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어느 봄날의 충주호 밤나들이

林 山 2007. 5. 22. 16:46

3월의 마지막 날이면서 토요일이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오후 4시에 퇴근을 하면서 사무실 건물 뒤편 현관을 나서는데, 하얀 목련꽃이 눈이 부시도록 활짝 피어 있는 것이 아닌가!  사무실 뒤뜰에는 바야흐로 목련꽃들의 화려한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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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며칠 전까지만 해도 꽃봉오리가 맺히는가 싶더니 이렇게 아우성처럼 일제히 활짝 피어날 줄이야 미처 몰랐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끝없이 흐르고, 꽃들은 은밀하게 봄의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던 거다. 흐드러지게 핀 목련꽃을 보자 불현듯 내 마음속 깊숙이 감추어져 있던 아련한 그리움 비슷한 그 무엇이 머리를 들고 일어난다. 딱히 무엇이라고 표현하기도 어려운 그리움 비슷한 그 무엇은 질풍노도처럼 사정없이 나의 발걸음을 밖으로 내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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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호

 

발길이 달는대로 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충주호로 향한다. 봄밤의 나들이 장소로는 충주호처럼 좋은 곳이 없다. 종민동 충청북도 교직원 연수원에서는 충주호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서 호수의 잔잔한 수면 위로 어둠이 밀려들고 있다. 하늘빛을 받아서 빛나는 호수면과 실루엣으로 보이는 산들이 일순간 몽환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시공간은 끊임없이 경이로운 마술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이 존재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시공간으로 인해서다. 시간이 없다면 태어남(生)도 없고 사라짐(滅)도 없다. 과거와 현재,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공간이 없다면 모든 존재의 근거가 사라지고 시간의 존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그러기에 시공간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요, 원인인 것이다. 시간은 없고 공간만 존재하는 그런 세계나, 공간은 없고 시간만 존재하는 그런 세계가 있을까? 그런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있다고 해도 인간은 그런 세계를 절대 경험할 수 없다. 시간과 공간은 결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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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민동의 야경

 

계명산 기슭에 자리잡은 종민동 상가촌에는 불빛이 환하게 들어와 있다. 서로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은은하게 빛나는 계명산 순환도로의 가로등들이 왠지 모르게 외로와 보인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봄밤은 그렇게 깊어만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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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호 박물관 광장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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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댐 야경

 

종민동 교직원 연수원에서 충주호 박물관으로 되돌아 나왔다. 박물관 광장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가로등만 쓸쓸히 빛나고 있다. 충주호 준공 기념탑은 어둠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전망대에서 충주댐을 내려다 보니 그 웅장하던 모습이 어둠속에 잠겨 있다. 저 댐의 건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고향과 함께 소중한 추억들을 잃어버렸다. 충주댐은 홍수를 조절하거나 전력의 생산, 호수의 관광자원화 등의 순기능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늘어난 안개일수에 의한 호흡기질병의 증가와 생태환경의 변화, 유역면적의 손실, 이주민의 발생 등 역기능도 가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강을 막아서 댐을 만드는 것은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자연의 터전을 스스로 파괴하는 종은 지구상에서 인간이 유일할 것이다. 현재의 추세대로 인간이 자연을 거스르고 환경을 파괴한다면 가까운 장래에 상상도 못할 엄청난 재앙이 지구에 닥쳐오리라. 전세계적으로 지구의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라든가 사막화와 같은 재앙의 전조가 벌써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경제적 논리에 의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귀중한 갯벌을 죽이고 세운 새만금 방조제도 언젠가는 그 댓가를 혹독하게 치룰 날이 올 것이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 바다를 막아서 세운 방조제는 물론 해발고도가 낮은 곳에 자리잡은 전세계의 도시들은 하루아침에 바닷물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지금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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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댐 진입로의 야경

 

박물관 광장에서 중원교로 내려와 충주댐 진입로의 가로등 불빛이 수면에 비친 풍경을 바라본다. 가로등 불빛의 그림자가 수면 위에 운치있는 야경을 연출하고 있다. 저 가로등길이 바로 유명한 충주댐 벚꽃길이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저 길을 따라서 마치 흰눈을 퍼부은 듯 벚꽃이 활짝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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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아파트로 돌아오니 목련나무에 이월 열사흘 달이 걸려 있다. 목련꽃은 달빛을 받아 교교하게 빛나고..... 도시에 뜬 달은 이제 신비와 전설이 사라진 지 오래다. 탐사선이 달에 착륙했을 때 인간은 달에 대한 지식을 얻은 대신 무한한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던 마음의 고향을 영원히 잃어버렸다. 달나라에 옥토끼와 계수나무가 살고 있다는 전설은 이제 어린이들도 더이상 믿지 않는다. 꿈과 낭만이 점점 사라지는 세상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람마다 순수하고도 행복한 유년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바로 어린 시절 동심의 세계를 살았기 때문이다. 오늘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느꼈던 그리움은 아마도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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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아파트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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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아파트 사거리

 

밤이 깊어 자정이 다 되어간다. 이제 나의 벌통집으로 돌아와 하루에 지친 몸을 뉘어야 할 시간이다. 벌통집 주차장에는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오고가는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가로등만 쓸쓸하게 비친다. 내가 사는 아파트를 나는 벌통집이라고 부르곤 한다. 좁은 공간에 많은 방이 들어차 있고, 방의 크기와 구조가 모두 같다는 점에서 아파트는 벌집과 아주 비슷한 주거형태이기 때문이다. 아침 저녁으로 거의 같은 시간대에 학교나 일터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사람들이나 꿀을 따러 벌통밖으로 떼를 지어 날아갔다가 돌아오는 꿀벌들이나 살아가는 모습에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시멘트 문명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나는 때가 되면 이 벌통집을 벗어나려 생각하고 있다. 아직 이 벌통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속세에 발을 깊이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깊은 산속 옹달샘 옆에 초가삼간집을 짓고 자연을 벗삼아 살아갈 날을 꿈꾼다. 마당에는 온갖 종류의 꽃들과 과일나무들이 자라고, 밤이 되면 고요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헤면서 잠이 들리라. 꿈을 꾼다는 것은 아직 살아 있음의 증거다. 꿈이 이루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만이다. 비록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지 아니한가!   

 

3월 마지막 날의 밤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세월의 강을 건너서......

 

2007년 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