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이야기 965

고려엉겅퀴(곤드레, Gondre) '건드리지 마세요'

꽤 오래전의 일이다. 강원도 평창 오대산(五臺山, 1,565.4m)에 올랐을 때 남녀 등산객들이 정상부 능선에 모여앉아 산에서 뜯은 산나물 쌈밥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산나물 쌈밥을 맛보라고 권했다. 염치불고(廉恥不顧)하고 달려들어 이름 모를 산나물에다 밥과 된장을 얹어 쌈을 싸서 먹으니 쌉싸름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산나물의 향도 좋았다. 산나물의 이름을 묻자 곤드레나물이라고 했다. 생소한 이름이었다. 충주 지방에서는 곤드레나물이라는 이름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곤드레나물이 바로 고려엉겅퀴(곤드레, Gondre)라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고려엉겅퀴(곤드레, Gondre)는 초롱꽃목 국화과 엉겅퀴속의 여러해살이풀이다. 고려, 즉 한강토(조선반도)에서만..

야생화이야기 2020.12.28

각시취

2015년 8월 10일 백두대간(白頭大幹) 함백산(咸白山, 1,573m) 깔딱고개를 오르다가 흰각시취를 만났다. 그동안 보았던 각시취 꽃은 대부분 홍자색 또는 분홍색이었는데, 이날은 흰각시취를 만났다. 각시취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이름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각시취는 '작고 예쁘다'는 뜻의 '각시', '먹을 수 있는 나물'이라는 뜻의 '취'가 합해서 이루어진 이름이다. 각시취는 초롱꽃목 국화과 취나물속의 두해살이풀이다. 학명은 소수레아 풀첼라 (피쉬) 피쉬[Saussurea pulchella (Fisch.) Fisch.]이다. 영어명은 메이든 소워트(Maiden sawwort)이다. 중국명은 메이화펑마오쥐(美花风毛菊), 일본명은 히메히고타이(ヒメヒゴタイ, 姫平江帯)다. 이명에는 구화풍모국(..

야생화이야기 2020.12.26

쥐손이풀 '끝없는 사랑'

2012년 8월 중순경 중국을 통해서 백두산(白頭山, 중국명 长白山, 2,749.6)에 다녀온 적이 있다. 8월 19일이었을 거다. 이날은 안투셴(安图县)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에서 베이포(北坡) 코스로 백두산 톈원펑(天文峰, 2,679m)에 올라 천지(天池, 2,190m)를 보고, 내려오는 길에 장쾌하게 쏟아지는 페이룽푸뿌(飞龙瀑布)를 구경했다. 백두산과 천지 등정은 버킷 리스트(Bucket list)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 감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백두산을 내려오다가 산기슭에서 쥐손이풀 꽃을 만났다. 연분홍색을 띤 쥐손이풀 꽃을 보니 몹시도 반가왔다. 쥐손이풀은 남한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풀꽃이었기 때문이다. 쥐손이풀은 이렇게 한반도를 가로질러 만저우(满州) 땅에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쥐..

야생화이야기 2020.12.21

이질풀(痢疾草)

2020년 9월 6일 주말을 맞아 야생화를 만나기 위해 태백시 소도동과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경계에 솟아 있는 함백산(咸白山, 1,573m)을 찾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만항재를 지나 함백산 깔딱고개 초입에 이르렀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도 제법 강하게 불었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고, 우비를 입고 함백산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산길 주변에는 고산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야생화는 비에 흠뻑 젖은 둥근이질풀 꽃이었다. 비에 젖은 채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애처로와 보였다. 예쁜 꽃에 이질풀(痢疾草)이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질(痢疾)에 특효가 있다고 해서 이질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질풀은 ..

야생화이야기 2020.12.21

투구꽃 '밤의 열림'

자손이 번성하여 3~4대가 수십 명이나 되는 가문은 할아버지가 손주들 이름을 혼동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식물 가운데 제비꽃이나 투구꽃 같은 경우도 그렇다. 제비꽃은 갑산제비꽃, 고깔제비꽃, 남산제비꽃, 노랑제비꽃, 둥근털제비꽃, 민둥뫼제비꽃, 알록제비꽃 등 그 종류가 아주 많아서 60여 종이나 된다. 투구꽃도 유사종이 많아 유사종만 수십 종을 헤아린다. 투구꽃과 감격적인 상봉을 했던 적이 있다. 2012년 백두산(白頭山, 중국명 长白山, 창바이산)에 갔을 때다. 8월 18일로 기억된다. 백두산 북쪽의 비룡폭포(飛龍瀑布, 중국명 长白瀑布, 창바이푸부)를 오르다가 남한에는 자생하지 않는다는 각시투구꽃을 만났을 때는 가슴까지 두근거릴 정도였다. 한 뼘 남짓한 줄기에 수줍은 듯 피어난 아름다운 각시투구꽃이 지..

야생화이야기 2020.12.18

큰뱀무 '만족한 사랑'

이름만 들어도 섬뜩해지는 식물이 있다. 큰뱀무나 뱀무, 뱀딸기, 뱀고사리, 배암차즈기(뱀배추), 뱀밥(쇠뜨기) 등 '뱀'자가 들어가는 식물들이다. 그건 아마도 생김새가 징그럽다거나 물리면 생명이 위태롭다는 등 뱀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뱀'자가 들어가는 식물은 뱀과 연관이 있는 경우도 있고, '개'자가 들어가는 식물들처럼 기본종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품질이 떨어지거나 더 작은 것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큰뱀무는 장미목 장미과 뱀무속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 밑에 달리는 잎의 생김새가 무 잎처럼 생겨 뱀무라고 한다. 학명은 제움 알레피쿰 자퀸(Geum aleppicum Jacq.)이다. 속명 '제움(Geum)'은 고대 로마 제국의 해외 영토 총독이자 백과사전 '박물지(博物誌, Natur..

야생화이야기 2020.12.15

큰금계국(大金鷄菊)

충주시 북동쪽에 자리잡은 계명산(鷄鳴山, 775m) 서북능선 등산로 나들목에는 해마다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노오란 큰금계국(大金鷄菊)이 피어나 산길 나그네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서북능선상의 뒷목골산(292.5m) 정상에도 큰금계국이 무리지어 핀다. 초여름만 되면 활짝 핀 큰금계국 꽃들이 연수동 평안교회 뒤뜰 담장을 노란색으로 물들이곤 한다. 코스모스처럼 큰금계국도 이제 전국 각지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화초로 자리잡았다. 큰금계국은 초롱꽃목 국화과 기생초속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학명은 코리압시스 란세올라타 엘(Coreopsis lanceolata L.)이다. 영어명은 란세-크리압시스( lance-coreopsis), 중국명은 졘예진지쥐(剑叶金鸡菊), 일본명은 오킨케이기쿠(オオキンケイギク, 大金鷄菊..

야생화이야기 2020.12.14

포인세티아

꽃도 꽃이지만, 주로 잎사귀의 모양이나 빛깔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기기 위하여 기르는 식물이 있다. 이런 식물을 관엽식물(觀葉植物)이라고 한다. 포인세티아도 관엽식물 가운데 하나다. 아파트 베란다에 포인세티아 화분을 하나 들여놓았는데, 12월 들어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화려한 잎사귀에 가려 꽃이 피는 줄도 몰랐다. 포인세티아(poinsettia)는 쥐손이풀목 대극과 대극속의 상록 관목이다. 학명은 유포비아 풀체리마 윌드. 익스 클로츠슈(Euphorbia pulcherrima Willd. ex Klotzsch)이다. 중국명은 셩딴홍(圣诞红) 또는 이핀홍(一品红), 싱싱무(猩猩木)이다. 일본명은 포인세티아(ポインセチア) 또는 쇼우죠우보쿠(しょうじょうぼく, 猩猩木)이다. 포인세티아를 홍성목(紅星木)이..

야생화이야기 2020.12.13

왕고들빼기

2020년 9월 1일 진료를 마치고 퇴근길에 연수동 주공아파트 1단지를 지나가는데, 축대에 피어난 왕고들빼기 꽃 한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왕고들빼기를 볼 때마다 요즘은 잘 안 먹지만 예전에 한때 즐겨 먹었던 돼지고기 삼겹살이 생각나곤 한다. 삼겹살을 상추나 깻잎, 참취, 미역취에 싸 먹을 때 왕고들빼기 잎을 넣으면 독특한 풍미를 맛볼 수 있다. 왕고들빼기는 그 쌉싸름한 맛이 누린내와 느끼한 맛을 잡아주기에 삼겹살 구이와 궁합이 아주 잘 맞는 쌈채소라고 할 수 있다. 왕고들빼기는 초롱꽃목 국화과 왕고들빼기속의 한해살이 또는 두해살이풀이다. 학명은 락투카 인디카 엘(Lactuca indica L.)이다. 영어명은 인디언 레티스(Indian lettuce), 일본명은 아키노노게시(アキノノゲシ, 秋の野芥子)이..

야생화이야기 2020.12.13

주름잎

2020년 9월 1일 아침에 출근하려고 여느 때처럼 집을 나와 충주시 연수동 행정복지센터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보도 블럭 사이에서 피어난 아주 작고 하얀색 꽃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허리를 굽히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주름잎 꽃이 앙증맞게 피어 있었다. 그동안 봄철에만 피는 꽃으로 알고 있었던 주름잎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연수동 행정복지센터 앞 보도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이어서 주름잎이 과연 온전하게 자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보도 블럭 사이에 자라고 있던 주름잎이 모조리 뽑혀 나가고 단 한 포기도 보이지 않았다.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거리를 정비한다면서 주름잎을 잡초라고 다 뽑아낸 것이다. 아마도 ..

야생화이야기 202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