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이야기

싸리꽃

林 山 2013. 6. 26. 11:55

싸리나무꽃


상팔당 마을을 벗어나 숲이 우거진 계곡으로 들어섰다. 시원한 냇물이 흐르는 계곡의 평평한 암반 위에는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쯤 갈림길을 만나 오른쪽 율리고개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예봉산으로 올라간 까닭에 예빈산으로 가는 산길은 한산했다.

 

율리고개로 오르는 산기슭에는 홍자색 싸리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국민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 가을이 되면 담임선생님은 학교 청소용 빗자루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싸리나무를 한 단씩 가져오라고 했다. 그런 날은 학교가 파하자마자 집에 돌아와 뒷산에 올라가 낫으로 싸리나무를 베어 오던 기억이 난다. 


옛날 싸리나무는 사립문의 사립짝이나 울타리, 발, 소쿠리, 다래끼, 채반, 삼태기, 바구니, 빗자루 등을 만드는 요긴한 재료였다. 싸리나무의 잎은 가축의 사료, 줄기에서 벗긴 껍질은 노끈이나 섬유 재료로 쓰기도 했다. 꽃은 꿀이 많아 밀원식물로 이용되었다. 싸리꿀은 어느 지역이든 상관없이 최상품의 꿀로 인정받는다. 


싸리나무는 불이 잘 붙고 화력이 좋아 땔감이 귀하던 시절 화목으로도 많이 이용되었다. 잘 마른 싸리나무는 연기가 거의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남부군 파르티잔(빨찌산)들은 산악지대의 은거지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싸리나무를 때서 밥을 지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도 빨찌산들이 토벌대에 발각되지 않기 위해 싸리나무를 이용해서 밥을 짓는 장면이 나온다. '태백산맥'은 정의감에 불타는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만들었던 소설이다.   


싸리나무는 한국과 일본, 중국, 우수리강 등지에 분포한다. 키는 3m까지 크고, 지름이 큰 것은 3㎝에 달하는 것도 있다. 그렇다면 싸리나무로 만들었다는 사찰의 일주문이나 대웅전의 기둥은 과연 진실일까? 나무의 세포를 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 함양 장수사 조계문(용추사 일주문)은 느티나무, 제천 무암사 극락보전의 기둥과 공주 마곡사 대웅전의 기둥은 소나무, 김천 직지사 일주문은 전나무로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순천 송광사 비사리구시, 사찰은 아니지만 울산 만정헌의 기둥도 느티나무였다. 


싸리나무 가운데 흰색 꽃이 피는 것을 흰싸리고 한다. 흰싸리는 설악산 화채봉 기슭에서 발견되었다. 잎 뒷면에 털이 빽빽하게 나서 회백색으로 보이는 것은 털싸리(var. sericea)다. 털싸리는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싸리나무의 줄기와 잎, 뿌리는 해열, 이수(利水), 윤폐(潤肺)의 효능이 있어 기침, 백일해, 임질, 소변불리(小便不利) 등을 치료한다. 한의사들은 거의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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