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435

[남도정자기행] 양산보의 소쇄원을 찾아서 5 - 김인후 소쇄원 48경을 노래하다

내원의 제월당 구역은 광풍각 구역 바로 위에 있다. 제월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왼쪽 한 칸에는 방을 들이고, 나머지 두 칸은 마루를 깔았다. 마루 뒷벽에는 활짝 열 수 있는 문이 달려 있다. 제월당 마루에서는 광풍각 지붕 너머로 앞산까지 바라다보인다. 제월당 ..

[남도정자기행] 양산보의 소쇄원을 찾아서 4 - 김인후 소쇄원 48경을 노래하다

계원 구역은 북쪽 담 아래에 뚫린 오곡문 바로 옆 수문으로부터 남서쪽 대숲 사이 계곡으로 이어지는 계곡을 말한다. 계곡을 흐르는 가느다란 물줄기는 소쇄원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소쇄원 계원 구역 예로부터 사람들은 물을 좋아했다. 흘러가는 물에서 도(道)의 ..

[남도정자기행] 양산보의 소쇄원을 찾아서 3 - 김인후 소쇄원 48경을 노래하다

빽빽하게 우거진 대숲은 소쇄원의 안과 밖, 상징적인 의미에서 속계와 선계를 가르는 경계 역할을 한다. 대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지나야만 비로소 은일자의 영역인 선계 소쇄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1970년대 이전만 해도 소쇄원 입구 대숲길은 좁은 오솔길이었다. 대숲 사이 계곡을 따라..

[남도정자기행] 양산보의 소쇄원을 찾아서 2 - 소쇄원을 조영하다

1526년(중종 21) 17세의 김인후는 담양에 있는 송순을 찾아와 수학했고, 그 이듬해부터는 기묘사화로 동복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최산두를 찾아가 학문을 배웠다. 같은 해 양산보의 세째 아들 지암(支岩) 양자정(梁子渟, 1527~1597)이 태어났다. 하지만 김윤덕은 자정을 낳은 해에 세상을 ..

[남도정자기행] 양산보의 소쇄원을 찾아서 1 - 조광조의 문하에 들다

호남의 사종(詞宗)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의 식영정(息影亭)과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 1501~1572)의 환벽당(環碧堂)에 이어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번지 소쇄옹(瀟灑翁) 양산보(梁山甫, 1503~1557)의 소쇄원(瀟灑園, 명승 제40호)을 찾았다. 소쇄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

[남도정자기행] 김성원의 서하당(棲霞堂)과 부용당(芙蓉堂)을 찾아서 6

서하당에는 임억령의 '서하당잡영', 김성원의 '서하당팔영(棲霞堂八詠)', 정철의 '하당잡영(霞堂雜詠)과 '성산별곡' 편액이 걸려 있다. 임억령의 '서하당잡영' 편액에는 14수가 판각되어 있다. 식영정 4선 가운데 유일하게 고경명의 시 편액은 걸려 있지 않다. 임억령의 '서하당잡영' 편액 ..

[남도정자기행] 김성원의 서하당(棲霞堂)과 부용당(芙蓉堂)을 찾아서 5

1581년(선조 14) 진사시에는 합격했지만 대과에는 응시하지 않고 노모를 모시며 학문에만 힘쓰던 김성원은 효행으로 제원도찰방(濟原道察訪)을 제수받았으며, 1592년 제1차 조일전쟁(朝日戰爭,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성원은 동복(同福)의 가관(假官)에 이어 동복현감(同福縣監)을 맡아서 ..

[남도정자기행] 김성원의 서하당(棲霞堂)과 부용당(芙蓉堂)을 찾아서 4

1568년(선조 1) 3월 9일 김성원의 장인 임억령이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 문암재에서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임억령은 해남 명봉산(鳴鳳山, 지금의 금강산) 중턱 기좌(己坐)에 묻혔다. 고경명과 백광훈은 만시(輓詩)를 지어 스승의 죽음을 애도했다. 유희춘은 해남의 마포 명봉산 근처 ..

[남도정자기행] 김성원의 서하당(棲霞堂)과 부용당(芙蓉堂)을 찾아서 3

임억령과 김성원, 고경명, 정철 등 식영정 4선은 식영정을 중심으로 왕성한 시 창작 활동을 하였다. 임억령이 '식영정제영(息影亭題詠)'을 짓자 김성원과 고경명, 정철은 스승의 시에서 차운한 '식영정이십영(息影亭二十詠)'을 지었으며, 임억령이 또 '서하당잡영(棲霞堂雜詠)'을 짓자 김..

[남도정자기행] 김성원의 서하당(棲霞堂)과 부용당(芙蓉堂)을 찾아서 2

1560년(명종 15) 김성원은 침랑(寢郞)에 임명되었다. 침랑은 조선시대 종묘(宗廟)나 왕릉(王陵), 원(院)의 영(令)이나 참봉(參奉)을 말한다. 그해 고향 해남을 떠나 창평 성산으로 온 임억령은 사위 김성원이 서하당 바로 서쪽 언덕 위에 새로 지어 준 식영정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렇게 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