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TV가 없는 어떤 날의 단상

林 山 2015. 12. 12. 10:05

사무실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와 평소 습관대로 TV를 켰다. 그런데, TV가 뭘 잘못 만졌는지 먹통이었다. 아무리 리모컨을 만져봐도 TV는 여전히 먹통이었다. 기계치인지라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실로 오래간만에 텔레비전을 시청하지 않고 밤을 보내게 되었다. TV가 없는 날의 저녁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TV가 없으니 좀 심심하기는 했다. 막상 다른 것을 하려니 마땅하게 할 만한 것도 없었다. 습관이란 이처럼 무서운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불가에서는 이런 것을 습(習)이라고 했던가! 하루아침에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TV가 먹통이 되는 바람에 모처럼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TV가 바보상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왔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TV가 나를 바보로 이끄는 친구 역할을 해왔음에도 그것을 끊지 못랬던 것이다. TV도 한번 보기 시작하면 고질 습관처럼 끊기 어려운 것이 되고 말았다.


현대 정치에서는 매스컴을 장악하지 못하면 권력도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매스컴의 총아는 단연코 TV다. TV를 장악하면 권력도 창출할 수 있다. 권력자들이 사활을 걸고 매스컴을 장악하려고 기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권력자들은 밤낮으로 자나깨나 자신들이 보여 주고 싶은 것만 보여 주고, 들려 주고 싶은 것만 들려 준다. 매스컴을 통해서 대중들을 세뇌시키는 것이다. 세뇌된 대중들은 권력자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정신적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다. 선거 때마다 결코 자신들 편이 아닌 후보들에게 투표하는 유권자들을 보면 한국인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세뇌되어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TV는 마약과도 같은 것이다. 해로운 줄 알면서도 보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것이다. 친구도 불평하지 않는 친구요, 게다가 재미지고 눈요기까지 할 수 있으니 그 누가 TV를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매일매일 세뇌를 당하면서도 그 해악을 알기란 참으로 어렵다. TV 중독이라고나 할까.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를 부러워하면서 우리나라도 그런 방송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공영방송도 투쟁의 산물이다. 무엇이든 거저 얻는 것은 없다. TV 없는 어떤 날의 단상이었다.

2015. 12. 3.