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순례기

100대 명산 북한산 백운대 포토기행

林 山 2004. 8. 25. 15:09

2004년 8월 14일. 토요일이다. 날이 이미 저물어서 도선사 매표소에 도착했다. '산을 찾는 사람들'(http://cafe.daum.net/sanchassa) 산악회 서울지역 회원들 다섯 사람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이한다. 충주에서 올라온 네 사람을 합쳐 모두 아홉 명이다. 곧바로 인수야영장을 향해 떠난다. 인수야영장으로 오르는 돌계단길이 꽤나 가파르다. 한참을 땀을 흘린 끝에 하루재에 올라선다. 어두운 밤인데도 산을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이 제법 많다. 하루재에서 잠시 쉬면서 땀을 식힌다.

인수야영장으로 가다가 무심코 머리를 들어보니 인수봉이 바로 앞에 보인다. 인수봉은 서울의 밤을 밝히는 불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인수야영장에 도착했을 때, 일산에서 온 이정환 씨를 만났다. 그는 나와 같은 민주노동당원으로 가족과 함께 북한산으로 야영을 하러 왔다고 한다. 인터넷 공간에서만 알다가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되니 반가운 마음이 든다. 그는 부인과 일곱 살짜리 아들과 함께 주말이면 늘 북한산을 찾는다고 한다.


 

▲인수야영장에서 만난 이정환 씨. 오른쪽이 필자


인수야영장은 인수봉 바로 밑에 있었다. 이정환 씨가 쳐놓은 텐트 바로 옆에다가 텐트 한 동을 쳤다. 그리고 널찍한 공터에 둘러앉아 입산주를 마시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사람들이라 반가운 나머지 그동안 쌓였던 회포들을 푸느라 정신이 없다. 오늘도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을 지새울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돼지불고기, 홍어회 등 술안주가 풍성하다. 됫병짜리 소주 세 병과 나중에 이정환 씨가 가지고 온 4홉짜리 중국산 고량주를 보니 오늘도 일찍 자기는 다 틀렸다. 알파인 스타일로 술잔을 돌린다. 커다란 그릇에 술을 가득 따라서 돌아가면서 마시는 것이 알파인 스타일이다.


 

▲인수야영장에서.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필자


이정환 씨와는 민주노동당내 의견그룹인 '사회민주주의를 위한 자율과 연대'( http://www.kdlpsds.org)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율과 연대의 결성취지에 공감한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자율과 연대에 동참할 것을 권했다. 당내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자율과 연대가 당원들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밤이 늦어 이정환 씨도 자기 텐트로 돌아가고 이젠 '산을 찾는 사람들'만 남았다. 인수봉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새벽 2시 쯤 되었을까. 어제 산악마라톤을 뛰어서 그런지 금방 취기가 오른다. 눈이 자꾸만 감겨 온다. 주위를 둘러보니 가까운 곳에 평평한 바위가 눈에 띈다. 바위위에다가 매트리스를 깔고 산사님의 침낭커버를 덮고 누웠다. 이게 바로 비박이라는 것이다. 문득 어릴 때 무더운 여름철이면 마당에다 멍석을 깔고 누워 별똥별이 흐르는 밤하늘을 바라보던 추억이 떠오른다. 마당 한 구석에는 매캐한 연기가 나는 모기불이 피어 오르고, 할머니가 들려 주는 예날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들곤 했다. 초가지붕에는 하얀 박꽃이 달빛을 받아 교교하게 빛나고..... 뒷동산 아름드리 잣나무에서 울어대던 부엉이 소리는 왜 그리 무섭던지..... 지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추억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비박 풍경 


산새들이 우짖는 소리에 잠을 깬다. 날이 환하게 밝아 있다. 창경궁에 근무하는 지리산이 출근시간에 늦었다면서 허둥지둥 산을 내려간다. 일요일에도 출근을 해야하는 지리산이 좀 안되어 보인다. 그녀는 얼마전부터 창경궁에서 일본인 관광객을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리산이 떠나면서 백운대를 올랐다가 내려와서 꼭 창경궁에 들렀다가 가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라면을 끓여서 아침을 먹는다. 암벽을 타려고 인수봉으로 올라가는 산악인들이 꽤나 많다. 이정환 씨의 안내로 백운대를 향해 떠난다. 일명 호랑이굴 루트라고 불리는 등산로를 오르기로 했다.


 

▲인수야영장 아침 기상

 

▲라면으로 아침식사

 

 

 ▲인수야영장을 떠나기 전에


숲속을 벗어나자 거대한 암봉으로 이루어진 인수봉(810.5m)이 눈앞에 나타난다. 암벽을 타는 산악인들이 루트마다 달라붙어 있다. 로프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까마득한 바위절벽을 오르는 산악인들을 바라보노라니 그저 부러울 뿐이다. 저들은 암벽을 올라 바위봉우리 정상에 서서 결코 내가 볼 수 없는 경치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저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암벽을 오르는 것일까? 위험을 무릅쓰고 바위절벽을 올라 마침내 정상에 섰을 때의 그 성취감,희열을 위해서일까? 그건 어쩌면 끝없는 도전이 아닐까? 도전정신이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인수봉 암벽에 붙어서 선등을 하고 있는 산악인.

▲선등자의 뒤를 따라서 암벽을 오르고 있는 산악인들


암벽을 타는 사람들 가운데 민주노동당원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스스로를 이른바 '동부스럽다'는 성남 중원지구당 소속이라고 소개를 한다. 암벽등반장비를 갖추고 안전모를 쓴 그의 모습이 참 믿음직스럽고 듬직해 보인다. 바로 이런 모습이 민주노동당원의 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의 팀원 중에는 여성산악인 한 사람도 끼어 있다. 로프를 잡고 암벽을 오르는 그녀가 참으로 대단해 보인다. 안전한 암벽등반이 되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남기고 백운대를 향해 떠난다.


 

▲인수봉에서 릿지등반을 하고 있는 필자.

하얀 안전모를 쓴 사람이 민주노동당 성남 중원지구당 소속 산악인.


인수봉 아래 끝자락의 가파른 계곡을 따라서 오른다. 인수봉의 왼쪽 안부 정상에 올라선다. 아침 일찍 암벽등반으로 인수봉에 오른 팀들이 로프를 이용해서 하강을 하고 있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암벽에서 가느다란 로프 하나에 목숨을 걸고 하강하는 산악인들의 모습이 매우 위태로워 보인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조차 짜릿한 느낌이 든다.


 

▲인수봉 남쪽 루트에서 하강하고 있는 산악인들


안부 여기저기에는 이제 막 꽃을 피워올린 금꿩의 다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한가로이 흘러가고, 태양은 머리 위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숲속에서는 늦여름을 재촉하는 매미소리가 요란하다. 이제 가을도 머지않았음을 예감한다. 안부에서 산사랑 산악회 소속 여성산악인 두 명을 만났다. 산사랑 산악회에서 연 등산학교 학생들을 훈련시키기에 적당한 인수봉 루트를 살펴보러 왔다고 한다. 산사랑 산악회와는 몇 년 전 백두대간 충주구간을 함께 종주한 인연이 있다.


 

▲안부를 올라서 인수봉을 배경으로.

왼쪽부터 필자,이정환,한국희,황윤승,채선병 님


안부를 떠나 백운대로 가는 바위능선길을 오른다. 인수봉과 백운대 중간쯤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려간 바위능선(이곳을 일명 '숨은 벽'이라고 함)의 정상 바위봉우리에는 북한산에서 등반사고로 생을 마감한 산악인을 기리는 비석이 서 있다. 그는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도 행복했을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죽는 것이 사람에게 있어 최고의 행복이 아닐까 한다. 사람은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갈 운명이다. 죽음이야 그 누군들 반기리요마는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다가 죽고 싶다.


 

▲등반사고로 숨진 산악인을 기리는 비석 옆에서.

인수봉 뒤로 보이는 흰 바위봉우리가 오봉이다.


곳곳에 가파른 암벽길이 나타난다. 바위 틈바구니를 찾아 손가락 끝에 온 몸을 의지한 채 힘을 다해서 험한 바위벼랑을 오른다. 그럴 때마다 짜릿한 느낌이 온몸을 타고 전해져 온다. 이런 느낌은 위험을 감지했을 때 본능적으로 찾아오는 현상이다. 일명 호랑이굴을 만나 배낭을 던져놓고 기다시피해서 간신히 빠져 나간다. 호랑이굴을 빠져나와서는 또 로프가 매어져 있는 암벽을 기어오른다.


 

▲백운대에서 바라본 인수봉.

정상을 오른 산악인들이 하강을 하고 있다.


한동안 암릉길을 오른 끝에 마침내 백운대 정상에 선다. 백운대도 인수봉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통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다. 정상에 게양된 커다란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백운대 정상은 등산객를로 발을 디딜 틈도 없다. 마침 한국산악회 회원들이 8.15 광복절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더러 백발이 성성한 노산악회원들도 눈에 띈다. 이 분들이야말로 한국 등반역사의 산 증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백운대 정상에서. 만경대 뒤로 서울시가지가 내려다 보인다. 백운대 남쪽 전경


백운대 정상에 서서 사방을 둘러본다. 남쪽으로는 바로 앞에 만경대와 노적봉이 손에 잡힐 듯 하고, 그 너머로 보현봉, 문수봉, 나한봉, 나월봉이 나란히 앉아 있다. 산아래 자락으로는 서울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서쪽으로 염초봉과 원효봉 너머로 서해바다가 보인다는데 오늘은 해무탓인지 보이지 않는다. 또 북쪽으로는 개성의 송악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또 백운대 북쪽의 인수봉 뒤로는 다섯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오봉과 그 오른쪽으로 자운봉과 만장봉, 선인봉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북한산(836.5m)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웅장한 산이다.


 

▲백운대 남쪽 전경. 바로 앞 왼쪽 암봉이 만경대, 오른쪽이 노적봉.

노적봉 뒤로 왼쪽부터 차례로 보현봉, 문수봉. 나한봉, 나월봉.

보현봉 왼쪽 능선이 비봉능선이다.

▲백운대 북쪽 전경.

인수봉 뒤 오봉으로부터 오른쪽 끝의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도봉산.

▲백운대 서쪽 전경.

바로 앞에 보이는 능선이 원효봉 능선.

맑은 날이면 원효봉 너머로 서해바다가 보인다고 한다.


백운대를 떠나 하산길에 오른다. 암반을 깎아서 만든 돌계단길에는 철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등반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백운대를 오른다. 위문에 가까이 내려와 북한산성 자락을 만난다. 성벽은 점판암을 큼직하게 잘라서 만든 돌벽돌로 쌓았다. 성벽에 이끼가 없는 것으로 보아서 보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듯 하다. 북한산성은 백제의 개루왕이 처음으로 성을 쌓았다고 한다. 그 후 고려 32대 우왕 14년에 이 성을 다시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북한산성은 백운대에서 남쪽 보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여기에서 북서쪽 대서문으로 이어지는 능선, 또 백운대에서 서쪽 원효봉을 거쳐 대서문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서 축조되었는데, 성벽의 길이는 약 8km이며 탕춘대성을 포함하면 10Km에 이른다.

위문에 서서 깎아지른 듯 한 협곡을 내려다 본다. 험준한 암봉, 암릉, 바위절벽으로 둘러싸인 이 일대의 협곡은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나라에 큰 변란이 있을 때 왕실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 곳에 산성을 쌓았던 것이다. 북한산성은 한양을 직접 방어하기 위해서 만든 도성이 아니다. 유사시 왕이 도성에 있는 왕궁을 버리고 피난하는 행궁(行宮)을 지키기 위해서 만든 성이 바로 이 북한산성이다.

북한산성에는 성곽을 따라서 대동문, 대서문, 대남문, 북문, 대성문 등 크고 작은 15 개의 문을 설치했다. 산성에 있었던 행궁은 1백20 여간 규모로 산중궁궐로는 제법 웅장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으며, 훈련도감,어영청,금위영 등 삼군 파견부대도 상주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밖에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 등 3개의 장대와 중흥사, 태고사, 부왕사,국녕사 등 11 개의 사찰, 봉성암, 원효암 등 2 개의 암자도 들어서 있었다.

백운대피소로 내려와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대피소 바로 앞에 있는 샘터 우물에서 시원한 물을 길어 마른 목을 축인다. 대피소 마당 곳곳에 놓여 있는 탁자에는 등반객들이 둘러앉아서 하산주를 마시고 있다. 땀을 흘리면서 산을 올랐다가 내려와서 마시는 한 사발의 시원한 막걸리는 꿀맛이 아니랴! 치열한 삶의 현장을 벗어나 이렇게 자연을 바라보면서 곡차 한 잔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복받은 사람들이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은 이런 사치를 꿈도 못 꿀 것이다.

대피소 뒤로 뻗어내린 능선을 타고 인수야영장으로 내려왔다. 이정환 씨 가족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떠날 채비를 한다. 언젠가 다시 한 번 백운대에 오를 것을 기약하고 북한산을 떠난다. 산을 내려오다가 그 무엇인가 아쉬움이 가슴속에 남아 있어 인수봉과 백운대를 다시 뒤돌아 본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말없이 인수봉을 바라다 본다. 그리고는 하루재를 넘어 산을 내려왔다.

그 아쉬움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었을까?

2004.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