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0일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길에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따라간 황석영씨가 진보진영 대표 작가라는 그동안의 명성에 걸맞지 않는 행동으로 변절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산하 자유실천위원회와 젊은작가포럼은 5월 20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서 황씨가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을 '광주사태'로 호명하고, 촛불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압살한 이명박 정권을 '중도실용'이라고 발언했으며, 용산에서 벌어진 철거민 학살을 단순한 '실책'으로 오도했다고 비판했다. 성명서는 황씨의 언행이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것이었다는 변명에 대해서도 남북관계를 경색시킨 이명박 정권의 과도한 대북봉쇄 정책과 냉전적 사고에 대한 비판이 생략되었기 때문에 진정성이 없으며, 황씨가 제안한 알타이 문화연합론도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허한 주장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나는 황씨의 돌출 행동을 퍼포먼스 실패작이라고 평가한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의 평가에 동의한다. 그러나, 1990년대초 노태우 정권 치하 민주화를 위한 자기희생의 분신행렬이 이어지던 때, 그들이 왜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은 묵살한 채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글을 기고하여 민주화운동에 찬물을 끼얹은 전력이 있는 김지하씨가 '작가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사람'이라며 황씨의 행보를 옹호한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음은 한국작가회의 산하 자유실천위원회와 젊은작가포럼이 발표한 성명서 전문이다.
최근 황석영의 언행에 대한 젊은 작가들의 입장
우리 젊은 작가들에게 황석영이라는 이름은 각별했다. 황석영이란 이름은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 문학의 역사가 거기 깃들어 있는 이름이었다. 산업사회로 치달아가던 한국현대사의 질곡과 베트남전쟁, 오월 광주 민중항쟁과 분단모순을 극복하고자 전력투구했던 우리 문학의 양심이자 뜨거운 상징이기도 했다. 우리는 진정한 문학이 작가의 양심으로부터 시작됨을, 역사와 현실에 대해 치열하게 대면하면서 시작됨을 그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황석영의 언행은 우리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주었다. 특히 작가란 언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존재라고 할 때, 그의 언행은 실망을 넘어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작가는 부정한 현실에 대해 정직한 언어로써 대응해야 한다. 문학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혼탁하고도 사물화 된 언어에 맞서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는 언어를 창조해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어에 대한 자의식이 결여될 때, 문학은 그 존재의의를 스스로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황석영은 80년 오월 광주 민중항쟁을 광주'사태'로 호명했다. 촛불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압살한 이명박 정권을 '중도실용'으로 규정했다. 서울 한복판 용산에서 벌어진 철거민 '학살'을 단순한 '실책'으로 오도했다. 또한 황석영은 그의 언행을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것으로 변명했다. 그런데 정작 남북관계를 경색시킨 이명박 정권의 과도한 대북봉쇄 정책과 냉전적 사고에 대한 비판은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이 생략된 그의 언행이 진정성을 얻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황석영의 이른바 '알타이 문화연합'과 '몽골+2코리아' 구상 역시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이를 현재 남북한의 경제위기와 분단 상황의 타개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의 경제위기와 분단 상황이 이와 같은 안이한 현실인식으로 극복될 수는 없다. 객관적이고도 겸허한 현실인식이 결여된 그의 구상은 남쪽 노동자들의 노동현실과도 거리가 있으며, 북쪽의 현실 정치와도 동떨어진 지극히 낭만적인 구상에 머물고 있다. 북미관계와 개성공단의 위기 같은 구체적인 현실로부터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북쪽에서도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는 주관적인 관념과 욕망에서 출발하여 행동하는 순간, 남는 것은 공허한 '알타이 문화 이벤트' 일 따름이다.
우리 젊은 작가들은 황석영의 이러한 안이하고 주관적인 현실인식이 혹여 메시아적 오만함과 과도한 개인적 욕망으로 인해 나타난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를 감추기 어렵다. 황석영 같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에게는 문학의 윤리와 사회적 책임이 따르게 마련이다. 문학의 윤리란 정직한 언어를 통해 사유하고 이를 발화함으로써 부정한 언어와 싸우는 것이며, 사회적 책임이란 현실을 정직하게 바라봄으로써 시대의 과제와 고뇌에 동참하고 한 시대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일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젊은 작가들은 시민사회의 생산적 담론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부정적이며 퇴행적인 담론을 만들어내 수많은 독자들의 탄식과 냉소를 재생산하고 있는 황석영의 언행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황석영 개인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다르게 작가 황석영은 우리에게 개인이 아니었다. 선배작가를 지켜보고 따라오던 많은 후배들이 느끼는 형언할 수 없는 실망과 안타까움을 황석영은 다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모범이던 선배 작가를 잃어버린 우리의 가슴이 얼마나 쓰리고 아픈지 선배 작가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번 일의 진행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번 사태는 비단 황석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존경하는 선배 작가들의 잠재적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게 하고 있다. 우리 앞에 좋은 선배, 한국문학 진정한 대가라고 일컬을 수 있는 선배작가들이 계속 자신의 자리를 아름답고 올곧게 지켜주기를 바란다.
2009. 5. 20
(사)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 젊은작가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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