추를 넣어서 끓인 된장국은 참 구수하지요.
한편 배추에는 비타민C가 농축되어 있어 감기를 물리치는데 특효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추 속에 들어있는 비타민C는 열을 가하거나 소금에 절여도 잘 파괴되지 않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중국에서는 배추 속으로 끓인 수프를 감기예방약으로 이용한다고 하네요. 그리고 배추에는 체내에서 비타민A로 작용하는 카로틴을 비롯 칼슘, 식이 섬유, 철분, 칼슘 등이 들어 있어서 대장암을 예방해 주기도 합니다. 규합총서라는 책을 보면 '배추씨 기름을 머리에 바르면 빠지지 않고, 칼에 바르면 녹슬지 않는다.'라 하여 탈모증 치료에도 이용되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이런 용도로는 거의 쓰지 않지만.....
*고추
고추밭도 있습니다. 그런데 고추농사는 잘 안된 것 같네요. 병든 고추가 많이 보입니다. 요즘은 농약을 안치면 고추농사가 안된다고 하더군요. 여름철에 찬 보리밥 한술 뜨고 된장에 픗고추를 찍어서 먹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알싸하고 매콤한 그 맛..... 생각이 납니다.
고추는 우리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향신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추에는 캡사이신, 비타민A와 비타민C가 풍부하게 들어있지요. 캡사이신이 바로 고추의 매운 맛을 내는 성분입니다. 경기가 불황일 때 고추가 인기라고 하지요. 그것은 아마도 고추의 매운 맛이 움츠러든 기운을 발산시키는 효능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고추의 왕성한 발산력이 사람들 마음속의 우울함을 사라지게 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젓갈로 김치를 담글 때 고추를 넣으면 젓갈의 비린내를 없애주고 지방의 산패도 막아준다고 합니다. 또한 고추가 젖산균의 발육을 돕는 역할을 하여 김치를 먹는 사람은 유산균 음료를 따로 마실 필요가 없다네요. 그러니 김치가 얼마나 과학적으로 훌륭한 음식인가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고추에 들어있는 비타민 A의 모체인 카로틴이라는 성분은 호흡기질환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주는 물질인데, 감기에 걸렸을 때 콩나물국에다가 고춧가루를 타서 먹으면 땀이 나면서 낫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 비타민A와 C를 섭취하는 좋은 방법은 풋고추를 많이 먹는 것입니다. 고추는 캡사이신 성분이 지방세포에 작용하여 몸속지방을 분해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권장되며 일본 여성들은 병에 담아 다니기도 한다네요.
고추는 소화를 촉진시키고 거담작용과 진통작용을 하는 등 여러 가지 효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피부에 반점이 생기기도 하고 위장점막 손상이나 설사, 간장기능을 해치기도 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므로 위장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주의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고추씨로 백김치를 담가서 먹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고추의 여러 가지 성분도 섭취할 수 있고 김치의 맛도 즐길 수 있지요.
고향의 텃밭을 바라보니 부모님의 정성이 담뿍 배어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부모님의 정성이 텃밭을 풍요롭게 만들어 놓았네요. 풍성한 가을입니다.
2005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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