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일] 아침 8시경 일어나다. 지리산에 들어온지 3일째 되는 날이다. 밖을 내다보니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안개까지 자욱하게 끼어있어 시야도 좋지않다.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취사장으로 내려가 밥을 지어 아침을 먹는다. 취사장은 방금 도착한 산행객들이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배낭을 꾸려 막 떠나려고 할 때 대피소 직원인 조계은 씨가 커피를 대접하겠다고 초대를 한다. 사무실겸 내실로 들어가니 방바닥이 따뜻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향이 참 좋다. 담배도 한 갑 가지고 가라고 내놓는다. 조계은 씨는 대원사가 있는 유평이 고향이다. 그는 지리산을 찾았던 처녀와의 인연으로 단 세 번 만난 끝에 결혼까지 하였다고 한다. 결혼날짜도 그녀가 잡았다고 하는데, 더 놀라운 것은 결혼식장에서 장인, 장모를 처음으로 만났다는 것이다. 무슨 소설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그의 부모님과 가족들은 지금도 고향 유평에서 살고있다고 한다.
조계은 씨와 그의 동료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장터목대피소를 떠난다. 어제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행했던, 서울에서 왔다는 진사장은 먼저 떠났는지 보이지 않는다. 가랑비가 계속해서 바람에 날려온다. 비옷을 입고 배낭덮개를 씌웠지만 별 소용이 없을 것 같다.
장터목은 남쪽으로 중산리, 북쪽으로 백무동, 동쪽으로 천왕봉, 서쪽으로 세석평전을 연결하는 네거리다. 게다가 대피소와 산희샘이 있어 지리산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지막 묵을 장소로 이 곳을 선택한다. 그래서 장터목은 천왕봉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로 언제나 붐빈다. 옛날에는 해발 1750m나 되는 이 곳에 물물교환 장터가 섰었다. 이 지방 사람들은 인월이나 덕산에서 등짐을 지고 여기까지 와서 서로 필요한 물건을 바꾸어갔던 것이다. 장터목을 오르내렸던 장꾼들의 애환이 서려있을 장터는 온데간데 없고 지금은 무심한 등산객들만이 오갈 뿐이다.
10분 정도 걸어 연하봉[1667m]에 올라선다. 연하봉일대에도 안개가 짙게 깔려있어 경치를 전혀 볼 수 없다. 산기슭의 암봉들만이 간신히 눈에 들어올 뿐이다. 이 곳은 봄과 여름이면 온갖 모양의 바위와 넓은 초원의 산비탈, 산기슭에 만발한 형형색색의 풀꽃들이 잘 어우러져 그야말로 선경을 연출한다. 그래서 연하봉은 지리산 팔경중의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봄 이 곳을 지날 때 진분홍색 물감을 쏟아부은 듯 온 산기슭에 가득 피어난 진달래꽃을 보고는 넋을 빼았겼던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은 짙은 안개로 인해 그런 선경을 전혀 볼 수 없으니 아쉽기 한량없다.
궂은 비를 하염없이 맞으며 세석평전을 향해 떠난다.길가에는 노오란 동의나물꽃과 연분홍 쥐손이풀꽃들이 함초롬히 피어 고개를 들고 있다. 참취도 흔하게 보인다. 참취는 황달이나 간염치료에 쓰이는 약초이기도 하지만 맛과 향이 좋아서 나물로 더 인기가 있다.
안개에 휩싸인 촛대봉[1703.7m]을 지난다. 세석대피소로 내려가는 길가에는 오이풀이 많이 자라고 있다. 잎을 뜯어서 냄새를 맡아보면 오이향이 난다. 그래서 오이풀이란 이름이 붙었다. 오이풀[한약명 지유]은 각종 출혈증을 치료하는 좋은 약초다. 약재로 쓸 때는 반드시 거뭇거뭇하게 볶아서 써야 약효가 제대로 난다. 어디서나 약초가 흔하게 눈에 띈다. 그야말로 지리산은 약초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약초가 흔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값싼 중국산 한약재에 밀려 토종 한약재가 사라져가는 현실은 나를 안타깝게 한다.
장터목에서 두 시간 정도 걸려서 세석대피소에 도착했다. 세석에서 한신계곡이나 거림, 대성골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또 능선을 따라 한나절을 걸으면 삼신봉을 거쳐 청학동과 쌍계사로 갈 수가 있다. 몇 년 전인가 나는 화개에서 불일폭포를 거쳐 삼신봉에 올랐다가 이 능선을 타고 하루종일 세석평전을 바라보면서 걸은 적이 있다.
비는 점점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한다. 대피소 반지하 취사장에서 잠시 비를 피한다. 빗물이 스며들어 옷과 양말이 축축하다. 비가 올 때 산행을 하면 궁상맞기가 이를 데 없다. 꼭 물에 빠진 생쥐가 되기 일쑤다. 문득 '비가 오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지'라는 유행가 가사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해발 1600m에 위치한 세석평전은 수십만평 규모의 광활한 고원이다. 세석은 5월 말에서 6월 초순에 걸쳐 평전전체를 연분홍 빛깔로 물들이는 철쭉꽃으로 유명하다. 철쭉이 피기 전에는 진달래가 또 한바탕 세석평전을 온통 진분홍 빛깔로 물들이는 장관을 연출한다. 지난 해 나는 이 곳을 지나면서 만발한 진달래가 온 산을 불사르는 듯한 장관을 보았다. 얼마나 기막히게 아름답던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었다.
세석평전은 이현상의 남부군 주둔지로도 유명한 곳이다.당시 이 곳에서는 남부군의 군중대회와 연극공연 등이 열렸었다.그러나 마지막에는 토벌대에 포위되어 몰살을 당했던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현장이 바로 이 세석평전이다.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싸워야만 했던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세석평전! 그러나 지금 세석평전은 안개속에 잠겨 말이 없다.
세석을 떠나 칠선봉으로 향한다. 영신봉[1651.9m]을 넘을 때 길가에 용담초 몇 포기가 보인다. 아직 꽃이 피기 전이다. 용담은 고열과 염증을 없애주는 뛰어난 약효를 가지고 있다. 간염이나, 황달, 여자의 염증성 대하를 치료하는 대표적인 처방이 바로 용담이 들어가는 용담사간탕이다. 용담은 자주색 꽃이 예뻐 화초로 길러도 좋다. 비는 그칠 줄도 모르고 여전히 구죽구죽 내린다.
칠선봉에 올라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묘하게 생긴 암봉들이 여기저기 앉아 있다. 암봉을 세어보니 대충 일곱 개다. 그래서 칠선봉이라 이름했나보다. 이 구간은 원래 날씨가 맑으면 전망이 좋은 곳이 많이 있다. 그러나 오늘은 비가 오는데다가 안개까지 짙게 드리워 있어 전망을 볼 수가 없으니 아쉽기만 하다.
칠선봉을 지나면서부터는 길이 바위투성이다. 빗물에 젖은 바위가 미끄러워 조심해야겠다. 덕평봉 상덕평[1500m]에 자리잡은 선비샘에 도착했다. 세석에서 6km 되는 지점이다. 벽소령까지는 4km가 남았다. 배낭을 벗어놓고 샘물을 떠 목을 축인다. 예나 지금이나 물맛이 참 달고 시원하다. 옛날 선비들이 이 샘물을 마시며 이 곳에서 공부를 했다고 해서 '선비샘'이란 이름이 유래한다. 선비샘은 또 의적 임걸년의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곳은 전에는 야영을 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금지되어 있다.
선비샘을 떠난다. 얼마동안 가다가 바윗길을 벗어나니 길이 평평해지면서 편해진다. 숲이 우거진 산길을 벗어나자 지리산 8경중의 하나인 '벽소명월'로 유명한 벽소령 종단도로가 나타난다. 하동군 화개와 함양군 마천을 잇는 이 도로는 군사적 목적으로 1972년에 개통이 되었다. 현재 벽소령 남쪽구간은 도로바닥에 나무들이 꽉 들어차 도로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북쪽구간은 지금도 차량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여기서 벽소령대피소까지 1km는 지리산 종주코스로 이용되는 구간인데 나무들이 들어차고 낙석이 져서 오솔길의 형태로만 남아 있다.
오후 4시경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하니 바람이 엄청나게 거세게 분다. 대피소 취사장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비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취사장문을 열기도 힘들다. 정구호 박사가 코펠을 들고 남쪽으로 150m 지점에 있는 범뱀샘으로 물을 뜨러 나선다. 범뱀샘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온다.
옛날 목이 마른 호랑이가 샘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물이 나올만한 곳에 큰 뱀이 또아리를 틀고는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화가 난 호랑이가 큰 소리로 포효하자 뱀이 깜짝 놀라 허겁지겁 달아나느라 그만 꼬리를 빼놓고 갔다. 뱀의 꼬리가 빠지자 그 자리에서 물이 콸콸 솟아났다. 그후 이 샘을 범뱀샘이라고 불렀다.
라면을 끓여서 아침에 먹고 남은 밥을 말아서 먹었다. 배낭을 꾸려 연하천을 향해 길을 나선다. 연하천까지는 이제 두시간 거리다. 바위투성이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된다. 이런 길은 지루해서 지치기 쉽상이다.
형제봉[1442m]에 올라 배낭을 벗어놓고는 잠시 숨을 고른다. 이 봉우리에는 커다란 바위가 등을 맞대고 서 있는 듯한 모습을 한 '형제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는 옛날 지리산에서 도를 닦던 형제가 성불한 뒤에 지리산여인의 유혹을 뿌리치려고 오랜 세월동안 등을 맞대고 서 있다가 그대로 굳어서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형제봉을 지나면서 길이 한결 편해진다. 오르내림도 별로 없는데다가 부드러운 흙길이다. 길가에 참나물이 흔하다. 참나물의 여린 잎을 하나 따서 씹으니 고소하면서도 상큼한 향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곰취도 더러 보인다. 꿩의다리도 하얀 꽃을 피웠다. 왼쪽에 들메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들메나물은 맛이 좋아 지리산에서 나는 나물중에서도 최고로 친다.
오후 6시경 마침내 연하천에 도착했다. 대피소로 들어가려는데 안경을 쓴 젊은이가 인사를 한다. 가만히 보니 지난 1월 폭설로 발이 묶이는 바람에 노고단 대피소에서 함께 묵었던 정승기 씨가 아닌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그는 볼 일로 서울에 간 대피소 주인 노시철 씨 대신 잠시 머물고 있다고 했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대피소로 들어가 배낭을 풀고 잠시 쉬고 있는데, 이 곳에 휴양차 와 있던 대구 호텔크리스탈 에이스나이트클럽 사장인 김재수 씨의 부인이 차를 한 잔 대접하겠다고 내실로 초대를 한다. 영지와 당귀를 넣어서 닳인 차인데 맛과 향이 일품이다. 영지는 정신을 안정시키고 허한 것을 보해주며, 당귀는 보혈약중의 으뜸이니 약차로도 훌륭하다.
저녁을 먹고 대피소 뒤켠에 있는 방에서 정승기 씨, 김재수 씨 부부, 진사장과 함께 곡차례를 가졌다. 산중에서 마시는 곡차는 그 양이 두배로 늘어나기 마련이라 밤이 늦는 줄도 모르겠다. 온몸에 스며드는 청청한 산기운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밤이 이슥하여 모두들 돌아가고 정두용 교수와 편안한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은 하루종일 안개속만 헤매면서 왔다. 인생을 살다보면 마치 안개속을 헤매는 것처럼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안개가 걷힐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좋다. 서둘러 안개속을 벗어나려고 허둥대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
지리산 연하천의 품에 안겨 잠들다.
200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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