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정자기행] 김성원의 서하당(棲霞堂)과 부용당(芙蓉堂)을 찾아서 6 서하당에는 임억령의 '서하당잡영', 김성원의 '서하당팔영(棲霞堂八詠)', 정철의 '하당잡영(霞堂雜詠)과 '성산별곡' 편액이 걸려 있다. 임억령의 '서하당잡영' 편액에는 14수가 판각되어 있다. 식영정 4선 가운데 유일하게 고경명의 시 편액은 걸려 있지 않다. 임억령의 '서하당잡영' 편액 ..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8.04.16
[남도정자기행] 김성원의 서하당(棲霞堂)과 부용당(芙蓉堂)을 찾아서 5 1581년(선조 14) 진사시에는 합격했지만 대과에는 응시하지 않고 노모를 모시며 학문에만 힘쓰던 김성원은 효행으로 제원도찰방(濟原道察訪)을 제수받았으며, 1592년 제1차 조일전쟁(朝日戰爭,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성원은 동복(同福)의 가관(假官)에 이어 동복현감(同福縣監)을 맡아서 ..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8.04.14
[남도정자기행] 김성원의 서하당(棲霞堂)과 부용당(芙蓉堂)을 찾아서 4 1568년(선조 1) 3월 9일 김성원의 장인 임억령이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 문암재에서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임억령은 해남 명봉산(鳴鳳山, 지금의 금강산) 중턱 기좌(己坐)에 묻혔다. 고경명과 백광훈은 만시(輓詩)를 지어 스승의 죽음을 애도했다. 유희춘은 해남의 마포 명봉산 근처 ..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8.04.13
[남도정자기행] 김성원의 서하당(棲霞堂)과 부용당(芙蓉堂)을 찾아서 3 임억령과 김성원, 고경명, 정철 등 식영정 4선은 식영정을 중심으로 왕성한 시 창작 활동을 하였다. 임억령이 '식영정제영(息影亭題詠)'을 짓자 김성원과 고경명, 정철은 스승의 시에서 차운한 '식영정이십영(息影亭二十詠)'을 지었으며, 임억령이 또 '서하당잡영(棲霞堂雜詠)'을 짓자 김..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8.04.12
[남도정자기행] 김성원의 서하당(棲霞堂)과 부용당(芙蓉堂)을 찾아서 2 1560년(명종 15) 김성원은 침랑(寢郞)에 임명되었다. 침랑은 조선시대 종묘(宗廟)나 왕릉(王陵), 원(院)의 영(令)이나 참봉(參奉)을 말한다. 그해 고향 해남을 떠나 창평 성산으로 온 임억령은 사위 김성원이 서하당 바로 서쪽 언덕 위에 새로 지어 준 식영정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렇게 해서 ..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8.04.11
[남도정자기행] 김성원의 서하당(棲霞堂)과 부용당(芙蓉堂)을 찾아서 1 16세기 중엽 이후 호남 지역의 사림을 중심으로 시가문학(詩歌文學)의 창작 활동이 왕성하게 일어났는데, 이들을 일러 호남가단(湖南歌壇)이라고 한다. 호남가단은 기촌(企村) 송순(宋純, 1493~1583)의 면앙정(俛仰亭),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의 식영정(息影亭), 소쇄옹(瀟灑翁) ..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2018.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