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뮤지컬 '맘마미아'를 본 다음 날 오전에 동숭동 대학로를 찾았다. 유니플렉스에서 공연하는 연극 '웃음의 대학(笑の大學)'을 보기 위해서였다. 서울광장을 비롯한 전국각지에서 제18대 대선 부정선거 규탄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시국에 한가하게 연극을 본다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지방에 사는 사람으로서 평소 문화예술에 대한 갈증이 많았던 터라 이왕 서울에 온 김에 연극을 하나 더 보고 내려가기로 한 것이다.
대학로 길거리 음식 노점
차는 일찌감치 유니플렉스 전용주차장에 주차시키고, 때는 조금 일렀지만 점심을 먹을 식당도 찾을 겸 대학로를 돌아보기로 했다. 겨울 가랑비가 내리는 대학로는 다소 한산하고 을씨년스러웠다. 동성고등학교 앞 대로변에는 동남아시아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음식과 물건들을 파는 노점이 죽 늘어서 있었다. 한켠에는 스마트폰 노점도 있었다.
카페 '민들레영토' 대학로본관 바로 앞 길거리에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뭔가 하고 들여다보니 햄버거와 맥주를 파는 노점이었다. 노점 주인은 햄버거 속에는 집에서 직접 기른 야채와 유기농 쇠고기로 만든 패티를 넣는다고 했다. 맥주도 집에서 빚은 가양주라고 했다. 햄버거 한 개에 8천원, 가양맥주는 1리터에 만원으로 좀 비싼 편이었다. 햄버거 한 개와 가양맥주 한 병을 샀다. 나중에 햄버거를 먹었을 때는 식어서인지 맛과 식감이 별로였고 가양맥주도 그저 그랬다.
유니플렉스 근처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정식을 주문했는데 반찬은 깔끔했으나 조미료를 너무 많이 넣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식당을 이용할 때마다 느끼곤 하는 이 맛 - 입에 넣을 때는 착 달라붙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떠오르지도 않는 - 이 불편하다.
커피빈 대학로마로니에점에서
점심을 먹은 뒤 유니플렉스 바로 옆에 있는 커피빈 대학로마로니에점에 들렀다. 커피 대신 차이차를 주문했다. 차이차는 처음 맛보는 차였다. 처음에는 쓴맛이 좀 강하다고 느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맛과 향이 괜찮아졌다. 이런 차가 좋은 차다. 오후가 되면서 대학로를 오가는 사람들이 점차 불어나기 시작했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라 거리에 활기가 넘쳐났다. 공연 시간에 맞춰 커피빈을 떠났다.
대학로 유니플렉스
유니플렉스는 공연장이 3관까지 있었다. 지하 1~4층의 1관 대극장(600석)에서는 뮤지컬 '그리스'를 공연하고 있었다. 1층은 '펍 브로드웨이'라는 술집이었다. 공연을 기다리면서 술이나 차 한 잔 하기에 좋은 장소일 듯 싶었다. 4층 200석의 소극장 3관에서는 창작 뮤지컬 '메디컬 루나틱'을 공연하고 있었다. '웃음의 대학'을 공연하는 2~3층의 2관은 300석 짜리 소극장이었다. 입장권은 4만5천원 하는 R석을 미리 인터넷으로 인터파크에서 할인받아 3만6천원에 구입했다.
유니플렉스 2관
오후 2시. 미타니 코키(三谷幸喜. みたにこうき) 원작의 연극 '웃음의 대학'(김낙형 연출) 막이 올랐다. 등장 인물은 검열관(송영창 분)과 작가(김승대 분) 단 두 명. 배경은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모두가 웃음을 잃어버린 비극의 시대다.
극단 '웃음의 대학' 전속 작가는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 웃음을 전할 수 있는 작품을 공연하기 위해 검열을 신청한다. 그러나, 검열관은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비극적인 시대에 희극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극단의 문을 닫게 하기 위해 관객들이 웃을 수 있는 장면을 대본에서 모두 삭제하라고 작가에게 강요한다. 이에 작가는 공연 허가를 받기 위해 검열관의 무리한 요구까지도 받아 들여서 대본을 수정한다. 그런데, 대본을 수정할수록 줄거리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관객들은 배꼽을 잡고 웃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어떻게든 극단의 문을 닫게 해서 관객들로부터 웃음을 빼앗으려는 검열관과 어떻게든 연극을 무대에 올려 웃음을 지키려는 작가의 두뇌 싸움이 7일 동안 이어진다. 막바지에 이르면서 극적 반전이 일어난다. 검열관은 수정한 대본의 한 장면을 작가와 함께 연습하면서 작가에게 동정을 느끼게 된 것. 검열관이 군대에 입대하여 전쟁터로 떠나는 작가에게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라면서 그때까지 자신이 극단을 지키겠노라고 다짐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눈물이 핑 돌거나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끼게 된다.
'웃음의 대학'은 씁쓸한 웃음으로 권력의 부조리를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이면서도 코미디의 유쾌한 웃음과 정극의 진지함도 갖추고 있다. 검열관은 파쇼 권력, 작가는 민중을 상징한다. 권력이 부당한 권력으로 민중을 통제하려 들 때 민중들은 슬기롭고 지혜로운 방법으로 저항을 한다. 엔딩에서 검열관과 작가의 화해는 곧 권력과 민중의 화해로 치환할 수 있다. 여기서 권력과 민중은 화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북유럽 국가들처럼 명실공히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 사회라면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겠다. 한국이라면?
검열관 역을 맡은 중견 배우 송영창의 선이 굵은 연기와 뮤지컬 배우 김승대의 섬세한 연기도 호흡이 잘 맞았다. 연극이 영화와 다른 점은 무대를 매개체로 하여 배우와 관객 사이에 오가는 교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배우들의 열연은 관객들로 하여금 연극에 몰입할 수 있게 했다. 송영창과 김승대의 열연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오랜만에 정말 좋은 연극 한 편을 본 것 같다.
2013.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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